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00)화 (100/207)

101. 쌍둥이의 생일

“케이크는 가운데에 두고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잘라주세요.”

나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그린과 레몬의 생일 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둘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아이들에게 새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오늘 있을 생일 파티에는 아이들 또래의 자녀가 있는 귀족들만을 초대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생일 파티이기 때문에 크게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나는 어린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과일 우유가 담긴 유리병을 테이블에 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쳤다.

그때 언제 온 것인지 내 쪽으로 달려온 자스민이 바나나 우유를 하나 집어 들었다.

“나 이거 마셔두 대?”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자스민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를 안아 들었다.

“하나만 마시는 거다?”

“웅!”

자스민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준비를 마친 그린과 레몬이 강아지들과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레몬은 자스민의 손에 들린 바나나 우유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나도 바나나 우유 먹을래!”

조금 있다가 마셔도 될 텐데.

자스민은 오늘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준 것이지만 레몬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주기에는 레몬이 서운해할 것 같았다.

주기도 애매하고 안 주기도 애매한 상황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말에 레몬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레몬의 옆에 있는 그린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린, 너도 마실래?”

내가 묻자, 그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을 두고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챙기는 김에, 렌과 토마의 우유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과일 우유들이 놓인 테이블로 온 나는 유리병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하지만 내 손으로 네 개의 유리병을 동시에 드는 것은 조금의 무리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유리병을 들었다.

조금 위태로워 보이긴 했지만 아무튼 드는 것에는 성공했다.

이제 가져가기만 하면….

그 순간, 가운데에 있던 유리병 두 개가 내 손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내가 반응할 틈도 없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옆으로 커다란 손이 불쑥 들어와 떨어지는 유리병을 낚아챘다.

담겨 있던 우유가 조금 튀긴 했으나, 다행히 병이 깨지지는 않았다.

“조심해야죠.”

작게 속삭인 바리다스는 그대로 내가 들고 있던 유리병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감사 인사를 한 뒤 그의 손을 바라봤다.

한 손으로 두 개의 병을 드는 것도 벅찼던 나에 비해 그는 한 손으로 세 개나 되는 병을 가볍게 들고 있었다.

“그런데 라스, 손 크네요.”

내 말에 작게 웃은 바리다스는 한 손으로 네 개의 병을 들더니 빈손을 내게 내밀었다.

세상에.

바리다스는 유리병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고정시켜 들고 있었다.

저거 그래도 꽤 무섭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가 내민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그의 손은 내 손과 거의 두 마디 이상이 차이가 났다.

그냥 큰 게 아니라 엄청 크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리다스가 맞닿아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더 가져가야 하나요?”

그래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능청스럽게 묻는 바리다스의 질문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개면 충분해요.”

응접실 밖으로 나가자, 언제 온 것인지 렌과 토마도 함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과일 우유를 하나씩 나누어 준 뒤 시계를 돌아봤다.

이제 곧 손님들이 올 시간이네.

“그럼 라스, 자스민 잘 놀아주고 있어요.”

“그래요.”

그의 대답에 나는 미소 지으며 자스민과 바리다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나와 아이들은 연회장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쌍둥이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나뉘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학부모들 사이에 껴,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온 신경은 아이들에게 쏠려 있었다.

당연히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잘 이야기하고 있겠지?

나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아이들 쪽을 기웃거렸다.

그때, 아젠타 백작 부인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부인, 저 음료의 이름은 뭔가요?”

“그러게요. 저희 아이들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순식간에 이어진 질문 세례에 당황하기도 잠시, 나는 아이들이 과일 우유를 좋아한다는 말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생딸기와 설탕 그리고 우유를 섞은 것이 전부인 걸요.”

내 말을 들은 아젠타 부인의 눈이 커졌다.

“그렇군요, 나중에 저도 만들어 줘야겠어요.”

다른 부인들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고 나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과일 우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도중, 이번에는 테란 후작 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수도 사교계에서 꽤나 넓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노부인이었다.

“그런데, 두 분은 자녀 계획이 없으신지요?”

미묘하게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수도 없는 꼰대들에게 당해온 내게는 그렇게 타격이 강하지 않았다.

졸업하면, 취직은 언제 하니. 취직하면, 결혼은 언제 하니.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니.

어른들이 꼭 하는 질문의 마지막 단계이니 말이다.

나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아이들 쪽을 바라봤다.

다행히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저 질문에서 어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때 되면 알아서 하겠죠.”

라고 말한 뒤 나는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국에서는 저렇게 말하면 잔소리만 듣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상당히, 무례한 질문이었어요. 테란 후작 부인.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구겨진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리리안과 레이안이 안으로 들어왔다.

샹들리에 아래, 화려하게 반짝이는 백금발의 자태에 연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도착이 늦길래, 안 오는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이렇게 참석해 주다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두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제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은 두 아이는 입을 열었다.

“초대를 받았다면, 당연히 참석해야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게 인사를 마친 두 아이는 바로 레몬과 그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아필레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공작부인!”

아니, 아필레까지?

반가운 마음에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본 내 표정은 바로 굳어 들어갔다.

그녀의 뒤에 양손 가득히 선물을 든 명의 하인들이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아필레의 선물 공세는 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공자와 공녀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다 사 왔어요.”

와, 저 대사 멋지긴 한데… 직접 들으니까 좀 부담스럽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내 대답에 환하게 웃은 아필레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당연히 이 정도는 해주어야죠.”

그녀의 말에 고맙다는 생각과 동시에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필레에게는 정말로 너무 받기만 한 거 같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필레의 손을 잡았다.

“가지고 싶은 거 미리 생각해 놓으세요.”

내가 다 사 줄 테니까.

하지만 내 말에 아필레는 웃음을 터트릴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 농담 아니라 진심인데. 말 안 하면, 황실 빼고 다 사 줘버리는 수가 있어.

“다른 건 필요 없고, 지난번에 받은 레몬청이 먹고 싶네요.”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아필레의 말에 나는 결심했다. 내일 바로 레몬청을 만들어서 아필레에게 보내주기로 말이다.

“알겠어요.”

“벌써 기대되네요!”

내 말에 아필레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아니, 저렇게 많이 주고 레몬청에 기뻐하지 말라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필레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하지만 피오라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다른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렌과 토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그린과 레몬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선물 공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유일하게, 레몬만이 다른 아이들과 친구가 될 생각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다른 아이들과 말을 터고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그린은 이 와중에도 글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의외로 또래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였는데 정작 당사자는 매우 귀찮아 보였다.

그는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계속해서 건드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무슨 책 읽는 거야?”

“물리학이론.”

“되게 어려워 보인다.”

“딱히.”

이런 식의 대화만 네 번째였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와준 것은 고맙지만, 그는 이미 선물을 준 사람과 참석해 준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린은 왜 자신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린의 어깨를 건들어 또 그의 집중력을 깨뜨렸다.

조금의 짜증을 느끼며 그린이 고개를 든 순간, 환하게 웃는 리리안의 얼굴이 들어왔다.

“생일 축하해.”

그녀의 손에는 작은 선물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 순간, 그린은 왜인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감사합니다.”

파티가 시작된 뒤로 처음 보는 그린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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