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51)화 (51/207)

50. 외출

“진짜 나가도 되는 거예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몬이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너희랑 나가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황실 기사단과 차일드 가의 기사들 전원, 거기에 바리다스까지 동행한다는 조건으로 황실에 겨우 허락 받았단 말이야.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있을 공원과 거리에는 기사단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문제 생기는 게 더 이상하지.

완벽한 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안과 리리안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양 볼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이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출발하죠.”

아이들 모두 마차에 탄 것을 확인한 나는 마지막으로 마차에 타며 말했다. 

마차 문이 닫히자마자, 자스민은 울먹이며 내 팔을 끌어안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외출을 한다는 말에, 따라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서운 모양이었다.

“…형수밈…. 나랑 떠러지면 안 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자스민의 손을 잡아주었다.

“기사단이랑, 공작님이 계시는데 뭐가 무섭다고 그래.”

그때 리리안이 입을 열었고 그린과 레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큰오빠가 젤 쎄.”

“너무 무서워하지 마, 자스민.”

리리안과 쌍둥이 그리고 자스민은 잠깐 사이에 꽤 친해진 것 같았다.

넷은 저택에서도 하루 종일 붙어 다녔고 리리안과 레몬은 한 침대에서 잠을 잘 정도로 친해진 것 같았다.

“역시 메큐리 단장님이 제일 잘생겼어.”

“아니, 그레이 기사단장이 최고인 거 같아.”

“우리 기사단장 서로 바꿀래?”

“나쁘지 않아.”

호위하는 기사들을 보며 나누는 대화는 조금 어지러웠지만 말이다.

그린의 생각도 같았는지, 그는 표정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헛소리는 둘이 있을 때만 하지?”

하지만 그 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허, 누나.”

“누님이라고 해야지, 그린.”

레몬이 입을 열었고 리리안이 맞받아쳤다.

통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두 소녀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그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스민, 너는 저런 거 배우면 안 돼.”

“웅, 나는 오빠가 조하.”

그녀의 말에 아직 자스민이 물들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린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자스민의 뒷말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연하보단, 연상이 좋다는 걸 알아 버려써.”

그녀의 말을 들은 레몬과 리리안은 연하가 최고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나와 그린은 이마를 짚었다.

대체, 레몬과 리리안은 무슨 얘기를 하고 놀길래 자스민이 저런 걸 배운 거지.

“남편은… 큰 어빠 가튼 사람으로…!”

비장하게 말하는 자스민을 보며, 나는 레몬과 리리안을 자스민에게서 떼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말이다.

* * *

그 시각 바리다스와 토마, 렌 그리고 레이안이 탄 마차는 소름 끼치도록 조용했다.

바리다스와 렌은 똑 닮은 분위기를 풍기며 입을 열지 않았고 토마는 익숙한 듯 조용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직 레이안 만이 이 냉랭한 분위기를 못 견뎌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리리안이 이토록 그리웠던 적이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레이안의 목이 점점 타들어 갔다.

“레이, 저기 봐.”

그때 토마가 입을 열었고 레이안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어린아이들이 공터에서 목검을 휘두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한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집 가서, 대련 더 할래?”

“그래.”

사이좋아 보이는 둘의 모습을 보며, 렌은 생각했다.

뭐가 저리 좋다고 웃는지.

그녀에게도 친구라 부를 만한 존재가 없었는데, 렌은 친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 졌다.

“오라버니는 친구 있어요?”

갑작스러운 렌의 질문에 바리다스는 ‘없다,’ 라고 대답하다 멈추었다.

그도 그린처럼 친구는 딱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없다고 말하면 아이들의 정서에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피오라가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고 리리안과 레이안을 데려온 것인데, 여기서 자신이 친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리다스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 순간, 레이안이 입을 열었다.

“공작님은 아버지와 친하시지.”

레이안으로써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그의 도움에 바리다스는 처음으로 레이안에게 호감을 느꼈다.

황제와 친구라는 말에 렌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그래서 두 분이 방문할 수 있던 거군요.”

리리안과 레이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렌이 둘과 친해지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리리안, 레이안과 그들이 정략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평민이긴 하나, 그래도 그들이 차일드 가의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정략혼도, 그리고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도 말이다.

그녀는 아직, 피오라가 오기 전 자신들을 대하던 귀족들과 사용인들의 태도를 잊지 못했다.

평민이었지만, 어머니는 명백한 공작가의 안주인이었고 아버지는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해 줄 어른들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녀님과 공자님에서 평민의 자식, 반푼이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렌은 생각하곤 했다.

만약, 피오라가 자신들을 싫어했다면.

여전히 오라버니가 자신들에게 무관심했다면.

그랬다면, 아직도 그런 취급을 받고 지냈겠지.

반년이 좀 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날의 기억들은 이미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에게 친하게 지내길 강요하는 건 아니니,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이어진 바리다스의 말에 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 *

마차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대와 시계탑 앞에 멈추었다.

분수대는 황궁이나 공작가에도 있었지만, 밖에 나오는 것이 처음인 아이들은 모든 게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상실 가고 싶어!!”

“비둘기 잡아도 괜찮아요?”

“나, 조기 올라가 볼래!”

“평민들도 생각보다 잘생겼네.”

한 명만 있어도 시끄러운 아이들이 네 명이나 있으니까 네 배로 시끄러웠다.

나는 얌전한 렌과 토마, 그린을 바라보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너희까지 말썽을 부렸다면…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 나는 이마를 짚었다.

“다들 소라게 쏙!”

내 말에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졌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둘씩 손을 잡으라 하자, 레이안과 리리안은 서로 죽어도 손을 잡고 싶지 않아 했다.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나눠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자스민이 토마의 손을 붙잡았다.

“오빠는 나랑 짝!”

그리고 리리안도 레몬의 손을 잡았다.

“우린 잘생긴 사람 보러 갈래.”

그들의 모습에 렌도 자연스럽게 그린의 손을 잡았고 말이다.

그렇게 토마와 자스민, 레몬과 리리안, 그린과 렌이 짝이 되었고 레이안이 혼자 남게 되었다.

혹시나 레이안이 소외감이 들까 싶어. 내가 레이안에게 손을 내민 그 순간, 바리다스가 레이안의 손을 잡았다. 

“황태자 전하는 나와 가도록 하지.”

바리다스가 있다면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두 줄로 서서 우리를 따라오며 주변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런 아이들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더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고 말이다.

그렇게 시내를 한 바퀴 돌고 근처 벤치에 앉은 나는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거나, 보고 싶은 거 있니?”

내 말에 레몬은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의상실, 진짜로 가고 싶어!”

그리고 렌도 입을 열었다.

“저는 서점이랑 악기점에 가보고 싶어요.”

렌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해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딱히 원하는 것이 없어 보였고 말이다.

어차피 보호자도 둘이니, 찢어져서 서점과 의상실을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자스민이 입을 열었다.

“나는 까까 머글래.”

디저트를 먹으러 가고 싶다는 의미였다.

으음, 그러면 어떤 순서로 가야 하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렌이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으니, 기사분이랑 다녀와도 될까요.”

솔직히 믿음직한 기사들이랑 보내도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그때 내 눈에 칠드런이 들어왔다.

내 가디언을 잠시 쉬겠다고 한 칠드런이지만, 오늘은 기사단 소속 전원이 호위를 맡아야 했기에 그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한 것이었다.

칠드런이라면 같이 보내도 되지 않을까.

지난번 나와 시내를 갔을 때도 길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또 렌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을 테니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칠드런이랑 다녀오렴.”

내 말에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피오라에게 허락을 구한 렌은 그린을 돌아보았다.

“그린은 안 갈래?”

레몬이랑 자스민은 안 갈 것이 분명했고 그린은 렌 못지않게 책을 좋아했다.

그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됐어.”

그렇게 렌과 칠드런을 제외한 모두가 의상실로 향하려는 순간, 레이안과 토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드레스를 고르는 일은 매우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둘 모두, 렌과 리리안의 뭐가 더 예뻐? 라는 말에 시달린 전적이 있었다.

서로 생각이 통했다는 것을 깨달은 토마는 주위를 둘러봤다.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대장간이 들어왔다.

저건, 의상실에서 도망치는 것과 별개로 구경하고 싶었다.

레이안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대장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저희는 대장간 구경하고 싶은데, 형님이랑 다녀와도 될까요?”

두 소년의 말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바리다스와 함께 간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려는 그 순간, 그린이 입을 열었다.

“저도 대장간으로 가겠습니다.”

그린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의상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바리다스와 두 소년 쪽으로 그린이 가려는 순간, 그의 왼팔을 리리안이 오른팔을 레몬이 붙잡았다.

“뭐래, 너는 못 가.”

“그린, 너는 검에 관심도 없잖아.”

그런 두 소녀의 팔을 뿌리치며 그린은 소리쳤다.

“아니, 검이 펜 이기더라. 나도 갈래.”

그때 자스민이 그린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행동에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본 그린은 망울망울한 자스민의 눈을 보고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어빠두 갈 거야…?”

가지 말라는 듯 붙잡는 자스민을 두고 그린은 갈 수 없었다.

그린의 패배였다.

그는 자신을 두고 떠나는 세 남자를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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