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95)화 (95/207)

96. 수도로

그렇게 내가 합방의 충격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린 것은 당연하게도 아이들이었다.

강아지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온 아이들은 바로 바리다스에게 달려갔다.

“오빠, 우리 방 완전 예뻐!”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감사 인사를 하며 말이다.

다 자신들의 방에 만족한 것 같았다.

나는 좀 맘에 안 들지만, 아주 조금 안 들지만. 너희가 좋으면 됐지.

왠지 혼자만 손해를 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는 레몬과 자스민을 동시에 안아 들며 말했다.

“놀이터도 마음에 들고?”

“네!”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고 그러자 바리다스의 얼굴에 아이들과 똑 닮은 미소가 그려졌다.

진짜, 남매 맞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자스민이 바리다스의 옷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안내해 주면 안 대?”

자스민의 말에 아이들 모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고 바리다스는 나를 돌아봤다.

“쉬고 있을래요?”

피곤하긴 했다.

내게는 아이들 같은 젊음도, 바리다스 같은 체력도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나는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자 내 쪽으로 다가온 바리다스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깜짝 놀란 내 얼굴이 붉어졌다.

바리다스는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더니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저녁은 같이 먹어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이제 익숙한 것인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신경 쓰지 말아 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편하게 쉬고 있어요.”

그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로나와 레나를 불렀다.

방을 본 두 사람은 무슨 상황인지 바로 눈치챈 듯했으나, 별말은 하지 않았다.

민망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둘에게서 갈아입을 옷을 받아들었다.

욕실로 들어가자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큰 욕조가 보였다.

다섯 명은 들어가도 되겠는데?

거의 작은 수영장은 되어 보이는 크기에 나는 작게 감탄했다.

근데 나 혼자 이 물을 다 사용해도 되나?

커도 너무 큰 욕조에 양심이 조금 찔려왔다.

“옷이랑 수건만 두고 나가 있어도 괜찮아.”

두 하녀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갔다.

따스한 물에 들어가자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진짜 좋다.

델아트에도 욕조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크지는 않았기에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입욕제도 푼 것인지, 물에서는 좋은 향기까지 나고 있었다.

장미꽃잎은 없어서 다행이다. 그거까지 있었으면 정말로 사치의 끝판왕이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욕조에 몸을 기댔다.

목욕을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자, 커다란 침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시계를 바라보니, 막 세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자도 되려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너무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몸을 눕히자, 처음 느껴보는 푹신함이 내 몸을 감쌌다.

“말도 안 돼.”

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떻게 이렇게 푹신해.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 이런 건가.

저녁까지는 쉬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자도 되겠지.

이렇게 푹신한 침대를 두고 누워있지 않는 것은 침대에게 실례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랜 여행으로 피곤했던 몸은,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예린.”

의식 저편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바리다스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보이는 바리다스의 얼굴에 나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지금 되게 신혼부부 같아요.”

내 말에 그도 작게 웃으며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주었다.

“맞지 않나요?”

“아니, 여러 가지 의미로요.”

“좋네요, 그 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가자,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요리가 마음에 안 든다면 말하렴.”

저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들면, 자르고 다른 요리사를 구한다는 의미 같았다.

…그렇게 막 잘라도 돼?

새로 고용하긴 했겠지만, 나는 이름 모를 요리사에게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바리다스의 말에 먹고 있던 파스타를 삼킨 레몬이 입을 열었다.

“맛은 괜찮은데, 나 피망 싫어.”

그녀의 말에 그린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 또 왜 그래?

그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했고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그린이 입을 열었다.

“애도 아니고.”

하지만 레몬도 지지 않았다,

“너도 당근 다 남겼거든?”

“너는 피망 말고도 다른 거도 안 먹잖아.”

그린의 말에 레몬은 입을 다문 채 그린을 노려봤고 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식탁 위에서 싸우는 거 아니란다.”

바리다스의 말에 그제야 둘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뗐다.

둘의 모습에 내가 한숨을 내쉰 그 순간, 그린이 스테이크를 잘라 레몬에게 내밀었다.

그린 나름의 화해하자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의 모습에 레몬도 기분이 풀린 것인지 얼굴이 펴졌다.

음… 두 사람이 화해해서 다행이긴 한데. 왜 채소 안 먹는 걸로 결론이 나? 편식은 안 되지.

나는 싸움도 편식도 용납할 수 없었다.

“편식하지 말렴.”

나는 다른 접시에 샐러드를 담아 두 아이에게 건넸다.

그들은 군말 없이 접시를 받아 들었지만, 표정이 굳어 있었다.

두 아이가 샐러드를 먹는 것을 확인한 내가 시선을 돌린 그 순간, 자스민의 앞 접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앞 접시에는 완두콩이 쌓여 있었다.

“…민.”

내 부름에 자스민은 내 시선을 피했다.

“이거 내 거 아니야.”

“거짓말은 안 돼.”

“그치마안….”

콩은 먹기 싫은걸, 이라고 덧붙인 자스민은 울먹이며 콩을 내려보았다.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인간적으로 너무 귀엽잖아.

순간적으로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알게 된 이상, 내게는 그것을 바꿔 줄 의무가 있었다.

“안 먹으면 디저트 압수야.”

단호한 내 말에 자스민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머글게요….”

힘없이 말한 그녀는 콩을 먹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토마와 렌을 바라보자 그들의 접시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역시, 너희가 최고야.

그 모습에 묘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애들 챙기지 말고, 당신도 좀 먹어요.”

바리다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담은 접시를 내밀었다.

“그 말… 되게 남편 같았어요.”

“또 여러 가지 의미인가요?”

아까 내가 한 말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셈이죠.”

솔직하게 말해서 아직 결혼했다는 것이 실감이 잘 안 났다.

살기야 원래 같이 살았고 식사도 원래 같이 했으니, 이제 와 뭐가 달라졌다 느낄 게 거의 없지… 않구나.

오늘부터 같이, 같…이….

거기까지 떠올리니 왠지 민망해져 나는 죄 없는 스테이크만 포크로 찌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모습을 바라보던 자스민이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수님,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돼.”

“…맞지. 고마워, 자스민.”

아이들 앞에서 괜한 추태를 부렸다는 사실이 민망했다.

내 포크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스테이크 조각을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그때 바리다스와 눈이 마주쳤다.

“입에 맞나요?”

아직 맛을 못 느꼈는데요.

계속 나를 바라보는 바리다스 때문에 고기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리다스는 내 대답이 느려진 것을 다른 의미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별로인가요?”

“아뇨, 맛있어요.”

내 말에 바리다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름 모르고, 요리 실력도 모르겠는 주방장님 방금 잘릴 뻔했어요.

그러니까, 요리가 맛있길 바라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스테이크를 먹었다.

입 안에 넣자마자, 아까 못 느낀 것이 이상한 만큼 풍부한 육즙과 잘 익혀진 고기가 느껴졌다.

…맛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가 건네준 스테이크를 남김없이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만 이대로라면 같이 방에 들어가야 해?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재와 바리다스의 집무실 등, 여러 가지가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의식이 되었다.

일 층부터 삼 층까지의 계단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문 앞에 도착했고 바리다스는 내게 먼저 들어가라는 것처럼, 문을 열어 주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긴장이 되는지. 그나마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바리다스의 태도에 안심이 되었다.

덜컹.

그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한 것인데, 그 소리에 다시 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 했어야 했다.

문을 닫은 바리다스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

이건 너무 이르지 않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바리다스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출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살짝 눈을 뜨자,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은 그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쉬고 계세요.”

이거 내가 오해한 거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더 민망해졌다.

이렇게 된 거, 방 구경이나 할까.

호화로운 욕조를 보니 다른 곳도 비슷하게 꾸며져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욕실이랑 화장실… 그리고 바리다스의 집무실, 여기가 내 드레스룸.

그럼 여기가 서재이려나?

솔직히 말해 드레스룸은 내 관심 밖이었지만, 서재는 달랐다.

나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읽는 것으로 사용했으니까.

조심스럽게 서재의 문을 열자 책 냄새와 함께, 예쁘게 꾸며진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한가운데에는 소파와 테이블, 스탠드가 놓여 있었고 한쪽 벽면은 완전히 트여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재의 일부가 복층으로 되어 있었고 나선형의 계단은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2층으로 올라가자 작은 소파가 보였다.

나는 허리까지 오는 난간에 기대어 서재를 내려다보았다.

진짜 예쁘잖아.

바리다스가 신경 쓴 것이 느껴져, 더 마음에 들었다.

서재 구경을 마친 나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 낮잠까지 잤음에도 몸은 아직 피곤한 모양이었다. 점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잠에 빠져들었다.

* * *

방 안으로 들어온 바리다스는 잠들어 있는 예린을 바라보다, 안아 들었다.

“내일은 안 봐줄 겁니다.”

어차피 이제, 시간은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예린을 침대에 눕혀준 뒤,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