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41)화 (141/207)

3. 토마와 렌의 아카데미

오르간의 앞에 앉은 렌은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건반을 눌러보았다.

띵.

그러자 들려오는 맑고 청아한 소리에, 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몇 번 더 건반을 눌러보며 음을 익힌 렌은, 두 눈을 감고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끝에, 눈을 뜬 렌은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띠리링.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은 렌은 그 상태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렌은 눈을 감고 있음에도, 하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가 연주하고 있는 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예전, 바리다스와 나의 약혼식 때 렌이 연주해주었던 곡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도 정말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돌려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 또한 이 곡의 정체를 깨달은 것인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처음 연주하는 악기로 이 정도 실력이라니.

렌이 정말 천재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그렇게 우리가 넋을 놓고 렌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던 그때, 띵! 소리와 함께 연주가 멈추었다.

우리가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머쓱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렌의 모습이 들어왔다.

역시, 아무리 렌이라 해도 처음 연주하는 악기를 완벽하게 다루는 것은 무리인 모양이었다.

“조금 어렵네요.”

아니, 보통 처음 보는 악기로 그 정도 연주는 못 해.

“아니야, 잘했어.”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지만 렌의 표정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 처음 연주하는 악기로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하단다.”

바리다스까지 렌을 칭찬해 주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아쉬운 듯 여전히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아쉬운 표정으로 오르간을 바라보고 있던 렌은 입을 열었다.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몰라서 완벽하게 연주해 보고 싶었어요.”

답지 않게 기죽어 있는 목소리에, 렌이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왜인지 마음이 아파졌다.

그냥, 저택에 오르간 설치해 줄게.

그러면 눈치 볼 거 없이 매일같이 연주할 수 있잖아.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옆쪽에서 렌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한 번쯤은 더 연주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렌은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바라봤다.

“정말요?”

오르간이 정말로 마음에 든 것인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되묻는 렌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었다.

귀여운 렌의 모습에 남자의 깐깐하던 표정이 잠시 풀어졌으니 말이다.

“예, 한 번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렌은 바로 오르간 앞으로 달려갔다.

저렇게 기뻐하는 렌의 모습은 정말로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르간 설치한다.

무조건 설치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치한다.

렌이 저렇게 기뻐하는데 돈 조금이 무슨 대수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르간 앞에 앉는 렌을 바라봤다.

아까와는 달리 망설임 없이 오르간에 손을 올린 렌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녀가 이번에 연주하기 시작한 곡은, 나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렌이 연주하는 대부분의 곡은 들어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은 정말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이도가 있는 곡이라는 것은 느껴졌지만 말이다.

우리 렌, 어쩜 이리 완벽한지.

나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운 채, 연주하는 렌의 미소를 지켜봤다.

렌은 이번에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히 연주를 마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곡이니?”

내 질문에 렌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알려 주신 곡이에요.”

렌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살짝 들어 바리다스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렌의 걱정과는 다르게 바리다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곡이셨지.”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한 말이 분명함에도 렌은 아직도 그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원래는, 연주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곡은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게 더 좋다고 말씀하셔서.”

렌의 말에 바리다스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씁쓸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그런 미소였다.

“알고 있단다,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바리다스의 말에 렌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이어 수줍은 듯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저, 이 곡 바이올린으로도 연주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오라버니 시간 있으실 때. 저랑 합주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귀여운 렌의 말에 바리다스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제든지.”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오가고 있던 그때,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꽤나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인지 헉헉거리던 그 남자는 나와 바리다스를 보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공작님… 공자님과 황태자 저하께서!!”

그의 말에 당황한 내가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 또한 당황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 * *

피오라와 바리다스에게 아카데미의 연무장을 구경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토마와 레이안은 매우 들떠 있는 상태였다.

매 세기마다 소드 마스터를 한둘씩은 꼭 배출해 낸다는 명문 아카데미!

현 크레센트 제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인 바리다스가 졸업한 바로 그 아카데미!

바리다스가 들으면 좀 서운해할 수도 있었으나, 두 아이는 눈앞에 있는 소드 마스터인 바리다스보다 그가 배운 환경에 더 관심이 많았다.

둘의 목표는 언제나, 소드 마스터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근처에 도착하자, 기합 소리와 나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연무장에서도 언제나 듣는 소리였지만, 이곳에서 듣는 소리는 왜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 좀 설레는 거 같아.”

“어, 나도.”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은 두 소년은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허가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층 더 커진 기합 소리와 나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하게 연무장의 시설로만 따지자면, 황궁이나 차일드 가의 연무장이 몇 배는 더 좋았으나 그들이게 이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이 연무장이 라이온 아카데미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설 되게 좋다.”

“그러게.”

“황궁도 저런 식으로 바꾸자고 해 봐야겠어.”

아들을 위해 최근 연무장을 고쳐준 아킬레스가 듣는다면 참으로 서운해할 말이었다.

두 사람은 연무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연무장들과 별반 다름이 없음에도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색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연무장 한 바퀴를 돌며 구경을 마친 레이안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꼭 합격하자.”

“당연하지.”

두 사람은 라이온 아카데미가 정말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들의 마음에 가장 든 것은 당연하게도, 학생들의 수준이었다.

명문 아카데미라 그런 것인지, 지나가며 보이는 학생들 대부분이 매우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의 시선을 끌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푸른 머리의 기사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둘은 그 기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 저 사람이랑 대련해보고 싶어.”

그들 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레이안이었다.

토마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두 사람은 그 기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그때, 남자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검을 내려놓았다.

“페인!!”

주황색 머리의 남자가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왜?”

“너 그거 들었어?”

담담한 페인과는 다르게 잔뜩 들떠 보이는 주황색 머리의 남자는 설레발을 치며 소리쳤다.

“차일드 공작님이, 아카데미에 오셨데!”

그의 말에 페인의 눈이 커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바리다스는 모든 기사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 아카데미의 검술 학부에 다니는 사람 중,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것은 페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담담하던 그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인해 환해졌다.

그의 반응에 바리다스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 주황 머리의 남자 또한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 첫째 공자와 둘째 공녀의 입학시험 때문에 같이 오셨대.”

하지만 그의 말에 페인은 표정을 구겼다.

페인 어퀠티든, 어퀠티든 백작가의 차남으로 올해 열다섯 살이 되는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바리다스를 동경해 왔다.

라이온 아카데미도 바리다스 때문에 입학한 것이었고 나중에는 이그나이트가 되어 그의 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는 일반인들은 알기 힘든 바리다스의 여러 가지 정보들까지 알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리다스의 동생들이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페인은 바리다스가 가문의 수치와도 다름없는 사생아들을 위해, 아카데미까지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사생아들 때문에 왜?”

그런 페인의 말은 두 사람을 보고 있던 토마와 레이안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오랜만에 듣는 사생아라는 말에, 토마는 주먹을 쥐었다.

아직도 자신을 저렇게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자신은 차일드 가의 사람이었으니까.

바리다스의 동생이었으니까.

저 정도 말로는 이제 상처받지 않으니, 의젓하고 씩씩하게 있어야 했다.

토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옆에 있던 그도 저 말을 들었을 것임이 분명했으니까.

“오랜만에 듣는 소리네.”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한 말이었지만 그의 말은 레이안에게 닿지 못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레이안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먼발치에서 레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토마가 시선을 옮기자 페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레이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앞에서, 다시 한번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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