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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77)화 (77/207)

77. 악역은 납치당했을 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상황을 파악한 렌의 두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양팔과 다리는 밧줄로 묶여 있었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한참을 버둥거리던 렌은 체념하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단단하게 묶인 밧줄은 자신의 살을 파고들 뿐,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온몸에 힘이 빠졌고 결국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서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아무리 의젓하다고 해도 렌도 아직 어린아이였다.

렌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 때문에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울기를 한참,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어두운 방에 작은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렌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문이 열린 방향을 바라봤다.

“어, 뭐야 깼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렌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남자를 바라보며 렌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공포라는 감정 말이다.

그렇게 렌은 공포심에 온몸을 지배당했다.

손과 다리를 덜덜 떨며, 그들이 자신을 끌고 가는데도 반항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갈색 머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렌을 죽이는 것이 탐탁지 않은 듯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냥 죽여 버리게?”

“어쩌겠어, 대장이 큰 놈은 본보기로 삼으라잖아.”

갈색 머리의 남자가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인지, 초록 머리 남자는 더 걷지 않고 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안하게 됐다.”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단도가 렌을 향했고, 그 앞을 갈색 머리 남자가 가로막았다.

“여기서 죽이지 마, 유칼. 피비린내 나.”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그의 말에 유칼이라고 불린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네 여동생이 생각나는 모양인데, 그 애를 죽인 게 저 계집애의 형제라는 걸 기억해.”

캉!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유칼의 손에서 단검이 떨어졌다.

그는 얼굴 가득 비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피비린내 안 나게, 데려가서 죽이고 와. 러스트.”

그렇게 말하며 유칼은 러스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하아….”

낮게 한숨을 내뱉은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과 렌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벽 앞에 멈춰선 그는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더니 곧 움푹 파인 흠을 찾아 그것을 눌렀다. 그러자 커다란 소리를 내며 벽이 반으로 갈라졌다.

밖으로 나가자, 여전히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다, 걷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덕분에 정신을 차린 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도 남아있는 힘도 없었다.

렌의 두 눈 뺨이 눈물과 빗방울로 인해 젖어갔다.

그렇게 한 오 분쯤 걸었을까, 그가 렌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이제 죽는 거구나.

그의 단도가 렌을 향했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렌은 감은 눈을 살며시 떴다.

어…?

손목과 발목을 묶고 있던 밧줄이 풀려 있었다. 그리고 목이 시원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그녀의 머리가 짧아져 있었던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렌의 눈이 커졌다.

러스트는 렌의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까지 때 주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방향으로 쭉 달리면 공작가가 나올 거야.”

그리고는 품 안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렌에게 들려주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한참 동안 물을 마시지 못했더니 목이 턱턱 갈라졌다.

렌의 질문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처가 가득한 투박한 손이 그녀의 머리를 눌렀다.

“오빠 때문에 죽는 건, 내 동생으로 족해서.”

자신을 풀어주긴 했으나, 그도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 렌은 그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요. 오라버니에게 잘 말해 드릴게요.”

렌에게서 죽은 동생이 겹쳐 보였다.

그랬기에, 더 갈 수 없었다.

자신을 잡은 렌의 손을 밀어내며 러스트는 미소를 지었다.

“받아들이고 싶지만, 안에 다른 동생이 있어.”

그의 말에 렌은 더 이상으로 러스트를 붙잡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렌은 러스트가 알려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작가 근처의 숲도 저녁에는 맹수가 나왔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공작가에 도착해야 했다. 

멀어져가는 렌을 바라보며 러스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결 좋은 주황빛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머리카락에 피를 묻히면, 잠깐 정도는 속일 수 있겠지. 공작이 쳐들어오기 전에 매트를 데리고 도망치는 거야.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동굴로 향하려는 순간, 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좋은 오빠였을 거에요!”

그 말에 러스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렌을 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렌은 러스트가 가르쳐준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해 커다란 나무 아래 주저앉고 말았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온 것이었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렌은 손목과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밧줄에 묶인 탓에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특히 발목의 상태는 더 심각했는데 자국이 남은 걸로도 모자라, 팅팅 부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녁이 오기 전까지, 절대 도착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배까지 고파왔다.

렌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러스트가 주고 간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서는 젖은 빵과 사과가 나왔다.

장담컨대, 렌은 살면서 그렇게 급하게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을 것이었다.

비에 젖어도 여전히 딱딱한 빵을 먹으며 렌은 울기 시작했다.

허기가 달래지자, 뒤늦게 서러움이 복받쳐 왔다.

그렇게 한참을 운 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공작가에 도착해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렌은 돌로 만들어진 입구를 떠올렸다. 아무리 오라버니여도 그 동굴을 찾기 힘들 것이었다.

자신만이 피오라와 자스민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달려도 공작가는 입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잠깐 앉아서 숨을 돌리던 렌은 온몸에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아까 러스트가 준 빵과 사과가 전부였기에 배까지 고프기 시작했다.

어느덧 빗방울이 잦아들었고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렌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갖혀있을 피오라와 자스민을 생각하면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숲은 금세 어둠으로 뒤덮였고 달도 비추지 않는 숲길을 더 걷는 것은 무리였기에 렌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크르릉.”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근처에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렌은 숨을 멈추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제발, 그냥 지나가 줘.

하지만 그녀의 기도가 통하지 않은 것인지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렌의 뒤쪽으로 발걸음 소리가 느껴지던 그때,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 컹!!!”

짐승의 발자국 소리가 빠르게 멀어지는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 렌의 뺨을 핥았다.

렌이 그 방향을 바라보자, 라라와 꼭 닮은 개가 그곳에 서 있었다.

“라라?”

그녀의 말에 투명한 빛을 뿜어내는 개는 그녀의 손에 얼굴을 비비며 핥기 시작했다.

하지만, 렌은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라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체 누구지?

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 개를 쓰다듬었다. 자신이 아는 한, 이렇게 환한 빛을 내는 동물은 없었다.

렌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개는 뒤로 돌아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고마워.”

그 아이가 돌아가려고 한다 생각하며 렌은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개는 그게 이니라는 듯 강하게 짖으며 렌의 팔을 붙잡고 등을 보여주며 주저앉았다. 마치 타라고 말하는 것처럼.

“멍!”

하지만 렌은 알고 있었다.

말도 아니고, 개가 어떻게 날 태워.

내가 저 위에 탔다간 분명, 허리가 부러지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개는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계속해서 짖으며 그녀의 팔을 당기기 시작했다.

“…아프면 바로 말해야 해?”

이대로라면 자신을 놔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렌이 입을 열었고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그 개는 다시 렌의 앞에 다리를 굽히고 앉았다.

하지만 렌은 개 위에 똑바로 앉을 생각이 없었다.

대충 자세만 잡은 다음 겁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렌이 그럴 틈도 없이 렌이 다리를 뻗자마자 개는 벌떡 일어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그 순간, 렌의 머릿속에 예전에 어머니가 해 주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공작가 숲에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어.”

그때는 어머니가 어린 자신에게 해준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이 동물의 정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렌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것의 목을 털을 꽉 붙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공작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따뜻한 털 때문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렌은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에 빠져들었고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개는 속도를 늦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공작가 근처 숲을 수색하던 칠드런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공작가에서 빠져나온 라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전히 개를 무서워하는 그였지만, 저걸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칠드런은 라라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높은 나무들 때문에 달빛이 들어오지 않아 거의 보이지도 않는데 그는 용케 넘어지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라라보다 빠른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라라를 따라잡았고 그렇게 라라의 목줄을 잡은 칠드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며칠 전에 아이들이 알려준 언덕으로 향하는 샛길이 있는 곳이었다.

라라는 그 샛길로 가고 싶은 것처럼 목줄을 끌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쉰 칠드런은 라라를 따라 그 길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끼풀이 가득한 언덕이 나왔다.

밤에 오니, 더 아름답네.

칠드런은 주위를 돌아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달빛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나무가 우거진 숲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밝은 달빛이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 순간 라라가 짖으며 목줄을 당기기 시작했고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린 칠드런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말았다.

빛이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개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기억이 맞다면 저 개는….

“엘리.”

자신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엘리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개를 무서워하는 그였지만, 엘리에게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기운 때문인지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멍.”

그에게 대답하듯 작게 짖은 엘리는 칠드런과 라라를 한 번씩 핥아주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거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달려 온 거였냐.

칠드런은 엘리가 핥고 간 뺨을 닦으며 생각했다.

이해는 하지만 자신은 지금 황녀님과 아가씨들을 찾느라 바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쫓아오지 말걸, 시간을 낭비했다 생각하며 칠드런은 라라를 돌아보았다.

“나온 김에, 아가씨도 좀 찾아주면….”

하지만 칠드런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라라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렌이 잠들어 있었다. 

제발, 자신이 미쳐서 환각을 보는 것이 아니기를.

칠드런은 그렇게 생각하며 렌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렌을 한 팔로 안아 든 그는 라라를 돌아봤다.

“고맙다.”

“멍!”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라라는 짖으며 렌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렌과 라라를 데리고 공작가로 향하는 칠드런의 눈에 렌의 손목과 발목에 남은 자국이 들어왔다.

그것을 목격한 칠드런에게서 순간적으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을 느낀 것인지 렌은 작게 뒤척였다.

그 모습에 바로 살기를 거둬드린 칠드런은 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꿈 꾸십시오, 아가씨.”

다정한 말과 다르게 그의 눈빛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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