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첫 번째 약혼식
약혼식장의 준비가 끝난 다음 날, 아이들은 피오라 몰래 피터의 조리실에 도착했다.
렌과 그린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도착했고, 오늘 그들을 도와줄 피터와 그의 조수 테피트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뒤이어 레몬과 토마도 도착했다. 칠드런은 또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 있었고 말이다.
자스민을 제외한 저택의 모든 아이들이 피터의 조리실에 모여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그린이 입을 열었다.
“일단 케이크 시트부터 만들자.”
그의 말에 레몬이 덧붙였다.
“그리고 쿠키랑… 음, 주스도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 뒤 레몬은 스케치북을 펴 주스 그림을 추가했다. 그 모습을 보며 피터와 테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말이 아이들이 만드는 것이지 대부분의 일은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이미 말을 맞춘 뒤였다. 케이크와 쿠키를 꾸미는 것, 그리고 반죽 정도만 아이들을 시키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하자고 말이다.
그들은 미리 계량을 끝내놓은 재료들을 꺼냈다. 어제 미리 준비를 해둔 뒤였다. 저것들을 믹싱볼에 우유와 계란만 넣고 섞으면 맛있는 반죽이 된다.
쿠키 반죽과 생크림도 마찬가지로 완벽했고 아이들이 칼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으니 과일도 그들이 다 잘라 두었다. 거기에 쿠키를 장식할 아이싱과 초콜릿까지 미리 준비해두었다.
피터와 테피트는 거의 밤을 새우며 준비한 재료들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렌은 레몬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준 뒤, 자신의 머리도 묶었다. 긴 머리가 찰랑이며 하나가 되어갔다.
처음 보는 렌의 묶음 머리에 눈을 반짝인 레몬은 말했다.
“언니 그 머리 잘 어울려!”
“고마워.”
레몬의 말에 렌은 쑥스러운 듯 살짝 웃었다.
그때 항상 렌의 옆에 붙어 있는 자스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린이 입을 열었다.
“누나, 자스민은?”
어젯밤 렌의 만류에도 밤늦게까지 동화책을 읽은 자스민은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를 깨우지 못한 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푹 자더라, 그래서 못 깨웠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우리끼리 시작하자.”
토마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모여 조리대에 자리를 잡았다.
피터의 지시 아래에 아이들은 케이크 반죽을 섞었다. 피터의 잠과 피가 담긴 케이크 반죽은 아이들의 손에 의해 섞인 뒤 케이크 틀에 넣어졌다.
케이크 시트를 오븐에 넣은 아이들은 쿠키를 반죽하기 시작했다. 역시 피터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쿠키 틀로 쿠키를 찍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다.
피터는 반죽을 많이 만들어 두자고 한 테피트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렇게 쿠키는 무려 5판이 넘게 만들어졌다.
쿠키가 다 만들어질 때쯤 케이크가 모두 구워졌다. 피터가 오븐에서 케이크를 꺼내자 달콤한 케이크 냄새가 부엌에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고 피터는 만족한 듯 웃으며 케이크를 잘랐다.
그 위에 아이들은 생크림과 과일 조각을 올렸고 크림슨이 겉면을 정리해주었다.
크림슨은 아이들의 팔을 잡아주며 짤주머니를 이용해 크림을 짜는 것을 도왔고 그 위에 과일까지 장식하자 꽤 그럴듯한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예쁘다!”
완성된 케이크를 본 레몬이 소리쳤고 그들은 케이크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쿠키가 구워지기까지 시간이 남아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번 계획에 하이라이트는 바로 쿠키였다.
그들은 쿠키로 공작가의 저택을 만들 생각이었다.
물론 그 쿠키 틀을 구상한 것은 피터였다. 피터의 다크서클이 한층 더 짙어 보였다.
어느새 쿠키가 다 구워졌고 피터는 쿠키를 고정하기 위해 녹인 초콜릿을 지지대에 발라 쿠키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예쁜 쿠키 저택이 모습이 드러냈다.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나온 모양의 쿠키에 피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꾸미시면 됩니다.”
피터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아이싱과 초콜릿을 사용에 쿠키를 꾸미기 시작했다.
작은 네 쌍의 손이 모이자 쿠키로 만든 약혼식장은 순식간에 꾸며졌다.
쿠키를 다 꾸민 아이들은 구워진 진저맨을 가져왔다. 아이들은 그 위에 피오라와 자신들, 그리고 바리다스의 모습을 담았다. 눈과 머리카락의 색을 입힌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리리와 라라의 모양을 한 쿠키까지 완성한 아이들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약혼식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었다.
* * *
그 시각 자스민은 뒤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우음….”
자스민은 침대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라면 공부를 하고 있을 렌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자스민은 그제야 자신이 늦잠을 잤다는 것을 떠올리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흐앙….”
그녀는 방문을 벌컥 열고 조리실로 뛰어갔다. 방문을 닫는 것도 잊은 채.
문제는 자스민이 문을 여는 소리에 리리와 라라가 깨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멍?”
“멍!”
두 강아지는 앞서나가는 자스민의 뒤를 쫓아갔다.
어린아이가 개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자스민은 강아지들에게 따라 잡혔지만, 그녀는 울먹이느라 두 강아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자스민이 조리실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뒤였다.
자스민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뒤로 리리와 라라가 부엌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은 렌이 들고 있는 케이크로 향했고 그대로 달려갔다. 이대로라면 케이크가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렌은 케이크를 들고 있어 피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그 순간, 식탁 위를 뛰어 달려오던 강아지들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칠드런이 라라의 허리와 리리의 배를 잡고 있었다.
“이… 똥강아지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그는 덜덜 떨면서도 강아지들을 놓지 않았다.
레몬과 그린이 빠르게 그에게서 리리와 라라를 받아 한 마리씩 안아 들었다.
“끼잉…”
두 마리의 강아지는 기가 죽어 별 반항 없이 레몬과 그린에게 안겨 부엌 밖으로 나갔다.
칠드런은 두 강아지를 잡았던 손을 노려봤다. 양손에 털이 잔뜩 붙어 있었다.
작은 괴물들의 털만 봐도 오싹해진 그는 털이 잔뜩 묻은 옷과 손을 털기 위해 부엌 밖으로 나갔다.
“윽…”
칠드런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개털을 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 짜증나는데, 뭐가 좋다고 키우는지.
칠드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요. 덕분에 케이크가 망가지지 않았어요.”
누군가 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칠드런은 고개를 들고 손수건을 내민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렌이었다. 칠드런의 표정이 알게 모르게 누그러졌다.
“다행이네요.”
칠드런이 털을 거의 다 털어냈을 때쯤 리리와 라라의 사료를 챙겨주고 온 레몬과 그린이 렌을 발견했다.
“언니, 이제 가자.”
“누나, 같이 가.”
두 아이는 렌과 같이 있는 칠드런을 한껏 경계하며 렌을 잡아당겼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칠드런은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칠, 뭐 하고 있어?”
피오라였다, 간발의 차이로 아이들이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칠드런은 피오라의 시선을 돌릴 핑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칠드런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리리와 라라의 털이 들어왔다.
그래도 도움이 되긴 하는구나.
“강아지들이 방에서 탈출해버려서 아가씨와 도련님들을 도와 돌려보냈습니다.”
그의 말에 피오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칠드런이?
하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나 단호해 보여 피오라는 납득하고 말았다.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칠드런이 피오라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며 시간을 끌고 있던 그때, 칠드런의 눈에 바리다스를 끌고 가는 쌍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준비를 마친 모양이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피오라를 찾고 있던 것인지, 토마와 렌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그들은 피오라의 팔을 붙잡더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할 일은 다 한 건가, 검이라도 좀 더 휘둘러야겠다.
칠드런은 시선을 돌려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 칠드런의 옷을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자 주황 머리의 소녀가 헉헉거리며 칠드런의 옷을 붙잡고 있었다. 렌이었다.
“아가씨?”
칠드런의 질문에 숨을 고르며 한참을 헉헉거리던 렌은 입을 열었다.
“같…이… 가요…”
열심히 쫓아온 것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렌이 말했다.
렌은 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칠드런은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든지 렌은 그가 모시는 아가씨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고생해서 자신을 데리러 왔기 때문에 가는 것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렌에게 등을 내밀었다.
“힘들어 보이십니다.”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한숨을 내쉰 칠드런은 렌의 다리와 등에 팔을 밀어 넣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렌의 몸이 붕 떠올랐고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렌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힘들긴 했다. 확실히 힘들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런 민폐를 끼치다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확실히 그에게 안기니까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더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렌의 얼굴이 계속해서 붉어졌다.
귀엽네.
그 모습에 칠드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어린 동생을 대하는 감정이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칠드런은 스스로를 세뇌했다.
칠드런이 렌을 든 상태로 아이들이 준비한 약혼식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누군가가 칠드런을 붙잡았다.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바리다스였다.
칠드런에게서 렌을 받아 자연스럽게 안아 든 바리다스는 반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도 약하면서 어딘가로 갑자기 뛰어가는 렌이 걱정되어서 왔더니, 이런 상황이 되어 있었다.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바리다스는 칠드런을 내려다봤다.
아직은 제 동생에게 연애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이제 곧 성인이 되는 놈에게 보내기에는 렌이 너무 어렸고 말이다.
물론, 이제 17살인 칠드런이 성인이 되기까지에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리다스에게는 그 3년이 너무나도 짧은 시간으로 보였다.
못 해준 것도 많고 해 줄 것도 많은데, 벌써부터 연애라니 안 될 말이었다.
바리다스의 눈빛에 담긴 살기를 느낀 칠드런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작님,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렌이 자신의 품을 떠날 때,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억울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저는 어린 애한테 관심이 없습니다.
없다고요, 진짜로요.
두 남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렌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