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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138)화 (138/207)

외전 9. 흔하디흔한, 악역의 서사였다  

어느 날, 커다란 제국에서 한 소녀가 태어났다.

황실의 네 번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문제점이라 하자면 그녀의 어머니가 황제의 후궁이었다는 점 정도겠지.

그래도 그녀의 어머니는 인정받지 못했거나 평민인 후궁은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의 집안은 꽤나 높은 신분의 귀족이었고 황후의 자리는 비어 있었기에, 그녀는 직계 자손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녀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는 어머니와, 자신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자식이 있는 아버지.

이 황실에서, 그녀는 언제나 외롭게 살아갔다.

사랑을 받는 법도 주는 법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사춘기를 거쳐 삐뚤어지게 된 소녀는 매일같이 사치와 패악을 일삼았다.

돈을 물 쓰듯 펑펑 사용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용인들을 때리고 폭언을 내뱉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걸릴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은 그녀에게 관심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황실의 악녀라는 소문이 말이다.

그렇게 결국 아버지이자 황제의 앞까지 불려간 소녀는 결국 팔려가듯 외국의 공작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공작의 이복동생이자, 자신과는 다르게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은 아이들을 말이다.

그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질투심이 났지만 괜찮았다.

그들 또한 부모님을 잃었으니 이제 자신과 같은 처지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에 비해 자신의 남편은 마음에 들었다.

외모나 성격, 그런 것들이 아니라 자신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점이.

사랑을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자신과 닮은 그 모습이.

이대로라면 아이들은 자신과 그처럼 자랄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하며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불만스러웠던 공작과의 결혼 생활이 생각만큼이나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알아서 그녀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마주칠 때마다, 죄라도 지은 것처럼 인사를 한 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그 모습은 그녀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었으니까.

저택의 안주인이 그렇게 행동하니, 사용인들 또한 물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아이들에게 가는 돈을 꽤나 오래전부터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말리기는커녕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정말 화가 나는 날에는 한 번씩 아이들에게 손을 올렸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고 이 저택에 그들의 편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은 이 저택에서 사용인들보다 낮은 신분이었다.

정말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공작은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어떠한 사치를 부려도, 다른 남자를 만나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으니까.

공작가의 재정을 돌보거나 사교계에 나가 입지를 다지는 것과 같은 공작부인의 일 또한, 할 필요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패악을 일삼지 않았다.

공작이 자신과 결혼한 것은 순전히 국가 간의 협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며 두 국가에는 상하 관계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그녀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는 공작 또한 자신처럼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자신이 별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라 생각하지 조차 않는 것이었다.

한, 일 년 동안은 말이다.

어느 날부터 공작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이들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처지라 믿고 있었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공작과 식사를 함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늘 눈치를 보며 정원 구석에서만 있던 아이들이 정원을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그녀의 방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있으면 활기가 돈다는 말이 있다는 말답게 늘 차가운 분위기의 저택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당연하게도.

악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마주쳐도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그녀는 원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몇 달 전, 공작가에 새로 들어온 하녀가 그 원인이었다.

몰락 귀족의 딸이라는 하녀가, 공작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공작의 모습으로 보아하니, 본인의 가진 감정이 사랑이라는 자각은 없는 듯했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이대로 있다면,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정원에서 웃고 있는 그와 아이들의 모습을 본 그녀는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망가지기 전에 저 하녀를 내쫓아야 한다고.

그녀는 공작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점보다 자신과 똑같다 생각했던 공작과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고 다시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렇게 그녀는 하녀에게 누명을 씌워 저택에서 쫓아내 수녀원으로 보냈다.

공작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기 전에.

하지만 그녀의 생각보다 하녀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반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은 것인지.

그녀가 쫓겨난 것에 불만을 품은 아이들이 공작에게 증언한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들을 학대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하녀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과 동시에 하녀들 또한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갈 돈을 횡령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악녀를 팔아넘겼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었다.

화가 났다.

왜 언제나 자신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일까.

이 상황은 너무나, 불합리했다.

자신과 아이들의 차이가 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은 평생 얻지 못한 것들을 저렇게 쉽게 얻는 것일까.

어차피 공작가에서 쫓겨나 황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이라면, 당신들도 가지지 못해야 했다.

그렇게 악녀는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는 돈을 주겠다는 말로 공작가의 친위대장을 꾀어내었다.

속으로는 그 따위 가족이 뭐라고 이런 일에 목숨을 바치냐, 비웃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명의 사람을 더 매수한 악녀는 하녀가 수녀원에서 돌아오는 날, 그녀를 납치해 공작이 보는 앞에서 죽이겠다는 결심을 했다.

애초에 그녀를 데리러 간 것이 기사단장이었기에, 그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 기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분명 그는 이름 있는 가문의 기사도, 능력이 있는 기사도 아니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평민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던 기사였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하녀가 납치당했다는 말을 들은 그가, 기사단장을 죽이고 배후를 쫓아 그녀에게 온 것이었다.

누구보다 간절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본 악녀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도 공작과 마찬가지로 하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대체 나와 무엇이 다르기에,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일까.

네가 이렇게 해 봤자, 그 하녀는 공작에게 갈 텐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이지.

대체 그 마음이 뭐길래, 그녀가 뭐길래 그 꼴이 되어 가면서도 그렇게 지키려 하는 거지.

수많은 의문점을 풀기도 전에.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악녀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세상에는 사치를 일삼던 그녀가 아이들에게 공작가의 재산이 넘어갈까 두려워, 친위대장을 매수해 함께 그들을 죽이려 했으며 그 사실이 발각되자 자결했다 알려졌다. 하녀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미래의 공작부인이 될 그녀의 명예를 위해 묻혔다.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그녀의 나라조차, 진위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공작에게 미안하다는 사죄를 전했고 그녀의 죽음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일에 가담했던 친위대장과 매수되었던 사람들 또한 사형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악녀가 그들에게 준 돈은 이미, 그들의 가족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으니까.

잃을 게 없어, 이런 일을 저질렀던 악녀와는 다르게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이 일에 동참했던 것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애초에, 이 계획이 성공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절대 옳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악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녀가 몇 년을, 아니 몇십 년을 더 살았다 해도 말이다.

그 의문을 풀기에는 그녀는 너무나도 꼬여 있었고 뒤틀려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그녀는 생각했다.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신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로 살게 되었고.

같은 상황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습을 보아도 이렇게 말하겠지.

이 모든 것이, 그 다른 사람이 사랑받고 자랐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항상 주어진 환경만을 탓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녀가 다시 돌아오게 됐다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전혀, 없었을 것이었다.

이야기 속 흔하디흔한, 악역의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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