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바리다스의 휴일
“일하고 있는데 제가 방해한 건 아니겠죠?”
내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는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런 방해라면, 언제나 환영이죠.”
능청스러운 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다행이네요.”
“네,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 있나요?”
바리다스의 질문에 나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바리다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황실 가족은 다 함께 번화가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아필레는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며 내게 말했다.
신혼인데, 잠깐이라도 둘이서 시간을 보내라고.
내 말에 바리다스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참, 감사한 말씀이군요.”
“황후마마껜 항상 고마울 따름이죠.”
나는 속으로 황제도 우리 아필레한테는 아깝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데이트인데, 가고 싶은 곳 있나요? ”
나는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자고로 데이트란 영화관, 밥, 카페의 반복이 아니었나?
하지만 세 가지 모두 지금 당장은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영화는 시간이 부족했고 식사를 할 예정이었기에 카페도 별로인 것 같으니 말이다.
그때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을 눈치챈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쇼핑은 어때요?”
그는 마침 바로 앞에 있던 보석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보석 가게에 간다면 분명 내 보석만 사서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나와 그 모두 즐길 수 있는 서점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바리다스가 선수를 쳤다.
“넥타이핀과 커프스단추가 필요한데, 예린이 골라주면 기쁠 거 같아요.”
바리다스가 내가 골라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다고?
이거 완전… 부부 같잖아.
정확히는 넥타이핀이었으나 그런 사소한 건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골라줬다는 거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넥타이까지 골라줘도 되나요?”
진지한 내 말에 바리다스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야 좋죠.”
내일 아침에는 내가 넥타이도 매 줘야겠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보석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우리가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가게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붉은 눈을 보고도 모르는 게 이상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에게 팔짱을 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볼을 붉히는 종업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생긴 건 인정하는데 내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떨어진 남자 직원에게 다가갔다.
“넥타이핀과 커프스단추를 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바리다스의 미모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직원은 붉어진 얼굴로 넋을 놓고 우리를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안내는 좀 해 주세요.
“저기요?”
그렇게 종업원은 내가 두 번이나 더 부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네! 금방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잘생긴 남편을 둔 건 힘들구나. 그만 좀 잘생겨 봐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종업원의 뒤를 따라가고 있던 그때, 잡고 있던 바리다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 사실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리다스를 올려다보자 그가 내 쪽으로 얼굴을 내리고 속삭였다.
“그만 좀 예뻐요.”
뭐, 뭔데?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내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그건 내가 할 말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일을 하며 바리다스를 힐끗거리는 종업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기도 이러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도착한 것인지 앞서나가고 있던 종업원이 뒤를 돌아봤고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여기입니다.”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수줍게 말한 종업원이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설마 나 때문이었어?
그제야 바리다스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거, 질투하는 거지? 그렇지?
왜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내가 그의 팔을 잡아당기자, 눈치 빠른 바리다스답게 그는 내 쪽으로 머리를 내려주었다.
“방금 그거, 질투예요?”
내 질문에 바리다스는 눈썹을 찡그렸다.
민망한 것인지 붉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쉰 그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네.”
바리다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떨어졌지만 그의 숨결이 닿은 귓가가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붉어진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은 바리다스는 여유를 되찾고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내 눈에 예쁘게 세공된 커프스단추들이 들어왔다.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보석이 번쩍거리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줘요.”
바리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넥타이핀들을 살펴보았다.
붉은색은 당연히 사야하고 검은색도 잘 어울릴 것 같고 파란색도 예쁘고….
아니, 다 잘 어울릴 것 같아!
이런 말이 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그 이론대로라면 바리다스에게는 안 어울리는 옷이나 장신구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다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떡해요?”
한참을 고민하다 울상이 되어버린 내가 입을 열자 바리다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전부 산 다음에 매일 예린이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주는 거예요.”
아니, 그래도 돼? 물론 나야 좋지만….
나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아마 전생이었다면 이런 보석은 일 년 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었겠지.
그렇게 망설이던 나는 결국 눈 감고 딱 한 번만 과소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좋아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업원을 불렀다.
그리고 그는 푸른색의 넥타이핀과 커프스단추가 든 상자 하나만을 남기고 모두 공작가로 배송시켰다.
바리다스는 그 상자를 집어 들고 내게 내밀었다.
“이건, 지금 채워주세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커프스단추를 들었다.
근데, 이거 어떻게 끼우는 거지?
생전 처음 보는 형식의 단추에 나는 바리다스의 소매를 잡고 낑낑거렸다.
그때 내 손에서 단추를 빼앗은 바리다스가 몸을 틀어 나를 품 안에 가두었다.
그 상태로 옷의 소매를 돌린 그는 내게 소매를 붙잡게 한 뒤 한 손으로 손쉽게 단추를 매달았다.
“이렇게.”
하지만 내게는 그의 설명이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저런 자세로 가르쳐 주는데,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바리다스는 나를 놓아줄 생각 또한 없어 보였다.
“할 수 있겠어요?”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가 신경 쓰여서 집중 못 했다고 어떻게 말해!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남은 커프스단추를 들었다.
이렇게 하던가?
바리다스의 품에 갇힌 자세 그대로 그의 소매를 잡고 최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손을 움직이자, 손쉽게 단추가 들어갔다.
그의 소매에서 반짝이는 커프스단추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넥타이핀 차례였다.
커프스단추에 비해 넥타이핀은 그냥 꽂으면 되는 형식이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내가 넥타이핀으로 손을 움직이던 그때, 바리다스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아직도 그의 품에 갇힌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는데?
팔에 힘을 주자 그는 별 저항 없이 손을 놓아주었다.
자유로워진 내가 뒤를 돌아보자 웃고 있는 바리다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부터 골라줘야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보석 가게잖아요.”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 여러 종류의 넥타이가 진열되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한번 권력의 무서움을 느꼈다.
그래… 네가 하라면 보석 가게에서 넥타이 가게 되고 그러는 거겠지.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나는 죽을 때까지 그의 권력 남용에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검은색의 넥타이를 고르자 바리다스는 내게 다가와 겉옷을 벗고 하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
다행히도 나는 넥타이를 꽤나 예쁘게 묶을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남동생들 때문이었다.
내 동생 놈들은 넥타이를 못 묶어도 너무 못 묶었고 그럴 때마다 신경이 쓰인 내가 결국 묶어주고는 했다.
결국 그 덕을 보긴 보는구나.
워낙 원수 같은 놈들이지만 오늘따라 조금 그리웠다.
나는 예쁘게 묶인 넥타이에 핀을 채우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미소 지었다.
“됐어요.”
거울을 통해 넥타이를 확인한 바리다스 또한 내 실력에 조금 놀란 듯했다.
“고마워요.”
그의 말에 내가 뿌듯한 미소를 지은 그 순간 바리다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가 또 남았나?
나와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선 바리다스는 자신의 조끼를 가리키며 넥타이를 내게 내밀었다.
“넣어 줘야죠.”
정말 예상치도 못한 말에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내 손에 넥타이까지 들려주는 친절함을 선보였다.
결국 나는 마지못해 한쪽 손으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조끼를 붙잡고 반대쪽 손으로 넥타이를 밀어 넣었다.
최대한 그에게 닿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넥타이를 넣자, 위쪽에서 바리다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진짜 끝이다.
그가 말한 대로 넥타이까지 넣어 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에게서 두 발자국 멀어졌다.
“이제 갈까요?”
하지만 내 두 발자국보다 넓은 폭으로 두 번을 걸어 가까이 다가온 바리다스는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직 살 게 더 남아 있어요.”
또 뭘 사려고?
왜인지 불안해지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