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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화 (1/166)

1화

제 1장. 드리블랴네 가문의 며느리가 되자!

“너희는 선택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경쟁해 왔다.”

아버님의 나직한 음성이 귀를 울렸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손가락을 부러트릴 듯 힘을 주었다.

대기가 달아올랐다. 극도로 흥분한 알파의 페로몬이 온 사방에서 날뛰고 있었다.

“차기 가주가 되는 건 내정된 안주인의 선택을 받은 자. 너희 중 가장 뛰어난 수컷만이 선택받을 자격이 있지.”

지금 내 앞에는 세 명의 미남이 눈을 가린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제국 최대 암살자 길드 ‘조커’의 주인인, 첫째. 이안 드리블랴네.

그는 은은하게 돌아버린 미소를 머금은 채 턱을 들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슬쩍 기울이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선택받지 못하면 당장 제 휘하의 살수 집단을 풀어 이부동생들을 없애버리겠다는 것만 같은데-

“애기야. 선택하기 어려우면 선택지가 하나만 남도록 해줄까?”

“아니!”

역시나!

나는 서둘러 강하게 부정했다.

저건 100% 진심이다. 이안은 기꺼이 선택지를 자신 하나만 남긴 다음,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있는 무서운 사내였다.

“난 네가 무얼 하든 괜찮아. 교황의 뒤통수를 후려쳤을 때도 수습해 줬잖니.”

그, 그건 그렇지만.

이안이 다정하게 내놓은 한 마디에 나는 움찔했다. 그건 내가 친 사고 중에서도 가장 큰 사고였다.

‘하지만 그런 자가 신성 제국의 교황인 줄 몰랐는걸. 게다가 몇 대 더 치라고 응원한 사람이 누군데!’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좀 억울하다. 그때 일부러 나를 부추긴 게 틀림없었다.

“야, 동글. 어차피 날 고를 건데 뭘 망설여? 시간 아깝게.”

그때였다. 전신에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흐르는 둘째가 으르렁거리듯 끼어들었다.

단테 드리블랴네.

소드 마스터만 모아둔 전 세계적 기사단인 ‘팔라딘’의 최연소 입단자.

그는 지금 초조함을 억누르려는 듯 손가락을 우득 꺾고 있었다. 근데 그게 왜 여차하면 날 납치해서 그대로 달아나 버리겠다는 것처럼 보일까 몰라.

평소에는 잘 훈련된 기사답게 고지식할 정도로 절제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단테는 충동성이 높아 어디로 튈지 몰랐다.

‘그리고 막내는…….’

나는 두 사람이 한 마디씩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요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 봐도 눈웃음을 짓고 있겠지.’

안대로 가려져 있는데도 알 것 같았다. 저 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얇은 천 따위가 시야를 가린들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겠지. 그런 애니까.

유리 예레반 헬리코프리온 드리블랴네.

마도 제국 유일한 황태자.

그는 집요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긴, 따져보면 저 셋 중 집요하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지만…….

개중에서도 특별히! 집요하다는 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법이다.

“누나.”

무릎걸음으로 기어온 유리가 내 손안에 폭 하고 뺨을 포갰다.

“유리는 누나 말만 들어요.”

버리지 말라는 말도, 길들여 놓고 어딜 가느냐는 으름장도 아니었다.

그는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사랑스러운 말투. 무해한 태도와 유순한 표정.

그는 내 손에 기꺼이 목줄을 쥐여준 귀여운 새끼 맹수처럼 굴었다.

이윽고 유리가 특유의 애교를 부리며 내 손바닥 안쪽에 입술을 비볐다. 발가락이 괜히 곱아들어 나는 평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힘들겠지만 짐승의 피가 짙은 우리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이윽고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아버님이 조용히 선언하셨다.

“자, 플로린. 남편을 선택할 시간이다.”

쿵.

호흡을 내뱉음과 동시에 괜스레 가슴이 내려앉았다.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이제…… 이 셋 중 한 명이 내 남편이 되는 거야.’

이 세계에는 신이 지극히 사랑하여 특별한 힘과 지위를 부여했다고 전해지는 일곱 우월종이 존재한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검치호 족, 드리블랴네.

맹수들의 왕. 악마의 가호를 받는 자들. 마도 제국의 중심이자 황가와 견줄 만큼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을 가진 명문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리블랴네가 전 세계 최고의 군수업체라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서슴없이 무기를 팔고 전쟁을 유지하고 그로써 배를 불린 악당으로 묘사되었었지.

‘그러다 결국 막판엔 여자주인공을 중간에 놓고 치정 싸움을 벌이다 사이좋게 멸문 엔딩을 맞았고…….’

나는 이제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가문의 정식 안주인이 된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일이었다.

“참고로 나는 네가 누구와 결혼하든 아무 상관 없단다. 결국 내 며느리가 되는 결론은 같으니 말이다.”

“아버님, 혹 제 선택이 옳지 않았다면요?”

“드리블랴네는 망하게 되겠지. 걱정 말거라.”

실례지만 그것 참 격려되는 말씀이네요……!

요즘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는 한숨을 뱉으며 잠시 망설였다.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도망치고 싶으나 드리블랴네 가(家)의 며느리로서 배우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물러서는 법이었다.

나는 물어뜯는 법만을 안다.

그야, 나도 맹수인걸.

‘정말. 처음 빙의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만들 수 있을 줄은 전혀 몰랐는데.’

그간 드리블랴네가 원작처럼 폭삭 망하지 않게 노력하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모른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기도 했다.

원작의 후반부는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이니까.

이 세계가 사랑해 마지않는 여자주인공의 마수에서 가문을 지켜내기 위해 내가 할 선택은-

“아버님, 저는요…….”

마침내 입술을 가르고 한 마디가 툭 흘러나왔을 때. 나는 오랜 세월 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버님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일곱 번이나 빙의를 거듭했던 어느 겨울이었다.

* * *

‘미친, 낯선 천장이다!’

으레 로판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눈을 뜨자마자 이게 빙의임을 직감했다. 뭇 빙의자들과 아주 사알짝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나는 온몸으로 빙의를 반긴다는 점이었다.

‘와, 다이아몬드 수저 좀 깨물어 볼 것 같은 화려한 침실이잖아?’

주변 풍경을 휙 둘러본 나는 이윽고 내적 환호성을 내질렀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팔자에 한 방이 있단 게 이런 뜻이었군요……!’

내 마지막 기억은 꽁지 빠지게 뺑소니치는 트럭을 향해 부들부들 떨며 엿을 날린 거였다. 온갖 욕을 퍼부으며 죽었는데 그게 사실은 빙의 트럭이었다니!

딱히 아쉬울 인생은 아니었기에 차라리 반가웠다. 어쩐지 몸이 좀 불편하고 뻣뻣한 것 같지만 뭐 어떤가. 갓난아기라서 그런가 보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우선 행복부터 만끽했다.

‘침실에서 좋은 향기도 나네.’

역시 육아물인가?!

각종 육아물 주인공들처럼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면 오히려 좋다.

왜 베이비 갑부물이 아니라 육아물이라고 부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중요한 건 난 이 빙의를 넙죽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는 거였다.

‘내 신분은 뭘까? 혹시 황족? 아니면 왕족쯤은 되나?’

일국의 왕비가 쓸 것 같은 화려한 화장대엔 순금 표범이 장식되어 있었다. 넓은 창문의 위쪽엔 월귤나무 꽃이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가 박혀 있고, 곳곳엔 잘 관리된 화분이 가득했다.

우아한 녹색 카우치와 푸른빛의 도자기 수집품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가족 초상화……?

‘음, 아기보다는 어쩐지 중년의 귀부인 취향인 것 같긴 하지만.’

엄마 방인가 보지!

로판 독자 경력 10년 차. 매의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핀 결과, 난 확신했다.

땡잡았다!

‘이제 내가 숨만 쉬어도 옆에서 아가씨가 숨을 쉬셨으니 365일이 국경일입니다! 라고 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거야!’

어흐흑.

나는 김아람. 부모님이 오지 탐험 중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열세 살에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때부터 눈칫밥을 먹게 된 나는 미움받지 않으려고,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다행히 유전적으로 간이 튼튼했던 나는 어른이 되자마자…… 굴삭기 자격증을 따고 독립을 했다.

처음엔 아저씨들이 텃세를 심하게 부렸지만, 부모님을 닮아 내가 워낙 서글서글하다 보니 무리에 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 돌아보니 재미있는 삶이긴 했네.’

별 미련은 없지만.

‘혹시 없는 살림에도 불법다운 안 하고 정식 결제해서 사후에 이런 보상이 있는 건가?’

내 카카오페X지 어플의 구매 목록을 떠올리던 나는 코를 쓱 훔쳤다.

역시 육아물…… 만만세다?

“월귤나무에 예쁜 꽃이 피었네요, 어머니.”

“어머나. 네가 이번에도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올 거란 의미 같아 기분이 좋구나.”

어, 어라? 근데 왜 저한테 물뿌리개를 들이대세요?

몇 초 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

‘나 왜 사람이 아닌 건데에에에에?!’

투둑.

내 절규와 함께 어여쁜 꽃송이가 떨어졌다.

나중에 거듭 빙의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타락 성녀와 광기의 짐승들』이라는 19금 피폐 막장 소설 속이었다.

주인공들이 아무 데서나 XX나서 XXX하는 장면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채운 이 화끈한 수인 역하렘 속에서 나는 자그마치…….

어느 귀부인이 키우는 나무에 빙의했다.

으아악, 나 돌려보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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