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68)화 (68/207)

68. 숲에서

“라라가 어떻게 왔나 했더니, 두 분과 함께였군요.” 

라라는 언제 도망쳤냐는 듯 렌과 함께 달려왔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리다스의 말대로였구나. 정말 아이들을 찾아간 거였어.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고개를 내려 라라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래도 다시는 그러면 안 돼.”

하지만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고 라라는 목줄을 물고 짖기 시작했다.

“멍!”

더 놀아달라는 듯,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나와 렌을 바라보며.

그런 라라의 모습에 렌이 목줄을 받아들었다.

“제가 다녀올 테니, 쉬고 계세요.”

나를 생각해주는 모습이 기특해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어, 고마워 렌.”

그렇게 렌은 라라와 함께 멀어져 갔다.

주위를 둘러보자 쌍둥이와 자스민은 바리다스와 함께 놀고 있었고 토마는 그레이, 그리고 칠드런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열심히인 토마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알아서 놀고 있으니까, 나는 좀 쉬어야지.

“형수님!”

그러나 휴식도 잠시, 곧 자스민이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내가 팔을 벌려 안아주자,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더니 귓가에 소곤거렸다.

“여기눈, 우리와 엄마만의 비밀 정언이야.”

자스민의 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오는 동안 보았던 샛길은 전 공작부인의 작품이었구나.

나는 자스민을 안고 있는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렇구나.“

그런 우리 곁으로 어느새 리리가 다가왔고 자스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웅, 공아지들을 따라온 고지?"

“그렇지.”

하지만 내 대답에 자스민은 나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공아지들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데려다준 걸 수도 이써.”

“…엄마가?”

“웅! 저 기른 엄마랑 우리 바께 모르거든!"

자스민은 다시 가까이 오라는 듯 작은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숙여 귀를 대자 자스민이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만의 비밀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재빨리 내 품에서 내려가 리리와 함께 렌에게 달려갔다.

쌍둥이와 루이도 어느샌가 둘의 곁에 가 있었고 말이다.

자스민과 아이들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있기까지 얼마나 깊은 아픔이 있었을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그것은 바리다스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바리다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나와 자스민의 대화를 들은 것 같았다.

이런 걸 보면, 신체 능력이 너무 좋은 것도 문제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전 공작부인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전 공작부인은 살아생전 바리다스와 단 한 순간도 마주한 적이 없을 테니까.

그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바리다스는 아이들을 한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저 한 번씩, 궁금할 뿐입니다. 어떻게 그 남자를 좋은 아버지와 남편으로 만들었는지.”

“…그렇다고 해서 당신한테서 문제를 찾지는 말아요.”

공작은 바리다스와 그의 어머니에게는 명백한 가해자였다. 어떠한 변명거리를 가져와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자식이 어디 있어.

단호한 내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살짝 건드렸다. 

“네, 당연하죠.”

나는 그가 어서 과거의 일을 모두 씻어내길 바라며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때 언제 온 것인지 쭈뼛거리며 다가온 토마가 바리다스의 옷을 잡아당겼다.

“대련해 주실 수 있나요?”

그의 말에 바리다스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아래로 내려가 토마의 머리로 향했다.

“그래.”

짧은 말에서 느껴지는 목소리가 다정했다.

토마가 기쁜 듯 웃었다.

두 남자가 자리를 떠난 뒤 나는 다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 정말 좋다.

“형수님!”

렌과 레몬이 들뜬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키득대다가 다시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써 봐!”

레몬이 화관을 내밀며 말했고 나는 그녀가 내민 화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민들레와 토끼풀로 만들었구나.

들꽃만 가지고 이렇게 예쁘게 만들다니 나는 레몬의 손재주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토끼풀 화관은 나도 아이들에게 종종 만들어 줬던 기억이 있었다.

난 그때 이렇게 잘 만들지 못했던 것 같은데.

만드는 건 쉽지만 예쁘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것을 받아들자 레몬은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예쁘지? 엄마가 알려 준 방법이야.”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어머니의 얘기를 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내 앞에서 그리워해도 괜찮은데.

그래도 씩씩하게 이겨낸 아이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정말 예쁘네.”

나는 레몬을 칭찬하며 화관을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레몬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계속 화관을 내밀었다.

결국 그녀의 눈빛을 이기지 못한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머리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레몬이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 위에 화관을 씌워 주었다.

그러자 화관에서 풀 내음과 옅은 꽃향기가 느껴졌다.

“잘 어울려요.”

내가 고개를 들자 작게 렌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몬이 열심히 만들어 준 화관을 벗을 수도 없었다.

그래, 너희가 좋으면 됐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렌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렌은 얌전히 내 손에 얼굴을 맡겼다.

귀여운 렌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힘든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너희를 지켜 줄 수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이 조금 더 애교 부리고 웃으며 어린아이답게 있어주길 바랬다.

그때 레몬이 만든 화관에서 꽃잎이 내 코 위로 떨어졌다.

근데, 나 이거 언제까지 쓰고 있어야 해?

그냥 벗기에는 눈치가 보여, 나는 손을 뻗어 화관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다가온 자스민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나! 나 주세여!”

그런 자스민의 모습에 레몬을 돌아보자, 그녀는 자스민에게 줘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자스민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화관을 내려 자스민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하지만 자스민은 바로 화관을 벗더니 그것을 손에 든 채 바리다스에게 달려갔다.

설마.

그녀의 행동에 나와 레몬, 렌은 눈을 의심했다.

토마와 바리다스의 대련을 막아선 자스민이 그의 머리를 숙이게 한 다음에 화관을 씌워 준 것이었다.

“예쁘다!”

그의 모습에 레몬과 렌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니, 어떻게 저것도 잘 어울리지?

하지만 바리다스는 화관이 불편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 바리다스의 손을 저지하며 자스민이 소리쳤다.

“안 돼!!”

우리의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자스민은 바리다스의 손을 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레몬 언니가, 오빠 쓰라고 만든 곤데… 벗을 고야…?”

물론 당사자인 레몬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딱히 제재하지는 않았다.

언제 또 그가 화관을 쓴 모습을 보겠는가.

“…그래.”

그렇게 자스민에게 속아 넘어간 그는 화관을 만지작거릴 뿐, 벗지 않았다.

“오빠, 완존 이뻐.”

“…….”

바리다스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에서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레몬이 바리다스의 얼굴을 잡더니 입을 열었다.

“우서야 더 예뻐.”

“…하하….”

그녀의 말에 바리다스는 기계적인 웃음을 지었고, 그 덕에 나와 렌, 레몬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자스민은 바로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린을 툭 치며 부추겼다.

“자근 오빠. 큰오빠 이쁘지.”

“…어울리십니다.”

뒤늦게 바리다스를 본 그린도 웃음을 참으며 말했고, 결국 바리다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그는 소풍이 끝날 때까지, 화관을 벗지 못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우리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정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챈 나는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오자.”

내 말에 아이들은 모두 웃으며 소리쳤다.

“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와 바리다스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신이 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언제나 이렇게 웃어주길 바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저택에 도착한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깨끗하게 씻고, 저녁 먹으러 내려오렴.”

“네!”

동시에 대답한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칠드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어요, 칠드런 그리고 그레이.”

내 인사에 둘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두 기사도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고 자리에는 나와 바리다스 만이 남아 있었다.

“바리다스도 저녁 같이 먹을래요?”

“그러죠.”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그때 내 눈에 그의 머리에 삐뚤게 씌워져 있는 화관이 들어왔다.

아직도 쓰고 있었구나.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의 머리에 씌워진 화관을 원래대로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잘 어울려요.”

그런 내 말에 바리다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화관을 벗어 내 머리에 씌워 주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만 할까.”

당황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화관을 들고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방으로 돌아온 바리다스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책상 위에 화관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한 번씩은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어머니에게는 누구보다 끔찍한 가해자였던 그가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남편이고 아버지라는 사실이.

그는 자신에게 사죄하던 전대 공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던가.

바리다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공작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바리다스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화관을 만지작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던 아이들을 미워하거나 열등감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다만, 자신을 보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수록 그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 왜, 자신과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대했던 걸까.

전대 공작을 떠올린 바리다스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화관은 쉽게 바스러졌다.

그는 순간 놀라 손에 쥔 힘을 풀었다. 그리고 화관을 책장 옆에 걸어 두었다.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는데.

바리다스는 끝이 조금 뭉그러진 화관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던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울렁거렸다.

자신은 그를 죽어서도 용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질수록 그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그 따스함이, 그가 정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 지금이라면 그의 사죄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다정한 가족 말이다.

그들을 떠올리자, 마음 한편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싶군.”

멍하니 중얼거리는 바리다스는 퍼뜩 든 생각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가족은, 아이들이 아니었기에.

하, 낮게 탄식을 내뱉은 바리다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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