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83)화 (83/207)

84. 두 번째 축제

그의 말에 나는 바리다스를 바라봤다.

어느새 주위에 잔뜩 모여든 꽃등 사이의 그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도 사랑하고 있어요.”

내 말에 작게 미소를 지은 바리다스는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가 상자를 열자 부서진 반지와 같은 디자인의 새 반지가 반짝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바리다스는 내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워 주며 그 위에 입을 맞췄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식상한 대사였지만, 그것조차 마음에 들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좋아요.”

내 대답에 바리다스는 밝게 웃으며 내게 입을 맞췄다. 나와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포개졌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대부분의 등불이 하늘 위로 사라진 뒤였다.

나는 붉어진 얼굴을 달래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갈까요?”

내 말에 바리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노를 저어, 아까 처음 배가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이제는 주변의 가로등이 켜져 있어 아까만큼 어둡지 않았다.

드디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배에서 내렸다.

“그렇게 좋아요?”

“네!”

신이 난 내 모습에, 그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술집으로 가기 위해 광장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방향을 돌아보자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뛰놀고 있었다.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 순간, 그 뒤로 검은 망토와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수상한 차림새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주시했다.

아이들을 보며 사악하게 웃은 남자는 소매로 손을 집어넣었다.

“바리다스!”

깜짝 놀란 내가, 바리다스의 이름을 부른 순간, 남자가 품 안에서 완드를 꺼냈다.

어?

그가 완드를 허공에 들고 휘두르자, 지팡이 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새의 형상으로 변해 아이들에게 날아갔다.

마법사였구나.

신비로운 광경에 아이들은 환호하며 남자에게 몰려들었고 남자는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몇 가지 마법을 더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열광에 더 큰 새를 소환하는 그를 보며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바리다스가 의아한 듯 물었고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며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에요, 가도 괜찮아요.”

그러자 바리다스가 내 앞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손 위로 물방울이 모여 토끼 모양의 얼음이 되었다.

그리고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깡충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뭐야, 이런 것도 돼? 완전 귀여워!

내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바리다스가 말했다.

“손, 주세요.”

바리다스의 말에 손을 내밀자 토끼는 내 손 위로 가볍게 올라탔다.

그리고는 내가 마음에 드는 듯 활발히 깡충거리다 튀어 올랐다.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건지 내 얼굴까지 뛰어오른 토끼는 내 입술에 작게 입 맞춘 뒤, 다시 물방울이 되어 사라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는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린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이란, 사용자에 소망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죠.”

아이들에게 마법을 보여주고 있던 남자가 우리들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바리다스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그가 나에게 인사하기 위해 시선을 돌린 그 순간, 마법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그의 망토를 붙잡았다.

“더 보여주면 안 돼요?”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넘어간 것인지 그는 하늘을 향해 완드를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생겨난 새가, 하늘로 올라가 초콜릿을 뿌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바리다스가 자스민에게 선물한 막대에서 나온 것과 초콜릿이었다.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것에 성공한 새는 초콜릿을 뿌리며 아이들을 이끌기 시작했고 그 덕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새에게 쏠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비한 광경에 환호하며 새를 쫓아갔고 그 덕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나를 돌아본 그는 내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녀님. 마탑 소속의 마법사 매튠 테리아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매튠.”

내 대답을 들은 그는 내 손을 잡아 그 위에 입을 맞춘 뒤, 바리다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지난번에 사 가신, 초콜릿 막대는 잘 사용하셨는지요?”

새가 뿌린 초콜릿과 자스민이 선물로 받은 막대에서 나온 초콜릿이 같은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데 보통 마탑에서 그런 걸 파나?

그가 조금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매튠을 바라봤다.

“그래, 매우 마음에 들어 하더군.”

바리다스의 대답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군요.”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매튠은 나와 동류였다.

그도 나처럼 어린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에게서 무언가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다.

“참, 그리고 지난번에 여쭤보신 것은 예상이 맞았다고 알려드리고 싶군요. 조만간 각성하실 것으로 보입니다, 축하드려요.”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세계에서는 어떠한 계기가 되든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는 순간을 각성이라고 불렀다.

역시 지난번 그 빛은 자스민의 것이 맞았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바리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받아야 할 건 내가 아니지.”

“네, 조만간 가족분들과 수도로 오실 예정이라고 하던데. 꼭 함께 마탑에 방문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네.”

대화를 마치고 바리다스와 나에게 인사를 한 그는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하지만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인데도 왜인지 바리다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 모습에, 조금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내 질문에 바리다스 나를 돌아봤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기에,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스민에게 마법의 재능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환하게 웃었다.

“대단하네요!”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러기를 잠시,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바리다스가 저런 표정을 지은 건, 자스민 때문이 아닌 나 때문이라는 것을.

대체 왜?

망토를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차마 말로 대답을 할 수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자스민에게 완드를 선물한 것은 정말 우연이 맞습니까?”

그의 질문에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이 세계가 사실 소설 속이고 나는 그곳으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그래서 자스민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나는 아직 그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자, 머릿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우연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알겠다고 할 것이었다. 그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이제 그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 줘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나요?”

내 말에 바리다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알겠습니다.”

“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싶어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요.”

* * *

피오라를 방 안으로 데려다주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바리다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그녀와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차라리 물어보지 말 걸 그랬나.

고민까지 할 정도의 일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우연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오해를 한 것이었고 그녀가 말한 고민이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아, 바리다스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제 와 마음이 변했다고 해도 놓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 말마따나, 국가 간의 정략혼이 그렇게 쉽게 깨지겠는가. 아니, 데이먼의 황제가 직접 찾아와 황녀를 돌려달라 간청해도 절대 그녀를 보내줄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바리다스는 얼굴을 구기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한심하군.”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이깟 감정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지.

시선을 돌린 그의 눈에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이 들어왔다.

요즘 같이 시간을 못 보낸 것이 신경이 쓰여, 해야 하는 일도 모두 미루고 찾아갔다.

처음에는 정략혼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으니 결혼하기 전에 프로포즈를 해 주고 싶었다.

바리다스는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봤다.

그냥, 기뻐하는 얼굴로 만족할 걸 그랬다. 그녀의 진심을 의심한 것도 부담을 주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한 번씩 그녀에게서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처음은 엘리의 위치를 알았을 때.

그 다음은 상상도 방법으로 못한 디저트들을 만들어 낼 때.

그리고 자스민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몰아붙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자니 스스로가 더욱 한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쉰 바리다스는 손을 뻗어 서류를 집었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고 결국 그는 서류에서 눈을 떼었다.

피오라에게서 대답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계속 이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녀는 그에게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부분이 되어 버렸다.

샤워나 하고 자야겠군.

내일은 당신에게서 대답이 오기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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