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수도로
두 시가 조금 넘어간 오후, 황제 가족은 수도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를 준비시켰다.
원래라면 조금 더 머물 예정이었으나, 황제와 황후 둘 모두가 황실을 오래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바로 돌아가야만 했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내가 바리다스와 함께 정원으로 내려갔을 땐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뒤였다.
아이들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루이는 레이안의 곁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천천히 아필레에게 걸어갔다.
“참석해줘서 고마웠어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내 말에 아필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았다.
“수도에 오면 꼭 아이들과 황궁으로 와요.”
“알겠어요.”
내 대답에 작게 미소 지은 그녀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남편이랑 싸웠을 때 와도 좋고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꼭 그렇게 할게요.”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필레와 잡고 있던 손이 떨어졌고 그녀는 마차에 올라탔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아이들과의 인사를 마친 것인지 레이안과 리리안은 나와 바리다스에게 인사를 한 뒤 마차에 올랐다.
하지만 루이는 레이안을 따라가고 싶은 것인지, 그를 따라 마차에 오르려 했다.
그런 루이의 모습에 레이안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목을 끌어안아 주었다.
“나중에 봐, 루이.”
그제야 루이는 레이안을 놓아주었고 그는 마지막으로 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마차에 올랐다.
모두가 마차에 탄 것을 확인한 아킬레스가 나와 바리다스에게 다가왔다.
“조심해서 올라오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바리다스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공작부인도.”
아킬레스는 마찬가지로 내게도 손을 뻗었으나, 바리다스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표정을 웃음을 터트린 아킬레스는 입을 열었다.
“변한 모습이 보기 좋구나, 리스.”
“폐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십니다.”
“칭찬으로 듣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킬레스는 바리다스의 머리를 누르듯이 쓰다듬더니 마차에 올라탔다.
곧이어 다섯 대씩이나 되는 마차와 스무 명 정도의 기사들이 황궁으로 출발했고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우리도 저렇게 가야 하는 거지?
저 인원으로 일주일 동안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다른 두 대의 마차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직 짐이 남아 있나?
나는 당연히 황실의 마차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마차에는 황실의 문양이 아닌 차일드 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차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바리다스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수도로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고 가자꾸나.”
바리다스의 말에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차례로 마차에 올라탔다.
다섯 명이 한 마차에 전부 올라탔고 남은 한 대의 마차에 나와 바리다스가 탔다.
지금만큼은 아이들 중 누구도, 우리와 같은 마차를 타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여도 바리다스가 말하는 인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마차가 멈추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달리지 않아, 우리는 차일드 가의 묘지에 도착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차일드 가의 인원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 그런 것인지 묘지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아이들은 자주 와본 것인지, 익숙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비를 찾아 달려갔고 바리다스는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묘비 앞에 멈춰 섰다.
그 위에는 ‘레아스 차일드’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묘하게 바리다스와 닮은 것 같은 이름이었다.
전대 공작은 아이들 어머니의 옆자리에 묻혀 있는 반면, 바리다스의 어머니는 조금 떨어진 곳에 묻혀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밖에 없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어머니의 무덤 앞으로 다가간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머니.”
그의 음성은 담담했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다.
묘지 앞에 무릎을 꿇은 바리다스는 가져온 흰 장미를 그 위에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불안정해,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괜찮아요?”
내 말에 바리다스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떠올랐다.
“네, 괜찮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쉽사리 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바리다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을 한 나는 그의 손을 놓고 얼굴을 붙잡아 나를 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마주한 바리다스의 눈은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안 괜찮으면, 그렇다고 말해도 돼요.”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원망 그리고 애증과 같은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 중에서도 가장 강해 보이는 감정은 바로, 슬픔이었다.
그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슬프면 울어도 괜찮아요,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요.”
내 말에 바리다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내 앞에서는 울어도 된다는 의미를 담아 한 말이었지만 그는 눈물 대신 웃음을 보여 주었다.
작게 미소를 머금은 그는 내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반대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고마워요, 예린.”
그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작게 속삭였다.
바리다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기운을 차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기서 이러는 건 아니지.
나는 내게 계속해서 얼굴을 숙이는 그를 막으며 소리쳤다.
“여기서는 아닌 거 같아요!”
“네, 뭐가 아니죠?”
내 말에 바리다스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내게 뽀뽀하려고 했으면서!
잘 생각해 보니 그는 이런 곳에서 스킨십을 할 만큼 예의가 없지는 않았다. 이건 그냥 나를 놀리려는 행동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조금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라고 해준 위로가 아닌데.
“됐어요.”
뾰로통하게 말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난 나는 반대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자스민이 두 팔을 벌린 채, 내 쪽으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안아주기 위해 무릎을 굽히자, 거의 내게 매달리다시피 안긴 그녀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내 어깨에 얼굴을 묻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도, 어머니와 가족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너희나 나나 똑같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스민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 상태로 일어난 나는 자스민의 등을 토닥여 주며 걷기 시작했고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바리다스의 주위에는 자스민과 마찬가지로 눈가를 붉게 물들인 아이들이 있었다.
정말로 상처가 많은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자신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티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이들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인사 다 드렸어요.”
“네, 이제 가도 괜찮아요.”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바리다스를 바라보았다.
* * *
아이들의 말에 바리다스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단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슬퍼하는 티를 내지 않은 아이들이 기특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아이들에게 기댈 수 없는 가족이었다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을 짓씹은 바리다스는 토마와 렌에게 시선을 맞춘 뒤 입을 열었다.
“우리 앞에서는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단다.”
봄바람처럼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가장 의젓했던 렌과 토마가 울기 시작하자, 아이들도 차례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모든 슬픔을 터트리려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은 한참 동안이나, 예린과 바리다스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 * *
너무나 애처롭게 우는 아이들을 달래주던 내 눈가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결국 나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바리다스는 레몬을 안아주던 손을 내게로 뻗어 눈가를 닦아 주었다.
다정한 그의 손길과 나를 붙잡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을 위로해 줄 수 있어서.
가족이 될 수 있어서.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눈가는 아까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바리다스를 제외한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갈까?”
아이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아까와 같이, 마차에 올랐다.
다만 자스민이 울다 지쳐 잠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바리다스의 품에 안겨 우리와 같은 마차에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출발했고 나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생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내 죽음에 너무 슬퍼하지 않았을까.
너무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이 짊어진 것만큼의 슬픔을, 나는 지구의 가족들에게 남기고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언제 내 곁으로 온 것인지 바리다스가 양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자 내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 모습에 슬픈 미소를 지은 바리다스는 고개를 내려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저는 슬프면 울라는 말은 못 하겠어요. 당신이 울거나,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다정한 목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내 눈가에서는 이미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양 팔로 바리다스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바리다스는 그런 나를 위로하듯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당신이 언제나 웃고, 행복하길 원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그 슬픔을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 울지 말아 주세요.”
나를 안아주는 품이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했다.
바리다스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더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바리다스는 아무 말 없이 다정한 손길로 내 눈물을 닦고 안아주며 위로를 해주었다.
“지구의 있는 가족들만큼이나, 당신이 소중해져 버려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 같아서, 그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나와요.”
* * *
예린의 말에 바리다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면 데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예린이 우는 것이, 자신이 슬픈 일을 떠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기적인 마음은 자책과 동시에 그녀가 자신을 그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이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모순적인 감정이라 생각하며 그는 예린을 바라보았다.
속이 꼬여있는 것과는 다르게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눈빛과 표정은 너무나 다정했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잖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게 위로해 주기를 한참, 드디어 예린은 눈물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붉게 물든 눈가를 손가락을 부드럽게 쓸자,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입을 열었다.
“이제 괜찮아요, 위로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 예린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바리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눕혀 둔 자스민을 다시 품에 안았다.
자신의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예린이 모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