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아니…… 갑자기 왜 그래? 칸델이라는 가문이 대체 어떤 곳이길래?”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가문이었다.
그녀들은 칸델이라는 곳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걸까?
“……대공녀님. 그것을 대체 누가 놓아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버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 주세요. 어서 불태워 없애 버려야 해요!”
“……이게 정말 현실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시녀들은 마치 내 손에 들린 초대장이 악령, 저주받은 무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응시하며 당장 버리시는 게 좋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어떻게 해야 하지.
시녀들의 말대로 당장 버릴까?
“대체 칸델이라는 가문이 어떤 곳이기에 이러는 거야? 놀라지만 말고 설명을 해.”
“……송구합니다, 대공녀님. 그 가문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길한 곳이에요. 제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이게 무슨 볼X모X라도 되나.
마음만 같아서는 더 캐묻고 싶었지만 시녀들이 정말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공포에 질렸기에 더 묻기도 가련할 지경이었다.
……오리에드나 나이아드한테 물어볼까?
그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됐어, 이만 나가 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 안 돼요, 대공녀님! 정말 불길해요, 당장 태워 버리는 게…….”
“감히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가 있겠어? 괜찮으니까 이만 가 봐.”
안 그래도 풀리는 의문이 없는데, 마침 호기심을 끄는 대상이 생기니 이대로 버리기엔 아까웠다.
나는 나중에 정령왕을 불러 확인하면 안전할 것이라 여기고 시녀들을 물린 뒤 초대장을 서랍 속에 고이 보관했다.
“……나이아드가 못 온다고?”
그러나 밤중, 나이아드를 소환했더니 뜬금없이 네레이드가 소환되어서는 나이아드는 정령왕으로서의 일로 당분간 소환에 응하지 못한다는 말을 전해 올 따름이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매우 중요한 일이신 것 같아요.]
음, 그럼 내일 오리에드를 소환해서 초대장에 대한 걸 알아봐야겠다.
나는 네레이드에게 돌아가라 말했으나 그는 정령왕께서 계시지 않으니 대신하여 나를 지키겠다며 거절하고는 침대 곁에 자리를 잡았다.
뭐,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꺼림칙한 초대장이 있기도 하고.
나는 네레이드를 곁에 둔 채 잠에 들었다.
* * *
찬 기운이 몸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부르르 떨며 이불을 더 끌어 올리려던 때,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하고 눈이 퍼뜩 뜨였다.
“…….”
분명 창문을 닫아놓고 잠이 들었는데……?
부스럭-
“!”
그 순간, 방의 저편에서 분명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 뒤로 소름이 쭉 돋았다.
네, 네레이드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정체 모를 침입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몸을 돌려 잠에 들기 전 네레이드가 있던 쪽을 돌아보았으나.
‘자고 있잖아……!’
정령도 잠을 자나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네레이드를 원망스레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상을 감싼 휘장을 살며시 열어 바깥을 확인했다.
활짝 열린 창가를 타고 환한 달빛이 스며들어와 방 한편을 온통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그 덕분에 몸을 숙인 채 무언가를 찾아 뒤지고 있는 커다란 남자의 체구가 더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뭐야, 도둑?
아니, 대체 어떻게 황궁에 침입한 거지?
나는 잔뜩 기겁하여 천천히 손을 뻗어 잠든 네레이드의 팔을 붙들고 흔들었다.
제발 일어나라, 일어나라니까……!
[으음…….]
그러나 네레이드는 도저히 깨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지금 당장 오리에드를 소환하는 수밖에…….
“끄아아악-!”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살짝 걷어놓은 휘장 너머를 돌아본 순간, 나는 그 너머에서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한 쌍의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비명을 질렀다.
젠장, 들켜 버렸다.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그대, 멸하지 않는 생명의 자식들이여. 그대가 불멸의 마음으로 축복한 이의 부름에 답하…….”
다급히 주문을 읊었으나, 그 남자는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커다란 보폭으로 순식간에 내가 있는 침상의 코앞까지 다가와 휘장을 확 걷어 버렸다.
“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제발 이제라도 네레이드가 깨어나 주길 간절히 바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러나, 한동안 고요한 침묵만 흐를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나는 슬며시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휘장을 걷은 채 팔짱을 낀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걷어놓은 후드 아래로 달빛에 은은히 반짝이는 금빛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시만.
검은 눈동자에, 금빛 머리카락이라면…….
“어……?”
나는 그제야 눈을 똑바로 뜨고 멍하니 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였다.
“다, 당신은…….”
한밤중, 방에 침입하여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불청객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내가 그토록 다시 만나기를 고대했던.
“마인하르트…….”
마인하르트 시엘 아스트라페였다.
* * *
애타게 찾던 상대를 이토록 어이없게 마주하다니.
나는 얼이 빠져 망연히 그를 쳐다보았다.
원작에서 그의 외형을 묘사하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오는 서늘하고 묵직한 분위기의 미남자라 하였는데 정말 그 표현 그대로였다.
로베릭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한 떨기 화초처럼 애처로운 청초함을 머금은 미청년이라면 마인하르트는 자연이 공들여 깎아지른 웅장한 절벽과 같이 압도적이고 수려한 멋을 지닌 남자였다.
내가 넋을 놓고 그를 올려다보던 때, 마인하르트는 안색에 한 점 변화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았다.
자취를 감춘 건 언제고 갑자기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사람 심장 떨어뜨리려고 작정했나, 진짜.
“저기…… 마인하르트 씨, 맞죠?”
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기회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상이 제 발로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나.
나는 두려움을 누르고 망설이다 입을 떼었다.
“그런데 왜 제 방에 계시는 건가요……?”
“…….”
마인하르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품속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꺼내 들 뿐이었다.
잠깐만. 저건…….
“어? 그건,”
오늘 낮에 받았던 칸델이라는 가문에서 온 초대장이었다.
그런데 저걸 왜 이 사람이 들고 있는 거지…….
파지지직-!
“으앗!”
그 순간, 마인하르트의 손아귀에서 황금빛 전격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손에 들려 있던 초대장을 순식간에 전격으로 태워 버렸다.
초대장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다 못해 검은 재로 바스라져 바닥 위로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무슨,”
나는 방금 벌어진 일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얼떨떨하게 잿더미로 변해 바닥에 흔적을 남긴, 방금 전까지 초대장이었던 것을 내려다보았다.
“불온한 것이 들러붙었기에 피치 못하게 방문하였습니다.”
이때껏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던 마인하르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조용히 읊조렸다.
그 목석같은 외모와 더없이 어울리는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이었다.
“앞으로도 칸델 가문에 대해서는 알려 하지 마십시오.”
“……네? 잠시만, 당신은 칸델이라는 가문이 어떤 곳인지 아는 건가요?”
마치 경고하듯 이야기한 마인하르트는 내가 다급히 질문을 외쳤음에도 미련 없이 뒤돌아 활짝 열린 창가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어? 잠깐만요!”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나.
그의 흔적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뭐야…….”
아직 아무것도 못 물어봤는데.
나는 시무룩하게 침상 위로 돌아와 풀썩 누웠다.
불온한 것이 들러붙어 피치 못하게 방문하였다고 했었지.
“칸델이라는 가문이 대체 어떤 곳이었기에…… 하나같이 다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
칸델 가문에 대해 좀 더 알아가다 보면 마인하르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끄응…….”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에 나는 여명이 창가를 타고 스며오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 * *
“할아버지, 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래, 이번에는 또 무어냐?”
칸델이라는 가문이 대체 뭐 하는 곳인지 물어볼 인물은 역시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나는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로 할아버지의 팔을 조물조물 주무르며 말문을 열었다.
“혹시…… ‘칸델’이라는 가문에 대해서 아세요?”
“……뭐라고?”
그 순간, 방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무섭게 가라앉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팔을 안마하던 것을 멈추고 할아버지의 안색을 확인했다.
“하, 할아버지……?”
그렇게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표정과 마주했다.
자신과 마주하는 모든 생명을 그 자체로 잔인하게 죽여 버릴 만큼, 맹렬한 증오로 불타는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디서 그런 이름을 들었느냐, 네게 그 이야기를 흘린 자의 이름을 당장 말하거라!”
전신이 바들바들 떨려 올 만큼 커다란 호통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그저 겁에 질려 할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왜,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물었다.
“……!”
그 순간, 할아버지의 눈썹이 움찔 요동치며.
“……미안하구나. 갑자기 화를 내서…….”
할아버지께선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빛을 가리려는 듯 주름이 깊게 팬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동안 침묵하셨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말하지 않을 게냐?”
한참 후, 할아버지께서 지독한 피로감이 서린 목소리로 물어 오셨다.
“그게…….”
칸델이라는 가문의 이름은 나 또한 정말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주했던 할아버지의 번뜩이는 안광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혹여나 할아버지께서 방금처럼 또 화를 내실까 봐 두려워 선뜻 말하지 못했다.
“……되었다. 다시는 그 이름을 꺼내지도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거라.”
곧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할아버지께선 두 눈을 내리감으시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네.”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분노는…….
아니, 분노라는 단순한 단어로는 그것을 지칭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물며 생각했다.
일순간 할아버지의 눈동자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 저 스스로를 태우며 작열하던 감정은…….
죽음 이후에도 망각하지 못할 만큼 뼛속 깊이 새겨진, 지독히도 선명한 증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