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저택 안까지는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아델리아를 막아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이라고는 머리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저택 안의 모든 사람들이 증발해 버린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어?’
아델리아가 묻자, 잠시 저택을 살핀 리그하르트가 말했다.
[어휴……. 섬뜩해.]
‘왜?’
[각자 방에서 잠든 것 같아요. 그런데.]
으으, 리그하르트는 소름이 돋았다며 부르르 떨었다.
[관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모두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어요.]
누군가가 강제로 잠재운 것처럼요. 리그하르트는 기분 나쁘다며 투덜거리곤 말을 이어 갔다.
[이거, 흑마법보다는 유령의 소행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유, 유령?’
리그하르트의 말에 아델리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쫄보.]
‘아냐!’
[숱한 전쟁을 이겨 내신 분께서 유령은 또 무서우신가 봐.]
리그하르트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주변을 살피며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유령은……, 검으로 벨 수 없단 말이야…….’
[유령 같은 거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모르시네.]
‘시끄러워.’
아델리아가 리그하르트를 움켜쥐며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택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멀쩡했다.
깔끔한 복도와 벽, 깨지지 않고 잘 관리된 유리창. 그러나 램프가 하나도 켜 있지 않아, 바깥보다 몇 배는 더 어두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몸을 숨기며 이동하는 아델리아의 걸음이 유독 조심스러웠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했을 무렵, 숨죽이고 있던 리그하르트가 작게 속삭였다.
[누님. 안심하세요. 다행히 유령이 아니라 흑마법사인 것 같아요.]
‘응, 그거 굉장히 위로가 되는 말이구나.’
[헤헤.]
리그하르트의 말을 듣고 나니, 아델리아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티파티에서 올리비아의 뒤에 서 있던 하녀. 그 하녀에게서 느껴지던 흑마법의 기운과 매우 흡사한 기운이 느껴졌다.
‘좋아, 릭. 이제 흑마법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으로 가야 해.’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어……, 음. 누님. 귀찮게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
리그하르트의 말에 아델리아는 어두운 복도 끝을 응시했다.
콰르르르릉—!
그때, 천둥 번개가 함께 내리치며 번개의 섬광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한순간, 복도가 환해졌다.
그리고 아델리아는 보았다.
복도 끝, 하얀 잠옷을 입은 여자를. 잠옷만큼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던 여자를.
올리비아였다.
“올리비아…….”
아델리아가 작게 중얼거리자, 복도 끝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득키득.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델리아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성검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올리비아를 어떻게 한 거야?”
꽉 다문 잇새로 짓눌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머지않은 거리에서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올리비아잖아, 아델리아.”
“죽고 싶은 모양인데.”
“그래서? 죽일 수는 있고?”
“…….”
“지금 날 찌르면 네 친구는 나랑 같이 죽어. 괜찮겠어? 네 가장 친한 친구를 찌를 수 있겠어?”
아델리아의 턱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올리비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아델리아. 지금 내가 알려 주고 있잖아. ……날 죽일 방법을.”
그러나 아델리아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방법이 올리비아를 찌르는 거라면, 어차피 시도조차 못 할 테니까.
“제대로 인사하자. 내 이름은 슈미엘이야.”
“궁금하지 않아. 올리비아를 돌려놔.”
이런. 슈미엘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좋아. 돌려줄게. 아직 늦지 않았거든.”
물론 멀쩡하게 돌아간다고는 장담 못 하지만.
또다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신 조건이 있어, 아델리아. 네게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자격?”
그때, 올리비아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올리비아의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연기는 금세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일으켜 세웠다.
‘흑마법이다.’
아델리아가 슈미엘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내 친구의 몸으로 허튼짓하지 마!”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막아 봐.”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있다는 듯, 슈미엘은 얇은 입술을 끌어 올려 웃었다.
그와 동시에 흑마법이 깃든 그림자들이 까마귀 형상으로 바뀌더니 아델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델리아가 오러를 담은 검으로 그림자를 빠르게 베었다. 파드득, 검에 베인 그림자들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러자 슈미엘의 눈매가 갸름해졌다.
‘놀랍구나.’
저 나이에 저토록 강한 오러라니. 오랜 시간, 숱한 마법사들과 기사들을 상대했다.
그럼에도 본 적이 없다. 저토록 강하고 맑은 오러는.
슈미엘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탐난다. 당장이라도 저 몸을 가지고 싶어.
슈미엘의 눈동자가 먹이를 노리는 파충류의 것처럼 반질거렸다.
그림자가 아델리아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그림자를 상대하던 아델리아는 올리비아의 상태를 살폈다.
‘흑마법을 사용할수록 올리비아의 몸에 무리가 갈 거야.’
저러다 정말 흑마법에 잠식될지도 모르고.
‘이대로라면 끝이 없겠어.’
한참을 그림자들과 실랑이를 하던 아델리아는 아주 조금씩 올리비아를 향해 나아갔다.
‘릭, 최대치로 오러를 꺼낼 거야.’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화들짝 놀랐다.
[예?! 누, 누님! 아직 훈련이 덜 됐잖아요! 안 돼요! 또 피를 토하실 거라고요!]
운 좋으면 피를 토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재수가 나쁘면 정신까지 잃게 될 거라고. 리그하르트가 결사반대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그림자들만 상대하고 있을 거야? 그럼 정말, 올리비아 죽는다고!’
[누님은요! 누님도 죽어요!]
‘걱정하지 마.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만 꺼낼 테니까.’
[…….]
아델리아는 심장에 모아 두었던 오러 일부를 꺼냈다. 그러자 오러가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펄펄 끓는 쇳물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으읏. 아델리아가 눈을 부릅뜨고서 성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곧장 바닥으로 성검을 꽂았다.
콰앙—! 바닥에 꽂힌 성검에서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 빛줄기는 엄청난 속도로 균열을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성검에서 뻗어 나간 오러가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올리비아의 몸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꺄아아아아!”
올리비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올리비아의 몸속에 있던 슈미엘의 비명이었다.
‘릭! 지금이야, 신력을 내보내!’
[예! 누님!]
실타래처럼 이어진 빛줄기를 타고 황금빛 신력이 올리비아를 향해 돌진했다.
“아아아악! 무슨,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허억, 허억. 성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아델리아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슈미엘을 노려보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아델리아의 턱 끝에 잠시 맺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델리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헤헤……. 그러게, 얌전히 빠져나왔으면, 이런 꼴은 안 당했을 거잖아.”
“네, 네가 이걸 어떻게……! 꺄아아아악!”
리그하르트의 신력이 다시 한번 올리비아의 몸을 관통했다. 슈미엘의 처절한 비명이 또다시 터졌다.
그와 동시에 올리비아의 코와 눈, 입에서 검은 연기가 빠른 속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델리아에게로 달려들던 그림자들도 힘없이 바스러졌다.
아델리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저 기분 나쁜 연기.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어.’
이전 생에서지만.
[흑마법 중 하나예요. 다행히 몸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흑마법은 아니네요. 누님의 친구분은 무사하실 거예요.]
‘……다행이다. 진짜.’
성검을 쥔 아델리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올리비아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검을 놓지 않고 오러를 내보냈다.
‘와……. 심장이 오그라드는 거 같아…….’
심장께로 몰려드는 고통에 아델리아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비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복도의 천장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 백작저의 복도는 슈미엘의 비명과 검은 연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올리비아의 몸이 제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하아.”
아델리아 역시 그제야 성검에서 손을 떼어 내고 주저앉았다.
그때. 천장에 고여 있던 검은 연기가 열린 창문을 통해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거 잡아야 하는데…….’
[지금으로는 무리예요, 누님…….]
리그하르트가 아델리아를 막았다.
그리고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강하구나. 내 예상보다 더.』
“…….”
아델리아가 다시 리그하르트의 손잡이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서 리그하르트를 쑤욱 뽑아낸 뒤,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달아날 생각이야? 끝장을 봐야지, 어딜 가?”
그러자 슈미엘이 크게 웃었다.
『너무 기고만장하지 마. 오늘 네가 상대한 내 힘은 내가 가진 힘의 절반도 되지 않으니까.』
“…….”
아델리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절반도 안 되는 힘이라고? 흑마법이 강한 거야, 저 슈미엘이라는 여자가 강한 거야?
아델리아가 어금니를 악다물자, 슈미엘의 말이 이어졌다.
『약속대로 친구는 놓아줄게.』
확인할 건 다 했거든.
그 말을 끝으로 백작저를 채우고 있던 검은 연기가 모두 흩어졌다.
하늘의 먹구름도, 조금 전까지 무섭게 내리치던 천둥과 번개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폐가처럼 군데군데 검은 얼룩으로 뒤덮였던 백작저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새하얀 달빛에 백작저가 환하게 빛이 났다.
“으…….”
그때, 바닥에 쓰러졌던 올리비아가 신음했다.
“올리비아!”
아델리아가 올리비아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올리비아를 침실로 데려가 눕혀 놓고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에 저택을 빠져나왔다.
“아, 힘들어…….”
아델리아가 겨우 말에 올라탔다.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델리아의 몸이 휘청거렸다.
[누님. 잠시 쉬었다 가세요. 이러다 말에서 굴러떨어지시겠어요.]
리그하르트의 만류에도 아델리아는 말을 멈추지 못했다. 어쩐지 리그하르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아델리아가 기어이 말고삐도 놓치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말은 그 즉시 달리던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누님! 정말 다치시겠어요! 일단 내려서 조금 쉬시는 게…….]
그때, 아델리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빨리 돌아가야지…….”
[누님.]
“기다리겠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가야 해.”
[누님……?]
기다린다고요? 누가요? 리그하르트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으나 아델리아의 혼잣말만이 이어졌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
이번에는 꼭, 약속을 지켜야지…….
[…….]
아델리아의 상태가 이상했다. 조금 전부터 동공이 풀린다 싶더니, 지금은 헛소리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누, 누님! 정신 차려 보세요!]
“…….”
그 순간, 아델리아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놀란 리그하르트가 소리쳤다.
[누님! 떨어지시……. 어? ……어어?]
리그하르트가 놀란 것도 잠시, 말에서 떨어지던 아델리아를 바닥에 닿기 직전에 누군가가 받아 냈다.
짧은 한숨이 아델리아의 머리맡에 떨어졌다가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