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08)화 (108/207)

109. 할아버지

서재로 들어온 드미트르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잠들어 있는 세 마리의 강아지였다.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강아지들에게 기대어 책을 읽고 있던 그린과 눈이 마주쳤다.

강아지들 사이에 파묻혀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드미트르의 모습에 그린은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입니다, 도련님.”

“네, 그러네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그린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에게 일말의 관심도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그린의 모습에 드미트르는 내심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라면 아무래도 안심하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에서 적당한 제목의 책을 골라 소파에 앉았다.

서재는 조용했다, 두 사람 모두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사락거리며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꺼내 온 책을 모두 읽은 드미트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드미트르의 눈에 아직까지도 책에 집중하고 있는 그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대단한 집중력이군.

드미트르는 내심 감탄하며 그린을 바라봤다.

잘 생각해 보니, 바리다스를 포함한 아이들 모두가 또래보다 뛰어나고 성숙한 것 같았다.

도련님을 아주 쏙 빼닮았어.

드미트르는 그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책을 원래 자리에 꽂은 그가 문고리를 당긴 순간, 그린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

때문에, 드미트르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자리에 멈춰 섰다.

별일이 아니길 바라며, 그는 그린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련님”

드미트르의 말에 그린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울티아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해 아시나요?”

울티아 반도의 전쟁은 오백 년 전 일어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트로티아와 헬린이라는 두 나라 간의 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육십 년 가까이 진행되었고 지금까지 기록되었던 전쟁 중 가장 길었기에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그리고 그 전쟁이 유명한 이유에는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그 전쟁을 끝낸 사람이 평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데서 헬린, 작은 마을에 살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전쟁통에 태어난 그의 삶은 시작부터 평탄하지 못했다.

전쟁터에 끌려간 아버지는 얼굴조차 뵌 적이 없었고 어머니는 매일 공장에 내려가 일을 하고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아데서는 글도 떼지 못한 어린 나이에 결심했다.

자신이 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성인이 된 그는 바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없었던 아데서는 마나를 담은 검을 부리는 최초의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하지만 무력만으로 어찌 전쟁에서 이기겠는가, 아데서의 뒤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이든이라는 이름의 전략가였다.

그는 정치와 연변에 능했으며 전술과 계략 또한 뛰어났던, 재상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내였다.

후에 학자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든이 아니었다면 아데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때를 노렸다. 자신들의 나라가 완전히 무너질 때를.

그리고 그들은, 헬린의 국왕이 항복 선언을 한순간 그의 목을 베고 트로티아의 남은 병사들을 쓸어버렸다.

승리에 도취되어 있거나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무장한 아데서의 병사들에게 쓰러져 나갔고 그는 그렇게 트로티아 왕의 목까지 베어냈다.

육십 년간 이어진 전쟁이 막을 내리는데 걸린 기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허무할 정도로 짧은 결말을 뒤로하고 아데서가 황제가 되며, 역사가 끝나나 싶었는데.

아데서는 왕관을 써보지도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이든이 그를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아데서는 뛰어난 검사는 맞았으나, 한 나라를 이끌어갈 왕의 재목은 아니었다.

그는 멍청했고 방탕했으며 글씨조차 똑바로 쓰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든은 두 나라를 통일한 뒤 종전을 선언했다. 왕이 된 것이었다.

그 나라는 계속 성장을 이어나갔고 이든은 결국 제국이라 불릴 정도의 국가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바로, 데이먼이었다.

하지만 역사서에 이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다. 

아무리 아데서가 멍청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든의 주군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초대 황제가 주군을 배신하고 그의 목을 벤 것이었다.

그랬기에 데이먼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일부 학자들만이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아데서가 전쟁해서 전사했기 때문에 이든이 황제가 된 것으로 묘사하고는 하죠.”

드미트르가 이야기를 끝내며 덧붙였다. 그린은 처음 듣는 전쟁의 속사정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역사 왜곡이 실제로도 존재했군요.”

“이것 말고도 몇 가지의 사례가 더 있습니다.”

그의 말에 흥미를 담은 그린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다른 것도 들려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그린에게 붙잡힌 드미트르는 몇 가지의 사례를 알려주었고 그럴 때마다 그린은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드미트르는 쏟아지는 그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을 내놓았다.

그린의 질문은 세계사 역사를 넘어 도덕과 정치학까지 넘나들었지만 대부분 드미트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이 드미트르를 보는 시선은 존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린은 어린 나이치고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드미트르는 꽤나 즐겁게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정치학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그때 서재의 문이 열리고 레몬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린, 저녁 먹어야지. 우리 말고 다 모였어.”

그녀의 말에 그린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린은 드미트르의 팔을 잡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교수님도 같이 가셔야죠.”

그린의 말에 드미트르가 무언가 잘못됨을 직감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이번에는 교수님인가….

이제는 반박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아 가만히 보고만 있자 레몬이 드미트르의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맞아요, 같이 가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얼마나 듣기 좋은 호칭인가.

그는 레몬에게 묘한 감사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드미트르는 그렇게 쌍둥이의 손을 잡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레몬의 말대로 먼저 와 있는 바리다스와 토마, 렌 그리고 자스민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피오라는 자리를 비운 듯 보이지 않았다.

“좋은 저녁입니다.”

드미트르의 인사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모든 사람이 도착하자 요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고 식사가 시작되려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린 레몬이 입을 열었다.

“근데 왜, 형수님은 안 계셔?”

서빙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로 한 모두가 모이면 시작됐다.

훈련 때문에 오는 시간이 매일 다른 토마를 제외하면 말이다.

레몬의 질문에 자스민의 스테이크를 썰어주고 있던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아침 일찍 신전에 가셨단다.”

바리다스는 그렇게 말하며 정갈하게 썰린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자스민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자스민은 포크로 고기 하나를 집어 바리다스에게 내밀었다.

“고마어!”

그 모습에 작게 웃은 바리다스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고맙구나.”

그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은 자스민은 다시 한번 포크로 스테이크를 집더니 드미트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에게 스테이크를 내밀었다.

“할아버지도 하나 먹어요!”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당황한 드미트르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 자스민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결국 드미트르는 얼굴을 아래로 내려, 자스민이 내민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받아먹었다.

“…감사합니다.”

드미트르의 대답에 환하게 웃은 자스민은 그제야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식사가 끝이 나자, 아이들의 앞으로 디저트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고 렌은 그중 마들렌을 집어 드미트르에게 내밀었다.

“이거 엄청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그가 대답한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그의 앞으로 또 다른 접시가 내밀어졌다.

“이거도 맛있어요.”

그가 시선을 옮겨 초코 타르트가 담긴 접시의 위를 바라보자 웃고 있는 토마가 눈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린이 그에게 차를 따라 내밀었다.

드미트르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바라본 순간, 그린이 입을 열었다.

“이거도 같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드미트르는 포크를 들고 아이들이 건넨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고 그들은 디저트를 먹는 둥 마는 둥 드미트르에게 모든 신경이 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드미트르는 그들이 건넨 디저트를 먹으며 생각했다.

어린 도련님들과 아가씨는 귀엽긴 하지만 자신에게는 많이 과분한 친절이라고 말이다.

그가 디저트를 모두 다 먹은 것을 확인한 아이들은 동시에 소리쳤다.

“스승님, 소화도 할 겸 대련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선생님, 제 연주 조금만 봐주세요.”

“교수님, 저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세 아이는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드미트르를 바라봤다.

그에게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본 레몬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스민을 바라봤다.

“우리는 강아지들이랑 산책이나 하자.”

그렇게 두 아이는 나가버렸고 식당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싸우지 않는 점은 칭찬할 만했으나,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드미트르는 바리다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바리다스는 이 상황이 재밌는 듯 그를 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드미트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토마, 대련은 나랑 하자꾸나.”

그의 말에 토마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리다스와 함께 식당을 나가며 그는 드미트르를 바라봤다.

“다음에는 꼭 대련 해 주셔야 해요!”

그렇게 한 명이 떠나갔고 이제 남은 건 그린과 렌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가 원하는 건, 동시에 해 줄 수 있었다.

귀랑 머리를 동시에 쓰면 되니 말이다.

그 정도야, 아직 할 수 있었다.

“동시에 두 분을 도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의 말에 두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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