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에크레티아와 신년제
이른 아침. 나는 주방에서 아필레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선물할 레몬청을 만들었다.
겨울에는 유자차가 최고긴 하나, 이곳에는 유자가 없으니 대신 레몬을 사용해야 했다.
“다 됐다.”
완성된 청을 유리병에 가득 담아 넣은 뒤 로나가 가져다준 붉은 리본을 유리병 입구에 묶으니 제법 그럴 듯한 선물처럼 보였다.
아필레의 마음에 들으면 좋을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병을 대기하던 로나와 레나에게 넘겼다.
“황궁으로 보내줘.”
황궁에 도착할 때쯤이면 아마 완벽하게 절여져 있을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주방에서 나가려는 순간, 레몬과 자스민이 내게 달려왔다.
“형수님! 트리 왔어 트리!”
아이들은 평소보다 들떠 보였다. 아마 며칠 뒤에 있을 신년제 때문인 듯했다.
크레센트 제국에는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신년제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말이 신년제지, 하는 것은 성탄절과 비슷했다.
트리를 꾸미거나,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가족과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그런 행사 말이다.
그런데, 트리가 이렇게 크다는 말은 없었잖아.
나는 높이가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이는 트리를 올려다보았다.
…저걸 언제 다 장식하지?
내가 시름에 잠긴 사이 시종들이 줄줄이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내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다.
상자 안에는 트리를 장식하는 볼이 가득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또 다른 상자에는 진저맨 장식과 작은 선물 상자들 그리고 붉은색의 커다란 양말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마지막 상자를 열어본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마정석을 이용해서 장식 조명을 만들어 온 것이었다.
스위치를 눌러 마력을 주입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마력을 주입할 때 사용하는 것도 엄청 비싼 마도구였다.
렌과 자스민을 바라보자, 별생각 없이 장식들을 꺼내는 것으로 보아 그들에게는 익숙한 듯 보였다.
“마정석 장식이네요.”
“난 이게 제일 예쁜 거 같더라.”
어느새 장식 상자 앞에 자리 잡은 그린과 레몬이 말했다.
그리고 자스민이 손에 커다란 별을 든 채, 내게 달려왔다.
“형수님 이거 바, 별 완존 예쁘지!”
저거, 황금 아니야…?
심지어 별의 가장자리에는 흰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트리를 장식하려는 거야, 아니면 재력을 자랑하려는 거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스민이 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두, 작년처럼 트리 못 꾸밀 줄 아랐는데.”
그 사건이 가을쯤에 일어났으니 차일드 가는 신년제를 즐길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트리 꾸며.
장식이 이거밖에 없다니 장난해?
당장 장식이랑 트리 더 만들어와, 돈은 내가 낼게.
“자스민, 어쩔 수 없던 거였잖아.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라써…….”
그때 렌이 말했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자스민은 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레몬과 그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레몬이 나와 렌에게 달려왔다.
“언니랑 형수님도 같이 해야지!!”
그녀는 나와 렌의 손을 끌고 트리로 다가갔다.
트리는 딱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까지만 꾸며져 있었다.
더 위에 장식을 달기 위해 낑낑거리는 자스민이 귀여워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를 들어 올렸다.
“닿니?”
“웅!”
그렇게 자스민은 내 도움을 받아 트리에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치고 말았다.
팔 아파, 어깨도 아프고.
그때 뒤늦게 도착한 토마가 작은 사다리를 가져다주었다.
저런 게 있으면, 진작에 좀 가져오지.
아니, 생각해 보니까. 시종을 시켜도 되는 거였잖아.
나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토마까지 합류해 아이들은 트리를 꾸며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꼭대기 부분은 사다리에 올라가도 닿지 않았고 꼭대기에 별을 끼우기 위해 자스민이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고 불안함을 느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누군가 자스민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높이 올라간 자스민은 손쉽게 꼭대기 층에 별을 달 수 있었다.
“큰 오빠!”
바리다스의 목마를 탄 채, 자스민이 기쁜 듯 외쳤다. 그러자 바리다스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쁘게 잘 꾸몄구나.”
나는 두 사람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바리다스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졌다. 그는 최근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자스민이 잠들기 전까지 동화책을 읽어 줬다고 했다.
그들이 이제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트리 장식이 끝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장식 조명을 트리에 둘렀다.
조명은 오색 빛깔로 반짝였는데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뭐라고 할까, 반딧불이 같은 느낌?
그렇게 트리가 전부 꾸며졌고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양말이 트리에 하나씩 걸렸다.
그런데, 여기에도 산타가 있나?
그런 내 의문은 자스민이 바로 해결해 주었다.
“오빠야는 산타 하라버지한테 머 받고 시퍼?”
자스민의 말에 토마는 곁눈질로 나와 바리다스의 눈치를 봤다.
그 덕에 내 궁금증도 금방 해소되었다.
이곳에서도 산타의 존재는 똑같구나.
“나는 딱히.”
그의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지은 자스민은 볼을 부풀리더니 렌을 돌아봤다.
“언니는?”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이제 선물 못 받아.”
렌 다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자스민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더니 트리를 올려다봤다.
“진짜루? 그로면 나 선물 몇 번 더 바들 수 이써?”
자스민은 계산을 하려는 것처럼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섯 번이다, 마찌?”
그녀는 손가락 다섯 개를 핀 채 말했고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나와 렌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자스민은 우리가 왜 웃는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말이다.
“나는 핑크색 드레스!”
레몬이 소리쳤고 그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딱히.”
그들의 대답 덕에 알 수 있었다.
토마와 렌 그린은 산타의 진실을 알고 있었고 자스민과 레몬 두 사람만이 모른다는 사실을.
산타가 아니더라도 가지고 싶은 건 줄 수 있는데 그냥 말하지.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자스민은 소리쳤다.
“나는 왕다님 받고 시퍼!”
내가 줄 수 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누구한테서 물이 든 것인지는 뻔했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산타 할아버지도 주기 힘들지 않을까?”
그런 자스민을 말리기 위해 렌이 나섰고 자스민은 뾰로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산타 하라버지 능력 업네.”
능력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그로면… 드래건 가지고 시퍼!”
그것도 안 돼!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자스민을 말리려고 했으나, 나보다 바리다스가 한 발 더 빨랐다.
“그건 산타 할아버지가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진짜로?
다른 사람이었으면, 장난이겠지 라고 넘겼을 테지만 그 말을 한 것은 바리다스였다.
그리고 여긴 소설 속 세계였다.
진짜로 드래곤이 있으면 어떡해.
나는 바리다스를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드래곤 인형은 말이야.”
역시, 그의 눈치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진심으로 드래곤을 잡아다 주려고 한 것 같아, 말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마당에 드래곤이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지러웠으니 말이다.
지금 키우는 리리, 라라, 루이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자스민은 많이 실망한 듯 볼을 부풀렸다.
“산타 하라버지 진짜 능력 업서.”
아니, 용을 잡아 올 능력으로 산타를 왜 해!
“다른 거 없을까?”
이번에는 토마가 나섰고, 아주 잠시 고민하던 자스민은 소리쳤다.
“그러면 동생!”
“동생?”
레몬과 그린이 동시에 되물었다.
둘도 동생을 가지고 싶었던 것인지 붉은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린 너, 선물 필요 없다는 거 내숭이었어?
그린도 아직 산타를 믿고 있었구나.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그린이었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웅, 리리안 언니가 그래써. 아기는 백조가 가져다준다구, 그니까 백조한테 물어다 달라구 하면 안 대?”
지금까지 그녀가 말한 소원들 중, 가장 들어주기 힘든 소원이었다.
왕자는 어떻게든 데려올 수 있고 드래곤도… 바리다스가 잡아 올 수 있을 거 같고.
근데 동생을 어떻게 만들어 줘.
바리다스와 렌, 토마는 현실을 알고 있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난 울고 싶었다.
뭐라고 말해야 해 이건…?
하지만 자스민은 순수한 마음으로 말한 것이었고 나는 어른으로서 자스민의 동심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나는 하나의 대답을 찾았다.
“백조는 겨울잠을 자고 있어서 안 돼.”
거짓말을 하면서도 바리다스와 아이들의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자스민은 자신의 실수도 모른 채 원하는 선물들이 모두 거부당하자 시무룩해졌다.
“그루면, 선물은 더 생가케 볼래.”
그렇게 자스민은 이 층으로 올라갔고 그녀의 뒤를 라라와 리리가 쫓아갔다.
나, 잘한 거 맞지…?
바리다스의 눈치를 슬쩍 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렌과 토마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분위기를 파악한 그린도 조용히 서 있었고 오직 레몬만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분위기 어떡할 건데.
나는 빙의한 뒤, 처음으로 자스민이 미웠다.
조금, 아주 조금 말이다.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렌이었다.
“저, 잘 생각해보니까. 산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있어요.”
그녀의 말에 바리다스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연속된 어려운 선물 때문에, 이번에는 또 어떤 선물을 원할지 걱정이 되었다.
렌, 너는 다 알잖아. 제발 쉬운 걸로 해 줘.
속으로 애원하며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 신년제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식당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렌의 말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간신이 억누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들어주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