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43)화 (143/207)

5. 토마와 렌의 아카데미

“얘들아, 시험 잘 보고 와.”

나는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고마워요.”

나와는 다르게 저런 시선들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 것인지 우리에게 인사를 한 뒤 아카데미 안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아카데미 학생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던 토마와 레이안은 어제 그 일 때문인지 더 큰 이목을 받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황태자와 공작가의 자제가 매우 친하다는 부분에서 대부분의 귀족들이 심상치 않다 여겼고.

그건 어린 귀족들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바리다스가 공개적으로 토마를 공작가의 자제라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 토마와 렌을 사생아라 무시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아카데미에 들어감과 동시에 세 아이의 주위로 몰려드는 학생들을 보며, 아이들의 아카데미 생활이 평탄치 않음을 직감했다.

너무 큰 관심을 받아봤자, 좋을 거 하나 없는데.

뭐, 황태자와 공작가의 자제인 부분에서 관심을 안 받는 것이 더 힘들겠지만 말이다.

너무 과한 관심으로 인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만심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때 들려온 바리다스의 말에 그를 돌아보자, 부드럽게 웃어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다 티가 난 모양이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마워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바리다스는 시선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킬레스와 친해지고 능력을 인정받은 뒤에야 귀족들에게 무시 받지 않던 자신의 과거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희에게 같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니.

바리다스는 어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떄문이었다.

너희들은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니.

작게 미소지은 그는 멀어저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잘 보고 오렴.

바리다스는 속으로 아이들에게 다정한 응원을 건네었다.

* * *

그 시각 아이들은…

“시선 바뀐 거 느껴져?”

렌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곁눈질로 훑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눈칫밥을 먹고 지냈던 렌은, 자신에 대한 악의와 선의의 시선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았다.

그녀는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자신들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동경의 눈빛으로 자신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이 역겹다고 생각했다.

“어, 역시 귀족들은 다 가식적이라니까.”

토마 또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어차피 다, 별것 아닌 놈들이야.”

레이안 또한 두 사람의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세 아이는 두 사람의 걱정보다 멘탈이 좋았고 귀족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예린보다도.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함께 음악학부 시험장의 건물까지 온 렌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시험 잘 보고 와.”

토마와 레이안은 둘 모두 검술학부와 정치학부를 복수 전공하려 했기에 배우는 과목이 같았지만, 렌은 음악학부만을 전공하기 때문에 보는 시험장이 달랐다.

혼자 남게 될 렌이 걱정이 되어 주위를 둘러본 토마는 대부분의 학생이 여자인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토마가 렌의 머리를 살짝 툭 건드리며 발걸음을 옮겼고 레이안도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힘내, 렌.”

그렇게 헤어지나 싶던 그때.

“무슨 일 있으면, 내 이름. 써먹어도 좋아.”

레이안이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소곤거렸고 혼자 남게 될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그 말에, 렌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걱정은 고맙지만, 괜찮아요. 저 또한 차일드 가의 사람인걸요.”

당당한 렌의 말에 레이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할 필요 없겠네.

혹시나 그녀가 토마처럼, 그런 일을 당해도 아무 말 못 할까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이었는데.

네가, 내 친구보다 낫다.

“그래.”

그렇게 레이안은 토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고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린 렌은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아카데미의 공연장에서 만났던, 바로 그 남자였다.

교수라는 사실은 어림잡아 눈치채고 있었는데, 시험관일 줄이야.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렌은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 렌은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시험을 보는 인원이 시간별로 나누어져 있기에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음악학부가 그렇게 인기 있는 과목이 아님에도, 경쟁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실기와 필기, 두 가지였나.

렌은 시험장 한가운데 위치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몇 개의 악기를 보며 생각했다.

실기는 자신 있는데, 필기는 어떤 식이려나.

뭐, 뭐가 나와도 상관없지만.

긴장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렌은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믿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이 시험장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렌은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그와 동시에 시험장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시험관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시험의 감독관을 맡게 된. 음악학부의 일 학년 담당 교사 틸레난입니다.”

라이온 아카데미는 매 학년마다 담당 교수가 바뀌기에, 저 말은 이번 시험에 합격한다면 틸레난이 렌의 교수가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한 번 돌아본 틸레난과 렌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시선을 돌린 틸레난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이 시험에서 합격한다면, 제가 여러분의 교사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죠.”

렌의 예상대로였다.

“아시다시피 음악학부의 입학시험은 두 가지, 실기와 필기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준비되어 있던 악기들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실기가 먼저인 모양이네.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자신 있는 분부터 앞으로 나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틸레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있지 않았음에도 저 말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는 느낌은 왜일까.

첫 번째 순서가 부담스럽기 때문인지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고 렌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감 있게 자리에서 일어난 렌은 단상 위로 걸어 나갔다.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렌이 틸레난에게 인사를 하자, 작게 미소지은 그가 입을 열었다.

“가장 자신 있는 악기로 원하시는 곡을 연주하시면 됩니다.”

가장 자신 있는 악기라 하면,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렌은 망설임 없이 피아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하는 곡.

너무 망설였다간 감점이 될 수 있었다.

원하는 곡이라 했을 때, 바로 떠오른 곡은 하나뿐이었다.

렌은 피아노 위로 손을 올렸다.

그녀가 연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난이도의 곡.

선생님 아니, 할아버지와 샐 수 없을 정도로 연주해온 곡.

레트멘의 ‘네가 없는 날’을 말이다.

띵.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맑게 울리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역시 명문 아카데미라 그런 것인지, 이런 피아노 하나하나가 최고급품이었다.

작게 미소지은 렌은 눈을 감은 채,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학부를 지원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의 높은 난이도의 곡이었기에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피아니스트도 연주하기 어려운 곡에 도전하다니.

담력이 대단한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틸레난 또한, 저 곡을 연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표정 관리를 실패한 채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심지어 잘하는군.

아무리 높은 수준의 곡을 연주한다 해도,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곡이 반 정도 진행된 지금.

렌은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 곡으로 입학시험을 보는 학생들이야, 꽤나 많았다.

그 학생들 대부분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지 못하고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렌의 실력으로 보건대.

앞으로 실수를 한다 해도 두 번까지는 넘어가 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차일드 가는 음악적 재능도 뛰어난 것인가?

그는 과거 바리다스가 아카데미에 다닐 때에도 교수로 일하고 있었기에 그의 연주 실력 또한 알고 있었다.

이건 뭐, 필기를 볼 필요도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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