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2)화 (12/207)

11. 그 악녀의 행복이론

똑,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귀여웠다. 내가 문을 열라고 손짓하자 로나가 문을 열었고, 그 사이로 자스민이 빼꼼 머리를 내밀더니 내게 달려왔다. 

“황녀밈!”

귀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렌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은 사이좋은 자매답게 손을 잡고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자스민과 렌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내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쪼은 아치미에요.”

내게 인사한 두 아이는 내 뒤에 서 있는 칠드런에게도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자스민은 내 무릎 위에, 렌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에게 차를 따라주며 나는 의젓하게 서 있는 칠드런을 바라봤다.

그 일이 일어나고 기사단이 발칵 뒤집혔기 때문에 삼 일이나 지난 뒤에야. 내 가디언을 뽑는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 칠드런이 응시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자리에 흥미가 없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고 그를 괴롭힌 귀족들에게도 벌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을 깨고 그는 내 가디언에 지원했고 가볍게 합격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칠드런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이 들킨 것 같아 민망해진 나는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 그에게 내밀었다. 

칠드런은 환하게 웃으며 케이크를 받아들었다.

귀여워라.

내 눈에는 칠드런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어리게 보일 뿐이었다. 물론 그의 경우에는 커서 내 목을 후려칠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케이크를 먹는 칠드런을 보며 미소 지었다.

목은 안 잘리겠네. 

나는 차를 홀짝이며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나갔다.

위협을 나름 전부 제거한 이후 나는 공작가 생활을 잘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귀여웠고, 공작가는 내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다. 화려한 의식주는 기본이고 안마, 피부관리 등으로 호화와 여유를 만끽했다. 심지어 나는 아직 약혼녀가 아닌 손님이기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돈 많은 백수가 이런 기분일까.

이렇게 3년간 즐기다가 파혼하고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되면 되는 것이었다.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아이들을 생각하자 벌써부터 웃음이 나왔다.

“후후후…”

내가 케이크를 먹기 위해 포크로 자른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레몬과 그린이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쌍둥이는 포장된 상자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그들의 뒤로 네 명의 시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두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게 달려왔다. 그러더니 내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상자를 내밀었다.

그 상자 위에는 초콜릿이라 쓰여 있었다.

“황녀님! 이거 먹을래?”

“안녕하십니까, 황녀님.”

음, 안녕하긴 한데. 이게 다 뭐니.

갑작스러운 쌍둥이의 등장에 당황한 나는 진정하라는 뜻을 담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안녕 얘들아.”

아이들은 나에게 어떻게든 초콜릿을 먹일 생각인 것 같았다. 어서 먹으라는 표정을 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내가 초콜릿을 먹기 위해 상자를 열려는 순간 의자에서 일어난 자스민이 도도도 뛰어와 레몬의 드레스를 붙잡았다.

“나도 조!”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자스민을 본 레몬은 그제야 내 방에 먼저 온 손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린은 이미 렌의 옆에 앉아 마지막 남은 푸딩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레몬의 볼이 부풀려졌다.

그녀는 자스민에게 초콜릿 상자를 넘기더니 화가 난 듯 쾅쾅거리며 그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가 먹고 있던 푸딩을 포크로 찍어 한입에 먹어치웠다.

“냠!”

푸딩이 레몬의 입으로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린은 좌절하며 소리쳤다.

“내 푸딩!”

“흥, 치사하게.”

쌍둥이는 그렇게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렌과 자스민은 둘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진 것인지 렌은 차를 홀짝였고 자스민은 둘의 말싸움을 구경하며 초콜릿을 오물거렸다. 

정신없어.

아이들은 항상 귀여웠지만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 때만큼은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느끼는 건 칠드런도 마찬가지인지 은근슬쩍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둘의 싸움은 시녀 한 명이 레몬의 의자와 케이크를 하나 더 가져다준 뒤에야 멈추었다. 

레몬과 그린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고 드디어 다시 평화로운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쌍둥이의 등장에 먹지 못한 케이크를 다시 포크로 집었다. 그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토마가 안으로 들어왔다.

“황녀님.”

……내 케이크.

그가 날 불렀고 오물거리면서 말할 수는 없기에 나는 케이크를 내려놓고 토마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니?”

두 번씩이나 케이크를 먹지 못한 나는 속으로 케이크를 한입에 먹는 상상을 하며 토마를 돌아봤다. 그는 작은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토마는 답답한 듯 소리쳤다.

“선물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토마가 내게 선물이라니. 나는 한 손에 가볍게 들어오는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고마워.”

상자를 받아든 나는 방긋 미소 지었다. 음, 여기서 열어보는 건 실례가 되겠지? 나는 상자를 바로 옆 화장대 위에 올려두었다.

볼 일을 마친 것인지 토마는 미련 없이 내 방에서 나가려 했고, 그 순간 쌍둥이가 그를 붙잡았다. 

“어디 가, 우리랑 놀아.”

“오빠, 앉아.”

그 둘의 모습에 렌은 작게 웃었고 자스민은 아무 말 없이 토마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토마를 올려다봤다.

가지 마, 라고 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렇게 토마까지 자연스럽게 앉았고 다시 다과회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수다를 떨며 차를 마셨고 나는 웃으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솔직히,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내게는 다 귀여워 보였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손짓하자 레나가 문을 열었고 크림슨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게 인사한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레몬이 소리를 질렀다.

“내 쿠키!!!!”

그녀의 목소리에 아이들 쪽을 돌아보자 그린이 볼을 부풀리고 쿠키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그린과 레몬은 다시 말싸움을 시작했다. 

문제는 평소라면 얌전할 토마와 렌도 한쪽을 편들며 싸움에 간섭했다는 것이었다. 

“레몬,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사과해.”

렌이 말했고 이에 질 새라 토마도 입을 열었다. 

“그린, 이번에는 네가 잘못했어. 레몬에게 사과하도록 해.”

둘의 말에 쌍둥이는 양 볼을 부풀렸다. 그렇게 네 남매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이 상황에서 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얘들아 조용히 좀….”

하지만 아이들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말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크림슨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며 멍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아이들을 말릴 수 있는 건 나뿐이었기에 고민하던 나는 유치원에서 쓰는 기술 중 내가 가장 애용했던 스킬을 꺼냈다.

“소라게가 됩시다. 소라게 쑥!”

내 말과 동시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원래는 책상 아래에 엎드리는 것과 동시에 조용히 하는 것이었으나, 그럭저럭 의미는 통한 듯했다. 

나는 얌전해진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아이들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의미는 알아들은 듯 얌전히 입을 다문 상태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은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소라게가 되자고 말하면 쑥! 이라고 외치고 조용히 하는 거야. 알았지?”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문 상태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은 나는 말했다. 

“자, 그러면 해 볼까? 소라게가 됩시다. 소라게 쑥!”

“쑥!”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합창했다. 토마를 제외하곤 말이다. 역시 초등학생에겐 조금 유치한 방법이었나. 내가 포기하려는 그 순간 자스민이 토마의 옷을 잡아당겼다.

“어빠, 쑥!”

그녀의 단호한 표정에 토마는 나지막이 외쳤다.

“……쑥….”

조용히 말하는 토마의 얼굴이 붉어졌고, 그 모습에 자스민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토마가 귀여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말을 이어나갔다.

“잘했어. 그리고 내가 소라게 끝! 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말하는 거야 알았지?”

내 말에 아이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이어 말했다.

“소라게 끝!”

내 말과 동시에 아이들은 입을 열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그 모습에 심장을 저격당한 나는 속으로 소라게를 알려주신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좋아 다들 착해. 잘했어요.”

시녀들과 집사 크림슨은 순식간에 아이들을 진정시킨 내가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이들을 말리는 건 마치, 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짱X를 말리는 것만큼 어려웠을 테니까.

그리고 난 서로를 뚱하게 바라보는 그린과 레몬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서로 손 잡고 화해하도록 해요.”

이렇게 화해시키는 건 딱히 좋지 않은 방법이긴 했으나, 한 번씩 서로의 간식을 뺏어 먹은 것이기에 지금은 둘 모두 잘못한 상황이었다.

마주 보게 된 둘은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두 아이 중 먼저 표정을 푼 것은 그린이었다. 그는 레몬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나도 미안해.”

두 아이는 손을 맞잡았고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은 다시 수다를 떨며 사이좋게 놀기 시작했고 아까보다 훨씬 작아진 목소리에 나는 크림슨을 돌아봤다. 

이제 아마 그와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단하십니다.”

크림슨의 말에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닌데,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한 반 평균 원생 수는 20명이 넘어갔다. 그에 비해 아이들 다섯 명을 조용히 만드는 정도는 내게 간단했다. 

“별거 아닌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거죠?”

그제야 떠올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크림슨은 입을 열었다. 

“공작님께서 이번 주말에 연회를 연다고 하십니다.”

…아, 가기 싫은데.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나는 아차 싶어, 바로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작님께 꼭 참여하겠다고 전해 주세요.”

내가 공작가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는 지금 연회를 여는 이유는 뻔했다. 아마도 나를 다른 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자리일 것이다.

내게 전달을 마친 크림슨은 방 밖으로 나갔고, 그가 나가자마자 나는 애써 짓고 있던 미소를 얼굴에서 지워버렸다.

귀찮네, 정말.

너무도 피곤한 날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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