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건물 안은 엉망이었다.
벽은 무너져 내리고 창문은 죄다 깨져 있었다.
건물 전체가 주저앉아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을 정도였다.
‘우와. 이렇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아델리아는 깨진 파편들을 피해 계단을 훌쩍훌쩍 뛰어올랐다.
그렇게 3층까지 올라갔을 때였다.
[누님! 저기예요, 저기!]
3층 복도 끝. 갈색 망토 사내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가볍게 들어 올린 괴한이 보였다.
그 괴한의 전신에서 보라색 오러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느꼈던 오러가 저놈 오러인가 봐.’
꺽, 커억. 갈색 망토의 사내가 버둥거리며 제 목을 움켜쥔 괴한의 손을 잡아떼어 내려 했으나, 괴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괴한의 고개가 아델리아를 향했다.
순간, 등줄기가 찌릿찌릿했다.
엄청난 체구와, 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그리고 그동안 본 적 없는 강렬한 오러의 기운에 아델리아의 본능이 반응한 것이다.
‘강해.’
게다가 저 오러…….
오빠와 거의 동급, ……아니다. 어쩌면 아빠랑도 비슷하겠는데?
주변을 강제로 짓누르는 힘이 가히 위협적이었다.
‘만약 저게 힘을 숨긴 거라면…….’
위험하다. 아델리아는 그를 두고 그렇게 판단했다.
‘오러 발현자 명단은 꿰고 있는데.’
누구지? 아무리 떠올려도 자신이 익혀 둔 명단 속 사람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었다.
[오러가 발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등록이 안 된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제국 사람일 수도 있지.’
그나저나, 오러를 가진 자가 이곳에는 왜 온 걸까?
‘설마, 저 녀석도 자폭환 제조법이랑 개발자를 찾는 건가?’
위험한 힘은 어딜 가나 인기가 많은 편이긴 하지.
아델리아가 유리 파편이 널브러진 복도 위를 걸어갔다. 빠작빠작, 퀴퀴한 공기 속으로 울려 퍼지는 발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도 괴한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델리아가 일정 간격을 벌린 채, 괴한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그 녀석은 내 거야. 내려놔.”
“…….”
그러자 괴한의 고개가 일순 기울어졌다.
“하아.”
괴한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쥐어 갈색 망토 사내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한차례 울려 퍼지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짤막하게 들려왔다.
“끄어어…….”
순식간에 정신을 놓아 버린 사내가 괴한의 손아귀에서 축 늘어졌다. 괴한은 더러운 오물을 털어 버리듯, 갈색 망토의 사내를 바닥에 내던졌다.
바닥에 처박힌 사내가 꿈틀거리다 잠잠해졌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친!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
별 희한한 게 끼어들어서 일을 망쳐 놓네!
아델리아의 목소리에 괴한이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다.
‘저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에서 제조법과 제작자를 찾으려면 저놈부터 처리해야 해.’
뒤져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저 갈색 망토의 사내라도 그리젤 길드로 데려가야지.
‘고문, 아니. 심문이라도 해야 하니까.’
우선은 저 보라색 오러를 가진 놈부터 처리하자.
‘정신 바짝 차려, 릭. 보통 녀석이 아니야.’
아델리아가 성검에 오러를 실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오러가 검날을 휘감자, 리그하르트가 놀라 말했다.
[누님. 이러다 몸에 무리가 오면 어쩌려고요!]
아델리아가 괴한을 쏘아보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한계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오히려 당할지 몰라.’
[그 정도로 강한 상대인 거예요?]
‘응…….’
아델리아는 오러 큐브를 꾸준히 단련시켜 왔다.
지난 10년간, 잠을 아껴 가며 훈련한 덕분에 오러를 가두고 그 오러의 기운을 숨기는 것까지는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신체로 오러를 분산시켜 강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높이를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힌 듯 성장이 멈춘 것이다.
조금만 무리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옥죄었다. 심하면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기도 했다.
분명 처음 회귀했을 때보다 강해진 것은 맞지만, 회귀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의 수준도 되지 못했다.
아델리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모았다.
‘한 번에 끝내자.’
아델리아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곧장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까앙—. 어느새 검을 뽑아 든 괴한이 아델리아의 검을 맞받아쳤다.
‘괜히 오러 발현자가 아니네.’
묵직했다. 마치, 바위를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검을 받아 내는 속도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체구가 커서 속도가 떨어질 줄 알았더니.’
한 걸음 물러선 아델리아가 조금 전보다 더 많은 오러를 검에 실었다.
그리고 전신으로 오러를 분산시켰다.
째앵—! 깡, 챙! 날카로운 공격이 계속되었다. 자주색 오러와 백금색의 오러가 부딪혀 어두운 복도가 번쩍거렸다.
까각—! 은빛 검날이 시커먼 검날에 부딪혔다. 아델리아는 몸의 무게를 더해 검은 검날을 강하게 압박했다.
큭. 짧은 신음이 괴한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래, 너도 내가 쉽지만은 않을 테지.
‘일단, 이 까만 검을 부러트리고 만다!’
[아으으으! 제가 먼저 부러지면 어쩌려고요!]
‘참아! 견뎌! 성검이 일개 쇳덩이한테 질 순 없잖아!’
[저보고 맨날 쇳덩이라 하실 땐 언제고!]
‘시끄러워! 집중해!’
아델리아가 더욱 괴한을 밀어붙였다. 저택의 복도 바닥이 움푹 패었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 순간. 괴한의 복면 너머, 보라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자, 잠깐.
아델리아가 급히 뒤로 몸을 훌쩍 물렸다.
‘새까만 검, 보라색 눈동자.’
거기에다 낯설지 않던 보라색 오러.
설마…….
“전, 저, 전, 전하……?”
“재회 인사치고는 꽤 과격했어, 영애.”
괴한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억—! 정말? 진짜? 진짜 카르세스 전하라고?!
‘내가 전하께 검을 들이댔다고?!’
물론, 대련 때마다 검을 휘두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련과 지금의 상황은 엄연히 달랐다.
‘바, 반역…….’
분명 아델리아는 조금 전, 저 사내를 죽이고자 검을 휘둘렀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반역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델리아가 너무 놀라 굳어 버리자, 카르세스가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갈색 망토 사내를 발끝으로 툭툭 쳤다.
“이게 영애 거라고? 아는 사이였나?”
“아.”
-그 녀석은 내 거야. 내려놔.
아델리아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더듬거렸다.
“그, 그게, 알아내야 할 정보가 많은데 죽이실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자폭환 제조법이랑 개발자라면 황궁으로 이송했다.”
“네? 벌써요?”
“아스틴이 옮기는 중이야. 나는 이놈을 기다리느라 남아 있었던 거고.”
카르세스의 발에 차인 사내가 움찔거렸다. 살아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위층에서 루드가 내려왔다.
“전하!”
루드는 복면과 망토로 몸을 가린 아델리아를 괴한으로 판단하고 검을 빼 들었다.
그러자 카르세스가 손을 들었다.
“에스테르 영애다.”
“예……?”
루드가 천천히 검을 내리며 아델리아를 응시했다. 아델리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루드 경.”
“정말, 에스테르 영애이십니까?”
“네.”
“아니, 어째서 이곳에…….”
“그건 저도 궁금해요. 어째서 여기에 계신 거예요?”
카르세스가 바닥에 쓰러진 사내를 가리키며 루드에게 명령했다.
“재회 인사는 조금 미뤄야 할 것 같다. 루드, 일단 이 녀석도 황궁으로 이송해.”
“네, 전하.”
루드는 사내를 들어 어깨에 메고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다시 둘만 남았다. 카르세스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럼, 또 보지.”
“예? 가시려고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잠시만요, 전하.”
아델리아가 카르세스에게 한 걸음 다가가자, 카르세스가 두 걸음 물러섰다.
어……?
그러자 아델리아도 걸음을 멈췄다. 카르세스가 말했다.
“영애. 곧 연락하지.”
카르세스는 곧장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
지금 날 피한 거 맞지?
[피하다뇨. 원래 저런 사람이었다고요. 싸가지 없고, 순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릭.’
[크흠. 어쨌든, 키까지 커다래지고 나니까 회귀 이전의 황태자랑 마주친 것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응, 그건 나도 그런데…….’
저렇게 노골적으로 피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괜히 섭섭하네.’
***
루드가 마차의 수레 칸에 갈색 망토의 사내를 집어 던져 넣고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마침 건물에서 나오던 카르세스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혼자 나오셨습니까?”
“그럼?”
그러자 루드가 폐가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 갔다.
“에스테르 영애를 저렇게 두고 와도 되는 걸까요?”
루드의 말에 카르세스가 작게 웃었다.
“적어도 나만큼 성장한 상태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것보다.”
카르세스가 루드에게 말했다.
“갈아입을 옷 있나?”
“예?”
“피 냄새가 너무 나서.”
그러자 루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걸 신경 쓰던 분이 아니셨지 않습니까?”
“응. 그런데.”
카르세스가 폐가를 한번 돌아본 뒤 마차에 오르며 말을 덧붙였다.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조금 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