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 민트초코
하지만 곧이어 나는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달콤한 초콜릿 안에 든 가나슈가 바로 민트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이 세계에 이런 이상한 걸 수출한 거야.
그렇다 나는 바로 반민초파였다.
따로 먹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둘을 같이 먹는 건 초코릿과 치약을 같이 먹는 것 같아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이런 것까지, 가져온 건데.
존재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빙의자를 원망하며 나는 민트초코를 내려놓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필레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킬레스도 그러던데 자네도 별로인가 보군, 미안하네.”
그녀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거린 나는 생각했다.
나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나를 제외한 이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민초단이었으면 난 미쳐버렸을 거야.
나는 이 초콜릿이 현재 수도와 외국에서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초콜릿을 바라보자, 왜인지 민트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바리다스는 좋아할 것 같네.
그는 달콤한 초콜릿과 상쾌한 박하 차도 즐겨 마시니 말이다.
이렇게 된 거, 갈 때 선물로 사 가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직원을 호출했다.
“민트초코 한 박스만 포장해 주세요.”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민트초코를 포장하는 나를 보며 아필레는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내가 왜 민트초코를 구매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공작이 좋아하겠군.”
그녀의 말에 왜인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얼굴을 붉힌 그 순간, 토마와 레이안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많았던 것인지 둘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황궁으로 보냈니?”
아필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레이안은 메뉴판 앞에 앉아 토마와 음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바나나와 체리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둘은 평소보다 훨씬 들뜬 것 같아 보여 왜인지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의 뒤를 이어 레몬과 리리안이 카페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꽤나 달라져 있었다.
“어때, 어울려?”
우리에게 달려온 레몬과 리리안은 자리에 서서 한 바퀴를 빙글 돌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두 사람에게 쉽게 어울린다는 말을 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두 사람의 드레스가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색이 다르긴 했지만, 사교계에서 같은 드레스를 입는다는 것은 엄청난 모욕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아이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저런 옷을 골랐을까.
그때 리리안이 그런 우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입을 열었다.
“나랑 레몬이 마음에 든 드레스가 같아서, 이렇게 입기로 했어.”
“맞아, 커플룩이야!”
정확히는 커플룩이 아니라 트윈룩이지만, 그런 용어가 이 세계에 있을 리 없었다.
둘이 마음에 든다면 나야 상관없기는 한데.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둘의 모습을 헐뜯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레몬이랑 언니, 자스민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어도 괜찮은데, 나라고 안 될 이유는 없잖아?”
그 순간 이어진 리리안의 당돌한 말에 나와 아필레 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 리리안 네 말이 맞아.”
아필레는 리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고 그녀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리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많은 양의 상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는 김에, 더 샀어.”
같은 디자인의 옷이 두 벌씩, 그들이 산 것은 모두 트윈룩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나와 아필레는 그 모습을 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레몬과 리리안은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트윈룩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고, 사교계에 퍼져나가는 것은 레몬과 리리안이 사교계의 꽃과 달이라 불리게 된 뒤로 아직 먼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린과 렌 자스민이 돌아왔다.
엄청난 쇼핑을 한 레몬과 리리안과는 다르게 그린과 렌, 자스민은 각자 책 한 권씩을 들고 있었다.
그린과 렌은 음료도 주문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바로 자리를 잡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스민 또한 그들 옆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긴 했는데.
그녀가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메뉴판이었다.
“나는 초코 프라페에 휘핑 엄청 그리고 자바칩 추가하고 딸기 케이크, 초코칩 쿠키도!!”
한참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말한 것들을 주문해준 뒤 아이들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반가운 것인지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아필레가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가면 좋을 텐데.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아필레가 입을 열었다.
“서부에 더 머물고 싶은데, 있을 곳이 없군.”
그녀를 올려다보자, 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 집, 방 많아요. 아니면 제 방에서 같이 잘래요?”
“공작부인의 초대라면 사양 않지.”
그런 우리의 말을 들은 것인지 레몬과 리리안, 토마와 레이안이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다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바리다스는 그들의 방문이 탐탁지 않은 듯했다.
당분간 나와 같은 방에서 지낼 것이라는 아필레의 말에 표정이 구겨졌으니 말이다.
“폐하께서 서운해하실 겁니다.”
“괜찮다네.”
“현재 황궁은 바쁠 텐데요.”
“그대의 선배는 그리 무능하지 않아.”
한 치의 물러남도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기 싸움이 길게 이어지던 와중, 아필레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이러다가 나중에 날 보고 싶다고 수도로 오면 어쩌려고 그러지? 차라리 지금처럼 자네 곁에 있는 게 낫지 않나.”
그녀의 말에 바리다스는 결국 아필레가 나와 함께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여전히 아필레는 바리다스를 이길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분간 실례하지.”
그렇게 그녀는 내가 과거 쓰던 방에서 함께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리리안과 레이안 또한, 각자 토마와 레몬의 방을 쓰기로 했다.
다만 둘의 경우 한 침대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방에 침대를 하나씩 더 두었지만 말이다.
“정말로 안 불편하시겠어요?”
침대를 하나 더 두는 것이 편하지 않겠냐는 내 말을 거절하며, 아필레는 입을 열었다.
“괜찮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은 왜인지 바리다스를 향해 있었다.
그 상태로 내 손을 잡은 아필레는 환하게 웃어보았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더 같이 있겠나.”
그녀의 행동에 바리다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제서야 뒤늦게 바리다스와 아필레가 나를 사이에 두고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아까 사온 민트초코를 들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라스, 이번에 오픈한 백화점에서 나온 디저트인데 좋아 할 것 같아서 사왔어요.”
그런 내 행동에 바리다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모습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며 포장을 까고 그 안에서 민트색의 초콜릿을 꺼내 보았다.
“민트초코라는 건데, 라스 취향에 아마 맞을 거예요.”
처음 보는 디저트 색감에 바리다스의 표정이 조금 굳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가 넘긴 민트초코를 받아먹은 바리다스의 눈이 커졌다.
아니, 좋아할 것 같긴 했지만 이 정도로 마음에 들어 한다고?
평소 표정 변화가 적은 바리다스가 이 정도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곧이어 바리다스의 눈이 반달로 예쁘게 접혔다.
“맛있네요.”
…민트초코 최고야.
나는 안 먹을 거지만, 아무튼 최고야.
라스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로도 너는 이미 할 일 다 했어.
죽어도 안 먹을 거지만, 너는 오늘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야.
“자네가 무언가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오랜만에 보는군.”
아필레 또한 민트초코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 보이는 바리다스의 모습에 적잖아 놀란 듯했다.
그녀는 대기하고 있던 시종을 불러 민트초코 몇 박스를 더 가져오라고 명했다.
그러자 아필레가 수도로 가져가기 위해 백화점에서 구입했던 민트초코 가나슈와 민트초코 코코아, 민트초코 아몬드가 차례로 책상 위에 놓였다.
“내 주위에서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건 자네가 처음이니, 특별히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정말로 마음에 드는 듯, 눈을 반짝이며 냉큼 대답하는 바리다스의 모습에 아필레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가 무언가를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바리다스의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그때까지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리다스가 민트초코에 얼마나 빠졌는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트초코를 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다스는 수도에서 가장 큰 초콜릿 회사의 지분을 구매했다.
새로운 민트초코를 출시하기 위해서였다.
바리다스의 방에서는 더 이상 박하와 커피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씁쓸하고 달콤한 초콜릿 향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그 향을 좋아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왜인지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매일같이 민트초코를 입에 달고 살았다.
심지어 나와 토마, 그린을 제외한 아이들 모두 민트초코를 좋아했다.
그만큼이나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민트초코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콜릿을 많이 먹는 것뿐이었지 바리다스가 살이 찌거나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내게 소원해진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이렇게 서운한 거냐고.
나는 오늘도 달콤하고 씁쓸한 향기가 나는 바리다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