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이별
그 해 마지막 눈이 내린 밤, 드미트르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바리다스는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며, 드미트르는 그의 곁에서 잠든 것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걱정과는 다르게 바리다스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을 흘린 것은 나였다. 그가 슬퍼한다면 달래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태어나 처음으로 겪어보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 무겁고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내 눈가를 닦아주며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바리다스의 손 또한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가장 힘들어할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게 되었다. 오히려 위로를 해줘야 할 것은 내 쪽인데도.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어 보았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한참이나 바리다스의 품 안에서 눈물을 쏟아낸 내가 위를 올려다봤을 땐, 그의 눈가에도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팔을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아주자 시선이 내게로 내려왔다.
나는 그를 끌어안아 주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안 괜찮으면서, 왜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있어요.”
“…그러게요.”
물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 다시 후회가 되었다.
역시 나는 울면 안 되었다.
“저는 괜찮으니까, 당신은 안 괜찮아도 괜찮아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의 미소에 왜인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어 바리다스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제 앞에서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말이죠.”
바리다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바리다스가 눈물을 그친 순간, 창밖에서 밝은 빛이 들어왔다. 동이 트는 것이다.
곧 아이들이 깨어날 시간이었다. 바리다스는 더 이상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손으로 눈물 자국이 난 뺨을 문질러 닦았다.
나는 묵묵히 그를 지켜보았다. 바리다스가 형이자 오빠로서 아이들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방으로 찾아온 건 레몬과 그린이었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드미트르의 모습을 본 레몬은 울면서 바리다스에게 안겨들었고 그린은 눈물을 흘리며 드미트르의 손을 잡았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드미트르를 유독 잘 따랐던 그린이기에, 충격 또한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들어온 렌과 토마 또한 울음을 터뜨렸고 뒤따라온 자스민은 그런 두 사람을 안아 주었다.
“하라버지는 자기 때문에 우는 걸 더 슬퍼할 거야.”
우리들 중 울지 않은 건 가장 어린 자스민뿐이었다.
그녀는 의젓하게 오빠와 누나들을 달래 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지만 자스민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한참이나 울적해 하는 그들의 모습에 자스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홀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걱정이 되는 마음에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나섰다.
자스민이 향한 곳은 저택의 뒤뜰이었다.
벽에 기대어 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다행히도 내 모습은 보지 못한 듯했다.
이내 아무도 없다 생각한 것인지 자스민은 눈이 소복이 쌓인 땅 위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숨죽여 울기 시작한 자스민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다.
“왜 여기서 혼자 울고 있어.”
내 목소리에 자스민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나는 자스민의 양 팔을 붙잡았다.
그렇게 닦으면 눈가가 다 상하잖아.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자스민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안 울어써.”
물기에 젖은 눈과 목소리로 숨길 수 있다 생각한 것인지, 고개까지 저으며 말이다.
괜한 겁을 준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의 팔을 놓아준 나는 자스민의 뺨을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타박하려는 게 아니라, 민이 혼자서 울고 있는 것이 걱정되어 그래.”
내 말에 다시 나를 올려다본 자스민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이버네는 내가 오빠드리랑, 언니들을 위로해 저야 하니까.”
거기까지 말한 자스민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물을 감추려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눈 위로 방울져 떨어지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입고 있는 코트 자락을 움켜쥔 자스민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까지 우러 버리면, 또 언니랑 오빠가 울지 못할까 바. 그래서 혼자 운 거야, 거짓말해서 미아내.”
그렇게 자스민이 어렵게 내뱉은 속마음은 내가 상상도 못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자스민이 무슨 마음인지는 나 또한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포함해서.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자스민은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어린 자스민이 저런 생각을 할 정도로 의지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스민은 그런 내 생각을 부정해 주는 것처럼 내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엄마랑 아빠가 없어져쓸 때, 언니랑 오빠가 그렇게 해 주어쓰니까.”
그녀가 말하는 언니와 오빠가 누구인지, 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렌과, 토마구나.
두 아이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더 아려왔다.
“레몬 언니랑, 그린 오빠는 못 밨는데, 나는 바 버렸어. 언니랑 오빠가 우리 몰래 울고 있는걸… 그러니까, 이버네는 내가 위로해 줄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는, 나 또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자스민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때, 아이들의 곁에서 한 명의 어른이라도 곁에 있어 주었다면 자스민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민, 너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내 말에 의미를 잘못 파악한 것인지 자스민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언니랑 오빠만 힘드러하는 거는 시러.”
나는 마지막으로 자스민을 강하게 안아 준 뒤,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것인지 자스민의 두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는 우리가 있잖아, 그건 나와 바리다스가 할 일이야. 너희들 중 누구도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거짓말을 할 정도로 의지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스민은 내 품 안에 고개를 묻었다.
“…아니야, 형수밈 잘못 아니야. 내가 나쁜 아이여서, 그래서 거짓말한 거야.”
나를 끌어안은 자스민은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강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정말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참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며 자스민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너는 정말로 강하고 착한 아이야, 민. 나였으면 너처럼 하지 못했을 거야. 그렇지만 너는 아직 어리고 약해, 슬플 때는 우리 앞에서 마음껏 울어도 되고 위로받고 싶을 땐 그렇게 말하면 돼. 나는 그렇게 해 줘야 하고, 해 주고 싶어, 나는 너희의 보호자이자 가족이니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스민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도… 하라버지가 떠나서 슬퍼. 언니랑 오빠만큼은 아니겠지만, 정마로…만히 슬퍼.”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자스민은 내 품 안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자스민은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 채 잠들었고 내가 그녀를 안고 저택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바리다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표정을 굳힌 채 다가온 그는 내 눈가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한테 와야지, 왜 둘이서 울고 있습니까.”
그의 말에서 왜인지 자스민이 한 말이 떠올랐다.
바리다스도 지금, 내가 자스민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왜인지 조금 미안해졌다.
“그러게요, 당신에게 갔어야 하는 건데.”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작게 입을 맞춘 바리다스는 한 팔로 자스민을 안고 반대쪽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그제야 나는 내 손이 추위로 인해 엄청 붉게 물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번에는 꼭 그렇게 해 주시죠.”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나는 생각했다.
저도 드미트르 씨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바리다스의 가족이 되어주고 사랑을 주어서, 감사해요. 드미트르 씨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버님.
* * *
그렇게 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드미트르와 함께 델아트로 향했다.
영지 안 묘지에 그를 묻어주기 위함이었다.
차일드 가의 사람들을 위한 장소였지만 그 누구도 드미트르를 그곳에 모시는 것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드미트르는 죽어서야, 차일드 가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드미트르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게 미소 지은 나는 바리다스의 요구로 쓰인 드미트르의 묘비를 바라봤다.
드미트르 립튼 차일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기사이자. 차일드 가의 21대 공작 바리다스 차일드의 양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