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 *
마인하르트는 그 후에 일어났던 일을 이상하리만치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폐허가 되어 버린 공작저를 망연히 떠돌다 수도 없이 토악질하고.
정신도, 기력도 모조리 바닥난 끝에 지옥 같은 가문의 터를 뛰쳐나와 무작정 거리를 헤매었던 것 같다.
‘……얘. 왜 이곳에 혼자 있어?’
그러다, 어느 한순간.
머릿속에 자욱하게 꼈던 안개가 걷히는 듯 기억이 명료해지던 순간에.
그 소녀가 존재했다.
‘왜 대답을 안 해? 살아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소녀가 입을 달싹일 때마다 차가운 숨결이 하얗게 얼어붙어 허공으로 흩날렸다.
솜털처럼 내리는 눈송이를 맞으며 주저앉은 그를 내려다보는 소녀의 낯은 감정이랄 것 하나 없이 무표정했으나 그 눈동자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총기가 서려 있었다.
퍼뜩, 현실로 돌아온 마인하르트는 멍하니 그 소녀를 바라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무기력한 절망에 잠기며 시선을 내리깔고 읊조렸다.
‘……신경 꺼.’
이 모든 처참한 비극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본능적인 깨달음이 파도처럼 물 밀듯 밀려와, 공허에 사로잡혀 현실을 외면해야만 간신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잊을 수는 없었기에.
살아 있음을 향한 의지도, 육체를 자극해 오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죄악스러워 마인하르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머지않아 찾아올 영원한 적막만을 기다리며.
‘……기본적인 삶의 의지조차 없어 보이네. 하지만 그것도 모두 한때에 불과할 뿐. 분명 바라는 끝을 맞이하고 난 뒤, 넌 분명히 후회하게 될걸.’
영문 모를 말을 읊조리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성가셨다.
마인하르트는 지난 일 이후 처음으로 낯 위에 표정을 드러내며 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소녀를 응시했다.
‘갈 곳이 없다면.’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검은 눈동자와 세상 모든 광명을 끌어안은 것처럼 휘황한 금빛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했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어?’
소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제 고운 손을 내밀었다.
‘…….’
마인하르트는 저를 향해 내려와 하얗게 빛나는 자그마한 손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갈 곳이 없다면, 함께 가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내가 어떻게 저 손을 마주 잡는단 말인가.
그분을 그토록 처참히 돌아가시게 만든 내가.
죄악만을 끌어안아, 살아 있는 것조차 수치인 내가…….
‘어서 잡아.’
그럼에도 어리석고도 이기적인 그 자신의 영문을 알 수 없을 끌림으로 망설이던 찰나.
소녀가 마치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처럼 나직이 말했다.
‘네가 나를 따르겠다고 선택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 줄 테니까.’
‘…….’
후회하지 않게 해 주겠다.
그 말이 유난히, 잊을 수 없이 가슴에 박혀 왔다.
‘…….’
마인하르트는 천천히, 깡마른 손을 들어 허공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그를 기다리던 작고 하얀 손을 마주 잡았다.
‘잘 선택했어.’
그의 선택이 마음에 든다는 듯, 아주 흐릿하지만 분명한 미소가 소녀의 낯에 감돌았다.
마주 잡은 손은 따듯했다.
그 온기에 닿으면 영혼을 얼어 붙일 듯 스며들었던 냉기를 몰아낼 수도 있겠다, 생각한 스스로가 수치스러울 만큼.
따듯했다.
* * *
‘네가……. 그동안 대체 어딜 갔었던 게야, 어디를…….’
나중에 알게 된 소녀의 이름은 마리에트 아이딘 바스테반이었다.
주디스가 마인하르트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곤 하던, 그녀의 가장 각별한 친우 시오른 아르카이츠 바스테반의 외동딸이었다.
수일 동안 일어났던 충격적인 사건과 친우의 잔혹한 죽음.
그리고 사라진 아이의 행방에 수십 년은 늙어 버린 듯 초췌한 안색으로 속을 썩이던 시오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아무리 애타게 찾아 헤매도 행방을 찾을 수 없던 아이를 그 누구도 아닌 딸이 데리고 오자.
한동안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다, 끝내 무너지듯 주저앉아 작고 마른 소년을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네 고모할머니가 너를 내게 부탁했다. 앞으로는 내가 너를 지켜 주마. 비록 더 이상 본래의 성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상관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만은 지킬 게야…….’
또다시 흘러나온 것은 그분의 이름.
……살아서도, 죽어서도 당신은 나를 지켜 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마인하르트는 숨통을 옥죌 듯 밀려드는 죄책감에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었다.
* * *
마인하르트는 칸델 공작저에서 지내던 나날과 달리 평온한 생활을 영위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냈으나.
‘흐으……. 윽, 안 돼, 그만…….’
괴로운 기억은 마인하르트의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꿈속에서, 때로는 현실에서.
‘너, 악몽 꾸니?’
결국, 어느 날의 밤.
사방에서 꺼멓게 타들어 간 친족들이 자신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기어 오고, 그 삿된 존재들에게 벼락을 내리쳐 산산이 흩어지게 한 주디스가 다시 한번 재로 흩날려 죽음을 맞이하는 악몽을 꾸던 찰나.
자신도 모르게 허공으로 뻗은 손을 확 낚아채는 감각에 퍼뜩 눈을 뜬 마인하르트는, 어느새 침상의 곁에 앉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마리에트를 발견했다.
‘아…….’
식은땀이 온몸에서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인하르트는 차마 곧바로 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떨구었다.
그 와중에도 마리에트가 잡은 그의 손은 놓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힘주어 붙들려 있었다.
‘……너를 데려오기로 결심한 건 나야.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해.’
마리에트는 그런 마인하르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천천히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친우가 목숨을 잃은 경위를 상세히 알고 싶지 않아 하셔. 괴로움과, 해소될 길 없는 증오만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니까. 그래서 너에게도 그날의 일에 대해 아무런 물음을 던지지 않으시는 거야.’
고개를 돌려 촛불만이 밝힌 어두운 방의 허공을 응시하던 소녀가 이어서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 네가 무슨 이야기를 털어놓든 네가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끌어안았든 간에…… 너는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에 불과하고, 내가 너의 감정에 매몰될 만큼 비이성적이지도 않으니까. 그러니 말해 봐, 마인하르트 시엘 아스트라페.’
더없이 차갑고 명료한 빛을 띤 금안이 마인하르트의 모습을 오롯이 비추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너의 마음을.’
금방이라도 범람할 듯 넘실대던 마음의 둑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마인하르트는 처음으로 그 공허하던 낯 위로 눈물을 떨구며 홀로 끌어안고 괴로워하던.
감당할 수 없이 버거운 감정을 토해 냈다.
‘……그랬구나.’
목소리가 잦아들고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마리에트는, 고개를 돌려 마인하르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너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랑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필요는 없을 거야.’
‘…….’
‘그러니 잠시만이라도 잊어 놓자. 네가 그분의 사랑을 되새겼을 때,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날까지.’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가문 사람들의 옳지 못한 기대와, 그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 주디스의 숭고한 희생은 어린 마인하르트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다.
그리하여 마인하르트는 마리에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괴로운 과거를 전부 묻어 두고 자신을 구원해 준 마리에트만을 따르며 살아가겠다고.
참으로 염치없게도. 주디스를 향해 그토록 매정한 독백만을 던진 뒤 마인하르트는 과거로부터 돌아섰다.
진득하게 떠오르는 감정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오직 마리에트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먼 훗날.
회상하는 것조차 역겨운 과거의 파편이 이디스를 향해 겨누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인하르트는.
곧바로 아이가 머무는 곳으로 달려가 악한 존재가 보내온 함정을 불태워 소멸시켰다.
‘불온한 것이 들러붙었기에 피치 못하게 방문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칸델 가문에 대해서는 알려 하지 마십시오.’
놀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디스를 향해 간절한 심정으로 당부했건만.
아이는 기어코 초대장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리하여 아이를 찾기 위해 아르카네의 함정 속으로 발을 들인 마인하르트는 이디스과 본 것과 동일한 광경을 모조리 목도하게 되었다.
추잡한 친족들.
탐욕과 악의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었던 주디스…….
‘나처럼 하잘것없는 마음에 얽매이지 말고 네 삶을 살아가거라. 자유롭게, 그 어떤 것을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도 너 자신을 희생하지 말고.’
‘희생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단다.’
다시 한번 그의 눈앞에서 반복된 그 사람의 죽음과, 그가 남겼던 말은…….
“……당신께서는, 제게 그 어떤 존재를 위해서라도 희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지요.”
모든 일이 일단락된 후.
따스한 볕이 스며든 창가 너머의 화원에서, 2황자를 향해 자신이 겪었던 믿지 못할 일을 들려주는 이디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마인하르트는 문득 중얼거렸다.
희생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희생 위에 선 내 인생은 그 단어 없이는 첫 마디조차 뗄 수 없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않습니까.
“어째서 나는…… 그동안 당신을 애써 외면하고 잊어버리려고만 했을까요.”
마인하르트는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희생 끝엔 아무것도 없다며 허망한 유언을 남겼던 주디스.
그러나 제 혈족들을 불살라 징벌하면서도, 마인하르트에겐 단 한 점의 전류조차 닿지 않았다.
한 줌 재가 되어 끝내 사라지면서도 그를 향해 유언을 남기던 그 눈동자에 분명히 서려 있던 염려를.
그 속에 분명히 자리하던 사랑을.
“그 무엇을 위해서라도 희생하지 말라 하셨던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살아 있어 보아 당신께 하등 이득 될 것이 없는 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버리셨습니까.”
모순적이지 않은가요.
당신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 희생하였으면서, 제게는 결코 희생하지 말라 하시다니.
그 오랜 세월은 그녀를 이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던 과정과 같았다.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감히 위대한 영웅을 죽게 만들었다고.
그러니 나는 하등 가치 없고,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죄인이라 생각하며 혐오감에 휩싸이던 끝에 도망쳐, 다시는 그녀와……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기나긴 외면의 끝, 꼭 그녀와 같이 한 아이를 온전히 마음에 들이게 된 순간.
다시 마주한 그녀의 죽음 앞에서 마인하르트는 비로소 주디스의 선택을,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다른 어떠한 수식도 필요하지 않은 순전한 사랑.
오직 그것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군요.”
그토록 겁 많았던 나는 이제야 숨겨 두고 묻어 두었던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작고 여린 존재를 향한 애정을 자각하고서.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없는 고요 속, 마인하르트는 눈을 감았다.
희생 속 깃든 사랑이 감당할 수 없이 버거웠기에 억지로 외면하며, 스스로의 선택은 아무것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누군가의 구원에 기대어 살아왔던 삶.
더 이상 무정한 겨울날의 버려진 아이로 머무를 수는 없었다.
마인하르트는 이제 구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 스스로의 선택을 하고자 했다.
“아무튼……. 에시메드. 정말로 아르카네가 어째서 너를 그렇게나…… 유난히 특별하게 여기는지에 대해 짐작 가는 이유가 없어?”
“네 앞에서 또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생전 본 적도 없던 존재에 불과한데.”
“……그래, 너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 같네. 에이, 결론도 안 나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참, 에시메드. 드디어 나도 정령을 소환하지 않고도 권능을 빌려 올 수 있게 되었어, 이것 봐!”
신이 나 외치는 이디스의 작은 발아래, 대지가 꿈틀거리며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냈다.
“그래? 잘된 일이네, 이디스.”
“……그래도 아직 너처럼은 안 되더라.”
“괜찮아. 곧 익숙해질 테니까.”
마인하르트는 감았던 눈을 뜨고 소년을 향해 활짝 미소 짓는 이디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디스가 자신을 희생하여 그를 지켜 냈듯이.
시린 겨울 속에서 홀로 떠돌던 그를 구원한 마리에트처럼.
이제는 그의 차례였다.
헌신의 끝, 한 점 재로 스러져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더라도.
마인하르트는 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