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26)화 (126/207)

127. 이 겨울의 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신년제가 다가왔다.

드미트르가 떠난 이후로 아이들은 많이 우울해 보였으나, 곧 있을 신년제 덕에 나름대로 기운을 차린 것 같아 보였다.

그건 아무래도 바리다스의 덕이 클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 신년제의 다음 날 공작가의 무도회장에서 연회를 열어주기로 하였다.

서부에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초대되었고 데뷔탕트를 치르지 않은 아이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초대장을 보냈다.

하지만 내게는 한 가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지금 작년과 같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주어야 하지?

그래, 바로 선물에 관한 문제였다.

이제 자스민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산타의 정체를 알고 있긴 했으나, 그렇다 해서 안 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지난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주었으니, 이번에도 비슷한 선물을 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내 눈에, 조금 멀리 떨어진 무도회장이 들어왔다.

무도회장은 이주 뒤에 있을, 신년제를 위해 정비와 함께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무도회장을 보고 있자니,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참가했던 연회가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까지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고 있던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그게 있었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로나를 호출했다.

“마담 리스의 의상실로 출발해줘.”

내가 생각해낸 선물은 드레스와 연미복이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사이즈도 알고 있으니, 지난번보다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예약이 다 차 있지 않길 기도하며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번화가로 출발하기 전, 이사를 하기 위해 아이들이 주로 모여 있는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방은 텅 비어있었고 불이 꺼진 방을 확인한 나는 뒤늦게 떠올랐다.

다, 공부하고 있을 시간인가?

그간 아이들에게도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아이들이 선생님을 원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하에, 아이들은 기본적인 예법과 예절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배우지 않았다. 그나마 토마와 렌에게는 수학과 역사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있었으나, 쌍둥이와 자스민은 선생님의 존재를 선호하지 않았다.

드미트르 덕분일까. 델아트로 돌아온 렌은 음악 선생님을, 그린은 수학과 역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분야의 선생님을 원했고 그 둘에게 자극을 받은 것인지 레몬은 황궁 예법과 사교계에 대해 배우고 싶다 했다.

그리고 자스민은 딱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지만, 레몬을 따라 예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저택은 매일같이 여러 과목의 선생님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바리다스와 내가 선별한 선생님들은 인성과 교육 과정 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고른 분들이기에,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나마 걱정되는 점을 꼽자면 아이들이 무리할 것 같다는 생각 정도였는데 그건 나와 바리다스가 신경 쓰면 될 일이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나와의 시간이 줄어드는 건 좀 서운하긴 했다.

나 또한 공작가의 일을 돕기 시작한 터라 바빠졌기에 그런 감정도 잠시였지만.

아무튼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꼭 예쁜 옷을 사다 주어야겠다 결심하며 나는 마차에 올라타려 했다.

그때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손을 붙잡고 마차에 올랐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시선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일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키가 무척이나 자란 칠드런이 들어왔다.

…세상에. 요즘 애들이 아무리 발육이 좋다고 해도, 잠깐 사이에 이렇게 크는 게 말이 돼?

“잘 지냈지, 너는?”

“지원해주신 덕에, 매우 잘 지냈습니다.”

우리가 수도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칠드런은 각성을 하게 되었다.

원작보다 몇 배나 빠르게 각성을 한 것도 놀라운데, 칠드런은 우리에게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다는 의사까지 표했다.

그가 올해로 열여덟,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나이였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 이야기였다. 마나를 각성했는데, 불가능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칠드런은 삼 학년으로 라이온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고 나와 바리다스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 뒤에는 칠드런이 졸업 후 차일드 가의 기사가 되겠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아카데미도 방학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조만간, 실비아와 미렐도 볼 수 있겠네.

“방학이라서 내려온 거야?”

“제 집은 이곳이니까요.”

그의 말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드런과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이야.

내가 마차에 탄 것을 확인한 그는 문을 닫아주며 덧붙였다.

“방금 도착했으니, 다른 분들과 아가씨께는 내일 인사드리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호위해 주는 건 고맙긴 하지만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뭐 마나 사용자니까 체력도 남들과 다른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칠드런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차는 금세, 살롱에 도착했고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인지 마담 리스가 빠르게 달려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여기도 오랜만이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델아트의 번화가를 둘러보다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잘 지냈지.”

살롱으로 들어가니,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화폐의 개념도 똑바로 몰라서 이상하게 계산했는데, 이제는 어지간한 사람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리다스보다, 내가 더 금전 감각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라스는… 금전 감각이 필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나도 금전 감각 버리고 쇼핑할 거야. 아이들 옷이랑 장신구랑 구두랑 전부, 안 아끼고 다 사 버릴 거라고.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이 주 뒤에, 있는 연회에서 아이들이 입을 드레스가 필요해.”

“가능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담 리스가 소리쳤고 어딘가로 달려간 그녀는 두꺼운 노트를 들고 다가왔다.

탁!!

그녀의 손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노트가 떨어졌고, 그 노트의 놀라운 두께에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흉기인데?

정말로, 마담 리스의 열정이 느껴지는 노트였다.

그녀는 노트를 펼쳐가며 내게 설명해 주었고 대부분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붉은색의 와이셔츠와 함께 입도록 디자인된 검은 연미복이었다.

…바리다스랑 잘 어울리겠다. 이것도 사야겠다.

나는 고민 없이 바리다스의 연미복을 구매했다.

그 뒤로도 그와 잘 어울리는 옷이 너무 많아, 몇 개를 더 샀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아이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옷은 보이지 않았다.

의상이 대부분 어른 체형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가?

그때 프릴과 레이스로 장식된 드레스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연미복과 드레스가 한 세트였으며 연미복 또한 소매 쪽이 풍성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이거 입으면 진짜 귀엽겠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뒤에 서 있는 칠드런을 바라봤다.

“아이들한테 선물할 건데, 어떤 거 같아?”

내 질문에 노트를 유심히 바라보던 칠드런은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우아한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이 옷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내가 고른 디자인은 발랄한 레몬과 자스민에게는 잘 어울렸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얌전한 토마와 렌, 그리고 그린에게는 별로인 것 같았다.

“응, 맞는 거 같아.”

고민하던 나는 그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우아한 분위기의 드레스와 연미복을 선택했다.

아이들의 머리 색을 따라 포인트 보석을 달아달라 부탁했고 레몬과 자스민의 것에는 조금의 레이스를 추가했다.

이 정도면 다 잘 어울리겠네.

내가 고른 드레스를 입은 아이들을 상상만 해도 뿌듯해졌다.

마담 리스에게 아이들의 사이즈를 가르쳐 준 뒤,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칠드런의 연미복을 사 주기 위함이었다.

라이온 아카데미는 평민도 입학할 수는 있었지만, 학비가 매우 비싼 탓에 대부분의 재학생이 귀족이었다. 그 때문에 작은 연회나 티파티가 종종 열린다고 들었다.

칠드런 또한 가문의 사람이니, 맞춤 연미복 정도는 있어야지.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나는 장식이 적지만 우아한 느낌을 주는 연미복을 발견했다.

이 정도면 칠드런도 편하게 입겠네.

“이건 어떠니?”

“공작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단호한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노트를 칠드런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라스 말고, 너 말이야.”

내 말에 칠드런의 눈이 커졌다.

곧이어 노트에 그려진 연미복과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그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듭니다.”

그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마담 리스를 불러, 골라둔 연미복들을 주문했다.

그리고 칠드런 몰래 그에게 선물할 화려한 연미복 또한 추가했고 말이다.

“아이들의 옷을 우선으로 제작해 주고 나머지는 천천히 만들어줘.”

“예, 알겠습니다.”

계산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장신구랑 구두를 사러 가야겠다.

이미 돈을 많이 쓰긴 했지만, 괜찮았다. 오늘만큼은 열심히 쓰겠다고 결심했기도 하고 아이들한테 쓰는 건 아깝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부족했다.

우리 애들한테는 천만금을 쏟아도 안 아까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롱에서 나온 순간, 뒤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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