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03)화 (103/207)

104. 드미트르

이른 아침, 자스민은 자신의 얼굴을 핥는 라라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언니 방에서 있어야 할 라라가 왜 여기 있지?

라고 생각하며, 자스민이 주위를 둘러보자 바로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렌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맞다. 어제 언니 방에서 잤지.

렌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침대에서 일어난 자스민은 라라를 돌아봤다.

“라라, 우리 산책 할까?”

작게 소곤거리자, 라라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작게 ‘멍’하고 짖었다.

자스민은 라라에게 목줄을 채운 뒤, 그녀와 함께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둘은 정원에 도착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꽃은 대부분 시들어 가고 있었다.

“꽃들도 춥나 봐.”

그때 자스민의 눈에 단풍나무 아래 책을 읽고 있는 드미트르의 모습이 들어왔다.

큰오빠야 손님분… 이던가?

자스민은 나름대로 나무 뒤에 숨어 그의 모습을 바라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미트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헉. 인사를 드려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자스민은 천천히 드미트르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때 바람이 불어왔고 드미트르가 마시고 있던 박하 차의 향이 자스민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 향을 느끼며 킁킁거린 자스민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큰오빠야랑 같은 향이 나요.”

그녀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드미트르는 찻잔을 하나 더 가져와 자스민에게 따라주었다.

“마셔보겠니?”

그의 말에 자스민은 잠시 고민했다.

바리다스가 따라 준 차를 예전에 마셨을 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자스민은 사양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차를 받아들었다.

고민하던 것과는 다르게 자스민은 망설임 없이 차를 들이켰고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맛있어!”

그녀의 반응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드미트르는 그녀에게 쿠키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내밀었다.

견과류가 박힌 쿠키를 본 자스민은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오물거리며 고개를 저은 자스민은 쿠키를 다 먹어 치운 뒤 입을 열었다. 

“아직이여.”

그녀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드미트르는 쿠키가 담긴 바구니를 빼앗았다.

자스민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바구니를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식사를 하고 오시면, 그때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자스민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침 떠오른 생각에 자스민은 드미트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식사하셨어요?”

“저도 아직입니다.”

그의 말에 자스민은 환하게 웃으며 드미트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저랑 같이 드실래요?”

자스민의 말에 드미트르의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네, 저야 영광이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라라에게 밥을 준 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쌍둥이와 토마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드미트르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려 하자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드미트르의 눈치를 봤다.

그 사실을 눈치챈 드미트르는 식사를 대충 마친 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아이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더 드시고 가세요.”

“저희 주방장 요리 잘해요.”

아이들에게 드미트르는 피오라에 이은 두 번째 손님이었다.

눈치가 조금 보이긴 했으나, 아이들은 피오라만큼이나 드미트르가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리다스의 손님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자스민은 어설프게 자른 고기 조각을 접시에 담아 드미트르에게 내밀었다.

“더 먹구 가여.”

귀여운 모습에 드미트르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자리에 앉게 된 그는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자스민으로부터 시작된 요리 추천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이어졌다.

아이들 모두,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드미트르에게 권유했고 그들이 자신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드미트르는 아까보다 편하게 식사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때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토마였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드미트르에게 인사를 한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식당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보며 레몬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좀 먹고 가지, 검이 그렇게 좋은가.”

그녀의 말에 드미트르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토마와 바리다스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리다스도 토마와 마찬가지로 항상,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연무장으로 향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모두 어딘가 바리다스와 닮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바리다스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 드미트르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 사이의 분위기가 아까보다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드미트르가 자스민과 함께 나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레몬이 그를 붙잡았다.

드미트르의 팔을 붙잡은 채 한참을 망설이던 레몬은 입을 열었다.

“옛날 이야기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의 질문에 드미트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사라면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형아가 어릴 때 얘기요.”

하지만 이어진 그린의 말에 드미트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들어주신다면, 저야 언제나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드미트르 그리고 강아지들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드미트르가 아는 바리다스는 어릴 때부터 무척 어른스러웠기 때문에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아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도련님이 라이온 아카데미에 다니실 때는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지요.”

라이온 아카데미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 모두의 눈이 커졌다.

최근 들어 아이들은 아카데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 이유는 그린과 레몬의 생일 파티 때 사귄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그날 처음으로 아카데미라는 곳에 대해서 들었는데, 그때 이야기를 꺼낸 친구들 대부분이 라이온 아카데미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들에게 들었다.

라이온 아카데미는 입학도 힘들고 배우는 것도 수준이 높은 데다가, 졸업 시험은 어렵기로 유명하다고 말이다.

그런 아카데미에서 한 번도 수석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니.

안 그래도 높던 바리다스를 향한 아이들의 존경심이 다시 한번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형아는 무슨 부였어요?”

“검술부와 정치학부, 두 가지를 병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아이들은 또 놀라고 말았다.

두 개의 학부에서 수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르는 뿌듯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두 학부 모두에서 수석이셨습니다.”

그의 말에 그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여러 가지 학부 중에 역사부를 선택했다.

가고 싶은 학부는 많았다, 하지만 차일드 가의 이름으로도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역사반에 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두 가지 학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장 가고 싶은 곳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를 포기하려 했을 뿐.

하지만 드미트르의 이야기를 들은 그린은 결심했다. 자신도 정치부와 역사부를 동시 전공하겠다고 말이다.

“나도 오빠처럼 되고 싶어.”

이어진 레몬의 말에 그린은 묵언으로 동의했다.

렌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우리 오라버니 대단하다.”

“멋있는 분이십니다.”

그때 들려온 웃음소리에 아이들과 드미트르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그 자리에는 얼굴이 붉어진 바리다스와 웃고 있는 예린이 서 있었다.

* * *

조금 전, 식사를 마친 나와 바리다스는 정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아이들과 드미트르의 목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아카데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사이좋아 보여 나는 바리다스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렇게 흐뭇하게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와중 드미트르와 아이들은 갑자기 바리다스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굉장했다. 아카데미 수석과 두 학과 복수 전공, 모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과 드미트르의 찬양이 이어질수록 바리다스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웃지 마세요.”

민망한 것인지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고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아이들은 나와 바리다스에게 달려왔다.

그들의 모습에 바리다스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립튼 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구나.”

드미트르 씨의 성이 립튼이구나.

아이들 앞이기 때문인지, 바리다스는 드미트르 씨를 평소와 다르게 존칭을 사용해 불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그에게 질문 세례를 던졌다.

“아카데미 입학시험 많이 어려워요?”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란다.”

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그린도 입을 열었다.

“정치부랑 역사부를 동시에 전공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아니지만, 세 개까지 전공한 사례도 있으니 할 수 있을 거야.”

바리다스 같은 천재도 두 학부를 전공했는데 세 개 학부를 동시 전공한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뭐지?

그렇게 아이들과 바리다스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사이좋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드미트르 씨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들과 놀아 주셔서 감사해요.”

“오갈 곳 없는 늙은이를 받아준 아이들이 착한 것이지요.”

조금 슬프다는 생각을 한 그때, 아이들이 드미트르 씨에게 달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이야기 더 해주세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미소 지었다.

드미트르 씨가 아이들의 곁에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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