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21)화 (21/207)

20. 작고 어린 생명체

날씨가 맑은 봄이었다.

피오라의 환영 연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다스는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 사용인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사실, 말이 휴가였지 대부분의 사용인을 자르고 새로 고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휴가였기에 그로 인해 공작가에는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사용인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렌과 자스민은 그 틈을 타, 저택 끝에 있는 작은 탑 아래에서 놀고 있었다.

저택과 숲의 경계선에 있는 그 작은 정원과 작은 탑은 꽤 아름다웠지만 아이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맹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렌은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는 호기심 가득한 자스민의 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정말로 맹수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기도 했고.

그렇게 둘은 정원에 있는 작은 대리석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렌이 책을 덮었다. 그녀의 품에 안겨 렌이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던 자스민이 렌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재미써!”

그녀의 말에 렌도 같이 미소 지었다. 렌의 품에서 벗어난 자스민은 쫑쫑거리며 걸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을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렌의 품에 안더니 그녀에게 책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이거 읽어조.”

렌은 그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아주 아주 먼 옛날에….”

자스민은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렌의 목소리는 잔잔했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자스민은 그녀가 읽어주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렌이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근처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잉…….”

그것은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듣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은 신음 소리였다. 렌이 읽어주는 동화책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자스민은 그녀의 목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후로도 계속 끼잉거리는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고 집중하기 힘들어진 자스민은 렌의 말을 끊었다.

“언니야 이상한 소리 안 들려?”

이상한 소리? 자스민의 말에 렌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말대로 작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픈 것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 소리에 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스민, 넌 여기 있어.”

그녀는 책을 덮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구석진 곳이라 그런지 길게 자란 잔디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렌이 떨리는 손으로 잔디를 넘기자 상처 입은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 상처를 핥아주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 둘은 렌과 눈이 마주쳤고 그들 중 한 마리가 절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경계하는 듯 털을 새우고 크르릉 거리며 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렌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강아지들을 바라봤다.

그녀는 책에서 본 적 있었다. 저건 아마도 강아지, 또는 개라고 불리는 짐승이었다. 실물로는 처음 보지만 책에서 많이 봐왔기에 알 수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자스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니야 나 혼자 있기 싫어….”

무서운 듯 렌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자스민은 그녀의 앞에서 끼잉거리고 있는 작은 강아지들을 보고 순간 얼어붙었다. 

자스민은 평생을 공작가 안에서만 살아온 데다가 책에서도 강아지를 본 적 없었기에 강아지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눈에 봐도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에 자스민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그 둘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렌에 의해 저지당했다.

“자리에 있으라고 했잖아. 그리고 더 이상 다가가지 마. 물 수도 있어.”

렌의 말에 자스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렌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때였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던 강아지가 쓰러진 것은 쓰러진 강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헥헥대기 시작했다.

“먕……”

작게 울부짖으며 뒤에 있던 강아지가 일어나 쓰러진 강아지를 핥아주기 시작했다.

쓰러진 강아지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숨을 몰아쉬더니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렌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히 처음 보는 강아지들이 무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무시할 수 없었다.

천천히, 그녀는 쓰러진 강아지를 껴안았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지 다른 강아지가 그녀의 손을 깨물었다. 작지만 날카로운 송곳니가 렌의 여린 손을 물었고 결국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입술을 짓씹었다. 그런 와중에도 렌은 강아지를 껴안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강아지 둘을 모두 품에 안았다. 

조금 상태가 나아 보이는 한 마리는 계속 렌의 손을 할퀴고 깨물었지만 렌은 그 둘을 절대 놓지 않았다.

두 강아지를 품에 안은 렌은 저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도 저택에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멀어.

렌은 표정을 구겼다. 손은 계속 따끔거렸고 뛰어가기에는 자신의 체력이 너무 약했다. 손을 내려다보자 피가 엄청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렌의 뒤를 따라오던 자스민이 넘어지고 말았다.

콰당, 그녀가 넘어지는 소리에 렌은 뒤를 돌아봤지만, 양팔에 강아지를 껴안은 렌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줄 수 없었다.

넘어질 때 다친 것인지 자스민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렌은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녀님?”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렌은 지금 누구의 도움이든 필요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초록 눈의 소년이 두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오라의 전속 기사인, 칠드런이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자스민을 일으켜 세워주며 렌과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강아지들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무언가 죄를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손이 떨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쉰 칠드런은 렌의 품에서 강아지를 빼앗아 한 팔로 두 마리를 한 번에 껴안았다.

한 마리가 칠드런의 손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반대 손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렌의 손을 잡아 손수건을 둘러 줄 뿐이었다.

남은 손이 하나뿐이라 묶어 줄 수는 없지만, 임시방편은 될 것이었다.

“지혈하시죠, 피가 많이 납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반대 팔로 울먹이는 자스민을 안았다. 그리고 그는 그 상태로 저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칠드런의 걸음이 빠르긴 했지만 못 따라갈 정도도 아니었기에 렌은 그의 손수건으로 상처를 누르며 뒤를 쫓았다.

젠장.

칠드런은 이를 갈았다.

저택과 꽤나 가까워졌음에도 사용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로 완전히 물들어 버린 자신의 손수건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소독이 우선이었다. 그는 개한테 물려 병에 걸린 사람을 많이 봐왔다. 칠드런은 피오라의 전속 기사였고, 그 덕에 저택 안에 따로 배정받은 방이 있었다.

그의 직업상 많이 다치기에 소독약과 붕대 정도는 항상 구비해 두고 있었다. 나중에 제대로 치료받아야 하겠지만, 일단은 소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저택의 입구와 가장 가까운 응접실로 향했다. 렌과 자스민이 소파에 앉은 것을 확인한 그는 강아지들을 내려놓았다.

둘 모두 오면서 많이 지친 것인지 바닥에 내려놓자 끼잉거리며 상처를 핥을 뿐이었다.

“기다리고 계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칠드런이 붕대와 흰색 병을 가지고 나타났다. 렌의 손을 묶고 있던 손수건을 풀자 물린 자국이 가득한 렌의 손이 드러났다. 

상처를 본 칠드런은 망설이다 소독약을 그녀의 양손에 들이부었다.

* * *

막 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저택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내려왔더니  렌의 손은 다쳐서 피가 흐르고 있고 자스민은 울먹이고 있으며 옆에는 처음 보는 강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저 강아지들은 또 어디서 데려온 거야? 그리고 저 소독법은 뭔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천천히 소독해도 아플 텐데 저걸 저렇게 한 번에 부어버리다니. 내 예상대로 렌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칠드런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개의치 않고 그녀의 손에 약을 바르려고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칠드런을 불러 세웠다.

“칠. 그만.”

내가 온 것을 그제야 안 것인지 아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나는 렌에게 다가가 칠드런이 가져온 솜으로 그녀의 손을 닦아 주었다.

짐승의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강아지들이 다친 것으로 보아 치료해주려고 무리해서 데려온 것이겠지.

그때 렌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확인한 칠드런이 입을 열었다.

“아프셨나요?”

렌은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아파 보였지만 말이다. 그녀의 모습에 자스민도 울먹이며 렌을 껴안았다.

“온니… 울디마.”

칠드런은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역시 아직 다 애들이라니까. 그래도 칠드런이 아니었다면 렌의 손이 더 다쳤겠네.

나는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물린 자국이 드러난 칠드런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나중에 먹을 걸로 혼쭐내주마.

렌의 치료를 마친 나는 바로 앞 소파에 누워 헥헥대고 있는 강아지들에게 다가갔다.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여 있는 이제 막 이가 나기 시작한 것 같은 새끼 강아지들이었다.

시베리안 허스키인가?

그렇다면 원작에서 나오는 그 강아지들일 확률이 높았다.

원작에서 아이들이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고 나와 있었다. 그 강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길렀다고 적혀 있었는데 썰매견인 시베리안 허스키가 공작가 숲에서 발견된 이유는 바리다스와 연관이 있었다. 그 강아지들의 어미견이 바리다스가 예전에 잃어버린 개였기 때문이었다. 

바리다스는 몇 년 전 어린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를 숲에서 데려왔다. 그들 중 한 마리가 죽게 되자 남은 한 마리가 숲으로 도망쳤는데 숲으로 사라진 쪽이 암컷이었고 그녀가 낳은 강아지가 바로 아이들이 주워 온 강아지였다.

이걸 계기로 바리다스와 아이들이 조금 더 친해지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한 마리를 키우는 걸로 나오는데, 왜 두 마리일까? 

난 강아지들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들 중 한 마리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아이의 위에 손을 올려 보자 이미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아지 중 한 마리가 죽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한 마리의 강아지만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동물병원이 있다는 보장도 최소한 강아지를 치료해줄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황녀님 강아지들 죽어요? 죽는 거예요?”

내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렌이 내게 물었다. 상처와 고통 속에도 울지 않았던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공아지들 주거…?”

렌의 말을 들은 자스민의 두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 그나마 정신을 붙잡고 헐떡이고 있던 남은 한 마리조차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니 안 죽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원작의 훼손과 하나의 생명의 무게를 잴 필요도 없었다. 

분명 살릴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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