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94)화 (94/207)

95. 수도로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차가 멈추었고 바깥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역은 로우아입니다!”

드디어 수도에 도착한 것이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땅에 발을 디디며 그렇게 생각했다.

기차는 편했다.

덜컹거리지도 않았고 한쪽에 마련된 소파와 침대는 안착감이 좋았다.

중간중간 내려서 여관에 머물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도 하루의 대부분을 기차에서 보낸다는 건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다.

“아, 진짜 힘들었어.”

기차에서 내린 레몬이 우는소리를 했고 아이들은 묵언으로 그에 동의했다. 레몬의 뒤를 따라오는 강아지들도 지친 것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밖으로 나가면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으렴.”

바리다스의 말에 레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모두 초췌한 모습인 반면, 유일하게 바리다스만 멀쩡했다.

진짜, 이제 감탄하는 것도 힘들다.

나는 방금 잠에서 깬 것 같은 바리다스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기차의 옆 칸에서 레나와 로나 그리고 아이들의 전속 시녀와 몇 명의 기사들이 짐을 들고 내렸다.

수도에 있는 공작가의 저택에도 기사단과 사용인들이 있기에 몇 명을 제외하고 거의 데려오지 않았다.

칠드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훈련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로 델아트에 남았기에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 밖으로 나가자마자 기분 좋은 봄바람이 느껴졌다.

아닌가, 이제 여름이라고 하는 게 옳으려나.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차일드 가의 문양이 찍힌 마차와 함께 기사들이 다가왔다.

“공작님과 공작부인 그리고 공자, 공녀님들을 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사들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들과 함께 온 마차가 엄청 컸기 때문이었다.

말 네 마리가 끌고 있는 마차는 거의 작은 집 수준의 크기를 하고 있었다.

“우와, 마차 엄청 커!”

“수도는 도로가 넓은가 보군요.”

아이들은 신이 나 마차에 올라탔고 나는 기사들에게 묘한 미안함을 느꼈다.

“반가워요, 경들.”

내 인사의 기사들의 표정이 그나마 밝아졌다.

“예,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나는 바리다스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차의 크기가 더 실감이 났다.

아이들과 나, 바리다스까지 모두 타도 자리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바리다스까지 탑승한 것을 확인한 마차가 출발한 그때, 자스민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강아지들 안 탔어!”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내가 자스민을 앉히려는 순간 바리다스가 팔을 뻗어 자스민을 자신을 무릎에 앉혔다.

그의 모습에 자스민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리다스를 올려봤다.

“강아지들 안 탔다니까.”

그런 자스민이 귀여운 것인지 작게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마차에 탔단다.”

“같이 가면 안 돼?”

……강아지들까지 타면 자리가 없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어린 자스민이 그런 것을 알 리 없었다.

“금방 도착하니, 조금만 기다리렴.”

“조금만 참아, 민.”

렌과 바리다스가 같이 타이르자 그제야 표정을 푼 자스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옆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린과 레몬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수도도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네요.”

“수도는 드레스도 예쁘고 도로도 완전 넓구나!”

반응은 완전히 달랐지만 말이다.

서로 다른 의견에 쌍둥이는 서로를 노려봤다.

“같아.”

“달라!”

요즘 들어 레몬과 그린은 투닥거리는 일이 늘었다.

뭐, 애들이야 다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립하고 있는 둘의 표정이 구겨지기 시작했고 나는 팔을 뻗어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만.”

내 행동에 쌍둥이는 말다툼을 더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서로를 노려봤다.

그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만!”

계속해서 서로를 노려보는 둘 때문에, 나는 한 번 더 소리쳤고 그제서야 두 아이는 서로에게서 시선을 땠다.

팔을 거두자 두 아이는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았다.

“사이좋게 지내야지.”

내 말에 두 아이의 표정이 그나마 풀어졌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내 말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러다 사춘기까지 오면 내 말도 안 듣는 거 아니야?

순간적으로 든 불안한 상상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전생에서의 나와 동생들의 사춘기를 떠올리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서 드러났는지 레몬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이제 안 싸울게요.”

레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린도 나를 바라봤다.

“네, 사이좋게 지낼게요.”

자신들이 싸워서 내가 속상해한다고 생각한 것 같기는 했지만, 안 싸운다면 좋은 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이대로 가기로 했다.

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둘의 손을 잡았다.

“정말이지…?”

그런 내 행동에 레몬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린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네, 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을 속인 건 양심에 조금 찔리긴 했지만, 싸우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찔려오는 양심을 외면하던 그때 마차가 멈추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문을 열자, 화려한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델아트에 있는 저택과 정원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새로 단장을 한 것인지 이 저택이 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우리 모두가, 마차에서 내리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무 명 남짓의 사용인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공작님과 공작부인 그리고 공자, 공녀님들을 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번에는 저택을 구경하느라 관심이 없어 보였고 또 나만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무언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쁘네요.”

“우리 집보다 작기는 한데, 여기가 더 예뻐!”

음… 자스민,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아이들이 저택과 정원을 구경하던 그때 뒤늦게 도착한 마차에서 루이와 리리, 라라가 내렸고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개들도 기운을 차린 것인지 눈동자에 생기가 넘쳤다.

그렇게 뛰어놀기 시작한 아이들을 뒤로한 채, 나는 바리다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라스는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와 본 적은 없지만, 설계를 제가 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바리다스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안내해 주고 싶다고요?”

“그런 셈이죠.”

“저야 좋죠.”

아이들도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 그들을 부르려고 한 순간, 루이를 쓰다듬고 있던 레몬이 소리쳤다.

“저희끼리 놀고 있을 테니까, 두 분이서 다녀오세요!”

다 안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동의했다.

아이들의 말에 바리다스는 웃으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렇다고 하네요.”

민망함은 또 나만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바리다스와 둘이서 저택을 둘러보게 되었다.

일 층에는 세 개의 응접실과 현관, 이 층에는 아이들의 방, 그리고 삼 층에 나와 바리다스의 방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리다스는 2층 까지만 설명해준 뒤, 바로 나를 4층으로 데려갔다.

델아트와 마찬가지로 4층은 발코니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원과 연무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로 지은 저택은 델아트처럼 연회장이나 온실로 사용하는 건물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연회장은 아예 없었고 온실은 작은 크기로 저택 한구석에 만들어져 있었다.

사용인들의 숙소도 마찬가지로 다른 건물이었고 그래도 검으로 유명한 차일드가답게, 연무장은 델아트와 비슷할 정도의 크기로 되어 있었다. 

저걸 보니, 칠드런이 따라오지 않은 것이 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건물들의 위치를 대충 설명해준 바리다스는 내 손을 이끌었다.

“이제 3층으로 가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안내를 받은 다음 샤워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바리다스는 계단에서 내려가자마자 보이는 문 중, 가장 커다란 문을 열었다.

“여기가 방입니다.”

그의 방을 둘러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일단 침대가 너무 컸고 화장대가 있었으며 방에서 이어지는 문이 엄청 많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시선을 돌려 바리다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제 방은 어디죠?”

내 질문에 바리다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입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라스 방 말고 제 방이요.”

“그러니까, 여기요.”

두 번이나 쐐기가 박혔고 나는 천천히 바리다스의 말을 되짚어 봤다.

여기는 바리다스 방이니까.

…그러니까.

뒤늦게 바리다스의 말을 이해한 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내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는 내게 다가와 속닥였다.

“부부가 한방을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건 맞는데…!”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데리고 방을 안내해 주었다.

나는 그제야 바리다스가 왜 직접 저택을 설계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바리다스와 내 방에 있는 문은 욕실과 화장실 그리고 바리다스의 집무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내 드레스룸과 집무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거부할 생각도 딱히 없긴 했는데, 이거 완전 거부도 못 할 정도로 열심히 만들어 놨네.

“마음에 들어요?”

방을 모두 안내해 준 뒤, 능청스럽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조금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 말이다.

“아니, 각방 쓰자고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만들었어요?”

조금 놀려주자는 생각으로 불퉁하게 말하자 그는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내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럴 거예요?”

밉다.

거절 못 할 거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거 진짜 밉다….

그리고 거절 못 하는 내가 제일 밉다….

“아뇨….”

“거절했으면 슬펐을 거예요.”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면서, 거짓말쟁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를 살짝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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