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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75)화 (75/207)

75. 악역은 납치당했을 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형수님, 내일 오빠 생일인 거 알아?”

이른 아침부터 그린과 함께 내 방으로 온 레몬이 내게 물었다.

“무슨 오빠?”

레몬에게 오빠라면 바리다스 아니면 토마인데 누굴 말하는 거지?

내 질문에 레몬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형수님 남편 생일이라고.”

그러면 그냥 큰 오빠라고 하면 되잖아. ‘형수님 남편’은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형수님 남편’이라는 칭호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그때 그린이 입을 열었다.

“형님은 생일에 딱히 관심이 없는 분이지만, 형수님께서 챙겨 드린다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린의 말에 레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빨리 화해 해.”

그들의 말에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바리다스를 피해 다녔던 것이, 아이들도 눈치챌 정도로 티가 난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선물이라.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린, 레몬.”

내 말에 쌍둥이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쌍둥이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렌과 자스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스민도 내 품 안으로 뛰어들며 입을 열었다.

“형수님, 낼 큰 오빠 생일인 거 알아?”

무언가 데자뷰가 느껴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렌이 입을 열었다.

“같이 선물 사러 가 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스민도 소리쳤다.

“우리끼리, 몰래 다녀오자!”

그러고 보니, 오늘 바리다스가 오늘 자리를 비웠지.

그를 떠올리는 순간,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멍하니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나는 자스민과 렌이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 손을 뗐다.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나는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래.”

지금까지는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엄청 좋은 걸로 사다 줘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 층으로 향했다.

비가 내리네.

방 안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어젯밤부터 내린 비 때문에 바닥이 질척거리고 있었다.

잔디가 깔려 있었음에도 물컹거리는 바닥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도 오는데, 작은 것도 괜찮아요.”

괜히 큰 마차 끌고 다녀봤자, 비 때문에 더 거슬릴 게 분명했다.

마부가 마차를 가지러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두 명이 다가왔다.

오늘은 칠드런이 없네.

내 가디언을 그만둔 뒤에도 칠드런은 자주 내 호위를 맡아주고 있었다.

아쉬워라. 오랜만에 간식이라도 챙겨주려고 했는데.

그때, 마부가 작은 마차를 끌고 다가왔다.

마차 바퀴에 묻은 진흙만 봐도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길은 멀쩡하겠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렌과 자스민을 차례로 마차에 태워 주었다.

도착했을 때는 빗방울이 좀 잦아들었으면 좋겠네.

나는 오늘 그나마 편한 원피스를 입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해도 괜찮아요.”

내 말에 덜컹 소리를 내며, 마차가 출발했다.

내 소원과는 달리 빗방울은 점점 거쌔져 마차에 있는 작은 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나?”

자스민이 입을 열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도착할 리가 없었다.

나는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역시 아직도 숲이었다.

“무슨 일 있나요?”

“비 때문에 길이 막혔습니다.”

그들의 말에 나는 우산을 들고 마차에서 내렸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질퍽한 진흙이 느껴졌다.

…아, 그냥 돌아갈까.

한숨을 내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린 비 때문에 호수의 물이 불어나 길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이 근처에 분명 댐이 있을 텐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갑자기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수님… 시내 못 가…?”

그때 자스민이 마차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채 입을 열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냐, 갈 수 있어. 안에서 기다려 봐.”

내 말에 다시 문이 닫혔고 나는 길이 있던 자리를 메운 웅덩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길로는 절대로 못 가겠군.

“다른 길이 있을까요?”

내 질문에 마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숲 안쪽으로 들어가서 한 번 빙 돌아가면 됩니다.”

다시 왔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하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어쩔 수 없지.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우산을 털며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잠깐 나가 있었는데도 원피스의 앞부분이 젖어 축축했다.

비 진짜 싫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우산을 내려놓았다.

“비가 너무 와서, 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대.”

내 말에 렌은 고개를 끄덕였고 자스민은 씩씩하게 소리쳤다.

“괜찮아여!”

다시 마차가 출발했고 나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쏟아지는 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일은 비가 그쳤으면 좋겠네.”

바리다스의 생일날만큼은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마차가 강하게 덜컹거리며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절대 나오지 마시죠.”

기사 한 명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마차가 멈춘 것은 비 때문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소라게.”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강한 빗방울 때문에 창밖이 똑바로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내 쪽에서 보이는 것만 세 명이었다.

열 명은 넘는다는 얘긴데.

기사 둘과 마부 하나가 상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나는 바리다스가 준 반지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번, 사용할 수 있다고 했던가.

어차피 이 상황이라면 아이들까지 위험했다. 차라리 빨리 나서서 돕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나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고함과 함께 유리창에 피가 튀었다.

깜짝 놀란 내가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내 목을 강하게 내려쳤다.

렌과 자스민의 비명이 들려왔고 나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으….”

온몸이 욱신거렸다.

눈을 뜨자마자 묶여 있는 손목과 다리가 보였다.

그제야 기절한 것을 떠올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렌과 자스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작은 횃불만이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납치였다.

깊은 숲길로 들어간 것이 실수였다.

자스민과 렌은 무사한 걸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으니, 밖의 상황을 알 방법도 없었다.

어서 바리다스에게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며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 손목은 두꺼운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이 정도면 칼로 베어내는 것이 아니면 절대 못 풀겠는데.

하지만 이들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손목을 묶은 밧줄에는 얇은 천도 함께 묶여 있었다.

나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팔아 치우려는 것인지, 몸값을 요구하려는 것인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현재로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도 같은 생각일 테니 말이다.

역시 공작가에 금품을 요구하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하기엔 내가 차고 있던 장신구들이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가장 먼저 가져갔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계획적인 납치일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나와 아이들이 오늘 외출했다는 정보가 그렇게 빨리 퍼져나갔을 리가 없었으니.

그렇다면 대체 왜?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딱 봐도 커다란 덩치의 남자였다.

내가 깨어난 것을 본 그 남자는 내게 걸어와 빵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데이먼과의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 가만히 계시죠. 일이 끝나면 무사히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였군.

내가 정략혼을 위해 크레센트로 온 것은 맞으나, 결혼식을 하지 않은 지금 나는 아직 데이먼의 황녀였다.

그런데 내가 크레센트에서 납치당해 무슨 일이 생긴다, 그건 국가적 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남자가 방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표정을 굳혔다.

저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않은 것이 내가 황녀이기 때문이라면 아이들이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서 렌과 자스민을 찾으러 가야 했다.

나는 내 손가락에서 반짝이고 있는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할까.

이 세계의 마법과 마법사의 개념은 조금 독특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법처럼 주문이나, 마법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소망과 그것을 실천하는 상상력이 있어야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려운 조건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세계에서 마법사가 대우받는 이유였다.

그리고 마나를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정석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마정석의 사용 방식은 마정석에 마나를 주입하는 것으로 모두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같은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보냉병에 사용하는 마정석은 온도밖에 조절할 수 없는 마정석이고 전구에 사용되는 마정석은 빛밖에 낼 수 없는 마정석이었다.

하지만 바리다스가 내게 선물한 마정석은 조금 달랐다.

이 마정석은 주입된 마나만큼,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받았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마정석은 국보로 여겨질 만큼 위험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바리다스가 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았다.

그는 세 번 사용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내가 마나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간단한 것에만 마법을 사용한다면, 세 번이 아니라 조금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밧줄을 풀어 줘.’

그렇게 소망하자, 강하게 묶여 있던 밧줄이 느슨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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