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80)화 (80/207)

80. 병문안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내 방이었다.

차일드 가의 저택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렌과 자스민도 무사하다는 것이겠지. 

다행이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팔에 가득 붙은 반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온몸이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으….”

낮게 신음을 내뱉은 나는 팔을 움직였다. 오래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뻐근했다.

시선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자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바리다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팔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리다스.”

작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몸을 움찔거리며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바리다스.”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부르자, 이번에는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붉게 물든 데다가, 다크서클까지 내려온 그의 눈가는 엉망이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눈가를 문지르자. 그는 그대로 내 손에 얼굴을 묻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무사해요?”

“네, 모두 크게 다친 곳 없이 무사합니다.”

바리다스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한 대답을 들으니, 모든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빛은 뭐였을까.

쓰러지기 전 마지막을 봤던 강한 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자스민의 마법인가?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순간, 바리다스가 내 손을 깨물었다.

작은 고통이 느껴졌고 나는 붉어진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저는 당신을 잃을까, 견딜 수 없이 힘들었는데. 당신은 아니었나 봅니다.”

말을 마치는 순간까지도 그의 입술은 여전히 내 손에 닿아 있었다.

다시 생기를 찾은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고 나는 민망함에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냥 아이들이 걱정돼서….”

그러자 내 입술에서 손을 뗀 바리다스가 이번에는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자 약간의 고통과 함께 이마에 감겨 있는 붕대가 느껴졌다.

나는 내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남자를 떠올렸다.

그때 다친 건가.

온 몸이 욱신거려, 머리가 다친 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올려 바리다스와 눈을 마주했다.

“당신과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하러 갈 테니. 제발 본인부터 신경 써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바리다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렌과 자스민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의 그 감정을, 바리다스도 계속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바리다스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걸터앉았고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한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 할게요.”

내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바리다스는 내게 세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입니다.”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그 순간, 벌컥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고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밀어냈다.

방 안으로 토마와 쌍둥이가 들어왔고 그들은 침대에서 일어나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왔다.

“형수님!”

레몬과 그린은 내 목을 끌어안은 채 울음을 터뜨렸고 그 옆에 서 있는 토마는 훌쩍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

하지만 한 번 터진 아이들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울기를 한참, 눈물을 그친 레몬과 그린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덮여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토마의 말에 나는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아이들은 내 주위에서 재잘거리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서류에 집중하고 있는 바리다스가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공작가 주치의인 스티앙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바리다스에게 인사한 그는 내 주위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황녀님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의 말에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스티앙은 내 몸 상태를 검사했다.

별문제는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 일이나 쓰러져 계신 것 치고는 매우 상태가 좋습니다. 그래도 당분간 안정을 취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스티앙은 방 밖으로 나갔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 일이나 쓰러져 있었다고? 그렇게 무리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자스민이나 렌은 괜찮으려나.

그녀들이 걱정되어,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내 행동에 바리다스가 서류에서 눈을 떼고 입을 열었다.

“움직이지….”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침대 아래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한숨을 내쉰 바리다스는 나를 안아 들었다.

“스티앙이 안정을 취하라고 한 것 같은데.”

목소리에서 옅은 분노가 느껴져,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자스민이랑 렌이 걱정되는걸요.”

그 순간, 나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깜짝 놀란 내가 다시 바리다스를 올려다보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참고 있는 것 같은 미소였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라고 말하며 바리다스는 나를 돌려 자신의 목을 끌어안도록 만들었다.

“이대로 가죠.”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바리다스는 방 밖으로 나갔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용인들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왔고 나는 결국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꼭, 이대로 가야 하나요?”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한 건, 당신인걸.”

바리다스는 완고했고 결국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자스민의 방까지 오게 됐다.

그가 문을 열려는 순간, 안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콜릿 먹고 싶다고!!”

자스민의 외침이었다.

고막이 터질 정도로 커다란 외침에 나는 생각했다.

건강하구나 몸도, 멘탈도.

다행이긴 한데, 자스민… 소리는 지르지 마.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자스민은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양, 환하게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달려왔다.

건강해 보였지만,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 감겨있는 붕대가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몸은 괜찮니?”

내 질문에 자스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괜찮아!”

자스민이 괜찮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다스는 내가 자스민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그녀의 침대 위에 나를 내려주었다.

그러자 자스민도 나를 따라 침대 위로 올라왔다.

“좁은 곳이나, 사람들이 무섭지는 않고?”

혹시나, 이번 일이 자스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이 되어,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질문했다.

“묶여 있어서 손목이랑 발목이 조금 아프긴 했는데, 매트가 계속 곁에 있어 줬어. 그래서 괜찮아.”

그녀의 말에 나는 매트와 러스트에게 다시 한번 감사했다.

그 둘이 아니었다면 자스민과 렌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도적단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궁금증을 담아 바리다스를 바라봤다.

“소년은 따로 사용인들의 숙소에 머물게 했습니다.”

역시 눈치 빠른 그답게, 바로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둘에게는 따로 감사 인사를 해야겠네.

자스민이 괜찮은 걸 확인했으니, 이제 렌한테 가 볼까.

“조금 있다가 올게.”

나는 자스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가 가는 것이 아쉬운 듯 울상을 지었으나,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가지?

아직 다 회복이 되지 않은 것인지, 여전히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는 뭘 원하냐는 것처럼 나를 내려다 봤다.

다 알고 있으면서.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바리다스의 방향으로 팔을 벌렸고 그는 그제야 나를 안아 들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자스민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애 앞에서 애정 표현이 과해.”

자스민의 말에 내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조금 이따가 보자.”

하지만 바리다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자스민의 머리를 쓰다듬고 방을 나섰다.

여기서 부끄러운 건, 나 혼자가 분명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렌을 보고 너무 놀라지 말아요.”

심상치 않은 그의 목소리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왜요…?”

내 말에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단발도 잘 어울려요.”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완전 동생 바보 다 됐네.

그리고 렌은 단발이 아니라 땋은 머리, 반묶음, 전부 다 어울립니다.

앗, 근데 단발이면 이제 렌 머리 못 땋아주잖아.

그건 조금 슬픈 소식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렌의 방 앞에 도착했고 안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흰 강아지가 데려다줬다고?”

“완전 신기해! 나도 만나 보고 싶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모두 즐거워 보였다.

노크를 한 바리다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있는 렌과 쌍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오라버니, 형수님.”

렌은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고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난 생각했다.

렌, 너 진짜. 단발도 잘 어울리는구나.

하지만 쌍둥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형수님 막 나와도 괜찮아?”

“더 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 또 개복치 취급이야?

그래도 이런 개복치라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이 다친 것도 아닌걸. 조금이라면 괜찮아.”

하지만 내 말에 그린과 레몬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린이 입을 열었고.

“……형수님 발목 인대 박살 났던 건 알아?”

어? 그렇게 많이 다쳤나…?

레몬도 입을 열었다.

“맞아, 그냥 신관 다섯 명이 신력 다 써서 고쳤어.”

그렇게 많이 다쳤네.

이렇게 나를 안고 다닌 건 다 이유가 있었구나.

바리다스를 내려다보자,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움직일 때 말씀 해 주세요.”

나, 공작을 전용 휠체어로 써도 되는 거 맞지? 그리고 왜 좋아하는 거 같아 보이지?

“…침대에만 있을 거에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좋죠.”

무언가 또 그에게 말려든 기분이었다.

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리다스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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