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왜 올리비아 옆에 저런 게 붙어 있는 거지?
아델리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올리비아와 하녀를 번갈아 보았다.
올리비아는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서 조용히 차를 마실 뿐이었다.
아델리아가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 요양 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러자 올리비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간략하게 대답했다.
“응. 그랬어.”
“…….”
아델리아가 다시 물었다.
“다 나은 거야?”
“응.”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데?”
“……아델.”
“응?”
올리비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아델리아와 시선을 마주쳤다.
순간, 아델리아는 흠칫했다.
‘똑같아.’
저 뒤에 서 있는 하녀의 눈동자와.
말갛던 올리비아의 눈동자 속에 형체 없는 공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치고는 있었지만, 올리비아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누님, 세뇌인 거 같아요.]
‘세뇌? 그거, 흑마법의 일종이잖아.’
[그렇죠.]
‘그렇다는 건,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쥴리아노 백작저에 있다고 봐도 되는 거지?’
[확실해요. 저 뒤에 하녀부터. 저거, 사람이 아니에요.]
리그하르트는 하녀를 보고 사역마라고 했다.
‘저런 게 왜 올리비아에게 붙어 있는 거야?’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이대로 두면 곧 죽을 거라는 거죠.]
리그하르트의 말에 아델리아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쥴리아노 백작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백작은 방문하겠다는 아델리아의 요청을 죄 거절하고 있었고,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갔을 때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여기서 더 강압적으로 나가면 결국 영지전이 벌어질지도 몰라.
‘역시, 조용히 잠행을…….’
그때, 아델리아를 가만히 응시하던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 올래?”
“응?”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분도 널 굉장히 궁금해하고.”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 혹시, 다른 대륙에서 왔다는 그 사람인가.
‘아……. 그 사람이 흑마법과 무슨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가시려고요?]
‘기회야, 릭. 흑마법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자가 누군지 알아볼 기회.’
[위험해요, 누님.]
‘네가 있잖아, 위대하신 성검님.’
[크, 크흠!]
‘위대하고 거룩하며 강력하신 성검께서 내게 있는데 흑마법 따위가 뭐라고.’
[히히, 으히히, 깔깔깔깔!]
리그하르트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더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짜식, 단순하긴.’
아델리아가 다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델리아는 쥴리아노 백작가 뒤에 있는 세력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델리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올리비아를 잃을 순 없어.’
아델리아가 싱긋 웃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해한 얼굴로 대답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올리비아. 나중에 날짜랑 시간만 알려 줘. 기쁜 마음으로 찾아갈 테니까.”
그러자 올리비아는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곧 서신을 보낼게.”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해맑게 웃으며 함께 맞장구치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응, 기대할게.”
아델리아가 애써 웃으며 올리비아의 손을 붙잡았다.
올리비아의 손은 마치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
같은 시각, 황제의 알현실.
“티파티라. 이제 아델리아도 사교계에 나설 준비를 하는 모양이군.”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런 것에 관심 있는 아이가 아니거든요.”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열아홉이면 자신을 가꾸고 뽐내는 일에 눈을 뜰 나이라고.”
“…….”
황제가 재밌다는 듯 떠들었지만, 테오스는 말없이 차를 마시며 그의 반응을 무시했다.
황제가 느릿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래. 듣자 하니, 에스테르 공작가의 재산이 황실을 훌쩍 넘었다고.”
“공작가의 재산이 아니라, 아델리아의 재산입니다.”
“그게 그거지.”
황제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리자, 테오스가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같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의 재산에 손을 댈 생각이 없고, 아이가 그 재산을 어찌 쓰든 상관할 생각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끌끌 혀를 찼다.
“아직도 아델리아를 보고 아이라고 하다니……. 이제 곧 성년을 앞둔 어엿한 귀족 영애가 아닌가. 이제는 아이라고 불리기엔 너무 자라 버렸지. 안 그런가?”
황제의 핀잔에도 테오스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몇 살이 되어도 아이라고 하지요. 폐하께서는 그렇지 않습니까?”
되레 되묻는 말에 잠시 고민하던 황제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이지, 아이야. 내가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내게 카르세스도 그저 아이일 뿐이지.”
내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어, 하며 황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아깝다. 정말 아까워. 그 정도의 검술 실력이라면 황실 기사단의 단장 자리는 우습게 꿰찰 텐데. 거기에다 대장간 사업으로 제국의 골드란 골드는 다 긁어모은다지.”
“사업 쪽은 대장장이인 노베트와 로즈힐 후작가의 도움을 받은 걸로 압니다.”
“테오스. 그러한 인재를 곁에 두는 것도 실력이라 부른다네.”
“…….”
테오스가 다시 입을 다물자, 황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탄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깝구나. 오러만 아니었더라도…….”
카르세스의 곁에 두었을 텐데.
“그랬다면 세기에 다신 없을 완벽한 황후가 탄생했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러자 그때까지 아래로 향했던 테오스의 눈동자가 스르르 올라와 황제를 바라보았다.
실상, 노려본 것과 다름없는 매서운 눈빛이었다.
그러자 황제가 크흠, 헛기침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황족 놈들 욕심이야, 어디 하루 이틀 일이야?”
“황족 놈들이라니요. 듣기 민망합니다, 폐하.”
그러자 황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니까 할 수 있는 욕이지.”
자네 앞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 그의 말에 테오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소식이 아직 없습니까?”
“으음.”
황제가 침음했다. 그러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황제는 차를 마시진 않고 찻잔을 그저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매년 황제의 생일 때마다 선물은 챙겨 보낸다고 했다.
“야속한 녀석이 아닌가. 누가 보냈는지도 알 수 없도록 서신 한 장 없이 선물만 덩그러니 보낸다니까? 나 참, 어린 시절 쌓였던 서운함을 이렇게 복수하나 싶기도 하고.”
황제가 한숨을 내쉬자, 테오스가 건조한 위로를 건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행적이 드러나게 될까 봐 조심하시는 거겠지요.”
그의 말에 황제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래서 근래는 자네가 더욱 부러워. 나도 새로 황후를 들여 힘 좀 써 볼까. 황녀 하나쯤 낳을 때까지.”
그러자 테오스가 피식 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십니다. 지금 황후 폐하를 들여 황손이 태어난다면 황궁에 피바람이 불어올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께서.”
그의 말에 황제가 껄껄 웃었다.
“그래, 농이었네. 자네가 딸아이를 가진 유세를 떠는 걸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꼬여서 말이야.”
이 나이에 무슨 황후.
황제가 찻잔을 올려 차를 마신 뒤 말을 이어 갔다.
“지금 급한 건 황후 자리가 아니라, 황태자비 자리지.”
“…….”
“이제는 세대가 바뀌어야 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그러자 테오스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아직 폐하께서 정정하십니다. 조급하게 결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곧 황태자 전하께서도 돌아오시지 않겠습니까. 돌아오시면 함께 의논하시지요. 홀로 결단을 내리지 마시고요.”
“그래, 그래야지…….”
황제가 씁쓸하게 웃으며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때, 테오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황제가 아쉽다는 듯 물었다. 테오스는 옷매무새를 손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이와 함께 광장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응?”
아이와 광장 식당에서 식사를?
“아니, 그러니까 자네가. 에스테르 공작이, 테오스 자네가?”
사람 많은 곳이라면 질색하던 자네가 말이야?!
그의 호들갑에 테오스가 작게 헛기침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니, 테오스.”
“그럼 이만.”
테오스가 도망치듯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로 황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한참이나 울려 퍼졌다.
***
수도의 광장, <센 파니 베니 식당>
아델리아와 테오스는 식당의 창가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올리비아를 만나러 백작저에 가 보려고요.”
“함께 가 줄까?”
“에이, 친우 집에 가는걸요. 괜찮아요, 아빠.”
아델리아는 흑마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연락되지 않던 친우의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는 말만 했다.
‘아빠가 흑마법에 대해 아신다면 절대 날 보내지 않으실 거야.’
게다가 테오스는 로샤크 전쟁에서 흑마법을 정통으로 맞았다.
보호구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뒤 펠슨 선생을 조용히 불러들인 걸 보면 건강에 대해 숨기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펠슨 선생이 또 입은 엄청 무거워서 무슨 일인지는 말해 주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다고 협박을 할 수도 없고.
식사를 거의 끝냈을 무렵,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던 아델리아가 창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자리가 제일 좋아요. 노베트의 대장간이 내려다보이거든요.”
그러자 테오스의 고개도 창밖으로 향했다.
하늘은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분수대 주위를 둘러싼 램프의 불빛과 광장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 그리고 불을 밝힌 가게들 덕분에 수도 광장은 대낮처럼 환했다.
자릿세 때문에라도 대장간은 후미진 골목 끝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노베트의 대장간은 달랐다.
아델리아가 직접 발품을 팔아 자리를 구하고 건물을 사들였다.
수도 광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 칙칙한 일반적인 대장간의 외관이 아닌, 수도 광장의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 썼다.
덕분에 에스테르 공작가에서 연이어 영웅이 탄생하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황에서도 대장간은 그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구나.”
“그렇죠? 특히 저기 오른쪽에 전시된 무기가 제일 잘 나가요, 아빠.”
호신용으로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했다.
“……그렇구나.”
테오스의 대답이 조금 느리게 흘러나왔다.
오른쪽이라. 테오스의 눈동자가 아델리아가 가리키던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펠슨이 준비한 약을 꾸준히 먹고 있지만, 아직 시력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특히 이렇게 거리가 있는 상황이면 조금은 난처했다.
‘전쟁터에서 날아드는 검은 피하겠는데…….’
가만히 있는 사물을 알아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빠, 그 옆에 무기도 보세요. 매끈한 검날에 손잡이 쪽으로 제국의 문양이 들어가서 굉장히 고급스럽죠?”
아델리아가 제법 떨어진 대장간의 유리창 너머, 전시된 무기에 대해 계속해서 물었다.
테오스는 흐릿한 시야 때문에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즐겁게 떠드는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었다.
“그래. 굉장하구나.”
“…….”
그러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이 이상했던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맞은편 아델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딸아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