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화 (1/207)

1. 프롤로그

그저 날씨가 조금 좋을 뿐인, 평범한 날 중의 하루였다. 막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린 나는 뒤이어 내리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결을 따라 꽃잎 하나가 느릿느릿 허공을 날고 있었다.

벌써 봄이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한 지도 어느덧 일 년째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돌봐주는 것에도 재능이 있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나는 꿈을 이룰 수 있었고, 그 결과 스물다섯 살에 어린이집 막내 선생님, 이예린이 될 수 있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여. 선샌밈!”

짧은 다리로 깡충거리며 버스에서 내린 정안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런 정안이가 귀여워 작게 웃은 뒤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세 살이 된 아이라,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나는 늘 이렇게 건너편까지 데려다주고는 했다.

“선샌밈 조심해서 가여!”

맞은편 인도에 도착한 정안이가 한 손에 풍선을 든 채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정안아.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웃으며 정안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버스로 돌아갔다.

그 순간이었다.

빵-!

강하게 울리는 경적 소리에 순간적으로 오싹한 느낌이 들어,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풍선을 놓쳐 쫓아가는 정안이의 모습과 그의 뒤로 빠르게 달려가는 차가 보였다.

“정안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곧바로 정안이에게 달려갔다.

콰앙!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동시에 내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잠시, 나는 공중에 떠 있는 채였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던데, 내 머릿속은 그저 하얗기만 했다.

이윽고 나는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차도 위로 쓰러진 내 시야에 정안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충격을 받은 듯 커다래진 아이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선…샌밈…”

이 일이 정안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게 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하지만 머리가, 아니 온몸이 너무 저려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덜컹, 덜컹.

바닥이 덜컹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있는 모양이다. 틀림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태가 좀 괜찮아지면 제일 먼저 정안이에게 전화해 줘야지. 선생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잠깐, 그런데 왜 하나도 안 아프지?

나는 손을 뻗어 몸을 더듬거리고 움직여보았다. 그러나 상처도 만져지지 않았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말발굽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감은 눈을 떴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급차의 흰색 천장이 아닌 여기저기에 보석이 달리고 심지어 고급스럽게 금칠까지 된 천장이었다.

나는 몸을 만지던 손을 뻗어 멍하니 천장에 달린 보석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큰 보석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거, 혹시 꿈인가?

……그래 꿈일 거야.

보석과 금 꿈이라니, 이건 조만간 돈이 조금 들어올 것이라는 길몽이 분명했다.

나는 내 손등만 한 보석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순간, 보석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내가 빛줄기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밖에 움직이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는 풍경. 그리고 말발굽 소리. 보석으로 꾸며진 작은 공간. 나는 곧 내가 있는 곳이 마차 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내가 앉아 있는 의자가 덜컹거렸고 그와 동시에 내 몸이 뛰어올랐다.

꽝!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는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엄청난 소리와 동시에 몰려오는 고통에 눈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혹시나 머리에 혹이 생겼을까 만지던 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분명 꿈에서는 고통을 못 느낀다고 했는데…. 설마, 이거 꿈이 아닌 거야?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불안한 감각이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혹시 납치당한 건가?

아니, 납치는 아닐 것이다. 어떤 미친놈이 보석들로 장식한 차에 납치해.

근데, 꿈이 아니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멍하니 바깥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내다보았다.

투명하고 깨끗한 창문에 얼굴이 비쳤다. 내가 아닌, 낯선 사람의 얼굴이.

나는 두 눈을 의심하며 창문 앞으로 바짝 붙었다.

“이게 뭐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닌 화려한 미인의 모습이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나올 법한 백발에 푸른 눈동자를 한 미인 말이다

믿기지 않아 손으로 얼굴을 더듬거리다가 시선을 내렸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나 입을 법한 호화로운 장식의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나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색의 별빛 같은 백발을 매만졌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사이 나를 태운 마차는 어딘가에 멈춰 섰다. 노크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마차 앞에는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은, 집사처럼 보이는 한 남자와 그의 옆으로 여러 명의 시녀, 그리고 시종들이 서 있었다.

“차일드 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피오라 티아네 드 데이먼 황녀님.”

처음 듣는 언어였지만 나는 집사의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집사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그가 언급한 ‘피오라’라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하하.”

사람이 실성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제 손을 잡고 내리시죠 황녀님.”

집사가 흰 장갑을 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그의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내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마차의 문을 도로 닫아버렸다.

나는 피오라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차일드라는 가문도 말이다. 그건 내가 예전에 읽었던 소설, <공작가의 아이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가문과 그에게 파혼당하는 악녀의 이름이었으니까.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거지? 혹시 깜짝 카메라? 뭐 그런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세트장도 아니었고 카메라도 없었다. 되려 모든 게 너무나 진짜 같아서 의심을 하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현실이라는 거지. 지금 내가 있는 곳도. 내가 <공작가의 아이들> 속의 악녀 피오라가 된 것도.

눈을 감기 전, 이예린으로서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이를 살리고 죽었으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이었다. 억울하긴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근데 왜 하필.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작중 피오라의 행동을 떠올리며 주먹에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아 진짜! 왜 하필, 악역 중에서도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역한테 빙의시키는 건데!

나는 손을 들어 내 뺨을 마구 내려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생각했다. 

신이시여, 저 완전 착하게 살았는데 왜 하필 빙의해도 이런 인간 말종에게 빙의시킨 거죠? 대체 왜?

“하….”

다시 한숨을 내쉰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난 피오라가 되었고 아마 내 원래의 몸도 죽었을 확률이 높겠지. 그니까 나는 앞으로도 피오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나는 머릿속으로 소설 <공작가의 아이들>속의 피오라의 모습을 되짚어보았다. 

피오라. 작중의 그녀는 남주의 약혼자로, 아이들을 꾸준히 괴롭혔다. 그리고 공작가의 시녀였던 여주 레리아가 그 사실을 밝혀내려 하자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납치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실을 들키고 도망치다 서브 남주에게 처형당했지만.

싹둑, 하고 말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겨우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는데 이대로 또 죽을 순 없었다.

그럼 내가 아이들에게 잘해주면……괜찮을 수 있을까?

아니, 여주가 나타나면 남주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할 거고 나는 파혼 당하게 될 테다. 우리가 파혼을 하면 아이들은 심적으로 충격을 받게 되겠지.

……그럼 아이들과 최대한 엮이지 않으면서 여주가 나타나 남주를 채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런 다음 그와 파혼해서 챙긴 위자료로 어린이집을 세우는 거지. 물론 소설 속 최애인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마차 문을 밀어젖히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까 날 에스코트 하려 했던 집사는 뒤로 물러난 채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설마, 내가 마차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려서 그런 건가. 벌써 나쁜 이미지로 찍혀버리면 곤란한데.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결국 제 발로 내려가려는 순간, 눈앞에 자그마한 손 두 개가 내밀어졌다. 당황할 겨를도 없이 아래쪽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작가에 어서 오세요.”

아래를 내려다보자, 예쁜 옷차림의 남자아이 둘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천국인가…?

내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중 여자아이 셋이 내게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레몬이에요!!!”

“환영해요.”

“어서 오세여.”

그리고는 직접 만든 것 같은 자그마한 꽃다발을 내밀었다. 반짝거리는 다섯 쌍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눈빛에 이미 내 결심은 하늘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나는 아파 오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 귀엽잖아! 이걸 어떻게 안 엮이고 살아?

다시 마차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그때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아이들과 친해져도 헤어지지 않는 방법이.

나는 한 손으로는 아이들이 준 꽃다발을 그리고 반대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내 대답에 아이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 아이들의 미소를 본 나는 생각했다. 나 악녀 안 해. 아니 못 해. 나 너희랑 살래. 

공작님, 까라면 까고 파혼하자면 할 테니까. 파혼하고 저 선생님으로 고용해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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