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바리다스의 휴일
바리다스가 이번에 향한 곳은 여성들의 장신구를 파는 곳이었다.
그는 수많은 종류의 목걸이 중 푸른색의 목걸이를 들더니 내게 가져다 대고는 미소 지었다.
“잘 어울리네요.”
아니 당신 것만 사는 거 아니었어요?
하지만 내 의문이 담긴 눈빛에도 바리다스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내게 목걸이를 채워 주려 할 뿐이었다.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바리다스의 모습에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손목을 비트는 것으로 내 손에서 쉽게 탈출한 바리다스는 결국 내게 푸른색의 목걸이를 채워 주었다.
“제 것을 당신이 골라줬으니, 저도 당신 것을 골라줘야죠.”
무언가 그에게 속은 기분이었다.
그 생각이 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모양인지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는 다시 진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래야 쌤쌤 아닌가요?”
서, 설마.
그의 말에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리다스는 내가 말리기 무섭게 진열대의 끝과 끝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전부 다, 당신에게 어울리네요.”
이어서 나올 말이야 뻔하지 않은가.
나는 빠르게 달려가 바리다스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최대한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는 하나면 충분해요.”
하지만 바리다스는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장난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이 건물 하나?”
“라스!”
내 부름에 바리다스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맑고 시원한 웃음소리였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바리다스는 표정을 관리한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이걸로 만족할게요.”
그의 말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쇼핑이 끝이 났고 우리는 다시 세이프로 향했다.
다 함께 이 층으로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있던 아이들과 아필레, 아킬레스의 모습이 보였다.
“데이트는 잘하고 왔나?”
바리다스의 옆자리에 자리 잡은 아킬레스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둘은 나름대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언제 온 것인지 아필레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덕분에 잘 쉬다 왔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필레에게는 정말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내 목에 걸린 목걸이로 향했다.
목걸이의 디자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그새 눈치챈 것인지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때군.”
그녀의 말에 내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뭐가 좋을 땐데요?”
그리고 그때, 어느새 다가온 레몬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우리는 누구도 먼저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그 순간 다행히도 뒤이어 다가온 그린이 레몬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른들 방해하지 말고 이리 와.”
그렇게 두 아이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듯하다 멈추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교수님!”
오늘 식사의 마지막 손님, 드미트르 씨가 도착한 것이었다.
아킬레스와 아필레의 정체를 파악한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제국의 태양과 달,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드미트르 씨를 처음 뵙는 것 같은 아필레와는 다르게 아킬레스는 그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드미트르 씨에게 다가간 아킬레스는 그와 마주하며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
“오랜만이군, 립튼 경. 생각보다 정정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의 말에 드미트르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군요.”
“내 기억 속 그대는 언제나 기사이니까.”
“전부, 과거의 영광일 뿐입니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 속 둘의 대화가 끝나가던 그때 레이안이 끼어들었다.
“저는 레이안 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저와도 대련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레이안은 토마에게서 드미트르 씨에 대한 것들을 들은 듯했다.
아니,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레이안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 리 없었으니까.
“레이안, 어른들이 대화 중일 때는 끼어들면 안 되지.”
“죄송해요.”
레이안의 시선은 아킬레스의 말에도 여전히 드미트르 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드미트르 씨와 검을 맞대고 싶은 모양이었다.
레이안의 말에 드미트르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말씀도 있으시니, 제가 황궁으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드미트르의 말에 레이안은 환하게 웃었고 한숨을 내쉰 아킬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귀빈으로 모시지.”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었고 준비되었던 요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크림 스프부터, 다진 고구마와 리코타치즈가 올라간 샐러드, 감자튀김과 부드러운 스테이크까지.
심지어 준비된 음료수들도 과일 우유들이었다.
바리다스는 아무래도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모양이었다.
그의 노력에 보답하듯 아이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림 파스타와 칠면조 구이를 포함한 요리들이 더 나오기 시작했고 바리다스는 그중 잘 구워진 연어 스테이크를 아킬레스에게 건넸다.
“이건 꼭 드세요.”
그의 말에 아킬레스는 접시를 노려보았다.
“내가 못 먹을 것 같아?”
“네.”
비웃음과 함께 이어진 바리다스의 단호한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아킬레스는 연어 스테이크를 모두 먹어 치웠다.
가니쉬로 올라가 있던 아스파라거스까지 모두.
그리고는 자신만만하게 바리다스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아필레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보면 애를 셋 키우는 기분이라니까.”
그녀의 말에 어머니가 떠오른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도 자주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애를 넷 키우는 것 같다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오늘따라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도 바리다스 같은 사위가 생긴 것을 알게 된다면 기뻐할 텐데.
이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는 게 서글플 따름이었다.
내가 전생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있던 그때 내게 포크를 든 작은 손이 내밀어졌다.
“형수님, 이거 머거.”
자스민이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내게 스테이크를 권하고 있었다.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내가 그것을 받아먹자 자스민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필레도 내게 파스타 접시를 내밀었다.
“파스타가 맛있게 잘 되었네.”
아필레의 말대로, 예쁘게 담긴 크림 파스타는 나를 유혹하듯 부드러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접시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내 말에 아필레는 미소 지었다.
아필레가 건넨 파스타는 확실히 맛있었다.
다른 요리들이 많기 때문인지 파스타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접시를 다 비우고도 여운이 남는 진한 크림의 맛 때문에, 내가 입맛을 다시던 그때 바리다스가 내게 샴페인이 든 잔을 내밀었다.
“한잔해요.”
예쁘게 빛나는 금빛 샴페인의 자태에, 나는 침을 삼켰다.
이거, 설마 술인가?
나는 기대를 잔뜩 담아, 바리다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술이에요?”
기대가 가득 담긴 내 말에 바리다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잔을 가져와 내게 맞대었다.
짠, 하며 영롱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아주 약한.”
그의 말에 나는 조금 실망한 눈치가 되었다.
확실히 비싼 술이라 그런 것인지 맛은 있었지만 바리다스의 말대로 그렇게 진한 알코올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때 퐁, 소리와 함께 와인을 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필레가 와인을 잔에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커다란 두 개의 잔에 와인을 따른 아필레는 그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자네도 한잔하게.”
그녀의 말에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아필레는 차마 말리지 못하는 바리다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나는 딱 봐도 도수 높은 와인을 손에 넣게 되었다.
아필레와 잔을 부딪친 나는 최대한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며 한입에 와인을 들이켰고 그런 내 모습에 아필레와 아킬레스의 눈이 커졌다.
“맛있네요!”
내 말에 아필레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나와 똑같이 한 번에 와인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는 반쯤 빈 병을 잡고 흔들었다.
“한 잔 더 하겠나?”
나야 좋았지만, 이 이상은 주량이 넘어갔다.
그 때문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아필레는 내가 바리다스의 눈치를 본다 생각한 것인지 내 잔에 다시 한번 와인을 따라 주었다.
“눈치 보지 말고 마시게.”
아니, 그 눈치를 본 게 아니긴 해요?
나는 결국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차마 여기서 잠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주량이 약해서요.”
내 말에 아필레는 믿기지 않다는 듯 바리다스를 돌아봤다.
그녀는 마치, 두 잔 마시고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듯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두 잔 마시고 취하는 사람. 근데 저도 더 마시고 싶어요!
속으로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나와는 달리, 아필레는 내 주량이 두 잔인 것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공작, 어떻게 주량이 두 잔일 수가 있나. 너무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네.”
아무래도 아필레는 바리다스가 내게 눈치를 준다 생각한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바리다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 두 잔이에요.”
내 말에 아필레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나도 안 믿겨. 어떻게 사람 주량이 두 잔이냐고!
“두 잔 이상 마셔 버리면, 잠들어서… 여기까지만 마셔야 할 것 같아요.”
심지어 주사도 잠드는 것이었다.
차마 이곳에서 그런 추태를 부릴 수 없었기에, 나는 결국 잔을 내려놓았다.
“그렇군, 오해해서 미안하네. 공작.”
“괜찮습니다.”
아필레의 사과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필레에게 건넨 와인을 마셔 버린 뒤, 거기에 샴페인을 따라 내게 내밀었다.
“이건 더 마셔도 괜찮아요.”
…나도 검술이나 배울까.
마나를 사용하게 되면 나도 알코올 해독 능력 생길 거 아니야.
나도 술 마시고 싶어!
그렇게 내가 눈물에 찬 샴페인을 들이키던 그때, 드미트르 씨가 내게 다가왔다.
“공작부인, 잠시 손을.”
고개를 갸웃거린 내가 그의 손을 붙잡자, 순식간에 취기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깜작 놀란 내가 드미트르 씨를 바라보자 그는 허허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는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드미트르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라고 있는 성력이 아닐 텐데요.”
“이 정도는 괜찮다네.”
드미트르의 말에 바리다스는 한숨을 내쉬고 내게 와인을 따라 주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 와인을 마실 수 없었다.
내가 드미트르 씨를 무리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담 가지지 마요, 저 사람은 성력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몸에 무리 가시면 어떡해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저었다.
“성력은 마나와 별개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성력을 사용하며, 검술에도 능하고 렌이 인정할 정도로 악기를 연주하며 역사에도 통달하다니.
대체 드미트르 씨는 뭐 하시는 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