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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6화 (26/166)

26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무너졌다가 다시 지어진 건물이라니. 믿기지 않아요.”

라흰은 새로 지어져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건물을 보며 그렇게 속삭였다.

기존의 후계자 관은 오래전에 지어져 당시 유행하던 양식을 따라 목조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대리석을 이용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그때 죽은 분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 훌륭한 어른이 되었겠죠.”

“아아. 이안 녀석 말인가.”

게르드는 라흰과 단둘이서 함께 있는 이 시간이 믿기지 않았다.

드리블랴네의 역사를 담은 책에서 후계자 관 폭발 사건을 읽은 라흰은 너무나 선하게도 그 당시에 죽은 아이를 위해 눈물을 보였다.

솔직히 게르드는 처음엔 누가 죽었는지도 제대로 기억을 못했지만 ‘한번 후계자 관에 가보겠느냐’고 제안했고 그 결과-

이렇게 둘이 함께 나오게 된 것이다.

“저는 가여운 이안을 위해 기도를 할래요. 게르드도 할 거예요?”

“기도? 당연하지. 당신이 한다면 난 뭐든지 해.”

이안인지 뭔지 알 바인가.

그녀의 어여쁜 입술에서 저 아닌 다른 새끼의 이름이 나오는 게 지독하게도 싫었다.

그러나 게르드는 새카만 속내를 억지로 눌렀다. 라흰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곱고 예쁜 것만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럽고 추악한 건 그녀가 알 필요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 최악의 사건을 일으킨 게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 놈밖에 죽이지 못한 게 아쉬웠지.’

그때 전부 다 없앴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지금 라흰을 나눠 갖지 않아도 되었을 것 아닌가.]

여기까지 떠올린 난 꼬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에 파르르 떨었다.

‘뭐야. 이거 뭐야. 잠시만, 이안이 죽어?!’

……그럼 안 되는데?

안 그래도 이 건물은 꽤 오래전에 지어진 것이라 노후하였다. 기둥 같은 데 충격이라도 가면 그대로 내려앉을 정도로 말이다.

‘서둘러 가주님께 알려야 해.’

내 발바닥에 화약 가루가 많이 묻었다. 나무로 된 바닥 사이사이에 낀 이 가루들은 나중에 연쇄 충격을 일으킬 용도일 게 분명했다.

이걸 보여드리면 내 말을 들어주실 거야.

‘아니, 잠깐만.’

근데 폭탄을 미리 처리해 버리면, 범인이 누군지는 못 잡잖아?

‘하지만 아이들이 다치면 안 되는데.’

사색이 된 채로 생각하던 나는 깨달았다.

‘전체가 표적이고 한 사람만 지키고자 한다면.’

역으로 그 한 사람을 여기에 붙들어 놔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 * *

“연회 장소가 갑자기 여기로 바뀌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쉬잇, 왕자님. 누가 듣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게르드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분명 그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가 마무리되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후계자 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공작 부인을 직접 모시는 이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마침내 하녀장까지 등장한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게르드는 기겁하며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왔다.

“별안간 보물찾기라니! 그 같잖은 걸 축하해 주는 것도 모자라 왜 후계자 관에 보물을 숨긴단 거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왕자님. 자칫하면 저희가 폭탄을 설치한 걸 들킬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불안했다.

어린아이가 보물찾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거야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건 어린아이를 위한 파티에 일반적으로 포함된 코너니까.

하지만 보물이 하늘에서 뚝딱 떨어질 리가 있나. 저렇게 사용인들이 헤집고 다니면 아무리 잘 숨긴 폭탄이라도 들킬 수 있었다.

게다가 화약은! 일부러 바닥에 뿌려둔 그건 어쩔 것인가!

이 계획은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저택 본관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상정하고 짠 거였다.

후계자 관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야 했다. 몇 명 정도야 폭발에 휩쓸릴 수 있겠지만…… 다 죽이려는 건 아니었다.

비록 왕자님은 그러길 원하는 것 같아도 그래선 안 된다. 목표는 단지 후계자 관 자체를 무너트리고 왕자님이 임시로나마 본관에서 머무시도록 하는 거였으니까. 그래야 정보를 훔쳐내기가 쉽다.

남자는 왕비에게서는 ‘아들을 보호하고 도우라’는 명령을, 왕에게서는 ‘그 빌어먹을 검치호족에게서 쓸모 있는 정보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각기 받은 자였다.

후계자 관을 터트려버리는 것이야말로 두 명령을 모두 받들 이상적인 방법이었는데……!

“인간화를 하며 저희는 야생성을 많이 잃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후각이 예민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흥. 당장 가서 폭탄을 해체해.”

게르드가 짜증을 내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말없이 고개를 숙인 남자는 서둘러 걸음을 뗐다.

아직 아무도 폭탄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으니 얼른 가서 슬그머니 회수하면…….

그런데 그가 폭탄을 숨겨둔 표범 머리 모양의 나무 조각을 잡아챈 바로 그때였다.

“어라라?”

웬 앳된 목소리 하나가 그의 귀를 강타했다.

“지금은 보물, 숨기는 시간인데에. 찾눈 시간 아닝데!”

슬쩍 돌아보니 그 빌어먹을 흰 담비가 있었다.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 체격 하나만으로 타인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는 그리즐리 베어 수인이 버티고 서 있고.

무기 하나 없는 맨손으로도 적군의 머리통을 부수는 그리즐리 베어 수인은 전쟁터에선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 여기에서 저렇게 유순한 척하고 있다 한들, 남자는 기사가 언제든지 돌변해 제 머리통을 터트릴 수 있음을 알았다.

“아하하. 저도 보물을 숨기려 했습니다.”

“구래? 구럼 손에 든 고, 그게 보물이야?”

X됐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에 든 것을 앞에 내놓았다.

어차피 그래 봤자 상대는 어린애. 당당하게 나가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 금세 흥미를 잃겠지.

‘이 안에 폭탄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니까.’

남자는 최대한 비굴해 보이는 몸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것 아니라 내놓기에 부끄럽습니다.”

“응. 근데 나, 자세히 볼래.”

“예에? 숨기고 나서 보시지요. 하하.”

“시져! 지금 볼래!”

이런, 미친.

게르드 님께 이 흰 담비에 대해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기사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라릴 뿐.

“작은 마님께서 보고 싶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예에, 드려야지요. 암…….”

근데 폭탄이 터지면 어쩌지. 이걸 던지거나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오싹해진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조각상을 기사에게 넘긴 다음 이를 악물며 지켜보았다.

“몬생겨쪄.”

“…….”

“무겁기까지 해. 재미업서.”

“하하, 그렇지요? 그럼 이건 제가 잘 숨기겠습니다.”

스윽. 다시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으나 흰 담비는 제 몸만 한 조각상을 놓지 않았다.

“작은 마님?”

“흥.”

“저어, 작은 마님……?”

슬슬 불안해진 그가 주춤거리며 다가가자 기사가 험악하게 눈을 치떴다. 어디 감히 다가오느냐는 시선에 남자는 딱 미칠 것만 같았다.

“에잇!”

“으악!”

“속았지롱.”

뭘 알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그냥 어린애다운 장난인 건가?

던지려는 시늉을 하기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른 그는 벌렁거리는 심장에 콧구멍마저 벌렁거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를 빤히 보던 저주 받을 흰 담비가 씩 웃는 게 아닌가.

“진짜 던져버려야지, 이깟 거. 존!”

“안 돼애애애!!!”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멍청한 곰 놈이 조각상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미 피하기엔 늦었다.

몇 초 뒤.

실눈을 뜬 남자는 자신이 살아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헉, 허억. 사, 살아 있네.’

폭탄은 불발된 듯 터지지 않았고 그저 조각상만 박살이 나 있을 뿐이었다.

“어라라, 이상하네. 왜 그러고 이써?”

“!”

“저 안에 모가 들었는지 아나 바?”

키득키득. 동물 주제에 사람 말까지 하는 그것은 말 그대로 악마 같았다.

‘사탄은 너희 중에 섞여 오나니.’

저도 모르게 경전의 구절을 중얼거린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일단 지금은 자연스럽게 몸을 빼내야 한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폭탄은 두 개. 다른 하나도 회수해야 해. 까딱하면 여기 있는 전원이 죽는다.’

그러면 리첸비움은…… 왕실은…… 멸망하게 될지도 몰랐다. 가주 임마누엘이 용서할 리 없으니까.

“히익!”

하지만 남자의 도망은 실패했다.

그르르륵.

복도의 양쪽 끝. 목을 긁는 위협적인 울음을 내며 새카만 흑범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서서 우아하게 사냥을 지시하는 자는, 다름 아닌 이 가문의 안주인, 공작 부인 이난나였다.

“플로린의 말이 맞았구나.”

칩거했다고 알려진 공작 부인이 여긴 왜?

남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리 소란을 일으키면 반드시 폭탄을 회수하러 올 거라 하였지.”

이를 드러낸 흑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던 이난나는 쥐고 있던 줄을 그대로 놓았다.

“저자를 잡아라.”

“아아악!”

나긋한 명령에 날래게 뛰어오른 범들은 남자의 급소를 꽉 짓눌렀다.

도망칠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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