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32)화 (132/207)

외전 3. 예린의 생일

최근 바리다스는 한 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예린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어떻게 해결하긴 했는데,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선물을 해 줘야 할까.

그래도 처음 챙겨주는 생일인데 조금 더 특별하고 의미가 되는 선물을 보내주고 싶었다.

조언을 얻을만한 사람은 없으려나.

그의 주위에 기혼자라 하면, 황제 아킬레스와 크림슨이 있긴 했지만.

아킬레스의 경우 아필레의 생일 선물로 근처 왕국을 선물해 줬다가 싸움까지 벌어졌고 이제 결혼 십오 년차에 접어든 크림슨은 생일은커녕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않았다.

바로 앞에 반면 교사들이 있어 다행이군.

바리다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고민을 이어나갔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명의 사람이 떠올랐다.

이 상황에 대한 해답을 누구보다 잘 해줄 것 같은 사람.

바리다스는 서류들을 한 쪽으로 치워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마침 다른 서류들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던 크림슨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 그를 붙잡았다.

“공작님!! 하셔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크림슨의 간절한 외침에 잠시 망설이던 바리다스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대도 먼저 퇴근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게.”

“좋, 안 됩니다!!”

순간적으로 좋다고 말할 뻔한 자신의 본심을 가까스로 억누른 크림슨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절대로 안 됩니다.”

크림슨의 단호한 외침에, 잠시 고민하던 바리다스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한 크림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 순간, 다시 돌아온 바리다스는 그에게 무언가를 건냈다.

“자네도 너무 일만 하지 말고, 가족을 좀 신경 쓰게.”

살다 살다 저 말을 공작님에게 들을 줄이야.

크림슨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바리다스를 놓치고 말았고 그렇게 그가 떠나간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바리다스가 남기고 간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다이아몬드 반지 한 쌍이 들어 있었다.

그건 바리다스가 예린의 선물로 주기 위해 주문했다가, 반지는 너무 많이 줬다는 생각에 포기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선물이라니… 조금….

많이 감사합니다.

아내가 좋아하겠군.

크림슨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일은 내일 해도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크림슨은 몰려오는 불안감을 뒤로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바리다스는 신전에 도착해 있었다.

바로 성녀, 유아를 만나기 위해서.

바리다스는 그녀가 예린과 같은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라면 예린이 기뻐할 만한 선물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전에 도착한 바리다스는 성녀를 독대하기 위해 신전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수정구가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신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통이 가능했다.

바리다스가 수정구 앞에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그의 말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유아 또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그렇게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관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바리다스는 신관들 앞에서 신녀에게 예린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었고 유아는 그냥 불편해서였다.

“무슨 일이에요?”

유아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던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예린의 생일 선물에 관한 조언을 얻고 싶어서 왔네.”

그의 말에 유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진심으로 예린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이 상황은 좀 그렇지 않나, 제 생일 선물을 고르겠다고 제 남편과 친구가 계속 만나왔대요.

기쁘기보단 화가 나네요, 어떡하죠?

나, 이런 글 인터넷에서 좀 본거 같아.

예린에게 상처 주기는 싫으니까, 이번 만남으로 단번에 일을 끝내겠어.

결심한 유아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어지간한 것들은 다 예린에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리고 공작님은 예린의 진짜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다 말했으니,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유아의 말을 듣던 바리다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린과 함께 개들을 산책시키기 위해 정원으로 향하던 토마는 위층에서 내려오던 바리다스와 마주쳤다.

“좋은 아침이구나.”

아이들과 마주친 바리다스는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리를 벗어났고 그린과 토마는 바리다스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리다스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렌과 레몬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얼마나 뛰어온 것인지, 렌과 레몬은 헉헉거리며 둘의 앞에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오라버니, 어디로 갔어?”

왜 이리 급하게 형을 찾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린 토마는 입을 열었다.

“지금쯤 나가시지 않았을까?”

그의 말에 렌은 한숨을 내쉬었고 레몬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토마와 그린은 표정을 굳혔다.

토마는 침착하게, 레몬을 위로해주며 렌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야?”

그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던 렌은 한숨을 내쉬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한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아.”

?

정말로 상상도 못한 대답에 토마와 그린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리다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차일드 공작 부부의 사이가 좋은 것은, 델아트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한숨을 내쉰 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오라버니를 보며 이상하다고 느낀 거 없어?”

그녀의 말에 토마와 그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다스는 언제나처럼 바빴고 그랬기에 그들과 마주하는 시간 또한,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일을 하며 잠깐 시간이 나면, 자신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형수님과 데이트를 가고는 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토마와 그린이 고개를 갸웃거린 그 순간, 레몬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바로 결정적인 증거야.”

그녀의 손에는 연한 핑크색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바리다스의 글씨체로 ‘생일 축하해요.’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 중에 생일인 사람도 없잖아.”

그린의 말에 레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오빠가 저런 식으로 생일을 챙겨줄 사람은 더더욱 없고.”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저런 색의 봉투를 아무 의미 없이 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토마는 레몬의 손에서 편지를 빼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편지 내용은 확인 해 봤어?”

그의 질문에 레몬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행동에 토마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것부터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몬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남의 편지를 함부로 읽으면 안 되잖아!”

남의 편지를 함부로 가져오는 건 괜찮고?

결정적인 증거라더니, 편지 봉투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였어?

토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몬 혼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었다면, 그냥 오해라고 생각하면 될 텐데.

토마는 렌에게 시선을 옮겼다.

렌까지 그렇게 주장하고 있으니, 왜인지 타당해 보인단 말이지.

그때 그런 토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렌이 입을 열었다.

“나도 이 정도로는 의심 안 해.”

렌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린과 토마는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런데 봤단 말이야, 오라버니가 주문한 목걸이와 케이크에 ‘예린’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걸!”

예린, 그 이름은 피오라의 에칭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제 정말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예린이 누구지?

“성씨는?”

“잘못 본 건 아니지?”

토마와 그린이 동시에 렌에게 질문을 던졌고 렌은 주먹을 강하게 쥐며 입을 열었다.

“성씨는 안 적혀 있었지만 정말 정확하게 봤어. 오라버니가 주문한 목걸이에 예린이라는 이름이 써져 있는 걸.”

렌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아마 확실할 것이었다.

한숨을 내쉰 토마는 이마를 짚었다.

정말로 오해이기를 바랬는데.

렌의 말이 진실이라면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일단, 형수님께 알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랬다가 우리가 오해한 거면 어떻게 해, 우리 때문에 두 분이 싸우시면?”

“그렇다고 형님께 먼저 말씀드릴 수도 없는 거잖아.”

아이들은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다면, 이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잠깐의 침묵 끝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토마였다.

“만약 이 상황이 오해가 아닌 진실이라면,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형수님이셔. 그러니 우리는 말씀드려야만 해.”

그의 말에 렌과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레몬은 울먹거렸다.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아.”

레몬의 말에 토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아냐,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어.”

“그래, 레몬. 그런 생각 하지 마.”

렌 또한 레몬을 안아주며 입을 열었고 그녀의 품 안에서 레몬이 훌쩍이던 그때, 그린이 입을 열었다.

“근데 나는 형님이 형수님께 그럴 수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의 말에 토마와 렌, 레몬은 무언으로 긍정했다.

바리다스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피오라를 만난 순간 부터였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 변화가 바리다스가 피오라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리다스가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들을 사랑하게 된 것도.

전부 피오라가 그에게 알려준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피오라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사랑받는 법도 똑바로 사랑하는 법도 모른 채, 공허하게 자라났을 것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그린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대체 그 예린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그린의 외침에 놀란 강아지들은 낑낑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강아지들은 그렇게 그를 위로하는 것처럼 주위에서 맴돌다,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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