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33)화 (133/207)

외전 4. 예린의 생일

“날씨가 좋네.”

창문을 열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 말에 로나는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한 커튼을 걷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이제 정말 봄인가 봐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한 나는 창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따스한 햇살과 함께 봄 내음이 느껴졌다.

창문 앞에 붙어있는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가만히 바람을 느끼고 있던 그때, 아래쪽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자스민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여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이랑 나들이나 갈까.

나는 잠깐의 고민을 마친 뒤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날씨에 집에만 있는 건, 아무래도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오늘은 꽃놀이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올 때쯤이면 같이 가자고 해도 싫어할 테니까.

좋아할 때, 자주 데려가야지.

나는 로나에게 도시락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 뒤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들이를 가자고 하면 좋아할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다가왔을 때, 들려온 것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단어였다.

“대체 그 예린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난데……?

꿈에서도 상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대체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저 목소리는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아.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예린’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나를 본 강아지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만, 반겨주는 건 고마운데 지금은 안 돼!!

나 아직 뭐라고 해야 할지 정리하지 못했다고!!!

강아지들의 모습에 깜짝 놀란 나는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그들은 내게 달려오고 있는 뒤였다.

그 덕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고 나는 나를 목격하고 잔뜩 당황한 모습의 아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알아야겠다.

“그 이름, 어디서 들은 거니?”

내 질문에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네.

그 오해가 어떤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빨리 알게 된 거 정도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내지 못하기를 한참,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렌이었다.

“…형…수님, 흑, 가지 마여….” 

언제나 의젓한 렌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눈물에 당황한 것도 잠시, 렌의 눈물은 서서히 주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린과 레몬 또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토마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강아지들 또한,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들의 주위를 빙빙 돌며 손을 핥아주었다.

아니, 잠시만 왜 울어.

얘들아,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좀 그쳐 보렴?

이렇게 되면 아이들을 달래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내가 너희를 두고 어딜 가.”

그러자 이번에는 레몬이 소리쳤다.

“아냐, …여기 있으면 형수님이 힘들게 돼.”

아이들 모두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해질 뿐이었다.

나를 위해주는 건 기특하고 정말로 고마운데.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울지 좀 말아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잖아.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이마를 짚은 나는 천천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말하길 망설이는 것을 보면 내가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일 것이고 예린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을 보아, 그 이름과 관련된 일일 텐데.

설마.

그제서야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우리들을 떠나지 말라는 말과, 내가 힘들게 된다는 말.

아이들은 지금 바리다스가 예린이라는 사람과 바람을 핀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리다스가 그럴 리 없잖아.

아이들은 모르는 그의 과거를 나는 알고 있기에, 차라리 먼저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다스가 들었으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

바리다스, 미안해요. 말하지 않기로 했는데.

“얘들아 …예린이 나야.”

하지만 그 말에 아이들은 울음을 멈추기는커녕 더 울기 시작했다.

아니, 이제는 정말 내가 울린 거 같잖아.

심지어 계속 눈물을 참고 있던 토마마저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나도 같이 울어 버릴까.

그 순간, 토마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행이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똑똑히 듣고 말았다.

아이들은 지금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와 바리다스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며, 자신들이 오해를 한 것이어서.

그들의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눈물을 그치길 기다리며 그들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아이들은 한 둘 씩 눈물을 그치고 난 뒤에야 민망하다는 것을 안 것인지 얼굴을 붉혔다.

아이들 모두가 눈물을 그친 것을 확인한 나는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줘도 괜찮아.”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 또한 그들을 안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바리다스가 알기 전에 해결해서 다행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너희가 그런 오해를 한 건 라스한테는 비밀이야.”

내 말에 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레몬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몬은 품 안에서 분홍색 편지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그 편지 앞에는, 예린에게 라고 쓰여 있었다.

“이건 어떡해…?”

이 편지를 보고 오해한 것이구나.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어디 있었는데?”

내 질문에 머뭇거리던 레몬은 입을 열었다.

“…오빠 집무실.”

그걸 들고 오면 어떡해.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저 편지는 유일한 증거물이었으니 말이다.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할지.

한숨을 내쉰 나는 그녀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갔다.

“내가 돌려놓고 올 테니, 너희는 자스민을 데려와 준비하고 있으렴.”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귀여운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입을 열었다.

“오해도 풀렸고 날도 좋으니, 나들이를 가야지.”

내 말에 아이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바리다스의 집무실에 편지를 돌려놓는 것으로 그렇게 잠시의 소동은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무슨 편지일까?

내게만 작은 의문을 남겨 놓은 채로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숲속의 그 곳으로 향했고 화려한 꽃들은 아니지만 작은 풀꽃들과 진달래, 개나리가 가득 피어 있었다.

토마와 레몬은 강아지들과 함께 주위를 뛰어놀았고 그린과 렌은 햇빛 아래에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제 슬슬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야겠다 생각한 순간.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우리가 입구를 바라보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오빠!”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레몬이었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바리다스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오해한 것이 미안한지, 평소보다 더 격렬한 환영이었으나, 바리다스는 싫지 않아 보였다.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인사를 마친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 먼저 들어가 봐도 괜찮겠니?”

그의 말에 서로 시선을 교환한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바리다스가 내 손을 잡았다.

“먼저 들어가요.”

하지만 그의 말에도 나는 망설이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들만 이 숲에 두고 가기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바리다스를 따라온 것인지 칠드런과 그레이가 양손 가득 디저트와 먹을 것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잘 모시고 있도록.”

말이 잘 모시고 있도록이지, ‘애들 잘 보고 있어라.’ 라는 말이랑 다를 게 뭔데.

칠드런은 그렇다 쳐도 기사단장이나 되는 그레이를 이런 일로 불러도 괜찮은 거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옮기자, 사랑스럽다는 듯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레이 경, 애들 좋아했구나.

치밀한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칠드런, 그레이 경.”

그들에게 인사를 마친 뒤 우리는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처 마차에서 내린 바리다스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그의 등 넘어 아직 완전히 저물지 않은 태양이, 노을이 되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왜인지 처음 공작가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바리다스가 나를 에스코트 해주지 않아, 아이들이 해 주었는데.

과거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고마워요.”

그렇게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차일드 가의 요리는 언제나처럼, 최상의 맛을 자랑했고 나는 오늘도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몇 개의 가로등만이 반짝이는 정원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긴장한 것 같은 모습으로.

“저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 말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가 식사를 마친 뒤 한 말이었으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와 바리다스는 미소 지으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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