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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24)화 (24/207)

23. 작고 어린 생명체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바리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를 올려다보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요, 피오라.”

그가 날 ‘피오라’라고 부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상 원작에서의 그는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뭐, 그건 피오라가 악역이니 그런 거였겠지.

나는 겨우 이름을 부른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에요.”

바리다스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르자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어제보다 그의 표정이 편안해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묻어 준 곳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마차는 금세 저택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먼저 내린 바리다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바리다스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의 손을 놓으려는 순간, 바리다스가 허리를 굽혔다. 그와 내 거리가 순간적으로 좁혀졌다.

“잘 가요.”

바리다스가 내 귀에 속삭였다. 맞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을 한 번 주고는 놓아주었다.

그의 얼굴이 내게서 멀어졌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요. 남주님? 상당히 예의 없으시네요. 결혼해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사람을 꼬셔.

아니 나랑 결혼할 거구나. 이런 예의 바른 사람 같으니라고.

그렇게 내가 바리다스의 얼굴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시녀가 내게 커다란 바구니를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바구니를 열어보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어딘가 토라진 듯한 칠드런이 서 있었다.

“절 버려두고 잘 지내셨나 봅니다.”

그 말에 나는 어제 칠드런을 늑대바위에 두고 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칠드런이 건네준 옷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하루 동안 방치한 데다 빌려준 옷까지 잃어버리다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옷이랑 다 새 걸로 사줄게, 미안. 칠드런.”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은 칠드런이 내 손에 들린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농담입니다. 괜찮아요.”

그때 칠드런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 씌워진 천이 꿈틀거리더니 강아지의 머리가 불쑥 튀어 올랐다.

“뭉!”

다 나은 것인지 한 마리가 바구니에서 뛰어 내리더니 내게로 달려들어 머리를 비볐다. 

그 강아지를 안아 주자 내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그때 내 품에서 뛰어내린 강아지가 칠드런에게 다가갔고 그는 기겁하며 강아지에게서 도망쳤다.

설마, 칠드런 얘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거야?

“혹시, 강아지가 무서워?”

내 질문에 칠드런은 수치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털이 날리는….”

하지만 칠드런은 말을 더 이어나가지 못했다. 잠들어 있던 강아지도 바구니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악!!”

칠드런은 기겁하며 강아지에게서 도망쳤고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나는 칠드런에게 달려가는 강아지를 잡아들었다.

앞으로 같이 지내야 할 텐데, 괜찮으려나.

그가 걱정이 되었다.

“괜찮겠어?”

내 질문에 칠드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행동에 비해 그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용케 바구니는 잘 들고 있었네.”

내 말에 칠드런은 다리에 달라붙는 강아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다리를 들며 소리쳤다.

“자고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음, 진짜 싫어하네. 이를 어쩌지.

나는 칠드런의 다리를 붙잡고 멍멍거리는 강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를 칠드런이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 황녀님! 얘 좀 데려가 주세요!!”

내가 그에게서 강아지를 안아 들자 칠드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양손에 강아지들을 다시 바구니 안에 넣었다.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지친 것인지 강아지들은 순식간에 잠들었다. 하지만 칠드런은 바구니를 계속해서 경계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나는 바구니를 들고 렌의 방으로 들어갔다.

렌에게 가장 먼저 아이들을 인사시켜 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다섯 명 모두 렌의 방에 모여 있었다.

내가 그녀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한 번에 내게 달려왔다. 

토마와 렌은 내게 인사했고 자스민은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린과 레몬은 내 바구니에 든 것이 궁금한 것인지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린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질문을 내뱉기 시작했다.

“어제 왜 안 오신 거예요?”

“이 바구니는 뭐예요?”

“보고 싶었어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해 줄 수 없었던 나는 마법의 주문을 꺼내 들었다.

“소라게가 됩시다, 쑥!”

“쑥!”

내 말에 아이들과 모두가 조용해졌고, 그 모습에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진정된 아이들을 의자에 앉힌 뒤 나는 테이블에 바구니를 올려놨다.

강아지들이 잠에서 깬 것인지 천이 씌워진 바구니가 꿈틀거렸고 그 모습에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새로운 가족을 소개할게.”

내가 바구니를 감싼 천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방금 잠에서 깬 것인지 한 마리는 하품을 했고 남은 한 마리는 두 눈을 깜빡였다.

“멍!”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나에게 뛰어와 품에 안겼고, 남은 한 마리도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내게 달려와 팔을 붙잡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자스민과 렌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강아지들을 바라봤다. 두 아이 모두 상처를 잘 치료한 것인지 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행이다.”

렌이 작게 중얼거렸고 강아지들을 지켜보던 그린과 레몬이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강아지들인가요? 귀엽네요.”

“황녀님은 우리 건데.”

쌍둥이치고는 너무 다른 반응이었다.

그린은 강아지에게서 시선을 못 떼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레몬은 강아지와 날 사이에 두고 하악거리며 기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한 팔로는 강아지를 다른 팔로는 그린과 레몬을 안았다.

“사이좋게 지내야지.”

강아지들도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꼬리를 내리고 레몬과 그린에게 다가가 한 마리씩 그들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들의 품에 파고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촉에 두 아이의 뺨이 붉어졌다.

“따뜻해….”

“황녀님, 얘들은 뭐라고 불러야 해요?”

볼을 붉게 물들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강아지들을 양팔에 안은 뒤 입을 열었다.

“오늘 그걸 의논할 거야. 저 강아지들은 앞으로 너희들의 친구가 되어 줄 거니까.”

내 말에 강아지들을 바라보던 렌과 자스민의 표정이 환해졌다. 

“공아지들 우리 칭구야?”

“정말로 저희가 키워도 되는 건가요?”

뭐 바리다스가 허락했으니까, 그런 거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아이는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렌을 알아보는 것인지 그녀의 손을 문 강아지가 내 품에서 뛰쳐 내려 그녀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붕대를 감은 손에 머리를 비볐다.

“괜찮아. 다 나았어.”

렌이 손을 쥐었다 펴며 괜찮다는 듯이 말하자 강아지는 그녀의 얼굴을 핥으며 마치 대답하는 것처럼 멍! 하며 짖었다.

아이들은 강아지들을 딱히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의 품에서 강아지들을 데려와 다시 바구니에 올려놓았다.

“너희가 저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 줬으면 좋겠어.”

내 말에 아이들 다섯의 표정이 일제히 밝아졌다.

“네!!!!!!!”

동시에 대답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또 경쾌했다. 

원작에서 나온 강아지의 이름은 쿠키였다. 내가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 지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아이들이 지어 주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았다.

저 강아지들이 아이들의 새 친구가 될 것이니까.

“나는 쿠키랑 키키로 했으면 좋겠어!”

레몬이 말했다. 

원작에서 강아지의 이름을 지어 준 것이 레몬이구나. 그녀를 닮은 귀여운 이름에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귀엽다! 난 좋아.”

그린이 말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쿠키라는 이름에 찬성하는 듯했다. 

그렇게 강아지들의 이름이 쿠키와 키키로 결정이 나려는 그 순간 렌이 입을 열었다. 

“저는 리리랑 라라로 하고 싶어요.”

“리리랑 라라?”

“리리와 라라는 황녀님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울컥해 입을 틀어막았다. 날 저렇게까지 생각해준다는 것이 고맙고 또 뿌듯했다.

“난 좋다고 생각해.”

토마가 말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마음에 들어!”

“나도 죠아!”

렌과 자스민이 대답했고 그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이들이 기특하고 또 고마워서 나는 아이들을 꼬옥 껴안아 줬다.

* * *

똑 닮은 두 강아지는 아주 조금 크기가 달랐다. 더 큰 쪽이 수컷이었고 작은 쪽이 암컷이었다. 그들 중 수컷의 이름이 리리, 암컷의 이름이 라라로 결정이 났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강아지들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강아지들이 생긴 저택에는 더 활기가 넘쳤고 아이들은 매일 정원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뛰어놀았다. 

그리고 나와 바리다스의 사이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그와 가끔씩 강아지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바리다스가 데려간 강아지는 수컷이었고 이름은 루이라고 했다. 루이도 바리다스와 다니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 다른 강아지들과 놀며 보냈다. 바리다스도 매일 루이를 데리러 오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조금은 낯설어 보이는 이 변화가 나는 만족스러웠다.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뛰노는 모습을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때, 레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황녀님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세 개의 상자를 들고 있었다. 

선물이라 뭐지? 저런 걸 줄 사람이 없는데.

“누가 보낸 거지?.”

나는 선물 상자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거나 대충 잡아든 내가 상자를 묶고 있는 리본을 풀자 가죽으로 된 목줄이 나왔다. 한가운데 푸른 보석이 달린 모양이었다.

손을 가져다 대자 주위에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루이 거까지, 세 개인가?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나머지 두 개의 상자를 모두 열었다. 나머지 한 상자에서는 예상대로 목줄이 나왔지만 다른 하나에서는 조금 다른 것이 나왔다.

뭐지 이게.

나는 내 손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내려다봤다.

설마, 이것도 강아지 목걸이야?

절대 그럴 리는 없어 보였다.

실수로 잘못 보낸 건가. 

바리다스가 내게 목걸이를 보낼 리 없다고 생각하던 나는 상자에서 떨어진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약한 마정석이니 너무 차갑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 일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뭐야, 진짜 나한테 준 거였네.

그가 선물해준 목걸이를 목에 걸자 조금은 차가운 보석이 목에 닿았다. 동시에 부드럽고 시원한 기운이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목걸이 속의 푸른색 보석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예쁘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올랐지만 목걸이 주위에 맴도는 차가운 기운 때문에 주변 아무도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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