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57)화 (57/207)

56. 바리다스

바리다스는 축복 속에 태어났다.

공작인 아버지와, 백작 가문의 장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양 가문의 축하를 받으며.

두 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그만큼 힘들게 얻은 아들이기에, 그는 공작과 공작 부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자라났다.

바리다스가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 * *

바리다스의 여덟 살 생일은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바리다스는 어머니 테리스와 함께 음식으로 가득한 생일상 앞에 앉아 아버지, 차일드 공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약속한 시간보다 귀가가 늦어지고 있었다.

“바리다스, 아버지가 곧 오실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꾸나.”

테리스는 시무룩해진 아들을 애써 달래며 말했다.

쿠구궁!

때마침, 멀지 않은 언덕에 벼락이 내리꽂혔고 뒤이어 저택을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곧 있을 불운을 예고하듯.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일드 공작이 돌아왔다. 첩을 데리고.

한때는 명문가의 귀한 영애였고 결혼 후에는 공작가의 안주인으로서 자부심 높았던 테리스가 크게 분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공작가에는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전 같은 따뜻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아직 어린 바리다스는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사랑받고 자라온 아이였으니까.

갑자기 자신을 대하는 공작의 태도가 딱딱해지긴 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그에게 친절했고 그를 사랑해 주었다.

하지만 매일 밤, 테리스의 방에서는 비명과 함께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이중성. 그리고 화목하지 않은 가족. 바리다스가 그것들에 적응을 하게 되었을 때쯤, 그의 어머니는 완전히 미쳐버리고 말았다.

공작과 그의 첩이 알게 모르게 공작부인을 갉아먹은 것이었다.

귀족으로서의 자존심도, 공작부인으로써의 삶도, 한 사람의 아내라는 위치도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미치기 직전까지 매일같이 바리다스에게 말했다.

“바리다스, 너는 반드시 차일드 공작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에게 남은 것은 바리다스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외출도 하지 않고 모든 방문도 거절한 채, 하루 종일 공작가에서 서류를 처리했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인 바리다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공작의 불륜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매일 밤 오지 않는 공작을 기다리며.

미쳐버린 그녀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바리다스였다.

실이 풀려버린 목각 인형처럼 멍하니 늘어져 있는 테티스는, 바리다스를 발견하자마자 그에게 다가왔다.

초점이 없던 그의 눈은 바리다스를 보자마자, 광기로 번뜩였다.

“공작, 저는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리다스 라는 그의 이름이 아닌 공작이라고, 부르며 말이다. 그것은 그와 공작의 모습이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테리스의 상태를 보고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 바리다스는 공작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를 본 공작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미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치료하거나, 친가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미친 덕에 더욱더 편하게 다른 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공작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바리다스와 테리스는 공작가 가장 구석에 있는 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사실상 유폐였다.

그래도 탑에서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어머니는 차차 정신을 차려갔다. 예전처럼 그와 식사를 함께 하거나,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건 낮 동안에 국한된 일이었다.

밤이 되면 그녀는 돌변했다.

공작을 향한 슬픔은 고스란히 분노가 되었다. 테리스는 매일 밤마다, 바리다스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공작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날마다 바리다스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씩 늘어갔지만, 그가 받았을 마음에 상처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매일 밤 그를 때리고, 아침이면 울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의 어머니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또다시 밤이 오면 테리스는 울부짖으며 바리다스를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바리다스는 어머니의 폭력을 견디고 또 견뎠다. 그녀가 다시 돌아와 줄 것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결국, 그는 한계에 도달했다.

“저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어머니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테리스에게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며, 그에게 다시 폭력을 가했다.

결국 그는 그날 탑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이라고 해봤자, 어린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근처에 있는 정원뿐이었지만 말이다.

정원에서 깜빡 잠이 든 그의 뺨에 떨어진 빗방울에 바리다스는 깨어났고. 그는 보게 되었다. 탑의 옥상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멍하니 아래를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는 불안함을 직감하고 그녀를 쫓아 옥상으로 올라갔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그의 눈앞에서 어머니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 그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슬픔도, 아픔도 아닌 안도였다. 어머니가 없으니, 이제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에 온 공작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바리다스는 생각했다.

어머니의 말이 맞았고 자신은 그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이다.

그날,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붙잡았다면. 그녀는 살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죄책감이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그렇게 그는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졌다.

테리스의 죽음은 사고사로 위장되었고 바리다스는 탑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친구가 되어준 것은 강아지 엘리였다.

하지만 엘리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다스의 곁을 떠났다. 공작 부인에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유로 공작이 바리다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엘리를 어디론가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지키지 못했다. 공작과 공작가는 언제나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아 갔다.

바리다스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공작가를 나와 남들보다 빠르게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열 한 살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에게 몽유병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처음 눈치챈 것은 바리다스와 같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던, 아킬레스였다.

늦은 밤, 교수 몰래 그의 방을 찾아온 아킬레스는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바리다스를 발견했다. 아래로 떨어진,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계속해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다음 날의 바리다스는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킬레스도 아직 어렸기에 그는 그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고 바리다스도 그날 이후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그는 그 일을 잊었다. 

그런 그의 병의 심각성을 눈치챈 것은, 다름 아닌 드미트르였다. 드미트르는 바리다스의 사정을 들은 뒤, 그를 위로해 주었고 매일 밤 그의 곁을 지켰다.

그렇게 점점, 바리다스의 병도 호전이 되는 듯했다.

드미트르의 도움 덕에 바리다스는 문제없이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열여덟 살이 넘어간 뒤로는 창밖을 내다보는 일도 혼자 걸어 다니는 일도 없어졌다.

졸업 후, 수도에서 생활하던 바리다스는 공작의 편지를 받고 공작저로 돌아갔다.

그것이 그가 차일드 가문을 떠난 지,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칠 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공작가로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새 공작부인이 된 처음 보는 여자와 그녀의 자식들로 보이는 아이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공작의 모습이었다. 바리다스는 그 즉시 공작저로 돌아온 것을 후회했다.

‘이런 곳에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과 어머니에게는 누구보다 끔찍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던 그가, 다른 사람에겐 저렇게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역겨웠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공작이 그에게 사과를 건넸을 때, 극에 달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며 사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바리다스는 다시 한번 공작가를 나왔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렇게 바리다스는 뛰어난 검술 실력을 바탕으로 기사가 되었고 아킬레스가 황위를 계승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덟 살 생일날처럼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바리다스는 차일드 영지로부터 온 한 통의 서신을 받았다. 차일드 가의 공작과 공작부인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연민보다 기쁘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보았던 공작과 같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그는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아들이었고 그를 쏙 빼닮았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어쩌겠는가, 가문을 이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그 한 명뿐이었고 아킬레스의 설득에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생각했던 델아트에 돌아와, 공작이 되었다.

누구보다 혐오하던 사람의 뒤를 이어 차일드 가의 가주가 된 것이었다.

이복 동생들을 거둔 것도, 자신이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저 아이들을 버리지 않으면 자신은 그래도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랬기에, 아이들에게 그 이상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자신은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모자람 없이 부족함 없이 자라길 바랐다.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립할 수 있도록 지지를 해줄 것이었고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면 좋은 혼처를 찾아봐 줄 생각이었다.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그들의 보호자가 되려 했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추하고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자신은 그들에게 상처만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그가 차일드 가의 가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을 때쯤, 완전히 나았다고 생각한 병이 다시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본인도 모르게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이 대다수였고 어느 때는 정원까지 내려가거나, 창문에서 떨어질 뻔한 것을 크림슨이 구한 적도 있었다.

다시 재발한 병은 다시 나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잠을 거의 자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든 어느 날, 정신을 잃은 것인지 탑의 옥상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떨어지기 직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는 고민 끝에 탑을 없애려 했다.

이 병이 언젠간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그 생각을 바꿨다.

만약 이 병이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한다면 그건 자신이 저지른 패륜에 대한 벌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그는 탑을 없애지 않았다.

언젠간 자신이 어머니와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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