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 민트초코와 바리다스
“얘들아 천천히 가.”
내 말에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자스민과 레몬은 걸음을 늦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모두와 함께 외출을 나왔다.
둘이나 셋은 꼭 데리고 나왔지만, 다섯 명 모두가 이렇게 번화가로 나오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 이유는 일 년 전쯤 시작한 실비아 가문의 사업에 우리 차일드가가 꽤나 큰 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웨일즈 백작이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 서부와 수도에서 유명한 여러 음식점들이나 디저트 가게, 살롱들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건물을 만들 것이라 하였고 그에 대한 사업 계획서를 공작가로 보냈다.
그리고 그의 사업 계획서는 나에게로 향했고 백화점을 만든다는 말을 들은 나는 바로 그 서류를 승낙했다.
실비아의 가문이어서가 아니라, 백화점의 가능성을 보고 말이다.
그렇게 완공된 백화점은 오픈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고. 예상외로 크게 화제가 되자 웨일즈 가문은 오픈 첫날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공지를 했다.
게다가 오픈 날 이후로 당분간은 선착순 입장을 받는다고.
오픈도 하기 전에 수도에 백화점 체인점을 내겠다는 계약까지 마쳤으니 얼마나 큰 성공인지는 감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첫날에 초대를 받았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 전원이 말이다.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백화점이 완공될 수 있었던 건 차일드 가의 엄청난 금전적인 지원 덕분이었으니까.
그래,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주주? 느낌이랄까.
아무튼 바리다스는 일이 많아 참석이 힘들다고 해, 나와 아이들이 다 함께 백화점에 오게 되었다.
“그치만, 어서 백화점이라는 곳에 가고 싶은걸.”
“나도, 나도!!”
귀여운 레몬과 자스민의 투정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다치면 안 되잖니, 천천히 가자.”
하지만 두 소녀는 내 말에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아이들을 둘씩 짝지어 손을 잡게 만든 것이었다.
레몬은 그린과 토마는 자스민과 손을 잡았고 렌은 맨 뒤에서 나와 함께 서서 걷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사이좋게 걷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지나가던 귀족들 또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빠, 나 뛰면 안 돼?”
“자스민… 천천히 가자.”
“아, 천천히 좀 가지. 애도 아니고 이게 뭐야.”
“너랑 동갑이거든? 멍청아.”
하는 말들은 조금 귀엽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 순간, 렌이 내 손을 잡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저희도 손잡아요.”
…내가 네 덕분에 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렌과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얼마 걷지 않아, 건물들 사이로 커다란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한눈에 봐도, 나 새로 지었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유행하는 건축 방식과 깨끗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설계도와 디자인은 나도 바리다스를 통해 보긴 했으나, 실물로 보는 것이랑은 꽤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렇게 크다는 말은 없었다.
백화점은 무려 십이 층의 높이었다.
전생을 겪어 온 나에게는 그렇게 높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시대로 따진다면 저것보다 높은 건물은 마탑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었다.
제국법 상, 황궁보다 큰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높이는 상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높게 지었을까.
아마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완전 높아!!”
“마법을 사용한 건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단하네.”
“이 정도면 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것 같은데?”
…남산타워 보면 까무러치겠네.
외국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이 반응을 보면 남산타워, 아니 동네 아파트만 봐도 놀랄 것 같았다.
귀엽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실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샹들리에와 분수였다.
일 층을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크기에 나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또한 엄청난 스케일에 놀란 듯 보였다.
“완전 커, 예쁘다!”
“실내에 분수를 놓을 생각을 할 줄이야, 대단하네.”
작게 감탄사를 내뱉은 아이들을 보며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놀라기엔 이를 텐데.
이번 백화점을 고층으로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지난번 보았던 마력 승강기를 거금을 내고 구입해 왔기 때문이었다.
기술이 있음에도 고층 빌딩을 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계단뿐인 이동이 방식이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탑에서 발명한 이 승강기가 있다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 발전이 부족해서인지 일 층에서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승강기를 본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이거 마탑에 있던 거잖아.”
“맞아, 재밌는 거!”
“조용히 좀 해,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
퉁명스럽게 말하긴 했으나, 그린 또한 귓불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승강기 옆에는 층별로 각자의 역할이 쓰여 있었다.
이건 진짜, 나 말고 누가 지구에서 온 거 아니야?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이나 백화점은 구조까지, 정말로 지구와 흡사했다.
이층에는 마도구 상점과 서점이 들어서 있었고 삼층, 사층에는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 오층에는 여성들만 입장 가능한 헤어 숍, 네일 숍, 마사지 숍이 있었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인원이, 남자 귀족들보다는 여성 귀족들이 많다는 것을 잘 노린 좋은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층부터 칠층까지는 남성 의류 전문점과 대장간…?
아니, 백화점에 왜 대장간이 있는 건데?
대장간이라기보다는 무기들을 파는 무기상이었으나, 점포의 이름이 대장간이라 되어있었다.
확실히 지구랑 다르긴 다르구나.
나는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체감했다.
다음으로 팔 층에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을 위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구 층부터 십층에는 유명 음식점들이 있었고 십일 층은 호텔 라운지와 같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마지막으로 십이 층에는 옥상 정원과 테라스 카페까지.
아니, 옥상 정원이라니.
…정말로 나나 유아 말고도 빙의나 전생한 사람이 있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잡생각을 떨쳐 버렸다.
에이, 설마.
만일 다른 사람이 있다 해도 말해주지 않는 한, 내가 알 수도 없었고 그 사람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 정도 백화점을 짓는데 아이디어를 제공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나는 여전히 지도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카페랑 옥상 정원만 가자.”
식사는 아까 했고, 딱히 살 옷들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스민을 제외한 아이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왜 시무룩해진지는 알겠네.
렌과 그린은 서점에, 레몬은 살롱과 액세서리 숍에, 토마는 대장간에 가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딸기 케이크만 사주면 상관없서!”
자스민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들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들 딱 한 시간 동안만 가고 싶은 층을 정해서 다녀오도록 해.”
어차피 오늘은 정말 고위 귀족이나 투자자들만 올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내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대신, 둘씩 다녀야 하고 늦지 않게 옥상 정원으로 와야 해.”
내 말에 그린과 렌을 제외한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린과 렌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서로의 목적지가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면 저희는 서점에 다녀올게요.”
그렇게 렌과 그린이 가장 먼저 사라졌고 토마는 머뭇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토마라면 혼자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깜짝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아필레와 리리안, 레이안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모두 진갈색의 머리를 띄고 있긴 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황후 마마?”
작게 소곤거리자 웃음을 터트린 아필레는 내 팔에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잘 지냈나?”
“저는 잘 지냈죠.”
아니, 근데 어떻게 온 거야?
아까 말했다시피 오늘은 극히 일부만이 초대받는 날이긴 했다.
물론 그건 황후인 아필레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녀가 가지 못할 곳은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황실을 이렇게 막 비워도 되는 거냐고.
그런 내 생각이 또 얼굴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수도에 오픈하는 백화점의 대주주가 우리이기에, 안 올 수가 없었네.”
아필레는 그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팔에 힘을 주어 나를 끌어당겼다.
“애들은 애들끼리 놀라고 하고, 우리는 올라가서 이야기나 나누지 않겠나?”
그녀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아이들은 어느새 짝을 지어 서 있었다.
토마와 레이안, 리리안과 레몬, 그린과 렌 그리고 자스민.
세 그룹이 금방 완성되었다.
저 맴버라면 걱정할 건 없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랜만에 아필레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나는 아필레와 함께 십일 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왔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진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이 카페는 어떻게 지은 것인지 주위가 전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모습에 작게 감탄한 나와 아필레는 창가 자리에 앉은 뒤, 커피를 주문했다.
“이렇게 높은 건물을 짓다니, 놀라운 발전이야.”
“그러게요.”
내게는 그렇게 높은 위치가 아니었지만, 아필레에게는 꽤나 높은 위치일 텐데, 그녀는 무섭지도 않은 것인지 여유롭게 웃으며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시내 구경이 한창이던 그때, 주문했던 커피와 디저트들이 도착했다.
아이들 것까지 주문했기에 꽤나 많은 종류의 디저트가 나왔는데, 아필레는 그것들 중 하나의 초콜릿을 집어 들어 내게 권했다.
“요즘 수도에서 꽤나 유행하고 있는 디저트라네.”
그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을 벌려 그녀가 내민 초콜릿을 받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