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쌍둥이의 생일
이른 아침, 레이안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리리안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레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리안에게 물었다.
“왜?”
레이안의 질문에 리리안은 답지 않게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언가 고민이 있는 눈치였다.
그러기를 한참, 답답해진 레이안은 결국 다시 한 번 리리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레이안의 짜증 섞인 닦달에 리리안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일 그린이랑 레몬 생일이잖아. 오빠는 뭐 준비했어?”
준비도 안 했고.
생일인지도 몰랐는데.
하지만 레이안은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거 물어보려고 그렇게 고민한 거야?
조금 의문이 들긴 했으나,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야 뭐, 당일에 케이크 사 가려고 했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리리안은 납득한 것 같았다.
왜 자신은 그걸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탄식하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쉰 리리안은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러면 난 뭘 줘야 하지?”
“그냥 다른 친구들한테 주는 것처럼 주면 되잖아.”
“난… 레몬 말고는 친구 없는데.”
리리안의 말에 레이안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도 토마를 제외하면 친구라 부를만한 존재가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말실수에 자책하며 고민하던 레이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석은 어때?”
“그런 거 안 좋아할 거 같아.”
리리안의 대답에 레이안은 의문을 느꼈다.
레몬이 보석을 안 좋아한다고? 둘이 며칠 전에도 보석상에 다녀오지 않았나? 엄청 사들여서 어머니한테 혼도 났으면서.
하지만 말실수를 한 죄책감 때문인지 레이안은 다른 질문 없이 다음 선물을 고민했다.
“꽃은?”
그의 말에 리리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리리안의 질문에 레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몬이 보석이랑 꽃을 싫어한다고? 그럴 리 없을 텐데.
그때 레이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레몬이 아니라 그린의 선물을 고민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아침부터 자신의 방에 찾아올 정도로 고민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레몬이 꽃과 보석을 싫어할 리 없으니 말이다.
그린이라면 그냥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해다 주면 좋아할 텐데. 뭘 저리 고민하는지.
레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리리안을 바라봤다.
“그냥, 책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그의 말에 리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없는 책이 없어.”
맞는 말이었다.
황실이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공작가도 충분히 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황실 도서관을 털어서 줄 수는 없잖아.”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이안도 리리안과 마찬가지로 책을 제외하면, 그린에게 줄 선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차일드 가의 공통점이,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건데.
케이크는 이미 자신이 주겠다고 말했으니….
잠시 고민하던 레이안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네가 케이크를 선물할래?”
“됐어, 오빠가 생각한 선물을 뺏을 정도로 급한 건 아니야.”
방금 급조한 선물이긴 해.
하지만 레이안은 그 말을 딱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건?”
“그거도 싫어.”
선물은 깜짝 놀라게 해줘야 의미가 있는 거란 말이야.
리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퍼뜩 든 생각에 눈을 반짝인 리리안은 레이안의 손을 붙잡았다.
“오빠, 나랑 선물 사러 가주면 안 돼?”
“응, 안 돼.”
레이안은 동생과 굳이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단호한 대답에 리리안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가 주면, 일주일간 오빠한테 검 배워 줄게.”
리리안의 말에 레이안의 눈이 커졌다.
검을 배운다고? 움직이는 것도 싫어하는 그 리리안이?
나쁘지 않은 조건에, 레이안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주.”
레이안의 말에 리리안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어서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리리안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레이안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디로 가고 싶니, 동생아?”
“일단 나가고 생각할래, 허락은 내가 받아 둘 테니까. 준비하고 나와.”
“그래.”
그렇게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거래를 한 둘은 약속을 잡은 뒤 헤어졌다.
준비를 마친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황궁의 정문 앞에서 마주했다.
두 사람 모두 외출할 때 호위의 최소 인원인 다섯 명의 기사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리코라 거리로 가자.”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리리안은 마부에게 명했다.
리코라 거리는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가게들과 선물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레이안은 이렇게 된 김에, 자신도 함께 레몬과 그린의 선물을 골라야겠다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었고 안에서 내린 리리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많은 가게가 있어, 어딜 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레이안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긴 어때?”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고서 서점이었다.
저곳이라면, 그린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눈을 반짝인 리리안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그렇게 두 사람은 서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서점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하게 되었다.
“제국의 작은 태양과 달을 뵙습니다.”
그린과 렌 그리고 바리다스가 서점에서 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뒤를 따라 세 명의 직원이 엄청난 수의 고서를 들고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리리안은 다시 다른 선물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레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좋은 오후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들 사이에 정적이 흐르던 그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시내에 어쩐 일이십니까?”
“황궁에만 있기 갑갑해서 산책 차 나왔어요.”
대답을 망설이던 레이안을 제친 그녀는 의연하게 질문을 넘겼다.
그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바리다스는 렌과 그린을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희와 동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바리다스의 말에 레이안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거절하지 않을 말이었지만 애초에 수도를 온 것이, 그린의 선물을 고르기 위함이었는데 동행을 하게 된다면 선물을 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니까 그냥 생일 선물로 무얼 받고 싶은지 물어보고 사 주라니까.
레이안은 리리안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바리다스의 재안을 거절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레이안이 입을 열기 무섭게, 리리안이 선수를 쳤다.
“저희야 환영이죠.”
아니, 선물은 언제 고를 건데?
레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리리안을 돌아봤다.
같이 가는 건 상관없었지만 그린한테 안 알려주고 사고 싶다고 한 거 아니야?
하지만 이미 바리다스의 제안을 수락한 이상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도 상관없어요.”
레이안의 말에 바리다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저희는 식사를 하려 했는데, 두 분도 괜찮으십니까?”
“네, 좋아요.”
“저도 좋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 함께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바리다스가 미리 예약해 둔, 티티아라는 음식점에 도착한 그들은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예약했던 인원보다 두 명이나 늘긴 했으나, 티티아의 주인은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와 황녀가 자신의 음식점에 방문해준 것이니 말이다.
그는 속으로 바리다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하며 요리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지만 리리안은 대충 깨작일 뿐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일단 동행하긴 했으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선물 생각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럼 황녀과 태자 저하께서도 내일 참석하시는 거죠?”
대화의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리리안은 자신을 칭하는 렌의 말에 뒤늦게 그녀를 돌아봤다.
내일? 어디를?
내일은 레몬과 그린의 생일 아닌가?
“네, 당연히 참석해야죠. 리리안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리리안이 대화에 집중하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레이안이 빠르게 대답했지만, 리리안은 둘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대체 어딜 가는 거야? 나는 내일 그린이랑 레몬한테 선물 줘야 하는데.
하지만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던 것은 본인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린과 레몬이 매우 좋아할 거예요.”
그린이 왜 좋아해?
리리안이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돌아보자 그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어딜 참석하는데?
하지만 식사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리리안의 의문은 해결되지 못했다.
그렇게 리리안만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티티아에서 나온 그때, 한 남자가 바리다스에게 달려왔다.
그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리다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레이안과 리리안을 바라봤다.
“일이 생겨, 저희는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리다스의 말에 레이안은 편하게 선물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네, 식사 맛있게 잘 먹었어요.”
일단 대답하긴 했으나, 리리안은 괜찮지 않았다.
내일 어디를 가는데.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의문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차가 도착했고 바리다스와 렌은 차례로 마차에 올라탔다.
리리안이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그녀의 앞으로 그린이 다가왔다.
품 안에서 편지를 꺼낸 그는 그것을 레이안과 리리안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이미 황궁에 초대장이 갔을 테지만, 두 분에게는 직접 드리고 싶었습니다.”
작게 웃은 그린은 그들이 초대장을 받아들자, 인사를 한 뒤 마차에 올라탔다.
그제야 뒤늦게 감을 잡은 리리안은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열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 안에는 그린과 레몬의 생일 파티에 둘을 초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은 리리안의 얼굴이 아주 조금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레몬과 그린이 만족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겠다 결심하며 레이안을 돌아봤다.
“빨리 선물 사러 가자.”
방금까지 기운 없더니, 왜 갑자기 또 기운이 넘치는지.
레이안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