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91)화 (91/207)

92. 엘리

“멍!”

이른 아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시선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자, 그 자리에 라라가 서 있었다.

문이 닫혀 있었을 텐데,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침대 위로 머리를 올리고 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라라의 애교에 넘어간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으….”

신음이 저절로 나올 정도의 고통이었다.

고통에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나는 뒤늦게 어젯밤 일을 떠올리고 고개를 돌려 바리다스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깊게 잠든 것인지 그의 두 눈은 아직도 감겨 있었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바리다스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대충 주워 입었다.

그리고 바리다스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겨우 문 앞까지 온 내가 문고리를 향해 손을 내민 순간, 라라가 선수를 쳤다.

자리에서 앞발을 들어 일어나더니 문고리를 돌린 것이었다.

여유롭게 문을 열고 나가는 라라는 나보고 나오라는 것처럼 한쪽 발로 문을 잡아주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바리다스가 잠들어 있지만 않았어도 그녀에게 손뼉을 쳐 줬을 것이었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배운 거야.

“고마워.”

다음부터는 문을 잠가야겠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라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깜짝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언제 일어난 것인지 바리다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더 자고 가요.”

바리다스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아 들고 침대로 끌고 가 눕혀 버렸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라라는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멍….”

오늘따라 라라의 울음소리가 슬퍼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이겠지.

라라는 능숙하게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갔다.

* * *

밖으로 나온 라라는 렌이 잠에서 깨어났길 바라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렌의 방 앞에 도착한 라라가 앞발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렌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다 먹었던 것인지, 렌은 라라를 보자마자 먹던 음식들을 침대 옆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치워 주세요.”

그 덕에 렌의 침대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 라라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 것인지 크게 짖으며 렌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거의 렌과 크기가 비슷한 라라가 몸 위에 올라가면 힘들 법도 한데, 렌은 그런 라라가 익숙한 듯 부드러운 손길로 라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강아지들은 아이들을 모두 잘 따르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으나, 호감이 공평하지는 않았다.

라라는 렌을 가장 좋아했으며 리리는 항상 그린과 붙어 다녔고 루이는 독특하게도 레이안을 가장 잘 따랐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질투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강아지들을 가장 잘 챙겨준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몬은 루이가 자신보다 레이안을 따르는 것이 많이 서운한 것 같았다.

레이안이 저택에 온 뒤로, 항상 레몬의 방에서 자던 루이가 레이안이 머무는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라라 너는 자꾸 어딜 가는 거니?”

그리고 라라의 잠자리는 렌의 방이었다.

어떻게 배운 것인지, 라라는 며칠 전부터 스스로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렌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강아지 중에 유일하게 라라만 혼자 문을 열 수 있었는데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렌의 방에서 탈출해 저택을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라라는 렌의 손을 핥으며 어서 쓰다듬어 달라는 것처럼 끼잉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애교에 넘어간 렌은 한참이나 라라를 쓰다듬어주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바로 갔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 미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외출복을 차려입은 렌은 라라의 목줄을 꺼내 들었다.

“라라, 너도 같이 가자.”

그런 렌의 모습에 산책을 하러 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라라는 크게 짖으며 렌에게 다가갔고 렌은 조금은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라라의 목에 목줄을 채워 주었다.

그녀의 행선지는 정원이 아닌, 숲이었다.

렌은 대기하고 있던 시녀를 부른 뒤 입을 열었다.

“숲으로 산책을 가고 싶으니, 마차와 기사들을 대기시키게.”

납치라는 커다란 사건이 있었지만, 바리다스는 아이들의 외출을 금지하지 않았다.

대신 숲의 경비를 한 층 강화했고 근저 도적단의 뿌리를 아예 뽑아 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숲으로 산책을 할 때는 세 명 이상의 기사와 동행할 것을 명했다.

그 덕에 아이들은 예전보다 자유롭게 숲과 저택을 오갈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가 마차가 준비됐다는 사실을 알렸고 렌은 라라와 함께 일 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간 렌의 눈에 작은 마차와 칠드런, 그리고 다른 기사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칠드런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렌의 눈이 커졌다.

라라의 목줄을 잡고 있던 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라라와 동행할 예정인데, 괜찮겠나요?”

렌의 질문에 칠드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라라를 포함한 개들이 예전만큼이나 무섭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칠드런은 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렌에 이어 라라까지 마차에 올려 준 칠드런이 질문했고 망설이던 렌은 입을 열었다.

“엘리의 무덤으로 가 주세요.”

그녀의 말에 칠드런의 눈이 커졌다.

그 개의 정체를 알려준 것이 칠드런이기 때문이었다.

직접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칠드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차의 문이 닫혔고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라라는 렌의 무릎에 앉아 있었는데 처음 타 보는 마차가 무서운 것 같았다.

계속해서 짖으며 마차 문을 벅벅 긁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모습에 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부터 이러면 수도까지 갈 때는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렌은 라라가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조금 지나자 적응이 된 것인지 라라는 렌의 무릎 위에 자세를 잡고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춰 섰고 문이 열렸다.

렌이 칠드런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리자 그녀의 얼굴 위로 벚꽃잎이 떨어졌다.

커다란 벚나무들이 렌의 눈에 들어왔다.

렌은 이렇게 커다랗고 예쁜 벚나무는 처음 보았다.

“여기인가요?”

“네, 여기가 맞을 겁니다.”

칠드런의 대답에 렌은 시선을 위로 올려 커다란 벚꽃 나무를 바라봤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렌은 엘리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렌은 칠드런과 다른 기사들을 따라 천천히 숲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두 개의 무덤이 보였다.

하나의 무덤에는 엘리가 다른 무덤에는 라라와 루이, 리리의 형제들이 묻혀 있었다.

천천히 엘리의 무덤으로 향한 렌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위로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쓸어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엘리의 무덤을 바라보던 렌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날, 구해줘서 고마워요.”

렌은 그날의 일을 동생들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특해, 렌은 라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칠드런을 바라봤다.

“경에게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렌이 감사 인사를 한 이유는 자신을 구해준 개의 정체와, 이 무덤의 위치를 알려 준 사람이 칠드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리다스에게 데려다준 사람도 그였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로 렌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 것이었다.

자신을 믿고 바리다스에게 데려다준, 칠드런에게 많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공작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이만 돌아가죠.”

칠드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렌은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출발했고 마차의 뒤에 앉은 칠드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믿기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는데.

그렇지만 칠드런은 이제 더는 엘리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속으로 결심했다.

엘리가 렌을 구해준 것을 그냥 환상으로 치부하고 더는 그 일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칠드런이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의 무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 순간, 그는 또 보고 말았다.

벚꽃 나무 아래에 엘리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하하….”

칠드런은 머리를 넘기며 엘리를 바라봤다.

자신이 미친것도 환상도 아니었다. 저건 진짜, 엘리였다.

그 둘은 계속해서 서로를 주시했다.

그러기를 한참, 마차가 멀어짐에 따라 엘리의 모습은 점점 작아졌고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쯤, 칠드런은 작게 중얼거렸다.

“아가씨를 구해줘서, 고맙다.”

그 순간, 그의 손으로 벚꽃잎이 떨어졌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든 칠드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