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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134)화 (134/207)

외전 5. 예린의 생일

바리다스는 나를 데리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저택의 옥상에는 딱히 와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넓은 차일드 가의 저택과 숲이 한 눈에 보이는데도 말이다.

앞으로는 자주 와야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정원을 은은하게 비추는 가로등과 달빛, 그 아래 가득 핀 장미 여러 종류의 이름 모를 화려한 꽃들이 숲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최근 정원의 꽃들을 새로 심고 단장을 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가까이서 볼 때는 몰랐는데, 새로운 정원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넋을 놓고 정원을 바라보았다.

예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정원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바리다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자주 와야겠어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미소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네, 좋아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정원을 바라보고 있던 내 눈에 숲을 비추고 있는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어렵지 않게 그 빛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옥상에서 숲의 그 장소가 보이는 것이었다.

숲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작지만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자주 와야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지은 순간, 잊고 있던 편지의 존재가 떠올랐다.

잠깐만, 오늘 무슨 날이던가?

잘 생각해 보니, 아무 일도 아닌데 바리다스가 그런 편지를 준비할 리가 없었다.

왜 이제야 떠올렸지.

아까 아이들을 달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편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내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 그 순간.

바리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린.”

나를 부르는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을까.

그의 목소리에 나는 확신하고 말았다.

이거, 진짜로 무슨 날이다.

백일이든 이백일이든 무슨 기념일인데, 내가 까먹은 게 분명하다.

아니면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또 다른 기념일이 있는 걸까? 화이트 데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기념일을 잊었다는 것이었다.

일단, 미안하다고 하자. 무슨 기념일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자.

…혹시나 서운해 하지는 않겠지?

그러면 정말로 많이 미안할 것 같은데.

그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그에게서 들려온 말은, 정말로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이어서,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늘은 당신이 이곳에, 이 세계에 오신 것이 삼 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그의 말을 듣자, 지난 삼 년 간의 일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이 곳에 왔던 날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당신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들과 친구들을 만나며.

당신들 사랑하게 된 과정들이.

그 말에 내가 바리다스를 돌아본 순간, 그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것들을 챙기는 것에 대해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바리다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맑고 환한, 정말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바리다스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피오라의 생일은 당신의 진짜 생일이 아니고 생일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라면.”

“당신의 생일은 오늘이 아닐까요?”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너의 생일은 정말 특별하고 감사한 날이란다, 네가 우리에게 찾아 와 준 날이니까.’

이제는 희미해진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 말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는 나를, 정말로 소중히 여기고 있구나.

왜인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내 손등에 입을 맞춘 바리다스가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을 기념하고자 했습니다.”

환하게 미소 지은 그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예린.”

그 순간, 펑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수많은 폭죽이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죽은 숲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환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빛들을 바라보다, 바리다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짝거리는 불빛들 아래, 그의 얼굴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느새, 내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바리다스에게 손을 내저었다.

“너무 예상치도 못한 말이라, 기뻐서 그래요.”

정말로 그랬다.

피오라의 생일은 내 생일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 진짜 생일을 챙기기에는 이 세계와 날과 시간, 계절까지.

많은 것들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생일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내 생각보다 나를 생각하고 있었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정말로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고마워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더 고맙죠.”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들고 바리다스를 마주본 나는 눈물을 닦고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키스해도 될까요?”

내 말에 바리다스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접혔다.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춘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꺼이.”

라고 말한 바리다스는 허리를 숙여 내게 키를 맞춰 주었지만, 눈을 감은 그를 보자 뒤늦게 몰려오는 민망함에 나 또한 눈을 감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내 입술에 무언가가 닿은 순간, 바리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아닌데.”

그의 오른손이 내 뺨 위로 올라왔고 내 얼굴을 조금, 돌려주었다. 그대로 우리의 입술이 포개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원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꽃이다!”

“저건 폭죽이라고 하는 거야.”

레몬의 말에 자스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수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데, 어디 계셔?”

자스민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바리다스를 밀쳐냈다.

그런 내 행동에 그의 표정이 조금 굳기는 했지만, 이해하는 것인지 별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발코니에 기대어 손을 흔들었다.

“이리 와, 얘들아.”

내 목소리에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뒤따라오던, 칠드런과 그레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면, 경들도 구경하고 가도록 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아이들을 따라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바리다스를 바라봤다.

그의 머리를 정돈해주며 입술에 묻은 립스틱까지 잘 닦아준 나는 만족스럽게 웃자, 바리다스 또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누구도, 우리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못할 텐데.”

진짜, 무슨 의미야 그게!!

아니 아무리 부, 부부라고 해도 민망한 건 민망한 거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를 노려보자, 그 또한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이들이 옥상에 도착했고 그의 손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내게 달려오는 자스민을 안아들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자 자스민은 환하게 웃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불꽃이 예뻐, 형수님.”

그녀의 말에 레몬이 다시 한 번 끼어들었다.

“폭죽이라니까.”

그런 그녀의 말에 자스민은 깨달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폭죽이 예뻐!”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레몬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에 손을 뻗었다.

“형수님, 머리가 헝클어졌어.”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란 내가 머리를 정돈하려는 순간 바리다스가 내 머리를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옥상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렇단다.”

바리다스의 말에 납득 한 것인지 레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감쌌다.

“그러네, 춥긴 하다.”

그녀의 말에 미소 지은 바리다스는 겉옷을 벗어 어깨 위에 둘러 주었다.

자기보다 두 배 쯤 커다란 옷을 입은 레몬의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다.

그리고 그런 레몬이 부러운 것인지 자스민이 내 품에서 뛰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나도!!”

바리다스의 겉옷이 큰 덕분에 두 사람 모두 무리 없이 옷 안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레몬은 조금 불편해 보였다.

그냥, 시녀들한테 아이들의 겉옷을 가져다 달라고 해야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들에게 성큼 다가온 토마가 겉옷을 내밀었다.

“이거 입어 레몬.”

그의 말에 바리다스의 겉옷 안에서 빠져나온 레몬은 웃으며 옷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토마의 겉옷을 입은 레몬은 자신의 손등을 덮고도 남는 그의 옷이 마음에 드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렌과 그린이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바라보니 언제 받은 것인지 각자 칠드런과 그레이의 겉옷을 입고 있었다.

자신들보다 훨씬 큰 옷을 입은 그들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최고의 생일이네.

* * *

내가 바리다스의 편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편지를 잃어버려, 당일에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침 일찍 내게 편지를 주고 간 그는 자신이 나간 뒤에 읽어보라는 말과 함께 떠나갔다.

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왜인지 마음에 들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고 혼자 남은 나는 편지의 봉투를 뜯어냈다.

봉투의 색과 같은 연한 벚꽃의 편지지와 함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어색할 정도로, 정확하게 쓰인 한국어는 바리다스가 내게 전하고 싶어 하는 말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편지를 쓰는 것을 유아가 도와주었다는 말과 함께, 맞춤법이라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투덜거리는 그의 편지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나갔다.

어느새, 편지는 끝이 났고 마지막 줄을 읽은 나는 편지에 얼굴을 묻은 채,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조금 늦은 그의 편지는 정말로, 내가 지금까지 받은 것들 중 가장 빛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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