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0)화 (10/207)

9. 미래의 흑막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렌!”

피투성이가 된 렌 때문에 깜짝 놀란 나와 토마 그리고 기사들은 렌에게 달려갔다. 렌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황녀님…”

내 이름을 부르면서도 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렌의 밑에는 한 소년이 쓰러져 있었는데, 정신을 잃은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렌이 그의 머리를 드레스로 지혈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렌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며 쓰러져 있는 소년을 살펴보았다. 그는 작지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다.

“살아 있습니다.”

쓰러진 소년의 맥을 짚은 기사 한 명이 입을 열었고 다른 한 명의 기사는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소년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렌은 안심이 된 것인지 내 품에 안겨 왔다. 나는 내 품 안에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렌을 안아 주었다. 

“괜찮아.”

근데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조금 진정이 된 것인지 렌은 내 품에서 빠져나갔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토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생했어. 늦게 와서 미안해.”

토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렌은 입을 열었다. 

“그 소년은 괜찮나요?”

렌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창고에 피를 흘리는 소년과 단둘이 갇혀 있으면 무서울 법도 한데 그 상황에서 소년을 살리기 위해 지혈하다니, 그녀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선을 소년에게로 옮겼다. 그러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소년의 머리카락 색이 내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밝은 주황색 머리.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류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저 소년의 이름이 뭔가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류는 대답했다.

“칠드런이라고 합니다. 평민이라 성은 없고요.”

역시나, 쓰러진 저 소년이 바로 원작의 서브 남주인 칠드런이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내 눈치를 보던 류가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그가 이렇게 다친 것은 아마도 다른 기사들의 소행일 것입니다.”

“그렇군요.”

칠드런은 평민이었지만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디언을 뽑는다는 소식에 다른 기사들이 그를 견제해서 상처를 입힌 것이겠지. 이 정도로 피가 흐를 정도의 부상이라면 그는 내 가디언으로 지원하지 못할 것이었다.

어차피 나는 칠드런을 가디언으로 뽑을 생각이었고 그를 해친 범인도 잡아야 하니, 가디언을 뽑는 건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할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칠드런의 눈이 떠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세릴. 이 개자식!”

그의 욕설에 토마는 렌의 귀를 막았고 류는 그가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기사 중 한 명은 작게 중얼거렸다.

“괴물…”

그 순간 칠드런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초록빛 눈이 반짝였다. 칠드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왔다.

키가 크네.

열일곱 살치고 너무 큰 키에 나는 순간적으로 위축될 뻔했다. 그는 내게 달려왔고 류가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내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 덕에 칠드런은 아무런 방해 없이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는 칠드런이라고 합니다. 황녀님이신가요?”

“그렇지?”

내 대답의 그의 눈이 커졌다.

“저를 당신의 가디언으로 삼아 주세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디언은 실력을 인정받은 기사들만이 될 수 있는 자리이기는 했지만 다른 기사들이라면 몰라도 칠드런이 내 기사를 자처할 이유는 없는데?

“내 가디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

내 말에 그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는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가디언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절 이렇게 만든 놈들이 원하던 자리여서요.”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의 성격이 원작에서 읽은 대로여서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나쁘지 않은 이유네. 근데, 그 전에 감사 인사부터 하는 건 어떨까?”

나는 나와 칠드런을 바라보고 있는 렌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칠드런의 시선도 날 따라 렌에게 옮겨졌고 피투성이가 된 렌의 모습에 그의 눈이 커졌다.

“다친 너를 지혈해준 게 렌이야.”

내 말에 칠드런은 렌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뚜벅뚜벅 렌에게 걸어가더니 고개를 숙여 렌에게 인사했다.

“감사드립니다. 공녀님.”

그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게 칠드런이지.

독자들에게 그의 인기는 꽤나 좋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자기에게 친절하고 은혜를 준 사람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친절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매우 성격이 더러워졌다. 피오라와 레리아 둘 모두에게 까칠했던 남주와는 다르게 그는 여주에게는 친절하지만 피오라에게만 까칠하게 대했고 그 모습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두 얼굴, 그리고 강강약약. 이것은 칠드런의 매력임과 동시에 그의 인기 요소였다.

그의 감사 인사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고 칠드런은 미소 지었다. 

“너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지는 기억하고 있니?”

내 질문에 칠드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류가 입을 열었다.

“저희 기사단에서 일어난 일이니,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칠드런은 피식 웃었다.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칠드런을 이렇게 만든 기사들이 귀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내 가디언이 되려 했던 거구나, 어차피 그들이 처벌을 받아봐야 근신이 다일 테니까. 내 가디언이 되어 그들이 원하던 자리를 뺏어 나름의 복수를 하려 한 거겠지.

흐음, 이걸 어떡할까.

이런 짓을 한 기사들이 괘씸하긴 했다. 칠드런을 실력으로 이기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그냥 두기엔 곤란하니 이런 방법을 쓴 것이겠지.

그냥 처벌은 기사단에 맡기고 칠드런을 내 가디언으로 쓰면 된다. 애초에 목적은 그를 내 가디언으로 쓰는 거였으니까. 

고민하던 그때 내 눈에 렌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결정을 내렸다.

“아뇨, 괜찮아요. 제가 해결할게요.”

내 말에 류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사단의 원칙이라는 게…….”

“원칙대로라면 그렇지만.”

나는 류의 말을 끊으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류는 표정을 조금 굳혔다가 금세 풀었다.

나는 속으로 그를 비꼬며 피식 웃었다. 원칙대로라면 귀족이 평민 괴롭히는 것 정도야 넘겨줄 만하지. 

그렇지. 그런데 그놈들 때문에 렌이 울었잖아. 그럼 용서 못 하지.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렌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고한 공녀까지 피해를 입었으니, 제가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네요. 그러니 그 기사들에 대한 처벌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류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한 채 칠드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말해보렴, 너를 그렇게 만든 기사들이 누구인지?”

내 말에 칠드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고민하는 듯 류에게로 시선을 옮긴 뒤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그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릴 일라임, 일레이 세븐, 일라리움 브레데입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칠드런을 기절시킨 기사들은 귀족이었다.

칠드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은 류의 표정이 굳어갔고, 그 모습을 보며 사악하게 웃는 칠드런의 표정은 마치 악동 같았다. 나는 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진위 여부를 확인한 뒤 사실이라면 그들을 기사단에서 제명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차일드 가에 평민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기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건 너무 과한 처사입니다. 황녀님!”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대체 뭐가 과한 처사라는 건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은 유치원 아이들도 알 정도로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배우지 못한 내용이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이런 식으로 나올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벌을 내리는 겁니까? 당신은 아직 공작님과 결혼도 하지 않은 이국의 사람일 뿐입니다.”

어차피 망했으니 이제 막 나가기로 결정을 한 건가, 그는 눈을 부릅뜨며 내게 대들었다. 나보다 한 이십센치는 족히 커 보이는 사람이 그러니 조금 무섭기는 했다.

나는 그가 유치원부터 다시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때 그의 앞을 토마가 가로막았다.

“그분은 이국의 사람도 아니고 황녀이시며, 저희 형님과 결혼하실 분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온 렌도 입을 열었다. 

“당신보다, 차일드 가에 더 가까운 분이라는 말이죠.”

둘의 변호에 류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썩어 들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두 아이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지. 

크레센트 제국이 세워지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기사가 있었다. 이름은 뭐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쓴 선서가 있었고 그중 일부분이 꽤나 좋은 내용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크레센트의 기사이고 내 검은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고 그 선서의 내용을 아는 기사들과 토마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도 귀족도 아닌 백성이니….”

그다음 말이 뭐였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때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검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맞아 저런 대사였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바리다스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위압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순간 그에게서 느껴진 강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바리다스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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