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30분 전.
“로샤크 연합의 진영도 모조리 정리하고 왔습니다, 각하.”
매그너스 제2 기사단의 부단장, 시아곤이 로샤크 연합 진영을 정리하고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간단하게 보고를 전해 들은 테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막사를 나갔다.
“고생들 많았다. 생존자 확인이 끝나는 대로 귀환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 주위 경계를 철저히 하라 일러라.”
테오스를 따라 막사를 나온 시아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각하.”
테오스가 마을을 수색 중인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민가를 샅샅이 살피고 혹시 모를 생존자들이 있는지 확인하라!”
“예!”
전투가 벌어지기 전, 미리 트라들리아 영지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영지민들의 대부분은 영지를 빠져나갔지만, 지하에 대피소를 만들어 놓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국군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나팔을 불자, 숨어 있던 영지민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영지를 직접 살피던 테오스가 보좌관 워렌에게 말했다.
“매그너스 기사단의 일부는 마을 복구를 돕는다.”
“예, 각하.”
“전리품을 정리하여 복구에 드는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해라. 폐하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때, 테오스가 고삐를 잡아 말을 멈춰 세웠다.
이름 모를 교회 앞, 기사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던 까닭이다.
테오스가 그곳으로 말을 몰았다.
“무슨 일이지?”
그러자 기사 하나가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교회에서 생존자들이 대거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기사의 대답에 테오스의 고개가 교회 입구로 향했다. 기사가 말을 이어 갔다.
“아이 한 명이 겁에 잔뜩 질린 상태로 석실에 숨어 나오질 않습니다. 비밀 석실의 입구가 워낙에 좁다 보니 벽을 허물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
“예, 아이를 아는 가족도 없고 기사라면 일단 경계부터 하는지라 접근도 힘이 듭니다.”
잠시 생각하던 테오스가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었다.
“내가 들어가 보겠다.”
“예? 각하, 하지만…….”
“벽을 허무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다. 떨고 있는 아이의 머리 위로 돌무더기를 떨어트릴 순 없지 않겠나.”
테오스는 투구를 워렌에게 건네고서 홀로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훌쩍, 훌쩍. 어린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어가던 테오스는 석실 입구에서 기어 나오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히익!”
테오스를 발견하고 놀란 아이가 후다닥 뒷걸음질 치며 작은 입구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놀란 것은 테오스도 마찬가지였다.
‘은발인 줄 알았더니 밝은 회색이었구나.’
시야가 흐렸던 탓에 은빛 머리카락으로 착각했었다. 그래서 순간, 아델리아가 겹쳐 보였다.
이 전장에 있을 리가 없는데도.
테오스는 조심스레 비밀 석실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로 멈추어 섰다.
“나는 로시안트 제국의 에스테르 공작이다. 전쟁은 로시안트 제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더는 그리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
“…….”
그러나 아이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테오스는 자신이 너무 딱딱하게 말을 건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석실 입구까지 도착한 테오스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석실 안, 아이에게 말했다.
조금 전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늦게 와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너를 위협하는 자들은 모두 항복했고 더는 이 마을에 같은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마.”
“…….”
그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테오스가 석실 입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자. 가족을 찾아 주마.”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어두운 석실 안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작은 손이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그 손이 테오스의 검은 건틀릿 위로 올라왔다.
테오스가 한결 안도하며 그 손을 부드럽게 거머쥐던 그 순간.
밀실 입구로 얼굴을 쑥 내민 아이가 입을 열었다.
“가족 말고.”
“…….”
흐릿한 시야 때문에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읽을 순 없었지만, 작은 체구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와 기운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때, 아이가 밀실에서 빠르게 빠져나오며 테오스의 팔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당신 몸을 줘.”
“……!”
콰앙—! 눈앞에서 터져 나온 굉음과 함께 테오스의 시야가 점멸했다.
***
“아, 빠……?”
아델리아가 굉음에 놀라 말고삐를 급히 당겨 세웠다.
로샤크 연합군의 수장, 비에브를 로시안트 제국 진영에 던져 놓고 테오스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그렇게 멀지 않은 장소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긴…….’
전투 중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영지의 전경이 그제야 시야로 들어왔다.
검은 연기 사이로 언뜻 보이는 새하얀 교회 건물.
얼마 전 꾸었던 꿈과 겹쳐 보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설마.’
아델리아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을 몰아 그곳을 향해 달렸다.
그 꿈처럼,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말을 모는 아델리아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교회 건물 근처로 도착하니, 수많은 기사들이 양동이에 물을 떠다 퍼붓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길을 지척에 두고 기사들에게 붙들린 데릭이 울부짖었다.
“아버지!”
아델리아가 날카로운 숨을 들이켰다. 꿈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데릭이 기사들을 떨치고 건물로 뛰어들려 하자, 기사들이 다시 그를 막았다.
“비켜라! 안에 계신다! 아버지께서 안에 계신다고! 비켜!”
아델리아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다리가 닿았음에도 어쩐지 공중에 붕 뜬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손끝이 떨렸다.
‘내가, 너무 늦은 거야?’
이전 생에서처럼, 그 꿈속에서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또 이렇게 아빠를 잃는 거야?
아델리아의 입술도 파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혔다.
“아빠…….”
아델리아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작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흔들렸다.
아빠. 아빠…….
-걱정할 필요 없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올 테니.
안심하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테오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
아델리아가 고삐를 집어 던지고 리그하르트를 꽉 쥐었다. 그러자 리그하르트의 검신에서 아델리아의 오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그에 놀란 리그하르트가 아델리아를 불렀다.
[누님! 오, 오러가……!]
그리고 다른 손의 손등으로 눈가의 눈물을 쓱, 한 번 훔치고서 명령했다.
‘릭……. 지금부터 난, 최대한 모든 힘을 사용할 작정이야.’
[……예?]
‘나도 오러를 다 끌어낼 테니까, 너도 힘을 다 풀어. 일단 저 불길부터 잡아야 해!’
생각보다 불길이 거세긴 하지만, 어차피 성검이 곁에 있는 이상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오러와 릭의 신력으로 불길을 가르고 들어가서 최대한 빨리 아빠를 찾아 나오면 돼.’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그녀를 말렸다.
[누님. 그러면 누님께서 버티지 못하실 거예요. 누님은 지금 마법 때문에 성인처럼 보일 뿐이라고요. 몸도 몸이지만, 심장이…….]
‘상관없어!’
리그하르트를 감싸는 아델리아의 오러가 더욱 강해졌다.
[누, 누님!]
그때, 교회 건물을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 사이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
교회 건물로 걸어가던 아델리아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리고 일렁이는 화염 속에서 이질적인 인영 하나가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각하!”
화염을 뚫고 나온 사람은 테오스였다.
테오스는 망토로 얼굴을 가린 채 생각보다 덤덤한 모습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아빠……?’
아빠라고? 정말? 아델리아는 걸어 나온 사람이 테오스라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서 참고 있던 숨을 터트렸다.
“하…….”
순간, 긴장이 풀리며 흙바닥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리그하르트의 검신에 흘려보냈던 오러도 그제야 거둬들였다.
그러면서도 아델리아의 시선은 여전히 테오스에게 꽂혀 있었다.
“아버지!”
데릭이 기사들 틈을 헤쳐 나가 테오스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그러자 테오스가 저를 부축한 데릭의 손등을 토닥거렸다.
“……괜찮다.”
“아버지, 잠시만 버티십시오. 의무병! 의무병!!”
데릭이 의무병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테오스가 손을 들어 데릭을 막았다.
“호들갑 떨 것 없다.”
“하지만…….”
테오스는 괜찮다며 데릭의 어깨를 토닥거린 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걸음을 멈춰 한 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군마 옆에 주저앉아 있던 한 사내였다.
테오스가 그 사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