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61)화 (61/207)

60. 에크레티아와 신년제

시간은 흘러, 어느덧 신년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요즘 새로운 놀이에 빠졌는데, 바로 강아지들이 끄는 썰매를 타는 것이었다.

이제는 강아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란 루이와 라라, 리리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눈밭에서 뛰어놀았다.

생강차의 무서움을 맛봤기에 옷을 따뜻하게 껴입고 말이다.

나는 눈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몇몇 아이들의 선물을 결정하지 못했다.

토마에게 줄 검, 그린에게 줄 만연필, 레몬에게 줄 드레스까지 모두 구했으나, 문제는 렌과 자스민이었다.

렌은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식사면 충분하다고 말했으나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스민은, 정말로 뭘 선물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바리다스가 자신에게 생각이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걸.

다시 한숨을 내쉰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신년제는 일 년이 끝나는 날이 아닌, 마지막 보름달이 뜬 다음 날에 열리는 행사였다.

그 이유는 보름달이 뜬 다음 날, 하늘에서 달이 사라지고 에크레티아라는 이름의 별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생의 학교에서 공전과 자전을 배운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판타지라 가능한 건가.

흐음.

에크레티아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차일드 가의 서재는 웬만한 도서관보다 많은 양의 책이 쌓여있으니 이 중에 한 권쯤은 에크레티아에 관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서가를 뒤적이길 한참, 오래된 고서들 사이에 <에크레티아>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나는 책을 꺼내어 가까운 의자에 걸터앉았다.

낡은 표지에는 수많은 눈송이와 커다란 별이 그려져 있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 빛바랜 삽화와 함께 활자가 아닌 수기로 쓰인 글이 보였다.

처음 세계가 만들어질 때, 계절은 단 세 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봄의 헤리피아와 여름의 서머너 그리고 가을의 필레스.

세 명의 신은 각자의 규칙을 만들어 계절을 수호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계절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겨울 큐리아드였다.

하지만 그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계는 끝나지 않는 겨울 때문에, 혹독한 추위와 그 무엇도 자라지 않는 척박함만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결국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신들은 큐리아드를 깨우기 위해 달만큼 밝고 따뜻한 빛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일 년 중, 딱 하루만 빛나는 별이 만들어진다.

신들은 그 별을 하늘로 띄워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큐리아드는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렇게 매년 그를 깨우기 위해 신들은 해가 끝나는 날, 별을 하늘에 띄운다.

그 별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고대어로 희망과 소망이라는 뜻의 에크리티아라고 부르게 된다.

먼 후에는 일 년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별이 됨과 함께, 소원을 비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재미있네, 나중에 자스민에게 읽어 줘야겠다.

나는 책을 덮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막 서재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리다스?”

그의 등장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일드 가에는 두 개의 서재가 있었는데.

하나는 차일드 가의 일원이나 손님 등, 허락받은 자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서재였고 남은 하나는 가주만 출입할 수 있는 서재였다.

바리다스는 주로 그 서재에 있었기에, 이 서재로 오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찾는 책이 여기에 있는 모양이었다.

“좋은 오후입니다, 피오라.”

바리다스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자스민의 선물은 정했나요?”

내 말에 그는 미소 지으며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바리다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귀엽고 유치한 삽화를 가지고 있는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설탕마녀와 케이크 드래곤과 초콜릿의 기사님>

이건… 동화책이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자스민이 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으로 나도 그녀에게 몇 번 읽어준 적이 있었다.

이게 어떻게 선물이 된다는 거지?

바리다스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 동화책이 대체 뭔데!

그런 내 얼굴에 혼란을 읽은 것인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렇게 그는 책을 가지고 서재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다.

요즘 들어 그의 장난기가 강해졌다 생각하며, 나도 그를 따라 서재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보니,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도 아직 렌의 선물을 결정하지 못했는데.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며칠 전 아이들이 열심히 꾸민 신년제 트리가 보였다.

트리…?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아이디어가 말이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라떼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방문했기에, 주방장들과 그들의 보조들은 이제 익숙해진 듯했다.

같은 주방장을 보는 것처럼 나에게 인사를 한 그들은 내가 언제나 사용하는 자리를 비워 주었다.

라떼의 재료를 가져다주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라떼를 만들러 온 것이 아닌걸.

주방은 내일 있을 신년제를 준비하기 위해 매우 바빠 보였다.

그랬기에, 그들의 눈치를 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온 것은, 라떼 때문이 아니라 신년제 케이크를 조금 수정하고 싶어서 방문했어요. 케이크를 담당한 파티쉐가 누구죠?”

내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라면 이제 케이크를 만들 준비를 할 것이었다.

내 예상대로 구석에서 반죽을 하고 있던 한 남자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제가 신년제 케이크를 담당하게 된 파티쉐 피터입니다.”

그 파티쉐가 누구인지 기억해낸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피터는 반년 전, 바리다스가 돈 지…… 아니, 리슐레에서 영입해 온 파티쉐였으니 말이다.

실력이 보장된 그라면, 내가 부탁할 케이크도 쉽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얼마나 진행되었나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 부탁대로 케이크를 만들어 줄 수 있나요?”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내가 생각한 케이크를 천천히 설명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크로캉부슈였다.

크로캉부슈는 슈크림을 원뿔 모양으로 쌓아 올리는 케이크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웨딩 케이크이다.

하지만 그 모양이 트리와 닮아 크리스마스에도 사용되고는 했다.

그러니 나는 크로캉부슈를 직접 만들어 줄 것이었다.

렌과 아이들의 특별한 추억을 위해서 말이다.

그에게 크로캉부슈에 대한 설명을 마친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슈크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갈 크림은 초콜릿과 딸기, 녹차를 사용해 여러 가지 맛으로 만들었고 아래부터 슈크림을 층층이쌓을 것이기 때문에 끈적한 것으로 고정할 필요는 딱히 없었다.

한 층 한 층 슈가파우더를 뿌려가며 슈크림을 쌓자, 꽤나 예쁜 모양이 나왔다.

이렇게 줘도 나쁘지 않았지만, 트리에는 장식이 빠질 수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쿠키를 구운 뒤, 색색의 사탕과 함께 크로캉부슈를 장식했다.

그러자 아까보다 몇 배는 먹음직스러워진 크로캉부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크리스마스 케이크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고생했어요.”

나보다 더 고생한 것으로 보이는 피터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내 부탁을 군말 없이 따라와 준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림슨에게 피터한테는 꼭 보너스 넣어달라고 해야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피터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두 번쯤 더 했다.

창밖을 바라보자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간 것인지,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까딱하면 저녁 식사 시간에 늦을 뻔했다.

“다들 즐거운 신년제 보내길 바라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주방을 빠져나갔다.

다행히도 식당은 주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나는 가장 먼저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마는 훈련 때문에 연무장에서 식사를 했고, 바리다스는 업무 때문에 늘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건 주로 나와 렌 그리고 쌍둥이와 자스민이었다.

렌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하나둘씩 식당에 도착했고 모든 아이들이 식당에 모이자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한 아이들은 식사를 하며 내일 있을 신년제와 선물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귀여워라.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열심히 선물을 골랐기에, 나는 자신 있었다.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와도 내 선물은 못 이길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웃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다시 동생을 주제로 얘기를 돌리기 전까지 말이다.

“난 어제 선물로 동생 달라고 기도하고 잤어.”

그린이 말했다.

“나는 보내지는 못했지만, 편지 썼어!”

레몬이 말했고.

“나, 나눈… 아무것두 안했는데….”

울먹이며, 자스민이 말했다.

나는 머리가 다시 지끈대는 것을 느끼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괜한 기대감을 심어 줄 바에는, 지금 알려주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렌을 돌아보자 그녀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입을 열었다.

“동생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얘기는 그만하자.”

렌의 한 마디에 아이들은 시무룩해졌지만, 그녀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대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았기에 더 이상 동생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좋지 않은 분위기 속 식사가 끝나나 했으나, 갑자기 들어온 누군가 덕분에 아이들의 표정은 한 번에 밝아졌다.

훈련을 마치고 빠르게 씻고 온 것인지, 아직 덜 마른 머리와 함께 토마가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늦은 것 정도는 상관 안 할 정도로 토마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한 번에 풀렸으니 말이다.

자신 때문에 망가진 분위기를 풀어준 토마가 고마웠는지, 렌은 그에게 스테이크와 새우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주었다.

토마는 렌이 오늘따라 자신을 왜 이리 챙기는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토마 덕분에, 좋아진 분위기 속 식사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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