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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54)화 (54/207)

53. 나중에 또 봐!

시간은 빠르게 흘러 가을이 되었다. 푸르렀던 이파리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어느덧 리리안과 레이안도 황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황궁에서 하루빨리 아이들을 데려가려 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길이 얼어 돌아가는 길이 위험해질 테니까.

나는 두 아이를 위해 준비한 목도리를 매만지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무 아래 쌓여있던 낙엽이 바람에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로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황실에서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그래.”

이제 진짜, 이별의 시간이었다.

나는 목도리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땐 이미, 아이들과 바리다스를 포함한 모두가 나와 있었다. 강아지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언제 친해진 것인지, 강아지들은 레이안의 품에 안겨 떨어질 줄을 몰랐다.

“또 놀러 올게….”

강아지들과 헤어지는 것이 정말로 아쉬운 듯 레이안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에 비해 리리안은 강아지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녀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다만 레몬과는 정말 많이 친해진 듯, 둘이 맞잡고 있는 손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니, 보고 싶을 거예요.”

훌쩍이며 말하는 레몬의 손을 잡으며 리리안은 입을 열었다.

“나도 보고 싶을 거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황궁에 방문해 주렴.”

리리안은 레몬을 위로하듯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지만, 그녀도 레몬 못지않게 이별이 많이 아쉬운 듯 보였다.

“알겠어요.”

레몬이 대답하자 작게 웃은 리리안은 그녀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수도에 잘생긴 사람들 정말 많아.”

“꼭, 가겠습니다.”

레몬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리리안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레몬은 리리안이 자신의 말을 흘려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이에요!”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대던 리리안은 곧 똑같이 새끼손가락을 펴 그녀에게 내밀었다.

레몬이 손을 뻗어 리리안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해.”

레몬이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말하며 손가락에 힘을 주자 리리안도 똑같이 행동하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공작가의 약속 방법이구나.”

다시 작게 웃음을 터트린 리리안은 레몬과 떨어진 뒤, 그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배운 대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공자도, 약속해 주게.”

그린도 별 반항 없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린과 리리안의 손가락이 이어졌다가, 곧이어 떨어졌고, 리리안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둘 다, 나중에 또 봐.”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레몬은 아직도 아쉬운 듯 리리안을 끌어안았다.

그린과 리리안이 친해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로 친구에 대한 그린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기를 바랬다.

한편 토마와 레이안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토마는 미련 없이 레이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

안고 있던 루이와 리리를 내려놓고 그의 손을 맞잡은 레이안은 미소 지었다.

“너도.”

티를 안 냈을 뿐, 아쉬운 것은 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서운한 듯 표정을 구긴 토마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는 내가 황궁으로 갈게.”

“얼마든지. 하지만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야.”

거긴, 괴물들 소굴이거든.

레이안이 덧붙이며 웃었다.

“너희들도 나중에 또 봐.”

레이안은 쌍둥이와 자스민에게도 차례로 인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렌에게 다가갔다.

가장 친해지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그린이 그래도 애들과 친해진 것에 비해, 렌은 정말로 그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딱 봐도 둘의 사이가 어색해 보였으니 말이다.

“공녀도, 잘 지내길 바라겠습니다.”

“네.”

아이들과의 인사를 모두 마친 황실 남매는 마지막으로 나와 바리다스에게 다가왔다.

내가 준비한 목도리를 주려는데, 리리안이 울먹이며 내게 안겨 왔다.

“보고 싶을 거예요.”

왜 울고 그래.

그녀를 안아주며 달래보라는 의미를 담아 레이안을 바라봤지만, 레이안 역시 울먹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니, 넌 또 왜 우는데?

나는 레이안도 달래주기 위해 반대 팔을 벌렸다.

하지만 레이안이 내 품에 안기기 전에 토마가 그를 붙잡았다.

“레이, 정말로 보고 싶을 거야.”

토마와 인사를 나누면서도 레이안은 계속 부러운 듯 나와 리리안을 흘끔거렸다.

리리안은 내 품에 안긴 채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오빠를 바라봤다.

애들이란.

이제 진짜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고, 나는 두 아이에게 준비한 목도리를 직접 둘러 주었다.

“조심해서 들어가렴.”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바리다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코코아를 보온병에 담아 내밀었다.

레이안은 감사 인사를 하며 그에게서 보온병을 받아들었다.

보온병을 든,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간 것은 내 착각이겠지.

리리안은 그런 그의 행동에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소리쳤다.

“잘 마실게요, 그리고 청첩장 꼭 보내주세요!”

리리안은 그렇게 마차에 올랐고 그녀에 비해 레이안은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듯 나와 토마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가 계속해서 마차에 타지 않고 머뭇거리자 보다 못한 토마가 소리쳤다.

“야, 평생 못 보냐?”

답지 않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토마도, 그를 보내는 것이 많이 속상해 보였다.

그의 모습에 레이안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미 그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오빠. 언제 타 빨리 오라고!”

그때 마차 안에서 리리안이 소리쳤고 레이안은 마지막으로 나와 토마, 그리고 아이들을 눈에 담았다.

“모두 안녕!”

레이안이 외치자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고 마차의 문이 닫혔다. 작은 창문 너머로 레이안이 울고 있는 리리안에게 손수건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많이 어른스러워졌군.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마차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마차가 출발했고 리리안과 레이안은 창을 열고 소리쳤다.

“나중에 또 봐!”

남매를 태운 마차가 저택의 대문을 넘어 점차 멀어졌다.

“황녀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메큐리가 다가와 내게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뜯어보지 않아도 누구의 편지인지 알 수 있었다.

편지를 받아들며 나는 작게 웃었다.

“고마워요, 경도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메큐리는 인사를 한 뒤, 말을 타고 멀어져갔다.

그렇게 마차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 레몬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리안 언니, 벌써 보고 싶어.”

원래 리리안의 애칭은 리안이 아닌 리리이지만, 강아지의 이름과 같다 보니 아이들은 리리안을 리안이라고 불렀다.

…리리안이 그래서 강아지들을 안 좋아한 건가?

나는 레몬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생각했다.

“나도 수도 갈래애….”

레몬을 따라 자스민도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양 팔에 한 명씩 아이들을 안은 채 그들을 달래주었다.

“나중에 보러 가면 되지.”

“나중에 언제!!”

그때 자스민이 불만을 터뜨렸다. 자스민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말문이 막혀 두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바리다스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이들을 이리 넘겨주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게서 레몬과 자스민을 한 번에 넘겨받아 안았다.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 아이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만 울렴.”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도 자스민과 레몬은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차일드 가의 영지인 델아트와 황실이 있는 수도의 거리는 매우 멀어 당분간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 아이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고 한숨을 내쉰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내년 봄에, 수도로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니?”

이어진 바리다스의 말에 레몬과 자스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바리다스가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저건, 자신들을 달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요?”

레몬이 되물었고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희가 원한다면.”

바리다스는 토마와 렌, 그린에게도 의견을 말하라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들 중 가장 먼저 대답을 한 것은 토마였다.

“저는 가고 싶어요.”

뒤이어 레몬과 자스민도 소리쳤다.

“저도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렌과 그린은 시선을 교환했다.

“상관없어요.”

렌이 말했고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년에는 수도에서 지내는 것으로 하자.”

바리다스의 말에 레몬은 금세 울음을 그치고 미소를 띤 채 바리다스를 끌어안았다.

“오빠 최고!”

레몬의 말에 작게 웃은 바리다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 * *

배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편지를 펼쳤다.

편지를 쓴 사람은 예상대로 아필레였다.

봉투를 열자 방안 가득 꽃향기가 퍼져나갔다. 겨울과 잘 어울리는 목화향이었다. 

편지를 펼치자 역시 유려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아이들을 잘 맡아줘서 고마워요.

며칠 전 레이안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그대와 둘째 공자 덕에 철이 많이 든 것 같더라고요. 고생 많았어요, 정말로.

두 아이가 황녀와 새로 사귄 친구들을 많이 좋아하는 것이 편지에서도 느껴져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대도 수도로 와서 지내면 좋을 텐데, 역시 힘들겠죠?

만약 수도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황궁에 꼭 들러주길 바래요. 여러 가지로 보답하고 싶으니.

또 편지 하도록 할게요. 잘 지내요.

그녀의 편지를 모두 읽은 나는 생각했다.

이미 충분히 많이 받은 거 같은데?

나는 방 한쪽에 쌓여있는 선물 더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레이안과 리리안을 데리러 온 황실 마차가 싣고 온 선물들이었다.

내 몫이 저 정도인데 바리다스나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까지 합하면 작은 왕국 정도는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다음에는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겠어.

아필레의 편지를 접은 나는 답장을 쓰기 위해 레나를 시켜 편지지를 가져오게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깃펜을 잡고 나는 편지를 써 내려갔다.

아이들이 착해서 고생보다는 기쁨이 컸다는 이야기와 내년에는 수도에서 지내게 될 것 같다는 좋은 소식을 담아 차근차근 편지지를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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