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外. 나이아드의 자장가
“암살 시도라니!”
그날 밤, 내가 목격한 불의 정령과 정령이 내뱉었던 말을 전한 뒤 로베릭이 보인 반응이었다.
그는 격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몸을 부들거리다, 자리를 일어나 방을 배회했다.
“이디스, 정말로 다친 곳은 없는 게지?”
“네, 할아버지.”
로베릭을 따라가겠다고 말했던 뒤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할 만큼 경색되었던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이전처럼 되돌아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암살 시도가 일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떠올린 뒤 바로 지워 버렸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들며 다시 로베릭을 바라보았다.
“……이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불 속성 정령사의 명단을 가져와.”
“예, 각하.”
로베릭의 명을 받고 대공가의 기사가 물러가자 그 곁에 있던 테르마 시의 시장이 로베릭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저러다 졸도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 허옇게 질린 안색으로 연신 기사가 나간 문가로 시선을 던졌다.
“가, 각하. 저는 정말로…… 알지도 못했던 일이며, 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고일 뿐…….”
“그건 모든 일이 밝혀지고 나면 알아서 정리될 부분이겠지. 말을 아끼시오.”
로베릭은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눈을 내리감으며 시장의 말을 일축했다.
“예, 예에, 당연히 그럽지요.”
“……이디스.”
식은땀에 축축이 젖은 얼굴을 푹 숙이며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시장을 뒤로하고, 로베릭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어두운 기색으로 말했다.
“지켜 주겠다 약속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만들어 정말 미안하구나.”
나는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하나도 없고, 덕분에 제가 정령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걸요.”
나는 시간이 꽤 많이 흘렀음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정령왕들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렇지만 저를 해치려 했던 사람들은 꼭 찾아 주세요.”
“그래, 그야 당연하지.”
로베릭은 붉어진 눈가로 나를 응시했다.
“반드시 찾아내어, 할 수 있는 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할 거란다.”
“…….”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로베릭의 시선을 피하며 생각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텐데, 이만 들어가서 쉬렴. 그리고…… 당신께서는 더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다정히 이야기하던 로베릭은 싸늘히 식은 어투로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없다. 암살 배후나 제대로 찾아라.”
가까이 다가온 로베릭이 꼴도 보기 싫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만면에 드러낸 할아버지께서 답하셨다.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알아서 처리할 테니 개입하지 마십시오.”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으려니 내가 다 숨이 막혔다.
나는 커다란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커다란 방 안에 늘어선 기사들을 돌아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디 갔어요?”
나는 기사들의 면면을 살피며 물었다.
“응? 누구?”
로베릭이 부드럽게 되물었다.
내가 그놈 이름을 바로 말하는 건 조금 어색해 보이겠지.
“……잡초색 머리카락 가진 아저씨요.”
“아, 페리온.”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그렇게 지칭하였는데 다행히 로베릭도 알아들은 듯했다.
언제나 로베릭의 곁에 머물러야 할 측근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런 위중한 사태까지 일어났는데,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는 게.
“대공저로 돌아가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긴 했는데……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란다.”
대공저로 돌아갔다고? 갑자기?
무언가 석연치 않았으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로베릭의 안색이 너무나 여상했기에 뭐라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뒤를 따라오는 정령왕들을 대동하고 그 방을 벗어났다.
* * *
아직도 실감이 나진 않지만, 나는 로베릭의 뒤를 이어 정령왕급 정령에게 축복을 받은 대단히 특별한 정령사라고 한다.
이 세계관에서 정령사는 대부분 중위, 하위 정령의 축복을 받으며 그 수 또한 평범한 인간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정령사들은 자신을 축복한 정령의 등위에 따라 4급, 3급, 2급, 1급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1급에 속하는 정령사의 경우에도 세 속성 모두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그러므로 세 속성 모두를 정령왕에게 축복받은 로베릭과 같은 정령사는 감히 등급을 매길 수가 없어, 규격 외 정령사로 분류된다.
세 속성 중 두 가지 속성이나 정령왕에게 축복받은 나는 나머지 한 속성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1급 정령사로 분류될 수준이라고 로베릭이 말해 주었다.
……설마 내가 정령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여전히 얼떨떨했다.
한편 나를 축복한 두 정령왕은 불타 재가 되어 버린 저택에서 벗어났음에도 계속해서 나를 염려했다.
[이디스, 네가 타고 난 마나 양을 가늠하면 하루 온 종일, 네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동안 정령 소환을 지속해도 별다른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란다.]
[네 곁에는 너를 해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은 것 같구나. 부디 우리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하위, 중위 정령만이라도 늘 곁에 두렴.]
그중 나이아드는 유독 나를 향한 걱정이 심했다.
일리피아 역시 내게 언제나 다정히 대해 주었지만, 나이아드의 염려는 어딘가 궤를 달리하는 듯했다.
나이아드는 자신이 곁에 있지 못하더라도 꼭 정령을 곁에서 떼어 놓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네 어미, 마리에트가 궁금하다 말했었지.]
또한 내 어머니 마리에트를 축복한 정령이기도 했던 나이아드는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게 어머니의 존재란 늘 궁금하지만 언제나 온전히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나를 낳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어머니가 소설 속의 악녀 마리에트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니 어머니를 축복했고, 또 매우 아낀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아드의 등장은 내게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마리에트는…… 참으로 아름다운 아이였지. 외모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샅샅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단다.]
……그래도 조금 편향적인 시선은 감안하고 들어야 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나이아드는 추억 속에 푹 빠진 듯 은은하게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몇 배나 배움이 빨랐고, 굶주리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했다. 아랫것들에게는 언제나 공정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손속이 자비로웠으며, 제 바람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아비를 두었음에도 과도한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조금…… 심한 거 아닌가?
나는 가만히 미간을 좁히며 나이아드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아드의 말에 따르자면, 마리에트는 타고나기를 지혜로웠으며 사사로운 탐욕 없이 공정하고 더없이 이성적이었던 소녀였다.
원작에서 샤스티아의 신분을 사사건건 트집 잡으며 오만한 태도로 무시하던 악녀가, 아랫것들을 공정하고 너그럽게 대했던 공녀였다니.
샤스티아와 그의 딸이 로베릭에게 빌붙는 것을 길가의 거지보다도 못하다고 비난하던 악녀가, 굶주리거나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니.
요정같이 아름다운 외모로 상류층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샤스티아를 견제하여 온갖 귀한 정령석과 드레스를 구해 치장했던 악녀가, 신분에 비해 검소한 사람이었다니.
……너무 상반되는 표현이잖아.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기, 나이아드. 나이아드의 말을 믿고는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엄마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해요. 나이아드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말했다.
악녀가 그토록 지혜롭고 올곧은 소녀였다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하지만 나이아드는 내 물음에 차갑게 정색하며 답했다.
[내 정령왕으로서의 지위를 걸고 보증하지. 마리에트는 결코 악으로 물들 아이가 아니었다.]
나이아드는 어디서 그런 망언을 들었냐는 표정으로 단언했다.
그의 확고한 태도에 나는 더 이상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리에트의 부속성 정령이었을 뿐이지.]
그 순간, 나이아드가 씁쓸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정령사는 세 가지의 속성을 가진다.
그중 단 하나의 속성만이 주 속성이라 불리고, 나머지 두 가지는 부속성으로 분류된다.
주 속성을 관장하는 정령과 부속성을 관장하는 정령의 사이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
주 속성 정령은 정령사의 탄생 자체에 깊이 연관되어, 비유하여 표현하자면 정령사의 영혼을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정령사가 운용하는 권능의 대부분은 주 속성 정령이 차지했다.
때문에 부속성 정령은 정령사와의 친밀함과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려 ‘물의 정령왕’인 나이아드가 마리에트의 주 속성 정령이 아니었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자존심 상하게도…… 마리에트의 곁에서 언제나 함께하고 마리에트와 가장 긴밀했던 정령은, 내가 아닌 지혜의 정령왕이었다. 그가 마리에트의 주 속성 정령이었지.]
지혜의 정령왕?
‘지혜의 로어.’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 속에서 등장했던 이름이었다.
그가 마리에트의 주 속성 정령이었다니.
[내가 아는 것은 마리에트의 어린 시절과…… 그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여 소환했던 순간에 국한되어 있을 뿐. 아마도 네가 궁금해할 이야기들은 그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은 많지 않다.
마리에트는 어째서 로베릭을 사랑하다 못해, 그토록이나 맹목적으로 집착했던 것일까?
사랑하는 로베릭을 빼앗아 간 샤스티아가 아무리 증오스러웠다 한들 어떻게 그녀와 그녀의 어린 딸 알레아를 산 채로 불구덩이에 집어 던지려 할 수 있었을까.
정녕 그토록 냉혹하고 잔인한 사람이 내 어머니가 맞는 걸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내 어머니가 악인이 맞다면.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할아버지도 전처럼 온전히 믿고 따르지 못하게 되니까.
그래서 알고 싶었다.
내 어머니, 마리에트 아이딘 바스테반은 어째서 그런 악행을 벌였는지.
나이아드는 그 모든 실마리를 지혜의 정령왕이라는 자가 쥐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정령사에게는 속성 유전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내 세 가지 속성 중 일리피아는 로베릭에게서, 나이아드는 마리에트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렇다면, 혹시 내 남은 속성의 한 자리에 지혜의 정령왕이 있지 않을까?
“저기, 일리피아. 혹시 나이아드가 말한 지혜의 정령왕이 제 마지막 정령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일말의 기대를 담아 물었지만, 일리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원칙적으로 정령사 사이의 자식은 부모의 각 속성 정령을 하나씩 물려받을 뿐, 그 이상은 유전되지 않는단다.]
망할.
[자기 자신을 축복해 준 정령들은 때가 되면 네 눈앞에 나타나게 돼.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렴. 너는 아직 너무 어리단다, 이디스.]
일리피아는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선천적으로 축복받고 태어난 속성 외의 정령은 소환이 불가하다.
……로베릭의 속성도, 마리에트의 속성도 더 이상 물려받을 수 없는데.
그렇다면 지혜의 정령왕을 어떻게 만나야 하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암살 시도에 대한 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최소한 일주일은 더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 지친다.”
밤이 찾아오고,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나는 도통 풀리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포르르-
“응?”
[안녕하세요.]
새카만 방에서 홀로 눈만 깜박이고 있을 때, 자그마한 물방울 형상의 정령이 퐁,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뭐지? 얘는…….
작은 물방울은 수줍게 웃으며 총총히 날아와 내 머리맡 베개에 걸터앉았다.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물의 하위 정령인 것 같은데,
닉스보다도 훨씬 쪼그맸다.
[저는 갓 태어난 물의 정령입니다. 나이아드 님의 명을 받들고 왔어요.]
아, 아기여서 그랬구나.
나는 그 정령이 유난히 앙증맞은 몸집과 특이한 외양을 지닌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방울은 짧은 팔을 들어 품속에 고이 들고 온 반짝이는 광물 결정체를 보여 주었다.
“와- 예쁘다. 이게 뭐야?”
투명한 하늘빛의 광물은 깨끗한 빛을 한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아쿠아마린과 비슷해 보인다.
나는 작은 광물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이디스 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에트 님의 기억 결정체입니다.]
움찔.
광물을 살피던 내 손은 물방울이 한 말에 갈 곳을 잃었다.
[이디스 님께서 괴로워하시는 심정을 헤아리신 나이아드 님께서, 그동안 모아두셨던 마리에트 님과 나이아드 님의 기억을 담은 결정체를 조금만 보여 주시라고 명하셨어요. 자, 이제 눈을 감으세요. 지금 보여드릴게요.]
“잠깐만!”
내 이마 위로 광물을 내려놓으려던 물방울이 우뚝 멈추었다.
그러니까, 내가 궁금해 한 건 맞는데.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잠시만 마음의 준비를…….”
[안 돼요. 시간 없어요.]
물방울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광물을 그대로 내 이마에 올려 버렸다.
안 돼!
입을 벙긋거리던 때, 버틸 새 없이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꿈을 꾸었다.
계절은 한겨울인 것 같았다.
하늘에서 자그마한 눈송이가 솜털처럼 내려앉고 있었으니까.
꿈속의 나는 잠시간 하늘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내렸다.
눈앞에는 현실에서의 내 나이만 할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부모가 애지중지 보살피는 듯, 빈틈없이 꽁꽁 싸맨 옷차림의 예쁘장한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나와 똑같은 라벤더색 고수머리를 예쁘게 땋아 올려 푸른 리본으로 묶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나와 달리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똑같은 빛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이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길 봐, 나이아드.’
똘망똘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내 몸이 멋대로 움직이며 아이가 가리킨 방향을 응시했다.
다 쓰러져 가는 회벽에 한 아이가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
잿빛 후드가 그 머리를 덮고 있었고, 역시 같은 색을 띤 망토 자락이 마른 몸을 휘감고 있었다.
누구지?
망토로 인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삐죽삐죽 새어 나온 금빛 머리카락으로 저 아이가 금발을 지녔으리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
‘부탁이야. 저 아이에게 물을 줄 수 있겠어?’
뒤이은 아이의 말은 나를 놀랍게 했다.
[하지만 마리에트, 저 아이는 부정을 일삼고 살아가던 귀족의 자식이란다.]
나이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지금 나는 과거의 나이아드에게 들어와 있는 상태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나이아드가 다시금 시선을 돌려 마리에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끝내 범해서는 안 될 금기를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영원히 이름이 지워지는 벌을 받고 몰락했지. 혈족이 몰락하고 홀로 살아남아 합당한 죄의 대가를 받는 아이를 어찌하여 도와주려는 거니.]
나이아드는 부드럽게 물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또렷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부모의 죄가 자식의 죄가 될 수는 없어. 사람이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누가 손을 내밀어 주는지에 따라 운명은 바뀌는 거야.’
그 아이, 마리에트는 고개를 들어 나이아드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저 죄인의 아이를 구해, 그 부모와 같은 운명을 걷지 않게 하겠어.’
커다란 황금빛 눈망울이 별처럼 고요히 빛났다.
꿈은 그 시점에서 끝났다.
“…….”
나는 눈을 뜨고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와 나이아드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어머니가 악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온전한 진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도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