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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140)화 (140/161)

140화

테오스는 정확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아델리아를 향해 걸어왔다.

아델리아는 몸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저를 향해 걸어오는 테오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기루일 것만 같아서. 꿈처럼 깨어나면 사라질 사람 같아서.

“네가.”

아델리아의 앞에 선 테오스는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를 가진 청년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살렸다, 아델리아.”

아델리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신을 어떻게 알아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테오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눈가가 달아올랐다.

테오스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아빠.”

그러자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가 쓰게 웃으며 아델리아의 갈색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아들은 하나로 충분한데 말이지.”

“아빠……!”

테오스의 웃는 얼굴에 울컥한 아델리아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빠아아! 아빠……. 흐아아아앙—!

아델리아가 테오스를 부르며 기어이 눈물을 터트렸다.

테오스가 조용히 아델리아의 등을 토닥거리며 작게 말했다.

“너를 봤다. 네가 나를 부르는 게 들렸어.”

새빨간 화염과 시커먼 연기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보이던 백금색의 빛. 그것은 아델리아의 오러였다.

-아빠……!

그리고 뒤이어 환청처럼 들리던 아델리아의 목소리까지.

분명, 목소리는 환청이었으나 오러는 헛것이 아니었다.

“이 전장에 네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네 오러 덕분에 불길을 헤매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테오스는 아델리아의 오러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길잡이가 되었다고 했다.

“아델리아, 그만 울거라. 이리 살아 있지 않으냐.”

“저, 저는……. 너무, 무서워서……. 또, 또. 잃게 되는 줄 알고……. 아빠. 아빠…….”

아델리아가 테오스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괜찮다. 난 멀쩡하다. 네가 준 선물들이 나를 지켰단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히끅, 히끅. 울음을 겨우 멈추며 테오스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아델리아는 벌게진 눈으로 테오스를 살폈다.

갑옷은 여기저기 구멍이 났고 망토는 찢어져 너덜거렸다. 아델리아가 선물했던 망토 체인의 보석과 신력 목걸이의 보석 역시 새카맣게 변색하여 깨진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어째서, 이렇게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델리아가 다시 흐느끼자, 테오스가 아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날 살렸다, 아델리아.”

테오스가 옅게 웃었다.

실상, 아델리아가 챙겨 준 장비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가족 말고, 당신 몸을 줘.

교회 안에서 마주쳤던 아이가 떠오르자, 테오스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분명, 몸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어금니로 무언가를 씹었고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아마도 자폭환이겠지.’

이번 전쟁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폭환이 등장했다. 수백 개의 자폭환이 전투마다 터졌고 그에 사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자폭환을 터트린 아이가 흑마법까지 사용했다는 거였다.

자폭환이 터지고 흑마법까지 테오스를 공격했다.

순간, 순발력을 발휘한 테오스가 자폭환이 터지는 즉시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만든 망토로 제 몸을 감싸며 화염으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신력이 담긴 목걸이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와 흑마법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망토 체인에 달려 있던 보석과 아타뮴 갑옷에 장착되었던 초월석도 반응하며 푸른색의 장막이 테오스를 지켜 냈다.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가 이렇게까지 많은 능력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테오스가 훌쩍이는 아델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낯선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테오스에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지켜 내겠다고 홀로 싸우고 있었구나…….’

테오스가 말없이 아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때, 데릭이 당황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버지, 그 사람은…….”

누구……?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아버지가 치료도 거부하고 가장 먼저 다가간 사람이 말을 관리하던 군마대 소속의 한 관리였다.

어째서인지 비리비리하게 생긴 사내는 곧장 눈물을 터트리며 아버지의 품에 안겼고 아버지는 그런 사내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어루만져 주었다.

아델리아가 오러를 꺼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데릭은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아델리아가 데릭의 목소리에 부랴부랴 얼굴의 눈물을 닦아 냈다.

‘아, 맞다. 지금 나 군마대 소속이지.’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아델리아 대신 테오스가 모여 있던 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흑마법과 자폭환을 사용하는 잔당들이 남아 있다.”

그러자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테오스의 말이 이어졌다.

“즉시, 마탑과 신전에 각각 지원 요청을 넣어라. 생존자 확인은 잠시 멈추고 지원이 당도하는 대로 재개한다.”

그러자 기사들의 표정이 한층 더 진중해졌다.

“마법사와 신관이 도착하면 3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명심하라!”

“예, 각하!”

***

“끄아아아악—!”

슈미엘의 비명에 휴시안이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슈? 무슨 일……!”

침대 위에서 버둥거리던 슈미엘을 확인한 휴시안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그러자 슈미엘이 발작하듯 몸을 뒤틀며 외쳤다.

“뜨, 뜨거워! 휴시안! 살려 줘! 나 좀, 나 좀 살려 줘!!”

“……이게, 무슨.”

한동안은 조용했다.

그릇을 직접 찾으러 가겠다던 슈미엘은 모든 계획을 접은 사람처럼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그러했다. 평소처럼 가볍게 식사를 마친 슈미엘은 잠이 온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얌전히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슈미엘이 기어이 사고를 친 모양이다.

휴시안이 정신을 차리고 슈미엘에게 달려갔다.

“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그릇! 그 인간이!”

그 빌어먹을 인간이!

아아아! 아파! 아파!!

슈미엘은 얼굴을 감싸 쥐고 온몸을 비틀어 댔다.

“그릇? 너 설마…….”

달려온 휴시안은 슈미엘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피부 결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피부 틈 사이로 용암 같은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이건…….’

흑마법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저주에 실패할 경우 그 저주가 시전자에게로 돌아온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지금 슈미엘의 몸 상태는 저주에 실패하고 역풍을 맞은 자들의 것과 같았다.

‘이대로라면 소멸하고 말 거야.’

휴시안이 다급히 마력을 꺼내어 슈미엘의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슈미엘이 고통스러워했다.

“아으윽! 휴, 휴시안! 살려 줘! 제발!”

“…….”

소멸하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살고 싶다고!

슈미엘이 절규했다. 휴시안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렀다.

한동안 슈미엘의 비명이 계속되었다. 휴시안 역시 버둥대는 슈미엘을 누르고 제 마력을 주입하느라 진이 빠졌다.

“휴, ……시안.”

겨우 진정한 슈미엘이 그제야 눈을 뜨고 휴시안을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피부가 메마른 땅처럼 쩍쩍 갈라지던 소멸의 진행은 멈췄다. 하지만, 얼굴과 온몸에는 끔찍한 흉터가 남았다.

“소멸하는 건 막았어. 하지만, 슈…….”

휴시안은 슈미엘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흑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거야. ……남아 있는 마력도 얼마 없고 마력이 재생되는 시간도 엄청 느려졌어.”

“알아…….”

슈미엘이 넋 나간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난. ……다시 힘을 되찾을 거야.”

그런 슈미엘을 보며 휴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몰라.”

“상관없어……. 알잖아. 시간은 너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

초점 없는 슈미엘의 눈동자가 창밖 하늘을 멍하니 응시했다.

“난, 그 그릇을 포기할 수 없어.”

“…….”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릇. 그 그릇만 손에 넣으면 그 무엇도 두려워하며 살 필요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난 포기하지 않았어, 휴시안.”

쿨럭—!

말을 이어 가던 슈미엘이 난데없이 핏덩어리를 토해 냈다.

“슈!”

우욱! 울컥울컥 피를 토해 내는 슈미엘을 보며 휴시안이 다급히 방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기다려! 약 가지고 금방 올 테니!”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이 역류하는 현상이 분명했다.

휴시안이 옆방으로 달려가 가방을 뒤적거리고는 약병 하나를 찾았다. 그리고 빠르게 돌아왔다.

“……슈?”

그러나, 조금 전까지 피를 토해 대던 슈미엘은 보이지 않았다.

슈미엘이 토해 낸 핏물이 침대 위를 적시고만 있을 뿐.

휴시안이 침대로 걸어갔다.

‘소멸인가…….’

하지만 마법사가 소멸했을 때 보여야 할 마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휴시안이 들고 왔던 약병을 꽉 움켜쥐었다.

슈미엘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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