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6)화 (16/207)

15. 아이들의 무도회

마담 리스는 약속한 날 공작가에 드레스를 배달해주었다. 그녀는 근 삼일간 잠을 자지 못한 것인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과거 시험 기간에 밤을 새우던 내 모습이 떠올라, 새로 온 파티쉐가 만든 케이크를 한 판 선물로 주었다.

밤을 새운 날에는 단 것이 최고지. 

돌아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마담 리스는 내 생각보다 프로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몸에 옷이 맞아야 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차 대신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를 대접했다.

완성된 옷들은 마담 리스의 조수들이 내 전용 응접실에 진열해 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쁘네. 고생 많았어.”

나는 진열 된 드레스와 연미복들을 보며 말했다. 마담 리스가 만든 것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받은 만큼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이틀 만에 핼쑥해져 있어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쯤 문이 열렸다. 첫 번째로 도착한 것은 레몬과 그린이었다. 

레몬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왔고 그 뒤로 그린이 들어왔다. 그린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레몬은 뛰어온 것인지 헉헉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반겨주는 드레스에 레몬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는 내게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드레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게 인사한 그린이 레몬을 툭툭 치며 인사하라고 눈치를 줬음에도 레몬은 여전히 드레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니, 레몬?”

그제야 날 돌아본 레몬의 두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거 혹시 제 드레스인가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레몬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너무 예뻐요. 어떡해!”

레몬은 드레스가 정말 마음에 드는 듯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감사해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까지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레몬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뿌듯해졌다. 그리고 그건 마담 리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녀도 뿌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으니까. 나는 속으로 마담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때 마담 리스의 조수들이 이동식 가림막을 가져왔다.

“입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입어 봐. 레몬.” 

망설이던 레몬은 내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 레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그린이 입을 열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레몬과는 다르게 어른스럽게 앉아있는 모습이 기특해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옷은 마음에 드니?”

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고 그런 그린이 귀여워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레스를 갈아입은 레몬이 밖으로 나왔다. 노란색의 드레스는 흰 진주와 노란색 장미로 장식되어 있어 레몬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마담 리스도 그 사실을 느낀 것인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레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몬은 수줍게 웃으며 물었다.

“어울려요?”

“응. 너무 예쁘다.”

내 대답에 레몬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연회에 입고 갈만한 드레스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그녀의 말에 내 표정이 굳어갔다. 

아니, 가문에 돈도 많으면서 애들 드레스 한 벌을 안 사줘? 악덕 학부형님이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눈치챈 듯 그린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연회에 참가할 일이 없으니까요. 레몬은 며칠 전에도 옷을 가득 사 이제 옷방에 자리도 없는걸요.” 

아, 뭐야 그런 거였구나. 이상한 오해를 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해졌다. 

그 뒤 그린은 레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것이라 타박했지만,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레몬은 그저 새 드레스를 선물 받아 기쁜 듯 그린의 말에도 실실 웃을 뿐이었다. 조금 진정이 된 레몬은 그린의 턱시도를 가져오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너도 어서 입어 봐.”

레몬의 말에 그린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레몬의 계속된 권유에 한숨을 내쉰 그는 겉옷을 벗고 턱시도를 대충 걸쳐 입었다.

“이 정도면 됐지?”

하지만 레몬은 굴하지 않았다.

“싫어. 다 입어야지. 그게 선물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 아냐?”

단호하게 대답한 그녀는 도와달라는 눈빛을 하며 날 돌아봤다. 갑자기 사이에 끼게 된 나는 간절하게 바라보는 쌍둥이를 바라봤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사이즈가 맞는 걸 확인했으니 다 입어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레몬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그때 덜컹,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자스민과 렌이 손을 맞잡고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네킹에 걸려있는 드레스를 목격한 자스민은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달려갔고 렌은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황녀님.”

“안녕, 렌.”

레몬도 그렇고 자스민도 그렇고, 나보다 드레스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어쩐지 드레스에 밀린 기분이 들었다. 

몰라, 애들이 좋다고 하면 그만이지 뭐. 

그 두 아이에 비해 렌은 드레스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드레스가 예쁘네요.”

레몬의 드레스를 본 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른스럽게 앉아 있었지만 렌의 볼도 평소보다 약간 밝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은 나는 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 것도 있어.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내가 렌의 드레스를 가리키려는 그 순간 레몬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마!!”

깜짝 놀란 나와 렌은 동시에 그녀를 돌아봤다. 

자스민이 옷을 벗으려 하고 있었고 레몬이 가까스로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그린은 차마 말리지 못한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마치지 못한 우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고 답답함을 느낀 레몬이 소리쳤다.

“언니, 보고만 있지 말고 와서 좀 말려봐!”

애원하듯 소리치는 레몬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렌은 그녀에게 달려가 자스민을 들어 올렸다. 언니들에게 저지당한 자스민은 울먹이며 드레스를 바라봤다.

“언니도 입었잖아, 나도 입어 볼래!!”

결국 자스민이 울음을 터트렸고 렌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렌에게서 자스민을 받아 안아 들었다. 그녀는 속상한 듯 내 목을 끌어안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를 달래주며 나는 렌을 바라봤다.

“자스민은 내가 달래줄 테니. 입어 보렴.”

조수들에게 손짓하자 그녀들은 렌을 데리고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렌은 자스민이 걱정되는 듯 끝까지 자스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들어가지 않으려 했으나, 그녀들의 손길에 밀려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자스민을 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방안을 돌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전생에서는 세 살 아이가 팬티만 입고 다닌다고 해도 뭐라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노출에 민감했고 심지어 자스민은 귀족이었다. 그러니 말리는 것이 당연했다.

많이 서러웠던 모양인지, 내 드레스 어깨 쪽은 이미 자스민의 눈물로 젖어 엉망이었다. 유치원 교사인 내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움을 일으키는 원생들을 달래는 것은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차일드 가의 아이들은 참 얌전한 편이었다. 지금처럼 싸우거나 시끄럽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었으니 말이다.

자스민이 울어서 속상하다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레몬과 그런 그녀를 달래는 그린을 보며 난 작게 웃었다.

착한 아이들이야.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잘했어, 레몬.”

내 말에 레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이 된 자스민은 울음을 그치고 코를 훌쩍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두… 드레스 입고 시퍼…….”

“그래도 아무 데서나 옷을 막 벗으면 안 되지. 자스민은 숙녀잖니?” 

내 말에 자스민은 끄덕였다. 이제 울음을 다 그친 그녀는 내려달라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를 내려주자 도도도 달려 레몬에게 달려갔다.

“언니 고마어.”

자스민의 말에 레몬은 작게 웃었다. 그때 드레스로 갈아입은 렌이 밖으로 나왔고 우리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했다.

확실히 렌이 예쁘긴 하구나. 

같은 느낌의 드레스지만 레몬이 예쁘다기보다 귀여운 느낌이 강했다면 렌은 성숙한 느낌까지 들어 정말 아름다웠다.

렌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고 나와 레몬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드레스를 갈아입고 온 자스민도 칭찬해 달라는 듯 뛰어오더니 우리의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그런 자스민의 행동이 귀여워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린은 자스민을 안아 올렸다.

“예쁘네 우리 동생.”

그의 품에 안겨 자스민은 환하게 웃었다. 

이제 토마만 입어보면 되는데, 해가 지고 있음에도 그는 오지 않고 있었다. 드레스가 도착했을 때는 그가 훈련 중일 시간이라 마치고 와달라고 전달하긴 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나는 토마가 왔다 생각해 문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방 안에 들어온 사람은 토마가 아닌 바리다스였다.

그는 아이들의 드레스를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놀던 아이들은 바리다스가 온 것을 보고 차례대로 그에게 인사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그는 내게 다가왔다. 그의 눈을 보면 아무런 잘못을 안 했는데도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취조당하는 범인들이 이런 기분일까.

“안녕하세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준비해줄 줄은 몰랐는데, 고맙군요. 황녀.”

바리다스는 아이들의 드레스를 훑어보았다. 그가 준비한 피오라의 드레스와 꽤나 비슷한 걸로 보아 일부러 그렇게 제작한 듯했다. 바리다스의 말에 나는 미소 지었다. 

제가 이렇게 일을 잘합니다, 채용하고 싶지 않으세요? 학부형님. 

“별거 아닌걸요.”

“드레스값은 공작가로 청구하면 돌려드리겠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름 날 배려해준 것 같았지만 그럼 애들한테 선물한 내 입장은 뭐가 돼. 

저 드레스는 내가 아이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내 돈으로 말이다. 나는 절대 그에게서 값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제 드레스, 공작가에서 만들어주셨으니, 쌤쌤으로 하죠.”

내가 봤을 땐, 아이들 드레스 다섯 벌 보다. 내 드레스 한 벌이 더 비싸. 내 말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쌤쌤?”

아, 여기는 이런 말이 없겠구나.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고민하던 나는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꺼냈다. 

설마, 이 단어도 없겠어?

“비긴 걸로 하자구요.”

그제야 무슨 의미인지 파악한 듯 바리다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요, 쌤쌤으로 합시다.”

그래도 말귀가 통하긴 하네. 만족스러운 대답에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떤 식으로 내게 보답할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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