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7)화 (7/207)

6. 공작가의 새바람

“안녕하세요, 황녀님.”

아직 황녀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그러니까 황녀님 말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 응?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렇게까지 친해지지 않았으니 조금 더 친해진 뒤 말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말을 참아냈다.

“좋은 아침, 토마.” 

나의 인사에 토마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바리다스가 떠올라 둘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손을 잡자 토마는 내 손 등에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토마의 시선이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향했고 그것을 눈치챈 그린은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형 앉아. 난 갈래.”

그린은 우리가 붙잡을 틈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갔고, 그런 그린을 바라보던 레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주님, 저희 집 개가 도망쳐서 저는 먼저 가볼게요.”

공주 놀이는 아직 안 끝난 거니? 렌은 레몬의 말에 입을 가리고 쿡쿡 웃기 시작했고 레몬은 그린을 쫓아 어딘가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티 파티에는 자리가 두 개나 남게 되었다. 내가 토마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려던 그 순간 자스민이 토마의 옷을 쭉 당겼다.

“왕자님.”

누가 봐도 저건 왕자님 역할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토마가 움직이지 않자 자스민은 레몬이 앉아있던 의자를 손바닥으로 툭툭 내려쳤다. 저건 앉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래도 토마가 가만히 있자 자스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빼 주며 소리쳤다.

“오빠, 왕자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 중 서열이 가장 높은 건 막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철옹성 같던 토마는 어느새 얌전히 자스민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었으니까.

잠시 후 자스민이 시중이 가져다준 곰인형과 다과회 놀이를 시작하자, 렌과 토마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언가 역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없었지만 나도 꽤나 재밌게 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다만, 역사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둘의 대화 내용이 나이답지 않게 너무 어른스러워 조금 걱정이 될 뿐이었다.

렌과 토마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사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자스민의 몸이 순간적으로 안쪽으로 쏠렸다.

깜짝 놀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자스민에게 닿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 순간 다행히 자스민의 옆에 있던 렌이 그녀를 품에 안았고 우리는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제가 데려다주고 올게요.”

렌은 잠이 조금 깬 것인지 꾸벅꾸벅 조는 자스민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만 보내기에는 조금 걱정이 되어 그녀들을 따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뒤이어 시녀 한 명이 자스민을 안아 드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테이블에는 나와 토마만이 남게 되었다. 둘째라서 그런 것일까, 그는 생김새를 제외하더라도 아이들 중에 바리다스와 가장 닮은 것 같았다.

“황녀님.”

갑작스러운 그의 부름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고개를 갸웃거린 내가 토마를 바라보자. 그는 바리다스와 똑 닮은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은 명백한 적의였다.

하지만 대체 왜? 

억울해진 내가 토마를 바라보자 그는 표정을 조금 구기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 잠시 뒤, 그는 입술을 한 번 짓씹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왜, 제 동생들에게 다가오시는 겁니까?” 

그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아까부터 들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어린 소년은 지금 나에게서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아이한테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사실이 슬퍼, 그를 껴안아 주고 싶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내 질문에 토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작은 양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입술이 다시 달싹였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제 이 가문에 필요 없다는 것을요.”

아이들의 부모인 전대 공작과 그의 부인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는 이제 겨우 반년이 되어갔다. 그리고 지금 공작위를 계승한 것은 아이들의 친형이 아닌 이복형제인 바리다스였다.

만약 아이들이 자란다면 그들은 바리다스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았다. 사랑하고 돌봐주지는 않았지만 곁에 있어 주었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리다스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달랐다.

“형님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저희가 두 분의 아이에게 거슬리는 장해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황녀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이복형과의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온, 아이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랬기에 그는 나를 견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토마가 안쓰럽고 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저희는 공작가에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 저와 제 동생들에게 다가오지 말아 주세요.”

내게서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토마는 피식 웃었다. 왠지 모르게 그 웃음이 아파 보여 그가 더욱 걱정이 되었다. 

“저희는 반푼이, 평민의 자식이니. 저희에게 다가올 필요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의 말에 내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토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양팔을 들어 올리자 토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쭈욱.

짝이나, 퍽 같은 강한 소리 대신에 말랑한 무언가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그의 양 뺨을 잡은 것이었다.

그의 두 눈이 떠졌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그런 목적으로 너희에게 다가간 게 아니야.” 

그에게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도 이미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를 뭐라고 위로해줘야 할지 몰랐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결국 뺨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토마의 두 눈이 커졌다. 나는 토마의 얼굴을 잡은 손에 힘을 풀고 입을 열었다. 

“날 믿지 않아도 괜찮아. 근데 왜 너희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나를 향하고 있던 그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지금까지 다 그랬으니까. 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토마와 시선을 맞췄다. 

“아니, 난 아니야. 난 너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너희가 반푼이라고도, 내 자리를 위협할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 그저 너희는 아직 어린아이들이야. 공작가의 사생아도 반푼이도 아닌, 사랑받아야 마땅한 아이들.”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난 토마를 껴안았다. 내 목에 닿은 그의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 몸을 밀어냈다. 

“누가 저를 사랑해 줄 건데요?”

토마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는 아직 토마와 친하지 않았다. ‘내가 널 사랑해 줄게!’라고 소리쳐 봤자, 그는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토마의 눈을 마주했다.

“가족들이 있잖아.”

하지만 토마는 피식 웃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섬뜩한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에 나는 순간적으로 위축당하고 말았다. 

“가족, 누가 남아있죠?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아픔이 느껴지는 말과 함께 토마는 내 품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더니 아이답지 않은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면,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형?”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나의 어깨에서 떨어지는 작은 손을 나는 붙잡았다.

“너에게는 동생들이 있어.”

내 말에 토마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내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 

결국 나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한 토마가 입을 열었다.

“제 동생들은 아직 어립니다.”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어, 너는 동생들을 사랑하지 않아?”

내 말에 토마가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내 눈을 피했다, 하지만 내가 그의 시선을 끈질기게 쫓자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에게 동생들은 지켜줘야 할 존재였다. 하지만 원작은 읽은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 모두 강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지켜줘야 했다, 다만 그것은 어른들의 몫이었다, 같은 아이인 토마에게는 아이들을 지킬 의무가 없었다. 그도 같이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일 뿐이었으니까.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자스민과 그린이 우리 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빠!!”

자스민은 달려와 토마에게 안기며 그린을 노려봤다. 

“넷째 오빠가 나 괴롭혀! 혼내 조!!”

나와 토마가 대화를 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자스민을 데려다준다고 한 렌이 사라지고 그린과 자스민이 함께 있었다.

그린은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자스민에게 다가왔다.

“어딜 도망가!”

그린은 자스민을 간지럽히기 시작했고, 자스민은 귀엽게 웃으며 그린을 밀어냈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레몬과 렌도 자스민에게 달려왔다. 그녀들 중 레몬이 헉헉거리며 입을 열었다. 

“동쪽 숲의 마녀가 공주님을 납치했어! 왕자님 공주님을 구해주세요!”

너네 아직도 그 공주 놀이하는 중이었니…? 

레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토마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손을 놓아 주었다. 

아이들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토마가 무슨 역할인지 떠올린 자스민은 토마의 등 뒤에 숨으며 말했다.

“구해주세여. 왕자님!”

하지만 토마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린은 천천히 토마와 자스민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렌이 입을 열었다.

“안 되겠다, 레몬. 왕자가 멍청하다. 우리가 자스민을 구하자.”

그렇게 말하며 렌과 레몬은 그린에게 달려가 그를 간지럽히기 시작했고 그들의 행동에 토마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멍청하다는 거야.”

동생들의 말에 장난기 가득해진 토마는 아이들과 함께 정원을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했고 나는 웃으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시작된 술래잡기는 결국 토마를 제외한 아이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이어졌고,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멍하니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그때 내게 다가온 토마가 입을 열었다.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동생들이 황녀님을 믿고 있으니까, 저도 믿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그가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이 기뻐, 나는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거면 충분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토마.”

그런 내 말에 토마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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