127화
납치에서 목적지로 이동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노파를 따라 들어간 골목 반대편에는 어두운 천으로 가려진 마차가 대기 중이었는데, 그 마차에서 거구의 사내들이 나와 노파에게서 아델리아를 건네받았다.
-조용히 가자, 꼬맹이.
-사, 살려 주세요.
아델리아가 울먹거리며 애원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노인을 도와주려던 착하고 겁많은 사내아이로만 보였을 것이다.
마차에 던져진 아델리아가 남몰래 씨익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한 거야. 무조건 남을 도와주라는 교육이 이렇게나 위험하다니까?’
원래, 정상적인 어른은 어린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법이거든.
아델리아를 실은 마차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승차감이 몹시도 나빴지만, 아델리아는 함께 탄 감시자 때문에 얌전히 눈을 감고 기다려야 했다.
마차는 잘 닦아 놓은 길 위를 달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거칠게 흔들렸다.
‘숲으로 가는 모양인데?’
아마도 마차는 도심을 벗어나 산길을 달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뒤로도 마차는 한참을 내달리다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멈춰 섰다.
“끌어 내려.”
정신을 잃은 척하고 있던 아델리아는 사내의 어깨에 짐짝처럼 들려 옮겨졌다.
눅눅하고 퀴퀴한 물이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델리아가 슬쩍 실눈을 뜨고서 주위를 천천히 살폈다.
‘석굴이야.’
로시안트 제국에 수도와 가까운 석굴이 어디쯤 있었더라.
‘사원이 몰려 있는 동쪽 산맥이었지.’
수도 번화가에서 동쪽 산맥이라.
‘우연치고는 묘하네. 프레이르 대공령과 가까운 산맥의 석굴이라니.’
찰박찰박, 사내의 걸음 소리에 물기가 스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한 놈인가?”
철문을 지키고 있던 사내의 음성에 아델리아는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어서 문 열어. 어제도 셋이나 죽어 나가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사내가 투덜거리자 문지기가 철문의 자물쇠에 열쇠를 갖다 댔다.
‘지금, 아이들이 셋이나 죽어 나갔다고 한 거야?’
[예, 누님!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저 철문 안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고 있나 봐요!]
게다가 일손이라고 했다.
대체 저 철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어금니를 사리무는 아델리아의 이마로 핏대가 솟았다.
콰드드드— 묵직한 철문이 천천히 열리자 석굴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철문이 열리고 안쪽 공기가 훅 끼쳐 왔다. 그러자 오래된 물이끼 냄새로만 가득하던 공간에 또 다른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 냄새는.’
화약 냄새다.
아아, 촉이 온다. 여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촉이.
‘여긴 최소 초석이 있거나.’
아니면 자폭환이 있거나.
‘아니, 그런데 이런 곳에 아이들을 왜 가둬 두는 거야?’
자폭환이랑 아이들이 무슨 관련이 있다고? 같이 팔아넘기려는 속셈인가?
여러 가지 의문들이 떠올랐으나, 당장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곧 알게 되겠지.’
다시 사내가 걸음을 옮겼다.
“제일 끝 방으로 넣어.”
철컹, 작은 철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아델리아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갔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아델리아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갔나? ……어?’
그러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발견했다.
“얘. 너도 끌려왔어?”
사내아이가 고개를 슬쩍 돌려 아델리아를 쳐다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잡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이는 제법 멀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혹시, 열세 살 정도 되는 사내아이 본 적 있어? 이름은 앤디야.”
아델리아가 세라의 동생에 대해 묻자, 사내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렇게 방을 떨어트려 가둬 두니 서로 알 길이 없을지도.’
으음, 작게 침음한 아델리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 왜 잡혀 온 건지는 알아?”
그러자 아델리아를 경계하던 사내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작은 구슬 안에 가루를 채우면, 된다고 했어…….”
“가루? 어떤 가루?”
“그것까지는 몰라. 단지…….”
단지? 아델리아가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이가 턱을 떨며 울먹였다.
“재수가 없으면 터져……. 이 방에도 원래 세 명이 있었는데, 그게 터져서 전부 죽었어……. 이제 한 명이 더 들어오고 세 명이 되면 이 방에도 구슬이랑 가루가 들어올 거야……. 우린, 우린 죽을 거야…….”
아이는 머리를 감싸 쥐며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세 명? 아까 죽었다던 아이들 이야긴가…….
‘아이들이 죽을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는데도 왜 저 철문은 멀쩡한 거야?’
아델리아가 철문을 향해 걸어가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일반적인 강철이 아니야.’
[누님, 바깥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아요.]
‘그렇네. 바깥과 안을 나누고 완벽하게 차단해 놨어.’
이 철문 하나로.
[마법이나 결계는 없는 것 같은데, 이게 가능한 이야기예요?]
‘응, 아타뮴 광석이나 플라니트 광석이라면 가능하지.’
아까 끌려오며 실눈을 뜨고 살폈던 광경 속에는 이러한 철문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적어도 스무 개 이상.
그 많은 문을 다 만들려면 적지 않은 광석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로시안트 제국의 아타뮴 광석은 아델리아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물론, 다른 제국에서 수입할 수는 있겠지만 이 많은 철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럼 플라니트 광석이라는 소린데.’
플라니트 광석이 나오는 광산은 모두 귀족파가 가지고 있었다.
‘플라니트 광석으로 만든 철문 안에서 작은 구슬에 가루를 채운다라…….’
아델리아가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대어를 낚은 기분인데.
[누님. 위치를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리그하르트의 말에 아델리아는 엄지에 끼워 둔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은반지 가운데 박혀 있는 붉은 루비가 반짝였다.
-이걸 눌러. 그럼 공녀님 위치를 우리를 알 수 있어. 마찬가지로 우리 중 하나가 눌러도 공녀님에게 위치가 전송될 거야.
휴시안의 말이 떠올랐지만 아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내 성질대로 못 놀잖아.’
휴시안은 몰라도, 데릭 앞에서 마음대로 검을 휘두르긴 힘들 테니까.
‘아이들을 납치해서 이용한 벌은 받아야지.’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걱정스레 말했다.
[……누님 성질대로 노시면 여기 무너질지 모르는데요.]
아델리아가 턱 끝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다가, 사내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비, 빌리.”
“좋아, 빌리.”
아델리아가 빌리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거렸다.
“우선, 우린 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좀 울어.”
“어, 어떻게?”
그러자 아델리아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대답했다.
“내가 널 여기서 구해 줄 거거든.”
물론,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그 아이들도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그중에 세라 동생이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늦지 않았기를…….
그러려면 일단 이 방을 나가서 괴한들을 상대해야 한다.
‘예전이라면 좀 버거웠겠지만, 이제는 문제없어.’
오히려 리그하르트의 각성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몰라.
[에헴!]
리그하르트가 우쭐해했다.
아델리아는 방의 한쪽 구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빌리, 저쪽 구석으로 가 있어.”
“뭐, 뭘 하려고? 얌전히 있지 않으면 때린댔어.”
아델리아가 몸을 일으켜 철문을 바라보고 섰다.
“걱정하지 마. 그 사람들은 절대 너한테 손 못 대.”
아델리아는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쥐고 떼어 냈다. 그러자 아델리아의 손에서 번쩍, 작은 섬광이 터지더니 리그하르트가 크기를 키웠다.
‘거, 검?!’
빌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갑자기 나타난 검에 놀랄 새도 없이, 은빛 검에서 희미한 연기가 일렁거렸다.
그것이 오러라는 것을 알 리 없던 빌리는 그저 검이 열을 받아 김이 난다고만 생각했다.
아델리아가 철문을 쏘아보며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짧게 심호흡하더니 곧장 철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검의 궤적을 따라 빛줄기가 그림을 그리듯 따라붙었다.
그러자 매서운 소리와 함께 작게 바람이 일었다.
‘뭐, 뭐야?!’
빌리는 사선으로 네 등분이 되어 갈라지며 바닥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녹슨 철문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까르릉, 깡, 까앙.
철문이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가 한바탕 석굴을 울렸다.
‘가자, 릭! 오랜만에 몸을 좀 풀……, 어?’
아델리아가 허공에 리그하르트를 한 바퀴 돌리며 방을 빠져나오다가, 그대로 굳었다.
‘피비린내.’
주위는 온통 붉었다.
아델리아를 데려왔던 사내들은 물론, 어디서 나타났는지 같은 복장을 한 사내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바닥은 석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 외에도 붉은 피로 흥건했다.
‘누가 대체…….’
그때.
[누, 누님. 왼쪽. 왼쪽이요!]
아델리아는 리그하르트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체 사이에 오도카니 서서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대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