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15)화 (115/207)

116. 가족 나들이

“형수님, 근데 오빠야랑 싸웠어?”

바리다스와 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스민이 물었다.

내가 바리다스를 피하는 모습이 자스민에게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걱정하지 마렴.”

내 말에 자스민은 바로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싸우지 마.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지.”

의젓한 자스민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알았어.”

내 대답에 자스민은 환하게 웃어 보이며 반대편에서 걷고 있는 렌을 불렀다.

“언니, 거기는 길이 아니야.”

렌은 길이 아니라 낙엽을 치워둔 곳으로 걷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낙엽을 밟는 소리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자스민의 말에 낙엽 위에서 뛰어내린 렌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낙엽은 처음 밟아보는데, 소리가 좋은 것 같아요.”

저택에서 있는 나무에서도 낙엽이 떨어졌지만 정원사에 의해 바로 치워졌기에 렌은 쌓여있는 낙엽을 밟을 일이 거의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낙엽이 가득 쌓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낙엽들이 부서지며 파사삭 소리를 내었다.

나 또한 오랜만에 듣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소녀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러네, 정말 좋다.”

내 말에 자스민과 렌, 강아지까지 낙엽 위로 뛰어올랐고 우리는 그렇게 공원을 거닐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커다란 호수와 함께 분수대와 다리가 보였다.

“우와!”

커다란 분수를 본 자스민과 강아지들은 신이 나 달려가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나와 렌 또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 명 중 가장 빨리 분수에 도달한 자스민은 난간에 올라타 소리쳤다.

“물고기들도 있어!”

자스민은 신이 나 보였으나, 위태로워 보이는 자세 때문에 나는 그녀를 안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품에 안겨 호수에서 멀어진 자스민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반항하지는 않았다.

“난간에 매달리면 안 돼.”

내말에 자스민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리리가 앞으로 뛰쳐나갔고 방심하고 있던 자스민은 그대로 리리의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리리는 가벼운 점프로 난간을 넘어 호수로 들어갔다.

풍덩 소리와 함께 물이 튀었다.

내가 호수를 내려다봤을 때, 리리는 이미 물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다행히도 호수는 얕고 깨끗하긴 했으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은 두 강아지도 물에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 짖으며 목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형수님, 이거 어떡해요?”

힘이 부족한 렌은 파들거리며 힘겹게 라라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게… 진짜 어떡하니.

나 또한 달려나가려 하는 루이를 달래고 있었기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안 된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두 강아지는 물에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던 그때, 리리가 호수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물고 있는 잉어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어떻게 한 것인지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잉어는 파닥거리며 싱싱함을 뽐냈고 그 모습에 강아지들은 더 날뛰기 시작했다.

“멍! 멍멍!”

그런 두 강아지에 비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리리는 만족한 것인지 온몸을 털어 물기를 털고 자스민에게 자신의 목줄을 내밀었다.

“멍!”

두 강아지와는 다르게 리리의 울음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다행히도 근처를 순찰 중이던 공원의 관리인이 달려와 잉어는 죽기 전에 호수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잉어가 사라지자 루이와 라라 또한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관리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소란을 피워 미안하네.”

“저도 죄송해요.”

나와 자스민의 사과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된 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잉어도 무사하고, 그렇게 큰 피해는 없었으니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요….

강아지들을 관리하지 못한 것 내 책임이었다.

“호수나 잉어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차일드 가로 연락해다오.”

내 말에 관리인은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네.”

나와 관리인 둘 모두 물러서지 않았고 그렇게 이어진 기 싸움의 승리자는 나였다.

나는 그에게 문제가 생길 시 연락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뒤 다시 한번 사과까지 하고 그를 보내주었다.

큰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렌과 자스민에게 시선을 옮긴 그 순간 울먹이는 자스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자스민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요… 나, 나 때문에…”

자스민의 붉은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강아지들도 자스민이 우는 걸 보고 어쩔 줄을 몰라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고 렌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아무 일 없었잖아. 앞으로 안 그러면 되지.”

하지만 자스민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내가 몸을 아래로 낮추자 자스민은 내 목을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다 내 잘모인데, 형수밈이 사과하게 만들어써.”

많이 울어서인지 발음이 뭉개지고 있었다.

더 울면 내일 목이 쉴 텐데, 이렇게까지 우는 자스민은 처음 보았기에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자스민의 등을 토닥여주며 입을 열었다.

“어린 네게 리리를 맡긴 건 내 잘못이야. 그러니 내가 사과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하디만… 잘모한 사람은 저예요.”

아무래도 자스민은 자신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한 것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입을 열었다.

“자스민, 나는 네 보호자고 가족이야. 그러니 네 잘못에는 내 책임이 있어, 그건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나는 네가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나는 앞으로도 너와 함께 사과를 할 거야.”

내 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자스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울음을 그친 그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미안해요, 잘못 안 할게요, 실수도 안 할게요. 울지도 않을 테니까, 저 떠나지 마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겁을 주려는 건 아니었는데, 내가 말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자스민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게 아니지, 잘못하고 실수해도 괜찮아. 너는 아직 어리니까, 당연한 거야.”

“그래도…”

다시 울 것처럼 말끝을 흐리는 자스민을 달래며 나는 입을 열었다.

“네가 할 일은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난 네가 그렇게 해줄 것을 믿고 있어.”

내 목을 안고 있던 그녀의 팔에서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스민을 품 안에서 내려놓자, 많이 울어 붉어진 눈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 사실에 마음이 아파 다리를 굽혀 그녀의 뺨을 쓰다듬자 자스민이 배시시 웃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 때문에 나와 자스민은 균형을 잃고 낙엽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자스민을 껴안고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 그거면 돼.”

내 말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바로 리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놓쳐서 미안해,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 리리는 자스민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리리의 행동에 자스민은 웃음을 터트렸고 그녀가 기운을 차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하셨어요.”

렌의 말에 나는 미소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공원을 거닐었다.

아, 물론 호수 쪽은 피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산책을 끝냈을 땐 자스민은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씩씩해져 있었다.

“레몬 언니, 소꿉놀이하자!”

자스민의 말에 책을 읽는 그린과 드미트르 씨의 옆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레몬의 눈이 반짝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몬은 그린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좋아! 그린도 한데!!”

“아니, 난 안 할 건데?”

“어휴, 알았어. 강아지 말고 고양이 시켜 줄게.”

“역할이랑 관계없이 안 한다고!”

“엄마는 못 줘, 렌 언니 거야.”

“아니 안 한다니까!?”

둘의 싸움에는 이제 익숙한 듯 세 사람은 둘의 말다툼을 말리지 않고 강아지들과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야. 나도 이제 좀 쉬어야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돗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에 앉은 순간,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돌아보자 바리다스와 토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방금까지 대련을 한 것인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땀을 뭐 이리 많이 흘렸어.”

“바람이 시원해서 괜찮아요.”

그게 더 문제라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몸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면 감기에 더 쉽게 걸리는 거 몰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수건을 꺼내 토마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물도 마셔.”

옆에 있던 바구니에서 물병을 꺼내 건네자, 토마는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때, 바리다스가 발걸음을 옮겨 내 앞쪽에 섰다.

“저는 안 보이나 봐요?”

사실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기는 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은근히 피하며 다른 물병을 그에게 내밀었다.

“애가 먼저죠.”

내 행동에 바리다스의 눈썹이 조금 올라가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해요.”

퉁명스럽게 말하는 바리다스의 모습에 살짝 눈치가 보였다.

조금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자 팔 쪽은 걷어 올렸으나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설마. 내가 풀지 말라고 했다고 안 풀고 있는 거야?

“아니, 안 더워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모르긴 뭘 몰라. 팔은 저렇게 걷어 놓고.

한숨을 내쉰 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단추를 풀어 주었다.

해줄 걸 알았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는 모습이 더 얄미웠다.

아까와 같이 두 개의 단추를 풀어준 내가 벤치에 앉자, 바리다스는 나를 따라 옆에 앉았다.

그리고 슬금슬금 내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상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의 손을 피하며 말했다.

“땀 흘렸잖아요, 그건 조금 있다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리다스의 손가락에서 반짝하고 빛이 났다.

…설마.

그리고 빛이 사라졌을 땐, 방금 씻고 나온 것처럼 멀끔해진 바리다스가 보였다.

“이제는요?”

능청스럽게 웃는 그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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